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지맥 8구간
2009.04.26 (일)
산길 : 동막~가창산~어상천
거리 : 17.7km
구간거리
동막고개~3.9~배재~2.4~왕박산분기봉~4.6~가창산~6.8~[519도로]......17.7km
Cartographic Length = 21.8km / Total Time: 08:20
43km 남은 구간을 둘로 잘라, 이번 구간을 해고개로 잡고 무박으로 출발을 했다. 04시가 채 되기전에 산행시작을 했는데, 시간상으로는 해고개까지 충분했지만 기력이 따라주질 못했다. 나를 포함한 선두 넷이 어상천 도로에 이를 때 쯤 후미에서 고장 신호가 들려왔고 더 이상의 진행을 막았다. 결국 회장님과 의논 끝에 ‘한번 더 오자’로 결론짓고 어상천 고개에서 마무리를 했다.
남은 거리가 도상으로 25km 가량인데 현재 팀의 진행능력으로 볼 때, 한번으로는 무리이고 두 번으로는 푸짐하게 남는다. 한번 더 오게되는 회비를 대신 내라는 농담도 했지만, 개구리 올챙이적 모르는 소리다. 자신의 힘이 딸려 단체에 누를 끼치는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나.
동막고개에서 출발 한 시간에 개나리공원묘지 상단부를 지나는데, 여기부터 한국전력 변전소가 넓게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어 우회를 할 수 밖에 없다. 배재 직전에서도 능선을 하나 놓치고 논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정확하게 배재에 내려서지 못했다. 배재를 지나고도 정수장을 비켜 진행하고, 이후부터는 벌목잔해가 뒤엉켜 진행을 방해하고 급경사의 오르내림이 힘을 배로 들게한다.
온 비탈에 널부러진 벌목잔해와 끝없이 반복되는 숨넘어가는 까꼬막이 도중에 계획을 접은 주요인이었고 더구나 앞쪽에 버티고 있는 삼태산은 고도도 그렇지만 그 오르막의 비탈은 가히 ‘사람잡는 수준’ 이라는데야 더 이상의 엄두가 나지 않는게 당연하겠다.
(시간표)
03:50 동막고개
05:06 다랑고개
05:33 배재
06:28 38번국도
07:10 왕박산 분기봉
07:43 △567.8
08:50 가창산
10:01 △550.5
10:40 참나무쟁이 도로
11:48 △469.5
12:10 어상천 (519번) 도로
03:50 동막고개 (370m)
용두산에서 내려오면 처음 만나는 도로. 동쪽에 동막마을이 있어 동막고개라 한다만 우리끼리 부르는 이름이다. 먼 길을 예상해 지체없이 출발한다. 눈에 뵈는것도 없지만 배재까지는 크게 둘러 볼 일도 없는 나지막한 능선길이다.
남쪽으로 나있는 시멘트길로 올라가면 과수원이고, 끝까지 들어가니 집이 두 채 있는데 과수원 농막쯤 되겠다. 두 건물 사이로 들어가면 묘가 있고, 산길이 시작된다. 비교적 뚜렷한 길을 따르다가 문득 우측으로 떨어진다. 이런 밤길에는 역시 GPS가 훌륭한 길잡이다. 협곡같은 절개지 사이로 좁은 시멘트길이 넘어가는 안모산마을 고개다.
둥글게 시멘블록으로 둘러친 참호가 여럿 이어진다. 예비군 진지가 되는 모양이다.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온 천지를 뒤덮는다. 수십마린지 수백마리가 되는지 알 수 없이 온 산천을 울린다. 그야말로 수퍼 하이파이 스테레오 음이다. 어제 내린 비로 풀잎이 촉촉하게 젖어있다.
×422봉 직전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지도상 의림지가 바로 지척이나 숲속에서 더구나 어둔 밤중이라 보이는건 기대할 수도 없이 지도상으로만 확인한다. 송전철탑을 두 개 지나고 묘지가 이어진다.
