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INK:1} 꼬리를 진흙 속에 끌고 다닌다는 뜻의 ‘예미도중(曳尾塗中)’은 부귀로 인해 속박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난을 즐기며 자유롭게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을 비유해서 쓰는 고사성어다.
장자의 추수편(秋水篇)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가 강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어느 날, 초나라 왕이 두 대신을 그에게 보내 ‘선생님께 나라의 정치를 맡기고 싶습니다’라는 뜻을 전하게 했다.
그 때 장자는 낚시대를 잡은 채 돌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물었다. “들으니 초나라에 신귀(神龜)라는 3000년 묵은 죽은 거북을 왕이 비단 상자에 넣어 묘당(廟堂) 안에 간직하고 있다더군요. 그 거북이 살았을 때, 죽어서 그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뼈가 되기를 원했겠소. 아니면 꼬리를 진흙 속에 끌고 다니더라도 살아있기를 바라겠소?”
두 대신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야 물론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기를 바랐겠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자는 “그렇다면 그만 돌아가 주시오. 나 역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겠으니”라고 말했다.
사기에는 또 이렇게 기록돼 있다. 초위왕이 사신을 보내 장자를 초빙했을 때에 그는 제사에 쓰이는 소와 더러운 도랑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는 돼지새끼를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몇해 부귀를 누리다가 권력투쟁의 제물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평민의 몸으로 평생을 아무 일 없이 보내고 싶다.”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둔 지금 정치권을 보고 있노라면 장자가 남긴 ‘예미도중(曳尾塗中)’에 대한 교훈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실제로 ‘국민통합 21’ 정몽준 의원과 최근 대선출마를 선언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지난 1일 시내 모 호텔에서 회동, 대선에서 협력키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두 사람은 오찬회동 후 발표문을 통해 “현재 정치가 국가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치개혁과 국민화합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 아무런 조건없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말 조건이 없다면 몰라도 물밑 거래가 있었다면 ‘예미도중(曳尾塗中)’의 교훈을 잘 모르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선구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한국미래연합 박근혜 대표와 박태준 전 총리 등 이른바 ‘제3세력’을 우군화하기 위한 각별한 ‘공들이기’를 계속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 당에서 저 당으로 그것도 떼를 지어 옮기려는 모습까지 감지되고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는 것인지, 그렇게 해서 뜻을 이룬 들 과연 마음이 편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비단상자 속 죽은 거북이 아무리 귀한 대접을 받는다해도 살아 진흙 속을 누빔보다 못한 것처럼 설혹 꽃봉오리를 펴지 못하고 중도에 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영달’에 줄을 대는 탐욕스런 이합집산보다는 백 번 낫지 않을까.
‘소신정치’가 아쉬운 정치의 계절, 예미도중(曳尾塗中)의 교훈이 새삼스럽다.
시민일보 Ver - ⓒ 시민일보 (http://www.siminilbo.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등록 : 2002-11-03 1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