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할망 이야기
제주도는 무속 신화가 아주 풍성한 곳이다. 세계 곳곳에 여신 신화가 무수히 많다. 신화의 양상도 수없이 다양하다. 그러나 신화가 구성되는 기본을 추적해보면 결국은 단일 신화로 귀결한다. 죠셉 캠벨은 이것을 하나의 신화(mono-myth)라고 불렀다.
이 세상은 하나에서 여럿으로 나뉘어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를 찾아가 보면 인류의 초창기에 어마어마한 능력과 권세를 가진 여신을 만날 수 있다. 권력과 능력은 여왕/여신 이미지로 귀착한다. 신화학자인 마리아 김부타스는 인류의 초창기에 종교적인 의례를 가지기 시작하였을 때의 신들은 여신이었다, 고 주장한다. 그때는 전쟁도 없었고, 계층도 존재하지 않았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시기였다고 하였다. 어쩌면 이때가 이상향으로 꿈꾸는 황금시대 일 것이다.
하나에서 여럿으로 나뉘어 질 때 제주도의 할망이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제주도 할망 신화는 그리스 신화처럼 잘 직조된 신화가 아니다. 그러나 신화의 내용을 보면 태초의 태모신적 성격이 아주 강하다.
제주의 할망 신화는 절대 권력을 가진 하나의 신이 아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을 혼자서 감당하지 않는다. 고을마다 있는 많은 신들이 그 역할을 나뉘어 가진다. 앞에서 말했듯이 신이 하나에서 여럿으로 분리되면서 한 신이 하던 일을 여러 신들이 분담하여 하였다. 여러 할망이 한 일이므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도 제주도 할망 신화의 특징이다.
제주 신화의 ‘천지왕 본풀이’에서 천지 창조를 언급하였다. 최초에 천지는 하나의 검은 덩어리 였다.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순간에 덩어리는 시루떡이 금이 나서 갈라지듯이 층으로 나뉘었다. 암흑은 바다와 공기, 물과 하늘로 갈라졌다. 천지 창조의 원형에 가까운 신화이다.
제주도의 여신 신화 중에서 설문대 할망 이야기가 태모신적 요소가 제일 강하다. 땅과 바다를 창조하고 길쌈을 하는 신이다. 설문대 할망이 수수범벅을 먹고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하였다. 할망의 설사 똥이 제주도에 퍼져있는 360개의 오름이 되었다. 오름은 제주도 지형의 특징이다. 꼭대기가 두루뭉술한 것에서 뾰족하게 각이 진 모양도 있고, 오름이 두 개가 서로 붙어서 쌍봉을 이룬 것도 있다. 오름의 모양을 보면 변의 덩어리로 설정한 것에 수긍이 간다. 다양한 오름을 표현하기 위해서 설사를 하였다는 발상도 제미 있다. 단순히 오름을 창조한 것만은 아니다. 제주도 360개 오름이라는 것은 제주도 섬 전부를 의미한다.
우뚝 솟은 한라산도 변의 덩어리를 닮았다. 아름다운 제주도를 하필이면 똥 덩이로 만들었다는 것이 꺼림칙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심층심리에 의하면 똥을 더러운 이물질로 보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체 즉, 아버지의 남근으로 본다. 그렇다면 설문대 할망의 창조 신화를 이해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22대 지철로 왕이 거시기가 너무 크서 신부를 구하지 못 하였다, 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량부 동노수에서 거대한 똥덩이를 발견하고 주인을 찾았다. 키가 칠척 오촌이나 되는 여인이었다. 왕이 수레를 보내 궁으로 데려와서 신부로 맞아 들였다. 이야기가 함의하는 있는 것은 남, 녀의 합체이다. 특이한 합체는 강력한 생식력을 뜻한다. 나라가 풍요해지고,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를 의미한다. 똥이 매개된 신화적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신화에는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힘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다.
오늘의 과학 지식으로 제주도 생성을 구성해보자. 제주도는 땅 아래에서 끊임없이 화산이 폭발하고, 분출하여 만들어진 땅이다. 가스와 수증기가 땅을 가리고, 설사변처럼 흘러내리는 용암이 만들어 낸 땅이다. 다시 말하자면 화산 폭발은 가이아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폭발이다. 이것을 원시적인 힘이라고 한다면 무질서하고 혼돈의 상태를 일컫는다. 융 심리학의 원형으로 생각한다면 저 깊숙한 지하세계는 무의식과 다름 아니다. 무의식의 힘이 폭발하듯이 작용하면 의식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무질서이고, 혼돈의 상태이다. 신화에서 말하는 태초의 지구는 심리상태에서 느끼는 공황과 다름 아닌 상태이다.
