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사 창원지회에서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읽기 5회차를 진행하였습니다.
■ 일시 : 2024.1. 16 화요일 PM.6:30
■ 장소 :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명량관
■ 읽은 부분 : 권4. 장계3(300~362쪽) 갑오년 장계 부분
■ 참석자 : 내이포판옥선, 동자갑선, 상유, 백의종군로악양, 손자병법, 진해현감, 웅천현감, 미신불사, 진중음, 홍패, 남포, 제포만호, 천성선소 총 13명
■ 다음 모임 안내 : 2024. 2. 20 화요일 PM 7:00
■ 장소 :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 읽어올 분량 :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권 5 ( 2권 처음~123쪽 ) 난중일기 1
■ 가까운 지역에 계시는 다른 지회 분들도 참석하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券4, 장계狀啓3
(1권 364쪽~ 끝)
<웅천현감님의 갑오년 장계 총평>
⇨ 갑오년이 실질적으로 전쟁하기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상저온현상으로 흉년이 계속되었으며, 전염병이 돌아 병력부족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서울 인구 십중팔구가 죽었다는 정도의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라는 표현이 2번 나오는데, 아들 면 사망 때와 고하도에 들어간 첫날밤에 추위에 신음이 나온 날이다.
1시간 20분간 진행하다보니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책내용의 주요 부분만 간단히 설명하여 주셨답니다. 스터디 할 때는 소제목 정도만 뽑아갔는데 질의 응답 내용이 많지 않아 이충무공전서가 없는 분들을 생각하여 책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1. 승장의 위조문서를 봉하여 올려 보내는 계본(1594.1.14.일 추정(난중일기 1.14 참고)
도총섭 유정이 각 사찰에 있는 수군이나 육군의 의승을 가리지 않고 잡아가고 있음
좌도총섭 처영이 의승장 삼혜와 의능이 거느린 군인들을 빼앗아 감
도총섭 유정은 의능의 천한 신분을 면해 준다는 공문을 체찰사의 공문인 것처럼 만들어 보낸 것이 위조임이 명백함. 위조문서를 봉해서 올림
▪ 도총섭 : 고려•조선시대 승직의 하나로 왕이 위임함.
⇨호국불교의 성격을 엿볼 수 있음.
2. 배경남을 수군에 소속시켜 주시기를 청하는 장계(1594.1월 추정(1594년 난중일기 중 장계가 언급된 일기는 1월 14일과 1월 17일밖에 없음)
배경남은 일찍이 여러 번 공을 세운 적 있는데 신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가 조리중. 아직 다 낫지는 않았지만 큰 적을 맞아 편히 쉴 수 없어 수군에 소속되어 죽음을 바치겠다고 맹세함. 바닷가에서 생장하여 배에 익숙하다 하였으므로, 추가 건조하는 전선의 여러 장수 중 빈 자리에 임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적을 무찌르게 할까 합니다.
3. 수륙군을 바꾸어 방비시키는 일을 헤아려 조처하시기를 청하는 계본(1594.1. 추정)
순찰사 이정암의 주장이 수군은 연해안의 각 고을에서 배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육지 고을에 많아 공문으로 독촉해 가포징수를 남용하면서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떠나고 가족과 친척, 이웃이 연대 피해를 입고 있으니 연해 지방에 있는 육군과 육지 고을에 있는 수군을 서로 교체해야 한다고 함,
비변사에서는 수군과 육군 배정을 그렇게 한 이유는 바닷가 백성은 작은 변이 생겨도 바닷가가 고향이라 도망치기 쉬워 육지 고을 사람들을 수군으로 정한 것인데, 육지 사람들은 배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먼 곳에 가서 복무를 해야 하기에 고생을 하고 있고, 선조가 해주에 머물 때 백성에게 힘든 것을 묻자, 바닷가 사람들을 수군으로, 육지 사람을 육군으로 정하되, 해당 백성에게 물어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선조가 승인한 것이라고 함.
이정암은 수군의 역이 대대로 전해지기에 천역이 되었는데, 육군이 수군이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며 수군과 육군을 서로 바꾸면 소란스러워질 것이라고 함.
병사 선거이는 공문으로 수군과 육군을 서로 바꾸어 방어하는 일의 편리함과 부적당함을 충분히 고려해 회답하라고 함.
