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6.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롬 2:1~11
*제목; 로마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3) 방탕 죄보다 더 큰 판단 죄
1.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이유
지난 주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인정,다스리심에 순종)에 대해서 진노하십니다.천하만물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이를 알고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핑계”할 수 없습니다.(롬 1:20)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0)
하나님을 알면서도 범죄하는 것에 대해서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와 죄의 종이 되는 것에 대해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허락받습니다.(롬 10:13) 우리 주님이 이 모든 죄를 다 감당하시고, 우리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이는 사실 이방인들을 향한 경고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유대인들’은 ‘옳다!’라고 소리칩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에게 바울은 로마서2장을 서술하면서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2.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이유
‘1~2절’을 읽어봅시다.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롬 2:1~2)
유대인들의 가장 큰 죄는 “남을 판단하는 죄”였습니다.
이 생각의 가장 저변의 생각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의인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댓글에 올라온 아주 마음 아픈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나는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무섭다.
나는 십일조 많이 하는 사람도 무섭다.
나는 교회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무섭다.
나는 공부를 많이 한 신학자들도 무섭다.”
이 글쓴이가 무섭다고 쓴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하는 것입니다. 즉,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판단을 하는 우리 안에도 동일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판단하는 그 잣대로 나를 정직하게 평가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나도 똑같습니다. 다만 나는 아직 실행하지 않았다는 차이뿐입니다.
그래도 실행하지 않았으니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마 5:28’입니다.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8)
마음에 있는 것으로 이미 죄가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있는 것이 결국 겉으로 드러나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은 우리 마음(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고(삼상 16:7), 그 안에 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고전 6:19).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 16: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
아시시의 성인 프란시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와 그의 제자들이 40일 금식기도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제자가 그만 39일째에 견디지 못하고 스프 한 숫갈을 먹어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모든 제자들이 그를 비난합니다.
이 때 프란시스는 조용히 그 스프를 떠먹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금식하고 미워하는 것보다, 먹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낫다!”
너무 멋진 고백입니다. 금식은 주님을 더 닮기 위한 것인데, 금식으로 다른 이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다 거짓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화낸 이유는 자기 안에 동일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한 교회에서 철야기도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도 졸고, 권사님들도 졸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집사님이 분노해서 ‘이 따위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저들이 진정 믿음이 있는 중직자들인가?’라며 마음속으로 소리쳤습니다.
그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럴꺼면, 너도 그냥 자라!”
믿음 없음보다(?) 판단하는 것이 더 큰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택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신 7:7’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 7:7)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약한 유대인들을 들어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의 바른 길을 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바른 길을 간다고, 다른 이를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제일 죄가 많기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속죄하시고 천국의 백성이 먼저 되게 하신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그 누구도 타인을 평가하거나 정죄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탕한 죄보다도 더 큰 중죄는 판단하는 죄입니다.
3. 믿음대로 구원되고, 행위대로 심판받는다!
마지막 ‘6절’을 읽어봅시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롬 2:6)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도 유대인들도, 불신자들도 신자들도 다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어떤 이는 영원한 형벌의 심판으로 어떤 이는 영원한 구원의 심판으로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러한 심판은 행위대로 받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았지만 형벌의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의 새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의 믿음은 가짜입니다. 가짜 믿음이니 가짜 구원이 되고, 무서운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짜 믿음이 아니라 진짜 믿음으로 삽시다!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시도는 세상의 시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성숙함”으로 사람을 세우고(영혼구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집중합니다. 아멘.
첫댓글 우리는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우리 이 어리석은 마음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남을 비난하고 정죄할 자격이 있습니까? 로마서1장이 불신자를 향한 이야기라면, 오늘 로마서2장은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방탕 죄보다 더 큰 죄는 판단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그 상황과 상태가 어떠하든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주님을 순종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바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