설문대 할망이 하는 일은 모두 신화적 의미를 갖는다. 제주도의 동쪽 땅에서 설문대 할망이 오줌을 누었다. 할망의 오줌이 너무 세차게 쏟아지므로 땅 한 귀뚱이가 떨어져 나갔다. 오줌에 실려서 흘러간 땅 덩이는 바다에 머물러서 섬이 되었다. 일기예보에서 태풍이 제주도 부근을 지나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그만큼 강한 빗줄기가 제주도의 신화 속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소가 옆으로 누운 형태를 하고 있어서 우도라고 한다. 제주도와 우도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생겼다. 골짜기가 오줌으로 가득차자 바다가 되었다. 깊은 바다에 고래도, 물고기도 찾아와서 살았다. 이 이야기는 바다의 창조 신화이다. 할망의 오줌이 바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할망이 만드는 창조 신화는 여호와가 만드는 창조신화와 다르다. 이미 땅은 만들어져 있었다. 만들어져 있는 땅에서 한 조각 떨어져 나가 우도가 되었다. 땅이 떨어져 나감은 파괴의 의미이다. 오줌 또한 홍수신화를 연상시킨다. 홍수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파괴한다. 그러나 단순히 파괴가 아니고 죄지은 인간을 징벌한다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로 바뀐다. 설문대의 오줌 신화는 파괴와 재탄생의 의미를 가지지만 아직 도덕적인 징벌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파괴와 재창조를 다룬 신화가 하나의 신화로 수렴되면 여러 가지 의미를 만들어 낸다.
우리나라에는 오줌에 관한 신화적 이야기가 많다. 김유신의 누이로서 언니인 보희가 동생인 문희에게 오즘 꿈을 판 이야기는 유명하다. 왕건의 아버지인 작제건의 출생에도 오줌을 누는 꿈을 팔고 사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려사에는 5대 왕 경종의 넷째 부인인 헌정왕후가 오줌을 누는 꿈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꾼 꿈과 역사적 사실을 연계시켜 뵤면 문희가 산 꿈은 통일신화를 예언한다. 작제건이 꾼 꿈은 고려 창건과 연관된다. 헌정 왕후는 새 왕의 출산을 예고한다. 모두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성산리 일출봉에는 기암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다. 아주 높이 솟은 바위 위에 다시 바위가 얹혀있는 형상도 있다. 이것을 등잔바위라고 하였다. 설문대 할망이 길쌈을 할 때 불을 밝혔다고 한다. 큰 등잔을 보면 설문대 할망이 거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아침이 되면 바다에서 붉은 해가 떠오는 곳이다.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면서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에게 놀라움과 근원적인 깨달음을 일으킨다. 이것은 거대한 우주가 펼치는 장엄한 드라미이다.
하늘과 땅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만들어진다. 문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정신 분석가 폰 프란츠는 ‘신화와 민담을 살펴보면 원시사회에서는 어떠한 기예도 인간이 먼저 발명한 것은 없다. 기술이나 공예는 신이 가지고 있는 원천적 지식이다. 신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인간은 그것을 이용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불, 길쌈, 도예, 쇠붙이 다루기는 태초에 신들의 영역에 속하였다.
할망은 대단히 능력이 있는 신이다. 고대 사회에서 길쌈을 하고, 베를 짜는 일은 여인의 몫인 동시에 신의 영역이었다. 신화에 나타나는 길쌈의 주인공은 여왕이나 공주로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신화에서는 베를 짜는 여인은 하늘과 연관되어 있다.
일출봉의 등잔 바위는 설대문 할망이 불을 만들었음을 암시한다. 할망이 등잔에 불을 켜고 길쌈을 하였다. 빛과 길쌈은 인류가 문화발전의 과정을 보여준다. 인류 최초의 공예를 길쌈이라고 한다. 길쌈은 도자기 제작, 농경생활 그리고 야생동물의 가축화보다 먼저 시작하였다. 길쌈의 탄생을 인류 문화사에서 혁명이었다.자연에서 문명이라는 위대한 행보를 내딛었음을 말한다. 길쌈은 신의 예술이고 신성한 행위이다. 세계 신화에서 물레질하는 여신과 베를 짜는 여신은 수없이 등장한다.
동북아 신화에서는 누에신 혹은 길쌈하는 여인은 하늘과 관련되어 있다. 견우직녀 이야기에서직녀는 천제의 손녀이거나 서왕모의 외손녀로 묘사한다. 경남 고성의 상족암 전설에서도 길쌈과 선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상족암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옥황상제가 베를 짜기 좋은 장소로 여기고 선녀와 베틀을 내려보내 자신의 황금옷을 짜게 하였다.
삼국사기의 유리이사금 조에도 길쌈 이야기가 나온다. 왕녀 두 사람을 우두머리로 하여 6부촌의 여자를 두 편으로 갈라서 길쌈으로 승부를 다투게 하였다. 이것을 가배라 하여 추석의 기원이라고 한다. 추석에는 수확을 감사하는 제사를 올린다.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례를 길쌈과 연계시켰다.
