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무신왕 (大武神王) - 8
* 전에 준비해 둿던 자료를 올립니다
○ 모본왕
모본왕(慕本王)은 이름이 해우<또는 해애루(解愛婁)>이고 대무신왕의 맏아들이다.
민중왕이 죽자 이어 왕위에 올랐다.
사람 됨됨이 사납고 어질지 못하며 국사에 힘쓰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원망하였다.
2년(서기 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쳤으나,
요동태수 제융(祭~)이 은혜와 신뢰로 대우하였으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3월에 폭풍으로 나무가 뽑혔다.
여름 4월에 서리와 우박이 내렸다.
가을 8월에 사신을 보내 나라 안의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하였다.
북평, 어양, 상곡과 산서성의 태원 공격은 고구려의 서북지방에서 선비족 루트로 남하한 것이다.
이때 중국의 요동군은 만리장성 안으로 후퇴하고 만리장성 바로 바깥에 있는
수중현의 구려하(육주하와 산해관의 중간에 있음)까지 고구려가 진출했을 것으로 고려된다.
태조대왕 때 요서 10성을 쌓는데 이 구려하로부터 대릉하까지가 된다.
6년(서기 53) 겨울 11월에 두로(杜魯)가 임금을 죽였다.
두로는 모본 사람으로 왕의 좌우에서 시중하였는데 죽임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우니,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대장부가 왜 우느냐?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쓰다듬으면 임금이요, 나를 학대하면 원수로다.’고 하였다.
지금 왕의 행함이 잔학하여 사람을 죽이니 백성의 원수다. 네가 그를 죽여라.”
두로가 칼을 품고 왕 앞으로 나아가니 왕이 그를 눌러 끌어다 앉자, 이에 칼을 뽑아 왕을 죽였다.
마침내 모본원(慕本原)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모본왕이라고 하였다.
모본원의 본은 한으로 읽으면 물한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말 모래네(몰안에 - 물한성)와 같은 말이다.
발해 동경이었던 영한현 동경성에서 물한주(勿汗州) 자사 관인이 나온 적이 있다.
물한주에서 모란강, 목단강시 이름이 유래되었다.
○ '大武神王', 위대한 전쟁의 신
고구려 3대왕인 대무신왕은 그동안 역사에서 묻혀졌던 인물이다.
주몽 광개토대왕 장수왕 정도만이 일반인들이 알만한 고구려의 군주였던 터라
대무신왕의 존재는 대다수 대중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대무신왕은 말 그대로 '大武神王' - '위대한 전쟁의 신'이란 뜻이다.
그만큼 고구려인이 생각하는 대무신왕은 영웅인 터.
게다가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신왕(神王)이란 호칭을 얻은 유일한 군주인 만큼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위치로 고구려인들은 그를 바라봤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정복 왕으로 알려진 광개토대왕도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평안하게 만든 큰 왕)이란
명칭으로 불렸던 것을 감안할 때 대무신왕을 생각하는 고구려인의 경외심은 남다를 듯 하다.
대무신왕의 업적은 전쟁과 관련이 넓다.
크게 ① 부여 정벌 ② 주변국 점령 ③ 한나라 침공 저지로 볼 수 있다.
대무신왕과 부여의 인연은 매우 질기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대무신왕의 아버지인 유리왕은 부여를 매우 두려워했다.
이런 부여와 어린 시절부터 겁 없이 '맞짱'을 뜬 자가 바로 대무신왕이다.
대무신왕은 태자시절, 부여가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오자 매복술로 크게 격파했다.
고구려를 부여의 속국정도로 생각했던 부여왕 대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대무신왕과 대소왕과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삼국사기에 소개된 한 일례는 두 사람의 외교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대소왕이 고구려를 병합하겠다는 뜻으로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인 붉은 까마귀를 보내자
대무신왕은 까마귀는 남쪽의 상징인데다 상서로운 것인데 이것을 나에게 보냈으니
두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다고 맞받아 쳤다.
대무신왕이 부여를 정벌한 것은 즉위 5년째다.
대무신왕은 부여 남쪽으로 진군해 부여군을 격파하고 대소를 죽였다.
그러나 고구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부여군이 왕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하며 고구려 군을 포위 공격했다.
대무신왕은 묘술을 부려 도망치기 급급했다.
이후 대무신왕은 주변 중소국들을 하나씩 병합하며 고구려의 기틀을 마련해나갔다.
이제 갓 생긴 신생국인 고구려를 만주지역 강자로 만든 이가 바로 대무신왕인 셈이다.
이런 대무신왕의 활약은 한나라를 자극했다.
만주 서쪽에 있던 부여가 아닌 요동에 가까운 고구려가 만주지역 패권자가 되자
한나라는 무력으로 이를 다스리려 했다.
대무신왕은 한나라 요동태수가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오자 넘치는 지략으로 이를 패퇴시켰다.
이는 단순한 한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을 넘어 중국의 만주지역 영향권을 막아냈다는 데서
우리나라 역사를 넓히고 지켜냈다는 의미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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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대무신왕 (大武神王) - 8
이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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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3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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