이순신도 이정암처럼 전쟁 시기에 수군과 육군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함.
4. 방비군의 결원을 낸 수령을 군법에 따라 처벌할 것을 청하는 계본(1594.1. 추정)
사변이 일어난 후 각 영과 진포에 들어와 방비해야 할 수군 중에서 결석한 자(군 입대를 기피한 자)수는 남원이 1856명, 남평이 591명, 옥과가 313명인데 모두 도목장(지방에 거주하는 공노비의 총괄 장부)조차 보내지 않음.
남원부사 조의, 옥과 현감 안혹, 남평현감 박지효 등.
남평과 옥과의 유위장, 향소 색리 및 남원부의 도병방 등을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함.
⇨ 병력 모집 책임자 2명을 경고 차원에서 처형함.
태만하고 소홀이 하는 세 고을의 수령들의 죄상에 대해 조정에서 각별히 처치하여 주기를 요청함.
5. 왜적의 정세를 아뢰는 달본(1594. 1. 5)
경상우수사 원균의 첩정(하급 관청에 상급 관청에 보내는 문서)에 거제도에 일본군이 와 있는 상황을 알림.
흉악하고 교활한 적들이 외딴 섬에 웅거하여 산과 들을 마음대로 쏘다니니 참으로 통분하다. 3도의 수군이 겨우 100척 정도라 이미 3도 수사에게 명령하여 전함을 더 만들도록 독려하였으며, 겨울 전에 역사를 끝마치게 하였다. 12월 12일 본영으로 돌아와서 지금 점검하여 바로잡아 빨리 정비하도록 독려 중이며, 전라우수사 이억기 및 충청수사 구사직에게도 아울러 소속 수군을 거느리고 기한 내에 급히 달려오도록 전령하였다.
6. 일족을 침해하지 말라는 명령을 취소해 주시기를 다시 청하는 달본(1594. 1. 5)
지난 12월 25일 접수한 겸사서의 서장에 친족과 이웃에서 빈 자리를 대신 징발하는 것의 폐단은 가장 백성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며 선조가 작년 정월 이전의 친족에 관한 것은 모두 면제해 주라고 함. 동궁도 ‘이제부터는 무릇 친족과 이웃에 관련해서 일절 침해하지 말아서 민생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도록 하라’는 명령이 있었음.
근래 이래 도망자가 더욱 심하여 수군 1호당 4명의 장정 중에 모두 남아 있는 자는 백에 한둘도 없고, 혹은 4명이 모두 도망하거나, 혹은 2~3명이 도망하여 결원이 매우 많다.
변방의 수비가 다 비어 성을 지키거나 출전하는 일이 전혀 의뢰할 곳이 없다. 사부와 격군을 보충할 방도가 없다.
“친족과 이웃을 침해하는 폐단은 가장 백성들을 병들게 하는 고질이오나, 만약 폐단을 줄이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한다면 적을 막아낼 방책이 없고, 옛 관습을 그대로 따라 책임을 지우나면 백성들이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이에서 편의에 따라 알맞게 처리해야겠습니다.”
7. 8. 진으로 돌아가는 일을 아뢰는 달본(1594. 1. 17) - 전선 건조 실적
(1) 본도(전라좌도, 전라좌수영)에서 더 만들고 있는 전선을 직접 살피고 조처하기 위해 12월 12일 본도로 돌아와 단속하고 정비함. 원래의 책임 수량과 더 만드는 책임 수량을 아울러 순천이 전선 10척, 흥양이 10척, 보성이 8척, 광양이 4척, 낙안이 3척을 이미 다 만들었음. 순천 5척, 광양 2척, 흥양 5척, 보성 4척, 낙안 2척만을 독려하여 1월 17일 거제 땅 한산도 진중으로 출발하였음.
(2) 수군도 바닷가 고을 수령들이 태만함이 습관이 되어 점검해서 보내는데 성의가 없다. 전선은 이미 다 만들었지만, 격군을 보충할 길이 없어서 참으로 통분하다. 신에게 소속된 각 고을과 포구의 전선을 간신히 정비하여 1월 17일 진중(한산도)을 향해 돌아갑니다.