04:41 개나리공원묘지 상단부
멀리 보이지 않으니 공원묘지인지 알 수도 없는데, 연이어 이어지는 묘를 보고 그런줄 알아챈다. 경주김씨, 동래정공(도민고)... 왼쪽에서 올라온 임도와 만나고 임도는 고개 넘어 내려가더니 왼쪽으로 벌어진다. 우측이 마루금이나 변전소(한국전력공사 제천전력소) 철조망이 발길을 막는다. 깜깜밤중에 철조망에 접근하기도 만만찮은 일이라 그대로 길을 따른다. 도로가 왼쪽 도화동쪽으로 90도 꺾이는 곳에서 더 이상은 곤란하다 싶어 정면 어둠속으로 들어가니 취수장 물탱크가 있다. 취수탱크 우측을 뚫고 들어간다.
나무 숲을 헤치고 내려가니 마을길을 만난다. 우측 논 건너편에 무수한 송전탑이 변전소 영역을 가늠하게 한다. 멀리 2시방향의 가로등 불빛에 보이는 길을 목표로 하고 가다가 마을길은 왼쪽으로 너무 벌어져 논둑으로 논을 가로질러 건너간다. 다시 마을길따라 우측으로 올라가니 버스정류장이 있는 [다랑고개길]이다.
05:06 다랑고개
82번 도로가 지나가는 고갯마루는 4차선으로 넓다. 왼쪽은 농약 제조공장인 인바이오믹스(주)이고, 우측(북)은 한전 변전소로 가는 길인 모양이다. 버스정류소도 있어, 지난구간 홀로 땜빵할 때 여기까지 왔었더라면 밤중에 이렇게 헤매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도로를 건너 대진환경 건설폐기물 처리장으로 올라간다. 우측은 대진환경 매립장이고 왼쪽은 금강레미콘이다. 정면 철탑을 보고 가다가 철탑 앞에서 우측으로 들어간다. 길은 곧 막히고, 왼쪽 아래 인삼밭 우측 가장자리로 붙어 따라 돌고 둔덕에 송전탑을 보고 올라가니 과수원이고, 우측은 철조망 울타리가 둘러져 있다. 과수원 원두막에는 밤새 라디오가 켜져있다.
원두막 뒤편 능선에 올라서 어지러운 잡목을 헤치며 들어가고보니 마루금은 우측 건너편 능선이다. 발길을 되돌리자니 잡목덤불도 그렇지만 그쪽 능선으로는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내려간다. 도면상으로는 고암농공단지(고암테크노빌)를 끼고 가는 송학 면계능선이 마루금이다. 그대로 능선따라 내려가니 논바닥으로 떨어진다. 도리없는 일이다 농로를 따라 큰길로 나가니 뱃재 고갯마루에서 왼쪽으로 살짝 치우친 지점이다.
05:33 배재 (294m)
태백선 철도와 나란히 가는 구 38번 국도다. 동쪽 송학면으로 새로난 우회도로가 도로번호까지 가져가 버렸지만 교통량은 꾸준하다. 주유소 앞에 있는 [뱃재고개] 표석 한면에는 ‘청풍명월’, 또 다른 면에는 뱃재 유래가 적혀있다.
“고개 형상이 배(船)와 같이 생겼다고 뱃재(船峴), 배를 많이 팔았다고 배고개(梨峴), 임진왜란 때 왜적에 패했다고 팻재(敗峴)...” 갖다 붙일만한 유래는 다 끌어다 놨다. 이런 유래판은 차라리 없음만 못하다. 까짓꺼 나도 하나 만들어 보자. “고갯마루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카드대신 배를 내미는 사람이 많아 배고개라 한다...”
이른시각이라 무단횡단도 할만 하다. 4차선의 중앙분리대를 뛰어넘고 태백선 기찻길도 이하동문이다. 어둠을 적절히 이용한 차선의 방법이다.
