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퇴근길에 오랜만에 승민이를 만났다. 그는 작년에 복도에서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해 주던 학생이다. 승민이가 앞에 있는 줄 모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정말 오랜만에 그의 인사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두 손을 공손히 배에 모으고 인사해주었다. 오랜만에 그를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참 반갑다. 잠깐 작년으로 회귀한 느낌.
- 어제 **이가 나보고 "예쁘세요."라고 말해주었다. 이런 말은 자주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적어두어야 한다. 사람은 자기 세계 속에 사는 것이므로 그냥 그렇구나, 나는 예쁘구나 하고 생각하고 살면 된다. 헤.헤.
누가 나에게 예쁘다고 해주면 고맙다. 예쁘다는 기준은 주관적인 건데 그는 나를 예쁘게 봐준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그 말을 해준 사람에게 그가 더 예쁘다고 돌려준다. 그럴 때면 그 말을 돌려받고는 "저도 알아요."라고 답하던 2018학년도의 문지가 생각나곤 한다. 나를 보고는 멀리에서부터 두 팔 벌려 다가와 안아주던, 학교에서 사랑과 힐링을 선사하던 아이. 그렇게 애교 넘치는 학생은 만나기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았다. 떠올릴 때마다 저절로 미소지어진다. :)
- 귀엽고 명석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는 소설을 읽고 있다. 집에 가면 그 분들을 만날 수 있다. 퇴근이 기다려지는 또 하나의 즐거운 이유. 책 속에 있는 시간은 다른 차원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다.
- 새롭게 돋아나는 초록 이파리 하나 하나에 그리운 이름들을 떠올리며 출근한다.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마음 속에 있으면 살아 있는 것이라고 했던 병준이의 말을 잊지 않고 상기한다. 그래서 이름과 함께 그들은 내 안에 살아 있다.
- 조회 때 나가서 벚꽃과 함께 학급 사진을 찍었다. 주차장의 차가 나올까봐 신경쓰였는데 딱 좋은 자리가 있었다. 원래 매년 '우리들의 얼굴' 게시판에 학생들과 찍은 사진을 올려두고 같이 볼 수 있게 하고 학생들의 얼굴을 보고 싶을 때는 까페 게시판에 들어가 보곤 하는데 올해는 얼굴 올리는 것이 불편하다는 학생이 있어서 올리지 않게 되었다. 조금 안타깝다... 하지만 얼굴 소유자의 의견이 우선하는 것이므로.
- 학급 사진을 찍으러 나갈 거라고 이번 주 초부터 여러 번 말했고, 오늘 아침에도 말했는데 나가자니까 내내 자던 민욱이는 뭐하는 거냐고 물어본다... OTL 네 뭐 그럴 수 있죠... 그래서 나가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 나는 똥손이므로 딱히 기대하지 말라고 미리 말해두었다. 그리고 어차피 여러 번 찍는다고 퀄리티가 올라가지 않음을 알고 있어서 딱 두 번 찍었다.
- 가니까 5반 학생들이 찍고 있는데 그 중 한 녀석이 갑자기 담에 오르기 시작한다. 사진 찍다 월담하는 거야 뭐야... 그런데 담 위에 올라가 앉는다. 다행히 무사히 찍고 내려왔는데 저러다 뒤로 넘어가면 어쩌려고... 무려 학생회 부회장이라고 한다. 황당... 부모님께 알려드려야 할 사례 수집. -.-
- 찍고 들어 왔는데 나가서 따로 또 찍어도 되냐고 서원이와 소현이가 물어본다. 그냥 나가서 찍어도 되련만 저렇게 확인하다니 착한 학생들이다... 차 오는지 주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 선우는 늦게 와서 따로 찍게 되었다. 나가니 다른 반 학생들이 찍고 있다. 그 옆에서 뻘줌하게 한 컷 찍었다. ㅋㅋ 이래서 학교는 제 때 와야 된다. 단체 사진+선우 사진을 학급 회장 서원이에게 전송하였다. 단톡방에 공유하고, 선우를 우리 반 단체 사진에 합성하면 나에게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 이번 주가 벚꽃 절정이고 아마 다음 주면 질 것이다. 그래서 찍기는 했는데 하늘이 회색빛이어서 안타깝다. 그레이+핑크의 조합은 예쁜 것이니까... 하고 마음을 달랜다. 인생이란 원래 뜻대로 굴러가지만은 않는 것.
