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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데미안이 케이시의 부모님과 식사를 반쯤 마쳤을 때 케이시가 나 타나서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이렇게 수사가 빨리 진척될 줄은 꿈에도 몰랐 다. 사실 그녀는 잭 커루더스를 잡을 생각으로 시카고에 온 게 아니었다. 케이시의 머릿속에는, 짐을 싸던 딸을 보고 어머니가 던진 질문이 여전히 생생했다. 넌 그를 도와줄 생각이로구나? 그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네. 왜? 난 시작한 일의 끝을 보고 싶으니까요. 그리고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 어요. 오직 그 이유뿐이니? 아니에요. 케이시는 하늘이 무너져라 한숨을 쉬며 사실을 인정했다. 코트니는 초조해졌다. 어물쩍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다 털어놔. 케이시는 침대에 앉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난 엄마 충고에 따를 생각이에요. 최소한 데미안에게 청혼할 기회를 주겠 어요. 하지만 그가 자발적으로 청혼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더 이상은 않겠 어요.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엄마. 난 진심이에요. 코트니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케이시는 데미안에게 그녀가 좋은 아내감이 될 수 있다는 증명을 하기에 시간이 충분 하리라 생각했다. 가슴 떨리게 하는 그의 시선을 여러 번 포착할 때마다, 청 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 잭을 발견해버렸다. 그녀는 식사에 늦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잭의 소재를 알아냈어요. 챈도스는 딸의 신속한 성공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코 트니는 발끈 화를 냈다. 얘, 나는 아직 쇼핑을 시작하지도 않았어! 그러자 챈도스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무슨 쇼핑? 데미안의 귀에는 두 사람의 대화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케이시를 다그쳤다. 벌써? 확실하오? 케이시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진 않아요. 난 아직 두 눈으로 그를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의 인 상착의며, 그가 이 도시에 도착한 시간 등이 다 맞아떨어져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쉽게 그를 찾아냈지? 내가 고용한 탐정들은... 그들을 비난하지 마세요. 이건 순전히 행운이에요. 가령 예를 들면? 내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잭은 강변 근처의 한 호텔에 묵었어요. 하지만 오래는 아니고 딱 이틀 묵었더라구요. 나는 당연하게 그 다음 절차로 그와 조금이라도 상관이 있을 법한 호텔 직원들을 모두 조사했어요. 탐정들도 이 도시의 호텔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조사했소. 당신이 시간 을 내서 그 보고서를 읽었더라면 이미 그 점을 알았을 거요. 내가 그 보고서를 읽었더라면 굳이 호텔 수사에 나서지 않았을 거예요. 하 지만 이 일은 전적으로 행운이라고 이미 말했잖아요, 데미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잭은 모든 식사를 호텔 방으로 배달시켰고 밀튼이란 직원이 그 방을 담당했어요. 하지만 그 당시 밀튼이란 직원은 아파서 결근하고 그의 형이 대 신 출근했더라구요. 밀튼은 올해 병가를 많이 냈기 때문에 또 결근할 경우 해고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그날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실 을 상관에게 숨기려고 애를 썼어요. 그가 잭에 대해 뭔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란 뜻이군? 아니, 그가 아니에요. 나는 그가 무심코 내뱉은 실언을 놓치지 않고 추궁했 어요. 그는 좀처럼 자신과 닮은 형에 대해 입을 열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결 국 그날 그의 형이 그를 대신해서 호텔에 출근했다고 인정했어요. 그래서 너는 밀튼 대신 그의 형에게 잭에 대해서 물어봤구나? 챈도스가 추리했다. 정확해요. 마침내 밀튼은 형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줬고, 오늘 오후에 나는 그 장본인을 찾아갔어요. 호텔에 투숙할 당시, 잭은 잔뜩 긴장한 객실 직원 을 의심한 모양이에요. 잭 본인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쫓기는 몸이잖아 요. 하지만 그 직원은 잭과 무관한 이유에서 긴장했고, 잭이 상사에게 불평 할까봐 동생을 대신 일하는 중이라고 털어놨어요. 잭은 단박에 밀튼의 형이 유용한 존재임을 알아차렸지요. 왜냐하면 밀튼의 형은 다시 호텔에 나올 사 람이 아니니까, 잭에 대한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없잖아요. 