태백선 철길 건너면 정면으로 가는 임도가 있으나, 우측으로 마루금을 찾아 둔덕에 올라가니 철조망 울타리가 앞을 막는다. 우측을 기웃거리다가 왼쪽으로 내려서니 방금 전 기찻길 건너고 들여다봤던 그 임도다. 바로 오면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길도없는 봉우리 올랐다 내려온다고 헛걸음만 했다.
철조망 울타리를 두르고 마루금을 차지한 시설물은 ‘제천시수도사업소 고암정수장’이다. 정수장 왼쪽으로 나있는 임도를 따라 마루금을 우회하고, 정수장 울타리가 끝나는 즈음에 밭을 가로질러 마루금에 복귀한다.
능선에 올라서면 그런대로 길은 이어지다가 송전철탑을 지나고 10여분 후, 지맥은 송학면계를 버리고 왼쪽으로 떨어진다. 송전철탑에서는 왼편으로 왕박산과 무등산의 옆모습이 잠시 보인다. 왕박산은 마치 이발기계로 민 듯한 까까머리라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묫등에 할미꽃이 소복히 피어났다. 아직 덜 열린 꽃봉우리와 하얀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열매뭉치가 어울려 있다. 묘 앞쪽으로 내려서면서 고갯마루로 내려가는 능선이 세 가닥으로 갈라지는데 벌목잔해까지 뒤엉켜 능선 잡기가 참으로 애매하다. 나름대로 가운데 능선이 맞다싶어 고개로 내려서긴 했는데 확신은 없고 뒤에 후미는 모두들 우측능선으로 내려선다.
06:15 삭고개
2차선 아스팔트 도로. 서문리의 [삭고개길]이다 (영진지도는 삽고개). 고개 양쪽 절개지가 철망속에 돌을 채워 만든 축대이다. 고개를 넘는 차는 거의 없어 보이고, 건너편 올라서는 길 또한 벌목으로 엉망진창이다. 한 성질하는 친구는 벌써 욕을 한말이나 쏟아낸다만, 한편으로는 비 안오는게 다행이지 싶다. 이 와중에 비까지 내린다면야 더 이상 할말이 없는 지경이다. 어쨌든 봉우리 올라서니 차소리가 쌩쌩 거린다.
06:28 38번국도
거의 고속도로 같은 도로이나 교통량은 무단횡단 할만하다. 좌우 양쪽에 굴다리가 보이긴 하나 단순간편모드를 선택했다. 고속도로와 동일한 형태의 중앙분리대를 훌쩍 뛰어넘어 건너편 시멘트길에 올라섰다.
국도 건너편 능선 우측으로 들어가는 시멘트길이 적당해 보여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데 안쪽 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자꾸 뭐라 한다. 결국 밥 다 먹고 일어나 산으로 올라가려하니, 못 올라간다며 고함을 친다. 자기 밭을 밟지 말라는 소린지, 산불 땜에 그러는지 알 수 없다만, 아침부터 싸우기 싫어 그 농부가 안 보이는 곳으로 오르기로 하고 왼편으로 돌았다. (~06:45 아침식사)
능선의 왼쪽 억새무성한 골짝을 통해 마루금에 오르는데 이곳 역시 벌목으로 엉망이다. 이리저리 피해가며, 나뭇가지를 치워내며 오르다 보니 팔, 다리, 얼굴에 한칼씩 안먹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오르는 도중에 돌아보는 조망이 훤하다. 용두산에서 내려오고, 넓게 차지하고 있는 변전소 영역을 돌고, 아파트단지와 제천시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을 돌아보니 가슴이 시원하다.
(용두산에서 이어지는 마루금)
(제천 시가지)
07:10 왕박산 분기봉
한판 오름이 다하면 왼편 위로 통신탑이 보인다. 잠시 더 올라야 된다는 말씀이다.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철탑에 철조망 울타리를 두른 왕박산 분기봉으로, 왕박산은 왼쪽이요 지맥은 오른쪽이다.
