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9.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행 21:30~34
*제목; 사도행전강해(42) 사명이 다하는 날까지!
1. 사도 바울을 향한 유대인들이 공격
사도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사도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이 보낸 구제금으로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인들은 그렇게 기쁘지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토록 무시하던 이방인들의 도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이처럼 현상이 왜곡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바른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를 주는 생각이 바른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오직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저는 이를 철저히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사실 이방인들로 구성된 소아시아의 교회가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셔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사람의 말이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그들의 구제금이 기쁘게 예루살렘교회에 전하여지고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음은 교회의 덕을 위해(예루살렘교회도 이를 통해서 세워지고, 소아시아의 교회도 기쁨이 넘쳐나는 결과를 위해), “나실인의 결례”에 필요한 비용을 대신 내어줌으로서 이를 이루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이 되고 있습니까? 이것이 믿음의 자녀들이 바른 목표와 기준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어려움이 더합니다.
예루살렘에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두 가지 비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8절’입니다.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행 21:28)
율법을 비방하였으며, 이방인을 성전으로 들인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결국 율법을 거부하고 파기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체 사도바울에게 왜 이러는 것입니까? 지금 나라(주권 상실)와 자신의 처지(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를 볼 때, 율법논쟁에 빠질 시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리 사도 바울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일까요?
그것이 바로 믿지 않는 자들, 세상의 특징입니다.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는 그래서 ‘사탄’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면 이유 없이 미워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사탄이 미워하고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 말입니다.
혹시 주변에서 믿음의 문제를 가지고 이유 없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두 가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먼저는 ‘내가 믿음의 길을 바로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다음은 ‘이런 류는 기도 외에는 막을 수가 없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막 9:29) 그래서 더욱 기도로 나가셔야 이길 수 있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의 지혜와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자들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골 3:15’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리면(샬롬)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평강(에이레네)이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감사하라고 합니다. 감사는 이미 주신 은혜를 깨달게 하시고, 지금 주신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다가올 은혜를 더 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결코 마귀에게 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다스리심 가운데 거하고, 감사하면, 모든 사탄의 미혹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2. 사명이 있으면 죽을 수도 없다!
어쨌든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사도 바울을 붙잡아 성전에서 끌어내고, 죽이려 합니다. ‘30절’입니다.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행 21:30)
그러나 사도바울은 지금 어디를 향해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까?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으로 그 영광을 완성하기 위해 로마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사도 바울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해도 죽일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명자들은 사명을 이루기까지는 죽을 수도 없습니다.(저도 그렇습니다. 저의 사명은 ‘3040’세대를 믿음으로 바로 세워 믿음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부르셨습니다.) ‘31~34절’을 봅시다.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행 21:31~34)
그리고 사명자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키시는 것입니다. 천부장이 이 소란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와서 사도바울을 유대인들의 손에서 구해내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사명을 얻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영혼구원과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을 품을 때, 죽음조차도 우리를 해할 수 없으며, 성령께서 그의 길을 지키시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이를 반드시 설정하십시오. 아멘.
첫댓글 바른 생각을 품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사는 것이 왜곡되게 보입니다. 믿음의 길은 항상 사탄이 그냥 두지 않습니다. 이를 우리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서 주께 그 문제를 맡겨야 하고, 그리스도의 다스리심(평강)을 구해야 하며, 놓쳐버린 감사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과 삶의 모든 어려움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