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빙교사로 안산초등학교에 왔다.
'초빙'이라는 말이 '노비 문서'라는 말과 동의어로 불리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쿠! 이거 큰 일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새 학교에서 하루 하루는 많은 분들의 환대와 도움을 받고 있어
기대되고 설레는 시간이다.
특히 교육과정 워크샵에서 이런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교사와 학교의 철학을 실제 수업으로 녹여내는 활동을 하며
그동안 꿈꾸던 제대로된 멋진 아주 하고 싶은 일들을 의논하고 계획하며 즐거웠다.
그런데 문제는 학급 담임이 아니라 업무전담팀에 소속되어 '방과후 업무와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 문학교육'
어마무시한 행정적인 일을 맡았다는 것이다.
지난 해 초빙을 받을 때는 올 한 해 학년에 소속되어 그동안 해 왔던 온 작품 읽기와 학급운영을 선생님들과 나눠주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학교 사정이 변해서 '방과후'라는 업무를 주로 하게 된 것이다.
"부장님, 업무전담이셔서 앞으로 학년 일은 거의 함께 하시기 힘들 거예요."
"교육과정 재구성에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업무도 많으니까 건강 챙기셔야 해요."
걱정해 주시는 분들의 말이 사실로 다가왔다.
어제 못한 교육과정 재구성과 특히 '생태교육'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해 온 김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마침 오늘 교육청 주관 방과후 업무 담당자 역량 강화 연수에 다녀와야해서 함께 하지 못했다.
연수를 마치고 처음 만난 선생님 한 분과 전철을 타고 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하루 힘들어요. 지난 한 해 분리수거 한 가지는 꼭 실천하도록 해야겠다고 가르쳤는데 결국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즐거움이나 기대가 없는 학교에서 방과후까지 제가 폭탄처리반이 된 것 같습니다."
11년차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괜찮아요. 선생님. 지난 간 것을 지난 간 대로 의미가 있을 거예요. 올 한 해 아이들과 즐겁게 살 궁리를 해 봐요. 저는요~"
이렇게 수다를 떨며 왔다.
학교에 가는 것이 즐겁지 않고
그나마 이곳 안산이 안양보다 수원보다는 더 빡세서 지낼만 하다고 했다.
"선생님, 혁신교육이나 혁신공감학교 이런 걸 고민해 보셨나요?"
"아뇨, 그런 말은 듣기는 했지만 예산 나와서 강사가 오고 수업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하는 것 외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다고 봐요."
"방과후도 그래요. 올해부터 가산점이 없으니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업무가 됐는데 제가 그냥 한다고 했어요. 왜 학교에서만 아이들을 키우려고 하는 거죠? 사회와 지역에서 함께 키울 수 있도록 뭔가 방법이 있을 건데, 교육청은 힘이 없고 시청은 제 몫이 아니라고만 한다지요."
평범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고민이 된다.
사실 8년 차 혁신학교에서 배울 점이 많아 느끼지 못한 지점이기도 하지만
교육 전체를 본다면 혁신학교의 장점이 일반 학교로 전달(?, 점프, 물드림, 나눔...)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고민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학교 체제에서 내가 동의하기 힘든 점 혹은 고착된 어떤 모습'
외부자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눈이 아파서 오늘 일기는 여기까지...
첫댓글 눈이 아프시군요. 눈이 아프지 않아도 "오늘 일기는 여기까지..."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하하. 짧은 글 속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네요. 방과후업무라....왜 학교에서만 아이들을 키우려고 할까요?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지극히 부차적인 것이 모든 것 위에 있어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방과후 휴식과 놀이가 불성실로 이해되는 것도 문제고요. 이런 교육적 혹은 문화적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야할 지, 언제나 풀릴지 답답하네요. '초빙'이 '노비 문서'와 동의어라는 말에 깜짝 놀랐는데 현실이 그렇게 되었네요. 그렇다면 너무 일(업무)을 열심히 하지 마시고 오늘처럼 일기를 짧게 쓰면 되겠어요. 여유가 없으면 죽음이니까요. 하하.
아하! 짧게. 바로 그거!!! 안단테 칸타빌레~~~ 나빌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