왕박산 왼쪽으로 고개를 내민 무등산과 위풍당당한 송학산(818.1m), 용두산에서 여기로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산줄기들 그 왼편으로 보이는 제천시가지... 왕박산 남쪽사면은 불이 났던지 까까머리다. 사방팔방 구경에 열심인데 선두대장은 하마 남쪽 건너편 봉우리를 넘고 있다. 왕박산(王朴山 597.5m)은 고려의 왕씨가 이성계를 피해 들어와 피신한 곳이라고 한다.
조선 왕조 이태조가 새 왕조의 개창에 반대하는 권문세족을 무너뜨리고 온건개혁파 사대부를 축출하는 과정 속에 고려의 왕족이었던 왕을규(王乙規)도 멸족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그의 형인 이부상서(吏部尙書) 왕갑규(王甲規)는 중국으로 망명하고 국내에 남은 왕을규는 외갓집 성을 따라 의흥박씨(義興朴氏) 즉 박을규(朴乙規)로 행세하며 영춘 차의곡 (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에 피난하여 살았다. 그래서 의흥박씨를 흔히 왕박씨(王朴氏)라고도 한다. 3대를 그곳에서 살았으나 영춘에는 현청이 있고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는 비교적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서 신변에 불안함을 느끼자 4세손 박근부터 제천의 송학면 만지동(음지만지실)에 은거하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
왕박산 능선의 동쪽은 강원도가 된다(영월군 남면). 지난구간 석기암에서 헤어졌던 강원도계를 다시 만났다. 남으로 능선을 따르다가 갑자기 왼쪽 비탈로 쏟아지듯 내려간다. 직진 길이 더 뚜렷하므로 한눈 팔다가는 헛질하기 십상인 지점이다. 다 내려가니 돌탑과 돌무더기 흩어진 바닥의 안부다. 조을치에서 점재로 넘는 고갯길인데 누가 굿이라도 하고 갔나보다. 나무에 울긋불긋한 천 조각이 묶여있다. 현대판 성황당이다.
07:35 조을재 (鳥乙峙 490m)
떨어진 만큼 다시 올라간다. 그리 길진 않고 능선길은 그런대로 나갈만 하다. 한 봉우리 넘어 완만하더니 잡초에 묻힌 묵은 고갯길이 있는데 지형도상 조을재다. 새조(鳥)에 새을(乙), 새만 넘는 고갠가 보다. 차라리 고개는 아까의 성황당이 더 고개스럽다.
07:43 △567.8m (403재설)
오름은 잠깐 더 이어지고, 간벌지대를 지나고 자빠진 소나무 둥치를 피해 돌아 나가면 아주 오래된 삼각점이 하나 있다. 번호가 겨우 식별된다. 403, 건설부... 봉우리 찍었으니 여지없이 떨어진다. 줄줄 미끄러지다시피 급비탈을 내려가니 바로 왼편에 밭이 올라와 있다. 기동마을 안부쯤 되겠다.
안부에서 올라서면 ×524봉부터 도면에 임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나 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예전 광산이 운영될 때의 임도 였던 모양이다. 도면상으로는 좌우 곳곳에 광산 기호 표시가 있는데, 광산이 폐쇄되면서 임도도 자연히 숲속에 묻혀간다.
이곳 단양 제천 일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회석지대이다. 백두대간 자병산을 지나면서도 봤지만 땅속의 석회석이 물에 녹으면서 땅이 함몰되는 카르스트지형의 ‘돌리네’가 이곳 주변에도 목격이 된다. 그 지질학적 현상을 내가 감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루금을 잇는 우리에게는 아주 골치아픈 지형임에 틀림없다. 둥글게 꺼져버린 분지에는 마루금이 둘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이리가도 되고, 저리가도 되는” 마루금이라, “백두산으로 가는 마루금은 오직 한길”이라는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에 모순이 생기는 경우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선두대장은 두릅따느라 정신없다. 시기적으로 조금 지난 철이라 새로 돋아나는 옻나무순도 내 눈에는 모두 두릅으로 보인다. 잠시 후 산길이 왼쪽으로 꺾이면서 드디어 임도가 나온다만, 사랑하기엔 너무짧은 임도다. 50m도 채 못가 마루금과 이별하고 만다.