- **이 블로그를 보고 있다(학생이 나를 블로그에 초대해 주다니 영광이다). 그가 부담스러울까봐 댓글을 처음에만 달고 조용히 구경만 하고 나온다. 잔잔하게 생활을 기록하는데 은근히 재미있다. 귀여운 곰돌이 인형, 고양이, 그리고 손 모으고 선 귀여운 우리 반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다.
- 다연, 수안, 은찬이가 물병을 안 가져왔다고 종이컵을 요청하여 교무실에서 주었다. 물을 마시는 건 매우 중요하다. 자주 마시렴. 찬물보다는 따뜻한 물이 면역력 향상에 좋다고 한다.
- 오늘 체육이 있음에도 (아마도 사진을 위하여) 교복을 입고 온 학생들이 있다. 멋쟁이들이다. 재웅이는 아이들에게 교복 입고 오라고 했는데 자기는 맨투맨을 입고 왔다. 황당... 재웅이는 교복이 뭔지 모르나 보다(이 글을 재웅이 부모님께서 꼬옥 보셨으면 좋겠다. ^__^).
- 2줄로 서서 앞은 여학생, 뒤는 남학생이 서 보면 어떨까 대략 계획을 잡고 나갔다. 나가서 선 것을 보고 서원이가 앞에는 작은 학생, 뒤에는 큰 학생이 서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오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알아서 작은 아이 앞으로, 큰 아이 뒤로 가라고 했다. 찍은 사진 보니 분명히 앞에 오는 게 나은데 꿋꿋이 뒤에 가서 선 아이들 있네... 그래 뭐 '크다'의 기준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거니까... ㅋㅋ
- 사진을 두 번 찍었는데 한 사진에서는 A, B, C가 잘 나왔다면 두 번째는 D, E, F가 잘 나온 식이다. 모든 학생이 다 잘 나온 사진은 없다. 이렇게 뭘 베스트로 골라야 할지 갈등되니 여러 번 찍으면 안 된다.
- 작년에 '심미적 체험 공유하는 말하기 평가'를 위하여 발표문 쓰기를 할 때 어떤 선생님께서 들려 주신 이야기가 있다. '심미적 체험'이 뭔지 숙지가 된 것을 전제로 진행되는 건데 발표문 쓰는 시간에 "아 쉼미적 체험이 뭐야..."하고 중얼중얼하는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발표문 채점을 하다 보니 이 학생의 머릿속에서도 분명 "아 쉼미적 체험이 뭐야..."라는 문장이 돌아다녔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발표문이 발견된다. ㅋ ㅋ
- 채은이는 '귤의 맛'을 읽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동그랗고 분위기가 산뜻하다. 그래서 그를 볼 때 '귤'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 출근할 때 어제 떠올린 단어 'sweep'이 생각났다. 'sweep, sweep, sweep'하고 노래하듯 속으로 읊으며 걸어왔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우리는 휩쓸리듯 언젠가 사라진다. 너무 집착하지 않기(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원'과는 다름. 안 되면 괴로워하는 것이 집착). 흐르는 물이나 바람처럼 가볍게, 즐겁게 살아가 보자. 살면서 단 하나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면 이것.
- 아픈 학생이지만 담담하게 지금 할 것에 집중하며 성실히 생활하는 모습을 본다. 그를 보며 나도 오늘을, 지금을 살아야지 배운다.
- **이는 정말이지 하루 종일 잔다... 밥도 안 먹고 자고 어제는 이동 수업인데도 계속 잤다고 한다. 급식 때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서 교감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교감 선생님이 깨우셔도 안 일어났다. 옆 반 담임 쌤이 오셔서 깨워도 안 일어났다. 아이들이 '**이 밥 먹이기 프로젝트'라고 했다.