9. 흥양 목관을 교체해 주시기를 청하는 계본((1594. 1. 1_일 : 원문 “十 日”로 한 칸이 비어있음)
• 순천의 돌산도 – 훈련주부 송성
• 흥양의 도양장 – 훈련정 이기남
• 해남의 황원곶, 강진의 화이도 – 종사관 정경달을 농감관(농사감독관)으로 임명해 둔전을 관리하게 하였으나
“돌산도 등 감목관에게 이미 둔전관을 겸임시켰다.”순찰사 이정암의 공문이 옴.
흥양감독관 차덕령은 일을 멋대로 처리하며 목장에서 말 먹이는 사람들을 몹시 학대해 백성들의 원망이 크므로 차덕령을 청렴하고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여 주기를 바람.
10. 해안 고을이 수륙군에 교대로 침해당하는 폐단을 금지시켜 주시기를 청하는 계본
(1594. 1. 16)
적병이 거제도에 있으므로 앞으로 닥쳐올 근심이 지난해보다 배나 더 심할 것인데, 순찰사 이정암이 군사를 나누면서 좌•우도의 각 5고을만을 수군에 소속시키고, 그 나머지는 육군으로 돌려 소속시키며, 또 좌•우도의 각 5고을도 다른 곳으로 징발해 간다고 함. ‘수군을 육군으로 이동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고 임금께서 허락해주셔서 우도(전라우도)의 나주를 포함한 9고을은 본래 수군에 소속된 고을이니 이번에 추가로 건조하는 전선을 마찬가지로 부과시켜 건조하도록 함.
나주목사 이용순이 올려보낸 공문에 순찰사의 공문내용으로 ‘본주(나주를 포함해 무안, 함평, 영광, 부장, 흥양, 고부, 부안, 옥구 등 바닷가 9고을은 육지 싸움으로 소속을 옮겼으니, 전선을 추가로 건조하는 일을 모두 멈추라.’고 해서 20여척을 건조할 수 없게 되었음. 그러므로 이정암에게 그 9고을에 이미 명령으로 새로 건조하도록 했던 전선을 기한 내에 정비해(진으로) 돌아와 정박하게 할 일을 이정암에게 타일러 경계하도록 임금님께서 분부해주십시오. 바닷가 각 고을 군사와 백성이 수군과 육군으로 번갈아 징집되는 침해당하는 고통을 면하게 해주세요.
11. 충청 수군절도사에게 빨리 도착하도록 재촉해 주시기를 청하는 계본(1594. 2. 25)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1월 25일에, 충청수사 구사직은 2월 5일에 모두 제 관할에 소속한 여러 장수들을 일제히 거느리고 오라고 기한을 정하여 전령하였다. 2월 17일에 전선 22척을 이끌고 진에 도착. 먼저 온 전선과 합쳐 모두 46척.
전라우도에 배정한 전선은 원래 수량과 추가 건조할 것을 합쳐 90척인데, 그 안에 나주를 포함해 9고을에 부과한 전선 27척은 전혀 정비되지 않음. 그 나머지 21척은 전선을 모두 다 새로 만든 것인데, 격군이 없어서 기한이 다 되어도 거느리고 오지 못함. 그래서 수군을 징발하여 보내지 않은 각 고을에 다시 전령을 보내어 독촉.
이억기는 답답한 사정을 계속해서 보고하며, 기한 후에 도착.
충청수사 구사직은 기한이 한 달이 지나도 진에 도 착하지 않으므로 조정에서 각별히 재촉하여 주기를 청함.
12. 지체하는 여러 장수들의 처벌을 청하는 계본((1594. 2. 25)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보고 - 전라우도에 소속된 각 고을의 포구의 전선을 1월 20일 내에 ‘상도’에서는 우수영 앞바다로, ‘하도’에서는 가리포 앞바다로 모이라‘고 군관까지 보내 재촉하였으나 각 고을에서 수군을 전혀 보내지 않아 격군을 정비하지 못함.
나주 이상 9고을 중에서 나주와 무안 등은 배정된 전선을 기일이 넘도록 보내지 않고 도 입방 수군도 전혀 보내지 않는 죄상 및 군산포만호 이세환, 법성포만호 조대지, 다경포만호 이식 등도 수군에 소속된 변방 장수들로서 재삼 독촉해도 끝내 나오지 않아 크게 군율를 범하였으므로 모두 조정에서 처벌하여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도록 하고, 위의 전선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보내도록 순찰사 이정암에게 각별히 거듭 분부해 주십시오.