펑퍼짐한 비탈을 10여분 오르면 전주이씨 묘를 지나고 앞봉우리 뒤로 빠꼼히 가창산이 머리를 내밀고 있고 우측 아래 장치미못은 생각보다 크다. 왼편으로는 까마득한 절개지가 나온다. 광산하면서 다 깎아 먹어 수십길 절벽을 이루고 있다. 광산에서 쓰던 송수관인지 녹이 쓴 파이프가 반쯤 묻힌 채 이어진다.
(장치미못)
(삼태산)
08:50 가창산 (歌唱山 819.5m △404재설)
20여분 씩씩대며 오르니, 힘들인 이상으로 시원한 조망이 기다린다. 오래된 삼각점과 이름표가 나무에 걸려있다. 삼태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 구름속의 봉우리는 국지산인지 태화산인지 아직은 모르겠다만 영월지맥의 끝이 보이려 한다.
영월, 제천, 단양의 경계에 있는 해발 819.5m의 높은 산이다. 석회암으로 형성된 산으로 태영석회, 장자광업소, 석교광업소 등 석회광산이 많다. 일명 까창산이라고도 하며, 옛날 신선(神仙)이 내려와 이곳에서 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도 가창산 봉우리에는 신선이 바둑을 두던 너럭바위가 있다고 한다.
가창산에서 내려서는 길이 확실치 않다. 강원도와 충청도의 도계를 잠깐 따르다가, 제천시계를 따라 우측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길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각도만 맞춰 내리막 사면을 대충 훑으며 안부로 내려서니 비로소 묵은 길이 나타난다. 벌목이 계속 애를 먹인다.
갑산지맥
가창산 남쪽 800m지점에서 산줄기는 두 갈래로 분기한다. 지맥은 제천시계에서 벗어나 왼쪽(동)으로 꺾어 내려가고, 곧장 남으로 제천시계를 따라가는 산줄기가 있는데 신산경표의 갑산지맥이다. 갑산, 호명산을 지나 충주호로 가는데, 갑산지맥과는 별도로 충주호의 동쪽 벽을 이루는 산줄기에 작성산, 동산, 금수산 등은 산꾼들에게 꽤나 알려진 산이다.
갑산지맥 분기점에서도 왼쪽 비탈로 급하게 꺾이므로 주의할 일이다. 갑산 쪽으로도 등로가 뚜렷하고 리본도 여럿 걸려있기 때문이다. 급비탈을 지그재그로 돌며 내려서면 안부에서 임도를 만난다. 좌에서 우로 올라가는 산판도로다. 앞쪽의 ×528봉은 자연스럽게 생략이 되고 우측으로 임도따라 50m 가량 가면 할미꽃 소복히 핀 집사안동권공 묘터다.
묘터 앞에서 임도는 마루금을 넘어가 버리고, 지맥은 우측 수레길 형태의 산길로 올라간다. 오늘도 임도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다행히 벌목잔해가 없어 진행할 만하다. 30분 진행 후 삼각점을 만난다.
10:01 △550.5m
굵직굵직한 송림사이로 깊은 오지분위기를 물씬 느끼며 고만고만한 능선을 따라가다 만나는 주변을 돌로 둘러싼 낡은 삼각점이다. 역시 번호는 식별이 안된다. 삼각점봉을 뒤로하고 잠시가다 길은 사정없이 내리꽂는다. 주저앉은 채로 나무에 의지하며 겨우 내려간다. 건너편 봉우리에 사람소리가 들린다.
바짝 마른 덤불이 수북한 안부를 지나고, 여지없이 떨어진 만큼 다시 솟구친다. 한 무리의 군사가 비탈을 내려오는데 50명은 되어 보이는 그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뚜렷한 길이 생긴다. 왼쪽으로 보이는 골짜기 마을은 도면상 석교본동이다.