설문대 할망의 속옷을 짜는 신화는 그녀가 거인이었음을 보여준다. 설문대 할망에게 속옷을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하였다. 속옷을 만드는데는 명주가 100통이 필요하였다.(1통은 50필이다.) 마을 사람은 힘을 다하여 모았으나 너무 많은 명주가 필요하였으므로 99통만 모았다. 1통이 모자라서 속옷을 만들어 줄 수 없었다. 사람이 약속을 어겼으므로 다리도 놓아주지 않았다.
신화에서 거인은 태초의 신적 인물이다. 켈트 신화에서는 거인은 인간에게 도움도 주지만 대체로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제주도 할망도 거인이다. 원시신이고 고대신임을 말한다. 고대신의 성격이란 한 마디로 야성으로 말해지는 원초적인 힘을 말한다. 땅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신화에서 거인의 형태는 여러 모습으로 말한다. 그러나 공통된 특질은 태초적인 존재물로서 일차적인 본능과 관계가 있다. 부정적인 힘을 소유하고 있지만 좋은 일도 기적을 일으키듯이 한다. 우리를 현실에서 벗어나서 상상으로 데려가는 역할도 한다.
제주도 할망이 거인인 만큼 걸맞는 하르방도 있었다. 섬인 제주도에서는 고기잡이가 주요한 생업의 방법이다. 제주도에는 고기잡이와 관련된 신화가 유냔히 많다. 재미도 있다. 하르방과 협력하여 고기를 잡는 일을 남, 녀의 성결합과 연관시킨다. 하루방이 바닷 물 속에서 자신의 거대한 남근을 흔들자 물고기들은 서둘러서 도망을 갔다. 맞은 편에서는 설대문 할망이 다리를 벌리고 자신의 음문을 크게 열었다. 도망가던 고기가 음문 속으로 들어가서 숨었다.
이 신화는 고대 사회의 신성한 혼례 또는 성결합을 연상시킨다. 물고기는 남근이고, 여성의 자궁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는 것을 상징한다. 할망이 거인이었다는 것은 태초적이고 지모신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말한다. 이때의 창조는 처녀생식 내지 단성생식이다. 설사에 의한 창조가 단성생식이라면 물고기 잡는 신화는 양성생식의 의미이다. 물고기 잡는 신화는 신의 자리가 여신에서 남신으로 이동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신에서 남신으로 신앙의 대상이 바뀌면서 양성생식이 일어난다. 여신은 남신의 아내가 된다. 그 단계를 보여주는 신화가 아닐까? 그래도 설대문 할망은 원초적인 고대신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다.
제주도 사람들이 옛날 이야기를 할 때는 설문대 시절에는---, 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호랑이 담배 파우던 시절이라는 것과 같은 뜻이다. 설문대 할망이 죽으므로 설문대 시절도 우리에게서 사라졌다.
할망은 제주도에 있는 늪이나 셈이 얼마나 깊은가를 알려고 물에 들어가 본다. 용담동에 있는 용소가 깊다는 말을 듣고 물에 들어가니 겨우 발등까지만 차 올랐다. 서귀포 읍 서호리에 있는 홍리물이 깊다 하여 들어갔으나 무릎만 물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한라산에 있는 문장오리에 들어갔다. 문장오리는 밑이 없으므로 끝이 닿지 않는다. 할망은 그만 빠져서 죽어버렸다.
그리스 신화에서 태초의 신인 가이아 계열의 신들은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올림푸스 신족에 의하여 퇴치 당한다. 신화에서 거인족이 사라지는 것은 하나의 숙명이다. 가이아적 성격이 강한 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에 있는 문장오리에 빠져 죽는 것도 신화세계에서는 숙명일 것이다. 우리는 할망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할망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깊은 바다가 아닌 한라산의 문장오리를 선택한 것은 틀림없이 은유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문장오리에서 소리만 크게 질러도 안개가 피어올라 가리워버리는 신성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이곳을 찾아 갈 때는 많은 금기를 지킨다. 어길 때는 안개가 일어나서 호수를 우리의 시야에서 감추어버린다. 이곳 사람들은 돼지를 통째로 바치는 제사를 지낸다. 이곳에는 틀림없이 설대문 할망도 힘이 강하고, 또 한라산과 관련이 있는 신을 모시는 성지이리라.
설대문 할망의 신화를 보면 자연의 운행을 관장하는 만능의 신이지만 물과 관련이 있는 수신적 면모가 강하다. 문장오리의 신은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산신적 면모를 보인다. 또 남신적인 요소가 강한 신이 아닐까? 예수가 자신의 몸을 하느님께 흐생 제물로 바치듯이 할망이 돼지처럼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제주도에는 먼 먼 어느 날에 설대문 할망을 수호신으로 하는 토착민과 문장오리에서 제사를 지내는 외래의 부족이 토착민을 정복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셉 캠벨이 말하는 ‘하나의 신화’로 맞추어 보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설대문 할망 신화는 다양한 신화적 세계를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모신이다. 할망신은 죽어버렸지만 우리의 무의식에는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