하지만 잭이 그 불쌍한 직원의 형을 어떻게 이용해 먹었다는 거니? 코트니가 나서서 물었다. 케이시는 빙그레 웃었다. 바로 그 점이 잭의 영악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에요. 그는 밀튼의 형에게 부동산을 통하지 않고 묵을 곳을 찾아준다면, 그들 형제의 역할 바꾸 기에 대해 입을 다물겠노라고 협박했어요. 그래서 그 형이란 사람이 그렇게 했어? 그럼요. 그는 잔뜩 겁을 먹은 나머지 그날 오후에 당장 집을 알아봐줬어요. 사실, 그곳은 바로 그의 하숙집이었어요. 그는 제집을 내주고 잭이 다른 곳 으로 옮길 때까지 동생 집에 얹혀살기로 했어요. 그저 갖은 애를 다 써서 잭 을 만족시키고 동생의 일을 호텔 상사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생각뿐이었지요. 어쨌든, 잭은 누추한 그 하숙집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를 추 적하는 사람들에게 들킬 가능성이 적은 최고의 장소라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숙소를 옮겼어요. 잭이 아직 그곳에 있소? 데미안이 물었다. 케이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숙집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래요. 그는 만에 하나 추적당할 경우를 대비 해서 마리온 아담스 라는 여자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기다릴 이유가 없지. 당장 쫓아갑시다. 데미안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세요. 케이시가 대답했다. 왜? 잭은 지금 그곳에 없어요. 내가 이미 확인해봤어요. 그녀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데미안과 챈도스는 못 먹을 것이라도 먹은 사람들처럼 인상을 썼 다. 네가 벌써 확인해봤단 말이니? 챈도스가 먼저 말했다. 그 말이 네가 그의 방문을 두들겨봤다는 뜻이라면, 내가 너를 호텔 방에 감금시킬 줄 알아라. 아빠... 당신 혼자 잭을 체포하지 않겠노라고 이미 동의했잖소? 데미안이 다음 타자로 나섰다. 케이시, 내가 절대로 당신을 내 눈 밖에 내놓지 않겠노라고 맹세했잖소. 제발 두 분 모두 그만 좀 할 수 없어요? 두 남자의 맹공에 시달린 케이시가 절망적인 어조로 말했다. 나는 영웅적인 여주인공 노릇을 할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잭의 방문을 두 드리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그의 방은 삼층 계단 옆에 있어요. 까다로운 하 숙집 주인이 그가 외출했다고 말해줬지만, 나는 그저 확인할 요량으로 그의 방문에 돌을 던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그가 밖으로 나오는지 기다렸어요. 하지만 인기척이 없었어요. 그래서 의심을 사지 않도록 그 돌을 도로 주워서 밖으로 나왔다구요. 당신이 그곳에 있는 동안, 그가 돌라와서 당신을 알아보고 뒤를 밟았으면 어쩌려고 그랬소? 그가 거기에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빨리 돌아왔어야지. 데미안은 여전히 그녀의 안전을 염려하며 오만 가지 걱정을 다 했다. 케이시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모자에 달린 베일을 내렸다. 두꺼운 베일은 그녀의 얼굴을 감쪽같이 가려줬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하지만 그는 이런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을 거예 요. 좋소. 데미안이 마침표를 찍듯 그녀의 논리를 인정했다. 하지만 난 아침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소. 내가 그곳에 잠복하고 있다가 놈 이 돌아오면... 하지만 데미안의 목소리는 고개를 가로젓는 케이시의 모습에 점점 잦아들 었다. 왜 반대하는 거요? 하숙집 내부는 굉장히 어두워요. 그의 침실 복도 맨 끝에 창문이 하나밖에 없는데다 그나마 다른 건물과 면하고 있기 때문에 훤한 대낮에도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요. 게다가 삼층 복도의 램프가 부서졌어요. 아마 잭은 촛불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거예요. 그뿐이 아니에요. 모든 방에는 출입구가 두 개씩 달렸어요. 하나는 보통 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숙집 뒤쪽으로 통하는 비 상 출구예요. 내가 건물 뒤쪽을 확인한 바에 의하면, 잭이 도망갈 경우 몸을 숨길 곳이 매우 많아요. 그리고 비상 출구 계단으로 이층만 올라가면 지붕과 통하니까, 그로서는 어둠을 틈타 도망칠 길이 무궁무진한 셈이죠. 하지만 아 침이나 대낮이라면 그렇게 쉽게 도망치지 못할 거예요. 데미안은 포기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챈도스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넸다. 우리 딸은 바늘로 찔러도 들어갈 틈이 없다네. 네, 정말 그렇습니다. 데미안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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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