13. 여러 의병장에게 상 주시기를 청하는 계본((1594. 3. 10)
의병장 순천 교생 성응지와 승장 수인•의능 등, 순천에 사는 만호 이원남
14. 여도만호 김인영에게 상 주시기를 청하는 계본(이충무공전서에만 수록 1. 날짜 없음. 편찬된 순서로 보아서 갑오년(1594) 3월 10일 전후에 올려 보낸 것으로 추정됨)
15. 군량을 조처해 주시기를 청하는 계본((1594. 3. 10)
전라 좌•우도 연해안 고을 중 10고을은 오로지 수군에 소속되어 있거니와 사변이 일어난 후로부터 육군 진영의 여러 곳에서 군량을 실어 나르기에 거의 빠진 날이 없어 이미 죄다 고갈되었으며, 좌도의 4고을(광양, 순천, 보성, 부안)과 우도의 1고을(강진)은 또 스스로 불질러버린 화를 겪었다.(1593.8.19. 장계(325~331쪽) 참고)
10고을에 남아 있는 군량도 백성들 구제 양곡을 제외한 수군의 군량만을 계산하면 거우 5월 15일경까지 이어 갈 형편이다. 그 뒤의 군량을 전혀 조치할 방도가 없을 것이니 매우 답답하고 걱정된다. 조정에서 헤아려 조치해주시길 바란다.
⇨ 3년 동안 군량을 요청한 장계는 한 번도 없었으며 이 장계가 유일함.
17. 왜군의 정세를 아뢰는 계본((1594. 3. 10)
3월 6일 거제읍 앞에 있는 흉도 바다에 도착한 남해현령 기효근의 급보에
“왜의 소선 1척이 고성 건너편의 육지에 대고 우리 배를 부르는데, 그 형상을 바라보니 혹은 붉은 옷을 입고 혹은 푸른 옷을 입은 명나라 사람 2명과 왜인 8명이었다.”
명나라 선유도사부 담종인의 “왜적을 무찌르지 말라”는 패문을 지닌 명나라 사람도 함께 실어 보냄.
이순신과 원균과 이억기의 서명이 담긴 답문 - “왜인이 둔거하고 있는 거제•웅천•김해•동래 등지는 모두 우리의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일본 진영에 가까이 가라.’하심은 무슨 말이며, 우리에게 속히 ‘본처 지방으로 돌아가라’하시니 ‘본처 지방’이란 역시 어느 곳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며, 틈을 일으킨 자도 우리가 아니고 왜인입니다.
일본인은 요리조리 속이는 온갖 방법이 만 가지나 되어 예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강화한다는 것은 실로 거짓으로 속이는 것입니다.”....대인께서는 두루 이 뜻을 놈들에게 타일러 거스름과 순종의 도리를 알려주시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명나라 군사와 함께 온 우리나라 포로이며 상주에 사는 사삿집 종 희순에게 적중의 형세와 명나라 군사가 오게 된 원인을 심문.
- 웅천의 왜적은 세 진영으로 각 진(進)마다 혹은 1000여명 혹은 800~900명씩, 배들은 세 진영의 중•소선을 아울러 300여척이나 되어 보이며, 대선은 다만 2척이 있는데, 장수는 한 진영이 즉묵감둔(일본 장수 오모쯔비도노 하야시가와 나가마사)이요, 한 진영은 곧 사고여문둔(일본 장수 사쿠에몬도노 고니시)이며, 또 한 진영은 곧 아리만둔(일본 장수 아리마도노 쇼신)이다.
희순은 적에게 사로잡혀 오랫동안 적진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왜적들의 모든 교활안 꾀와 실정을 상세하게 알지 못할 리가 없는데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며 적진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이 말과 얼굴색에 나타나며 꾸며대는 말이 많았다.
16. 당항포 승첩을 아뢰는 계본((1594. 3. 10)
3월 3일 미시(오후 1시~3시)에 도착한 고성 땅 벽방 망장 제한국의 급보 내용 -
“당일 날이 밝을 무렵에 왜의 대선 10척, 중선 14척, 소선 7척이 영등포에서 처음 나와서 21척은 고성 땅 당항포로, 7척은 진해 땅 오리량에, 3척은 저도로 향해 갔다.”