- (15반) 발표문 쓰기 수행평가 시간에 준기가 손을 들었다. 이 발표문의 평가 기준은 심미적 체험 포함 여부, 분량, 비유법 활용하고 밑줄 긋기, 작품 속 구절 인용하고 밑줄 긋기이다. 평가 기준이 형식 면으로 되어 있는 점을 확인하더니 글 자체의 풍부성, 통일성 등은 보지 않는지 물었다(어머 예리해..). 이번 수행평가의 목적은 심미적 체험을 공유하는 말하기에 있는 관계로, 말하기 준비를 위한 발표문의 내용 평가가 엄밀하지는 않다. 평가 기준을 확인하더니 본인이 아주 잘 썼기 때문에 내용 평가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오. 아직 안 읽었는데 준기의 글이 기대된다. ㅎㅎ
- 해나가 키우는 상추 맛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작은데 정말 상추 맛이 나서 신기했다. 씨앗부터 시작해서 먹을 수 있는 이파리까지 성장하다니. 상추 이름은 '곽두팔'이다. 두팔이가 앞으로 더 쑥쑥 크길. 다음에는 더 큰 이파리(마트에서 볼 수 있는 수준으로) 먹어 보고 싶다. 올해 중에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 (11반) 들어가자마자 시선 강탈하는 그림이 세 개가 있었다. 맨 오른쪽은 확실히 종우다. 민준이가 그렸다고 한다. 오오. 그림체가 내 취향이었다. 다음에도 그의 작품을 보고 싶다.
- (11반) 수행평가 시에 발표 순서를 랜덤으로 뽑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범수가 공 뽑는 거냐고 했다. 공 뽑는 거? 처음에 못 알아들었는데 랜덤 뽑기 프로그램은 공 그림이 나온다. ㅋㅋ
- 아침에 사진 찍을 때 다른 반이 먼저 찍고 그 다음에 그 자리에 들어가서 찍는데 조그맣게 어떤 학생이 "저 반이 먼저 왔는데..."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옆에 11반이 먼저 와 있었던 건가... 이미 아이들 보고 들어가라고 해서 그냥 일단 진행하고 나왔는데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11반 담임 선생님께 가서 사과 드렸다. 그랬더니 전혀 문제 없다고 어차피 **이가 안 와서 종례 후에 다시 찍어야 한다고 하셨다(다같이 또 찍을 필요 없이 지각생 등은 우리 반처럼 합성해 보면 될 것 같은데. ㅋㅋ). 11반 와 보니 칠판에 '( ) 때문에 종례 후 다시 찍어야 함. 안 찍고 그냥 가면 무단 조퇴', '오늘 이것 때문에 청소 없음'이라고 써 있다. 어쩐지 지시 사항이 귀엽다. :)
- 오늘 마지막 수업이 11반이었는데 많은 학생이 발표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금요일 마지막 교시라 또또 기분이 좋다. 수업 후에 채원이가 앞에 나와 인사하였고 주말 잘 보내라고, 행복한 기분을 함께 나누었다.
- 서원이는 독서 시간에 에어팟 떨어뜨린 것 줍다가 머리를 교탁에 찧었고, 종례 때 또 떨어뜨리고는 잃어버렸다. 아니 왜 그래... 서원이가 머리 찧을 때 옆에서 현길이와 소현이가 매우 즐거워했다. ㅋㅋ
- 현길이는 교실 뒤 청소인데 월요일에 다시 쓸어달라고 해야겠다... 쓰레기통 주변을 깔끔하게 관리하기란 난이도가 좀 있기는 하지.
- 민욱이가 청소 끝나고 나에게 오더니 다음 주에는 깨어 있겠다고 약속하고 갔다. ㅎㅎ
한 주간 수고 많았어! 오늘 지나면 벚꽃도 절정을 지날 듯. 주말에 많이 보면 좋겠구나. 주말에 충전 잘 하고 다음 주에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