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요약>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이것은 왕비급이 되면 우리 주님께서 주실 약혼선물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뭔가를 꾸몄지만 이제는 신랑될 주님께서 주십니다. 이것은 선물이요, 오늘날 영적은사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친구로 다가와 선물을 주시는 솔로몬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반응, 노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 먼저, 12절, 13절, 14절을 큰 틀에서 본다면, 예수님 십자가 사역과 부활관 관련이 있습니다. 12절의 나도 기름의 향기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위하여 부은 향유이므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향기요(마 26:12), 13절의 몰약 향주머니 향기는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져와 주님의 시체에 바른 것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향기요 (요 19:39-40), 14절의 고벨화 송이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 후에 주어지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아름다운 모습의 향기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이 말씀들을 보도록 할 것입니다.
12절,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왕은 당연히 솔로몬입니다. 오늘날 영적으로 우리 주님입니다.
”침상“은 원어적으로 둥근 원탁(히, 메사브)입니다. 대부분의 성경은 ”상“, ”테이블“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침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식탁을 위한 둥근 테이블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각각 의미가 있습니다.
▶ 먼저, 식탁으로 해석한다면,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이 만난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식탁 교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밥을 함께 먹는 사이는 굉장히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① 이것은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서 성만찬 한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들과 식탁교제를 하기 원하십니다.
물론 지금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교제인 것입니다. 특별히 말씀의 교제입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조근 조근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오늘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과 식탁교제, 말씀교제 하기를 그렇게 원하시지만 우리들은 피하고 있는데, 술람미 여인은
그렇게 ① 입맞추기를 원했고(1절), ② 침궁으로 들어가기를 원했고(4절), ③ 솔로몬을 찾기를 원했던(7절) 술람미 여인은 드디어 식탁교제까지 발전한 것입니다.
아무나 밥을 먹지는 않습니다. 특별히 남녀 사이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친밀한 자와 먹습니다.
▶ 12절 말씀에서 테이블이 아니라 “침상”으로 해석한다면 13절, 14절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두 연인이 침상에서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절인 13절에서 술람 여인의 “품”은 원어적으로 “샤드”인데 가슴, 유방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두 유방 가운데 안겨 있는 몰약 향주머니와 같은 솔로몬의 모습으로 볼 수 있고, 14절에서도 포도원으로 비유되는 술람미 여인의 품에 안긴 솔로몬의 모습이 고벨화송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안은 상태에서 서로에게서 나오는 향기를 맡으면서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두 가슴에 품고 있을 때 주님의 향기가 곧 우리들의 향기가 되어 날리게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 품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우리가 주님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 식탁에 앉았을 때에 술람미 여인이 가졌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 냅니다.
나도는 원어가 ”네르드“인데 우리 성경은 나드, 나도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비싼 향유입니다. 1파운드(453g)에 100 데나리온 (100일치 노동자 임금)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 신약시대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도 순전한 나드 향유를 사랑하는 예수님께 쏟아 부었습니다. 발에 붓고 머리털로 딱은 나드 향유가 삼백 데나리온 했다고 하니 엄청난 량과 가치의 향유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하여 가장 값 비싼 순전한 향유를 쏟아 부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기름의 향이 뿜어져 나왔다는 것은 솔로몬을 향한 최고의 사랑을 드리고자 하는 술람미 여인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 사랑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드리고자 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니 이 나도 기름의 향이 더 뿜어져 나온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아가서 4장에 보면, 신랑인 솔로몬과 초야를 보낼 때에는 나도향 뿐만 아니라 더 많은 향기를 뿜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번홍화, 창포, 계수, 각종 유향목, 몰약, 침향 등 (아 4:13)
▶ 같은 것끼리 반응하는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에게 나도 향기가 났다면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뿜어나오는 나도 향에 반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술로몬의 향기가 술람미 여인의 향기가 되며, 주님의 향기가 우리들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13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술람이 여인이 노래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솔로몬입니다.
”품“(히,샤드)은 원적으로 가슴, 유방을 의미한다고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의 목줄에 달려 두 유방 사이에 있는 몰약 향주머니입니다.
당시 여인들이 향기를 내기 위하여 달고 다니는 향주머니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뿌리지만 당시에는 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나의 사랑하는 자“는 솔로몬이므로 솔로몬이 그녀의 두 가슴 사이에 있는 향주머니라고 했으니, 술람미 여인의 기슴에 안겨 있는 솔로몬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솔로몬에게 몰약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서 나는 몰약 향기를 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대속적인 죽음을 하고자 하는 사랑의 향기인 것입니다.
▶ 앞절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몰약 향기는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는 향기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십자가의 죽음을 예표하는 몰약을 동방박사들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마 2:11).
그리고 몰약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니고데모가 장사를 위하여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져왔습니다 (요 19:39). 모두 장사를 위한 것입니다.
몰약은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의 선지자적 기름 부으심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황금은 왕의 기름부으심, 유향은 제사장적 기름부으심입니다.
몰략의 향기는 아가서 4장 이후에 보면 순교까지 갈 수 있는 영성이 된 술람미 여인에게도 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순교까지 각오하는 몰약 향기를 풍기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우리의 가슴에 품고 죽기까지 사랑한다면 그 향기가 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자기의 인생의 작은 것도 드리기가 어려운 사람은 아직 주님과의 사랑을 하지 못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14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 (히, 도드)는 솔로몬입니다.
”엔게디“의 뜻이 ”샘“이란 뜻이 있습니다.
엔게디는 사해바다 근처, 유대광야 끝에 있는 광야인데 오아시스와 같은 샘이 있어서 염소와 양들이 물을 먹을 수 있고, 포도원을 경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해 한때 그곳에 있는 동굴에 숨기도 했습니다(상상 24:1-3).
▶ 먼저,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자신에게 ”샘“과 같은 존재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것은 우리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과 같이 술람미 여인도 솔로몬을 통해서 시원한 생수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렘 2:13, 17:13).
[요한복음 4:1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복음 7:38] 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사막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아시스의 샘과 같이 생수를 공급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사람도, 양도, 염소도, 포도원의 식물도 다 살 수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에게 솔로몬은 그런 존재입니다. 곧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 또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포도원의 고벨화송이와 같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 고벨화는 앞서 잠시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활짝핀 고벨화송이는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벨화송이는 연노랑의 향기로운 꽃입니다. 부활하신 신령한 주님의 몸과 인격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5:10-16절에서 술랄미 여인의 솔로몬의 모습을 노래하는 것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샘“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성령이 오셔서 우리들에게 생수를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부활은 죽음 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벨화는 히브리어 ”코페르“를 음역한 것인데 ”속죄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술람미 여인은 엔게디 광야와 같은 곳에서 고벨화송이와 같은 부활하신 주님의 향기를 맡고 있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엔게디와 같은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온갖 세파에 시달리고 광야의 짐승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 속에서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마시면서 예수님처럼 고벨화 송이 같이 활짝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날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벨화 송이는 십자가를 통과한 자에게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나는 영적 아름다움과 향기를 나타내는 꽃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통과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하고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은 고벨화송이와 같습니다.
→ 그리고 고벨화는 주님으로부터 온전한 주님의 신부가 된 자가 받는 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부가 받는 부케 꽃이기도 합니다.
4장에서는 술람미 여인도 솔로몬으로 인하여 고벨화송이가 될 것입니다.
[아가 4: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우리들도 주님으로 인하여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것입니다.
- 다음주 말씀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