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어린이들의 생생한 생활 감정과 심리를 담아낸 작품들
-김정순 동시집 [색깔가게 와아파이]
전병호
1.
김정순 시인은 아름다운 항구 도시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감 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동시를 열심히 쓰고 계신 분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해서 각종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고 금상도 수상하는 등 남다른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 <아동문예> 문학상에 당선됨으로써 동시인으로 정식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한국안데르센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그동안 꾸준히 갈고 닦아온 동시인으로서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동시집 『개미의 소풍』, 『숲속 마법의 나라』, 『혼자가 아니야』를 펴냈으며 이번에 펴내는 동시집 『색깔 가게 와이파이』는 네 번째 동시집이랍니다.
2
동시는 어린이가 독자이기 때문에 어린이의 생활과 심리를 잘 알고 써야 하는데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김정순 시인은 동시 쓰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계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김정순 시인은 현재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계시기 때문에 매일 어린이들과 만나시거든요. 그렇기 때문일까요? 김정순 시인의 동시에는 어린이들의 솔직한 생활 감정과 심리가 생생하게 담겨있답니다.
비 오는 날
우산 가지고 오는 엄마와
비 맞고 가는 내가
길이 엇갈렸다.
엄마는 큰길로 왔지만
나는 샛길로 갔다.
샛길엔 야옹이도 있고
개미도 있다.
비 오는 날엔
지렁이도 만난다.
- 「집으로 가는 길」 전문
비 오는 날, 우산 갖고 학교 온 엄마와 학교 공부 끝나고 집에 가는 내가 만났다면 두 사람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에 돌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아쉽게도 엄마와 나는 길이 어긋났어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엄마는 큰길로 왔고 나는 샛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언뜻 보면 비 오는 날, 우산 갖고 온 엄마와 내가 길이 어긋나서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시인이 진심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어요. 비 오는 날 ‘내’가 왜 큰 길로 안 가고 샛길을 갔느냐?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샛길로 가면 야옹이도 있고 개미도 있고요. 비가 오는 날이면 지렁이도 만나니까요. 이것이 ‘내’가 샛길로 간 이유입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말일 수 있습니다. 어이없다고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다음부터는 큰길로 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해서 말했다면 그건 어린이와의 소통을 포기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시인이 바라는 것은 어린이가 왜 샛길로 갔는지 그 이유를 알고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어린이와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어른들에게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이해하고 포옹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어른과 어린이는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혹시 어른들의 생각을 어린이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현실을 갑갑해 하고 벗어나고 싶어하지는 않나요?
김정순 시인의 시를 읽으면 이제까지 어린이에 대하여 갖고 있는 잘못된 선입견을 버리고 새롭게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김정순 시인의 시가 갖고 있는 진정한 ‘힘’입니다.
사람들은 사진 찍느라
꽃밭을 누비고 다닌다.
꽃이 초대한 벌, 나비들은
꽃밭 밖으로 빙빙 돌고 있다.
사람들은 꽃이 무얼 원하는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예쁘다고만 한다.
꽃은 울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도 웃으면서 운 적이 있다.
「꽃밭 축제」 전문
시인은 매우 비판적인 눈으로 「꽃밭 축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뜻 생각해도요. 꽃밭 축제라고 하면 꽃과 꽃이 초대한 벌과 나비 손님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요. 초대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진 찍는다고 누비고 다니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주인이 뒤바뀐 것입니다. 이래서는 진정한 꽃밭 축제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꽃이 무얼 원하는지 /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예쁘다고만 한다.”고 합니다. 어때요? 이렇게 되면 꽃과 사람 사이에는 오히려 불신의 벽만 두꺼워지지 않을까요?
이 시를 읽으니까 문득 이제까지 어린이를 위한다고 하면서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도 웃으면서 운 적이 있다.”고 말하듯이 시적화자는 앞으로 진정한 꽃밭 축제를 열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또 갖은 노력을 다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 김정순 시인이 시를 쓰는 자세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이 동시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고 몇 달씩 집에 갇혀 지내야 했던 그 안타까운 날들의 기억일 것입니다.
단추를 여미고
반듯이 앉았다.
작은 화면 속으로
선생님이 나타나고
친구들 얼굴이 빼꼼빼꼼 보였다
출석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크게 하려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께서
손을 흔들어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온라인 개학 첫날」 전문
온라인 개학 첫날의 모습을 그린 시입니다.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정에서 컴퓨터로 접속하여 개학식을 하는 이 장면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개학식을 몇 번이나 연기했던가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개학식을 하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이런 불행한 날들이 우리 어린이들이 2020년에 겪었던 현실입니다.
여기에서 잠깐 2020년을 되돌아볼까요? 이해에, 전국 대부분의 학교는 4월 19일이 되어서야 겨우 온라인 개학을 했습니다. 이날이 되어서야 어린이들은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마침내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반가움과 설렘과 기대가 느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온라인으로 만나야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도 묻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손을 흔들어주실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을 것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린 입학식
3월도 아닌 4월에 열린 입학식
기념사진도 꽃다발도 없었어.
마스크 꼭 붙이고
엄마는 교문 밖에서 손 흔들고
나는 선생님 찾아 한 발 한 발 다가갔지.