이 보고를 접한 이순신은 경상우수사 원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등에게 전령하여 엄하게 약속함. 동시에 순변사 이빈에게는 하륙한 왜적들을 무찔러 잡도록 통고함.
⇨ 이것은 포구에 정박해 있는 일본군선을 공격할 경우 하륙한 적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 육군의 도움을 요청한 것. 이러한 약속은 이전에 있었던 많은 전투에서 적이 하륙한 경우 육군의 도움이 없어서 완전 섬멸하지 못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대비책으로 보여짐.
3월 4일 새벽에 전선 20여척을 견내량에 머물러 두어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게 하고 3도의 경예선(날렵한 정예의 함선) 30척을 뽑고 31명의 장수를 선발함. 이 특공선단을 조방장 어영담을 통합지휘관으로 편성하여 적선이 출몰하고 있는 당항포와 오리량 등지로 보냄. 그리고 통제사 이순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은 함께 영등포와 장문포의 적진 앞 바다에 위치한 증도 해상에서 학익진을 형성하여 바다를 가고 끊어 막음. 앞으로는 군사의 위세를 보이고 뒤로는 적의 퇴로를 막음.
이때 일본 군선 10척이 진해 선창으로부터 나와 기슭을 끼고 행선하는 것이 조선 수군에게 포착됨. 이에 조방장 어영담이 거느린 여러 장수들이 일시에 돌진하여 좌우로 협공하자 6척은 진해땅(현재 마산 진동면 고현리 포구로 추정) 읍전포에서, 2척은 고성땅 어선포에서, 2척은 진해땅 시굿포에서 모두 남김없이 격파하고 불태움.
당항포에 정박해 있던 왜선들은 대•중•소선을 아울러 21척인데 불타는 연기를 바라보고는 모두들 기운이 꺾여서 육지에 올라 결진함. 순변사 이빈에게 독촉하는 공문을 보내고 어영담에게 명령하여 그 곳으로 향하게 함.
어영담의 급보에 “왜적들은 모두 도망해버렸고 왜선 21척은 기와와 왕죽을 가득 실은 채 줄지어 정박해있었으므로 모두 격파하여 불태워 없앴다.” ⇨ 대나무를 잘라가고 기와를 훔쳐가는 것은 건축을 위한 목재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
이 해전에서 적의 빈 배만 분멸시킴으로써 수륙합공의 필요성을 절감함
3월 6일에는 고성땅 아자음포에서 출발하여 거제읍 앞에 있는 흉도 앞바다로 향함. 장문포와 영등포의 적들을 차례로 무찌르려고 계획하였으나 수군에 소속된 나주 이상의 9고을은 더 만드는 전선은 고사하고 원래 있던 전선까지도 모두 지금까지 오지 않고 있다.
⇨ 병력 문제 호소. 충청도의 구사직이 오지 않아 명색이 삼도라지만 전라도와 경상도의 연합진으로 당항포 해전을 치룬 것.
경상우수사 원균은 적선 31척을 그 도의 여러 장수들만이 모두 불태운 것처럼 공문을 만들어 보냈사온바, 온 진중의 장수와 군사들이 해괴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조정에서도 참고하여 시행하여 주십시오.
⇨ 통제사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원균은 통제사가 겸직이라고 인식한 듯.
군대에서는 계급이 매우 중요.(통제사는 종2품, 수군절도사는 정3품). 1594년 연말쯤에 이순신은 원균과의 갈등으로 조정에 통제사 사임을 요청한 적이 있다. 도리어 이순신이 꾸중을 들었으며 조정은 원균을 경상우수사에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승진시켜 보낸다.(1595년 을미년 2월). 실록 임용 기사와 실제 인사이동 날짜는 약간 차이가 나고 있다.
▪ 제2차 당항포 해전도(1594.3.4.~3.6) - 397쪽 지도 그림 참조)
▪ 전라좌우도 여러 장수의 공적
▪ 경상도 여러 장수의 공적
⇨ 이충무공전서에는 왜군의 정세를 알리는 계본이 당항포 승첩을 아뢰는 계본보다 앞에 실려 있는데 날짜는 같지만 시간상 순서가 바뀌어야 함. 당항포에서 승첩하고 돌아오면서 금토패문을 받음.
