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의 날
이서화
식빵의 모서리의
잿빛 곰팡이
최초의 빛깔은
푸르스름하게 시작되었다
그건 식빵의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뜻
그 끝난 날짜를 잡고
이제 막 시작하는 곰팡이는
이젠 끝났다는 자조에서
시작되는 얼룩이다
마치, 늦가을 온 밭을 차지한 배추처럼
구름이 물러가는 하늘의 푸른 귀퉁이처럼
식빵의 곰팡이는 번져간다
그러니, 끝났다는 날짜들을
함부로 구겨버릴 일이 아니다
다시 시작되는 날들이란
어느 날짜의 끝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광장 같은 식빵에 푸른곰팡이들
참고 또 참았던 그 끝에서 몰려나와
함성처럼 가득 채우고 있듯
유통기한이라는 날짜들
푸른 경계를 활짝 피우려
스스로 다다른 날들이었다
ㅡ계간 《시와 문화》(2024, 봄호)
이서화 / 강원 영월 출생. 2008년 《시로여는세상》 등단. 시집『굴절을 읽다』『낮달이 허락도 없이』『날씨 하나를 샀다』. 원주에서 '이서책방' 운영.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추천시
이서화의 곰팡이의 날
이 선희
추천 0
조회 35
24.03.21 13:57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