그리곤
학교 몇 번 안 갔는데
우리 반 친구 얼굴도 잘 모르는데
소풍도 안 갔는데
운동회도 안 했는데
그럼 아직 1학년 아니야?
나보고 2학년이래.
학교가 정말 이상해.
- 「학교가 이상해」 전문
「학교가 이상해」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정상적인 학사 일정을 운영하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하던 학교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적화자는 1학년에 입학한 어린이입니다.
“학교 몇 번 안 갔는데 / 우리 반 친구 얼굴도 잘 모르는데 / 소풍도 안 갔는데 / 운동회도 안 했는데” 1년이 지나자 1학년이 2학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1학년이면 1학년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마쳐야 하는데요. 그러지도 못하고 한 학년을 진급한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금을 되돌아보면 어떻게 말할까요?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코로나19가 창궐한 세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과거 14세기에는 흑사병이 창궐해서 유럽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21세기 들어서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팬데믹 상황에 빠져들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생활 태도를 돌아보고 자연 보호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훗날 이 시들이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오늘날의 상황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4
시인이 이 동시집을 펴내면서 첫 번째로 초대하고 싶은 어린이가 ‘엉뚱발랄한 아이’라고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까 ‘엉뚱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고, ‘발랄하다’는 표정이나 행동이 밝고 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시인이 생각하는 어린이를 정확하게 그려내기가 어렵습니다. 그것보다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엉뚱발랄한 어린이를 찾아보는 것이 더 정확하고 빠를 것입니다.
어제 만난 친구
오늘 또 만나서 반갑고
잠깐 쉬는 시간이
달고나만큼 젤리만큼 달고
참고 참다 달려간 화장실 수다는
사이다만큼 콜라만큼 시원하고
기다리고 기다린 점심시간
엄마 밥보다 학교 밥을 잘 먹고
(엄마, 죄송!)
오늘도 학교로 달려가는데
엄마는 소리쳐요
아침밥 먹고 가야지!
「그래서 학교 간다」 전문
매일 아침 얼마나 학교에 달려가고 싶어하는 어린이기에 엄마가 “아침 밥 먹고 가야지!”라고 말할까요? 이 어린이가 학교에 그토록 열심히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알아보니 그만큼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쉬는 시간이 달고나만큼 젤리만큼 달고요. 화장실 수다는 사이다만큼 콜라만큼 시원하답니다. 점심밥도 엄마가 해준 밥보다 더 잘 먹고요. 한 마디로 말해서 학교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어린이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린이에게서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넘쳐납니다.
그렇지만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택배 일하는 아빠는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도 / 막 뛰어”(「택배 일 하는 아빠」 일부) 가고요. 엄마는 “코로나로 식당 장사가 안 된다고 / 파리채를 탁탁”(「파리채 든 엄마」 일부) 치기만 합니다. 또 다른 어린이는 “우리 엄만 / 고향 베트남으로 간지 오래” 되었고 말하면서 아빠는 “나를 힘들게 키우느라 / 할배가 되었”(「할배 아빠」 일부)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인공 어린이는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게임 하느라고 학원 안 갔다가 “전화기 속 엄마 목소리에 / 귀청 구멍 날 뻔”(「비밀번호」 일부)하기도 하고요. “공부 잘 하나 못하나 / 학교에서 학원에서 / 심지어는 집에서도 노려”(「공부 저울」 일부) 보고 있지만 결코 기죽지 않는 정신력도 지니고 있답니다. 다시 말하면 강물 속에 풀려난 물고기 같은 주인공은 오늘도 “바다로 나갈 준비운동”(「학교에 흐르는 강」 일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주인공 어린이는 반전 매력도 보여줍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 개미네 아파트 보일까?”(「개미네 아파트」 일부)에서 보듯 자연과 사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도 많고요. “우리 집 책상, 옷장, 침대…”를 보면서 “살다 온 동네는 숲이야”(「누굴까」 일부) 하고 나무가 들려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도 갖고 있어요.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씩씩하고 명랑하고 생각이 깊고 김수성도 뛰어나며 좋은 기운이 넘치는 어린이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엉뚱발랄한 아이’가 이런 어린이가 아닐까 합니다.
“나 노랑이야 난 분홍이야 / 난 빨강이야”(「색깔 가게 와이 파이」 일부) 하고 말하는 공원의 꽃들은 어린이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특기를 살려 씩씩하게 자라야 한다고 전하는 시인의 메시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많은 숙제 다 못하고
그 많은 고민 다 접고
이제는 잘 시간
베개 운전대를 잡고
침대 바퀴를 굴리며
누리호처럼
하늘로 박차고 올라
캄캄한 터널을 지나
별빛 쏟아지는
우주 정거장으로 돌진
와, 내가 별이 되었다.
반짝, 반짝
저--------------멀리
내 고향 지구도 반짝, 반짝
날 응원해 준다.
「가끔은 반짝이고 싶다」 전문
어때요? 시인에게 초대받은 제1호 어린이! “그 많은 숙제 다 못하고 / 그 많은 고민 다 접고” 잠자리에 들기를 잘했어요. 어린이는 자면서 큰다고 해요. 너무 공부에 시달리지 마셔요. 고운 꿈 꾸고요.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요. 그리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세요. 씩씩한 기운과 넘치는 기상을 지녔으니 아마 자라서 큰 뜻을 펼치게 될 거예요. 친구들도 함께 달려가세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