×523봉에서는 삼태산 누에머리봉이 많이 선명해 졌는데 길은 어찌 이리 요동을 치는지 모르겠다. 펑퍼짐한 안부를 지나고 淑夫人영월신씨 묘를 지난다. 조선시대 숙부인은 통정대부의 부인으로 현재로 치면 1급공무원쯤 되는데, 깊은 산중이라 쓸쓸해 보인다.
참나무쟁이 도로로 떨어지는 길 역시 벌목으로 뒤덮혔다. 잘려있는 나뭇잎이 푸른걸 보니 최근에 작업한 모양이라. 이런 벌목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수년전 강원도 폭우시에도 벌목잔해가 물 흐름을 막아 그 피해가 더했다고 하는데, 이곳에 해놓은 꼴을 보면 아니함만 못한 한심한 짓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10:40 참나무쟁이 도로 (343m)
벌목을 피해 이리저리 돌며 겨우 내려섰다. 왼편으로 보이는 밭에 있는 컨테이너 앞으로 내려가니 차선없는 아스팔트 도로(532번)인데 왼쪽 바로 아래 참나무쟁이 마을이 보인다. 건너편 밭에 올라가 뒤쳐진 사람들을 기다리며, 덕분에 20분간 휴식이다.
밭 우측 모퉁이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또 다시 100m 가량 쳐올린다. 오르면 내리고, 또 내리면 이내 올라치고 잠시도 숨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20분 오르면 잠깐 평탄하다가 다시 안부로 내려간다. 윗말 안부가 되는데 한켠에 돌판으로 제단의 형태를 만들어 놓고 소주병이 여러병 있는걸 보니 치성올린 흔적이다.
다시 100m를 쳐 올린다. ×475봉에서 왼편으로 꺾으면 삼태봉이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검은 비닐그물이 쳐진 안부를 지나 오르면 삼각점이 있다
11:48 △469.5
역시 낡은 삼각점으로 번호는 읽을 수 없다. 아침부터 등로 주변에 따라오던 흰색 나팔주둥이 같은 꽃뭉치가 계속 이어진다. 나중에 알아보니 분꽃나무란다. 전문가 이삼규의 분석은 정확하다. 석회석 지표식물로 석회석 지대에 다녀온 걸 바로 알아챈다.
분꽃나무 뿐 아니라 무덤마다 풍성하게 핀 할미꽃, 각시붓꽃에 여러종류의 제비꽃과 줄딸기가 온종일 동행이 되어 주었다. 삼태산 누에머리봉이 바로 건너편에 다가오면서 사면의 고랭지 채소밭까지 훤하다. 이제 곧 오를 생각을 하면서 눈으로 선을 그어본다.
12:10 어상천 도로 (336m)
469.5봉에서 또 급하게 미끄러지듯 떨어지고, 앞쪽으로 아스팔트 도로가 보이면서도 능선은 계속 이어진다. 고개를 지척에 두고도 우측 봉우리 마져 오르고 다시 왼쪽으로 급히 꺾어 내린다. 내림길에서는 혹시 왼쪽 능선이 마루금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고갯마루에 내려서고 보니 우측으로 휘돌아 내리는게 맞았다. 남쪽 아래가 어상천 면소재지이고, 고개 아래위 모두 임현리라 임현리고개라 하는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제 마지막 고비인 삼태산을 앞두고, 원기도 보충하고 대열정비를 위해서라도 후미를 기다릴겸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데 후미로부터 무전이 날아오기를, 더 이상 못가는 사람이 있단다. 가느냐 마느냐 하다가 조금이라도 더 가자는 얘기에, 어차피 해고개까지 못갈 바에야 두 구간으로 남겨놓는게 좋고 그렇다면 여기서 더 가봐야 별 무소득이라는 결론이 나오고 오늘 구간은 여기서 마감하기로 한다.
(참나무쟁이)
(삼태산 누에머리봉)
(분꽃나무)
(어상천고개)
첫댓글 이수준까지 언제오려나 갈길은멀고 진행은 막히고 더디고 ~ 부럽기만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