18. 기한을 어긴 여러 장수의 처벌을 청하는 계본((1594. 4. 2)
충청수사 구사직에게 ‘소속된 여러 장수들은 일제히 거느리고 지난 2월 초 5일 내에 진중으로 돌아오라.’고 기한은 주었는데, 전선 10척을 거느리고 지난 3월 16일 진중에 도착.
각 고을이 각 진과 포구의 입방 수군을 1명도 징발해 보내지 않기 때문에 사부와 격군을 정비할 수 없어서 기한 내에 도착하지 못하게 되어 참으로 놀랄 일이다. 군사를 징발할 뜻이 없는 한산•임천•홍주•서산•남포•태안•보령•해미•병영•파지도 등의 관리들은 군율에 의하여 엄중히 다스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수군은 매우 급하게 재촉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려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군율을 크게 범하였으니 모두 조정에서 처치하여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게 하고, 기타 전선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달려오도록 그 도의 순찰사 윤승훈에게 각별히 거듭 타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19. 무과 특별 시험을 베푼 것을 아뢰는 계본((1594. 4. 11)
▪ 1593년 12월 23일 도착한 무군사(임진왜란 때 왕세자 광해군의 행영)의 관문에 근거한 순찰사 이정암의 관문 내용에 ‘동궁께서 전주부로 내려와 머무르시면서 과거시험장을 개설하라고 명령하셨다.’하여 수군의 사졸들이 응시하려 했으나 12월 27일을 시험일로 정하였기 때문에 기한 내에 도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적과 상대하여 뜻밖의 환란이 없지 않을 것이므로 정군 용사들을 일시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고 아룀.
수군에 소속된 군사는 4월 초6일 시험장을 개설하고 진중에서 시험을 봄.
• 시험관 - 이순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구사직
• 참시관 - 장흥부사 황세득, 고성현령 조응도, 삼가현감 고상안, 웅천현감 이운룡
칠전 5시 2순 2중 이상과 편전 5시 1순 1중 이상으로 하여 모든 군관들의 활 쏘는 예에 의하여 점수를 주어서 합격자 100명을 뽑아 1,2,3등으로 구분하고, 거주 고을, 직역(보인, 정병, 수군, 교생 등), 성명, 아버지 이름과 연세를 기록하여 올려 보냄.
20. 왜병을 정탐한 내용을 아뢰는 계본(1594. 4. 19)
-4월 18일 도착한 거제 현령 안위의 급보에 의하면 왜선 100여 척이 각각 대나무 돛을 달고 본국에서 나오고 있었는데....영등포와 장문포에 진 치고 있는 적들을 두루 살펴보니 가감이 없으나 새로 왜적이 많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이에 여러 장수들을 단속하고 사변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21. 왜군의 정세를 아뢰는 계본(1594. 4. 19)
▪ 4월 18일 도착한 전라우도 중위장 수군우후 이정충의 보고 내용 ⇨ ‘거제현에 사는 겸사복 김응지 등 남녀를 합한 16명이 우리나라 어선을 훔쳐 타고 나오는 것이므로 모두 잡아서 보냅니다.’
▪ 김응지와 그 고을의 정병 허능련 • 김가응손, 별시위 조윤신, 수군 유응상에게 사로잡혔다가 되돌아온 절차와 적진 중에서 한 일을 심문해 왜적의 정세를 알아냄.
5일 전에 나갔다가 패배한 왜적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에 ‘조선 병선 300여 척이 군사의 위세를 성대하게 갖추어 포위하므로 적(조선수군)을 당해 낼 수가 없어서 육지로 내렸으며, 우리 배들은 혹 불태워 없애고 혹은 끌고 가므로 간신히 밤을 이용하여 도망 와서 웅포에 이르러 배를 타고 들어왔다 합니다. ⇨ 일본 해전 공식 기록은 없음. 각 가문의 종군 기록은 변명이 많으므로 믿을 수 없음. 어영담에게 준 배가 300척이 아니라 30척이었다. 10배로 부풀림.
22. 수군 소속의 여러 장수에게 교대로 휴가를 실시한 일을 아뢰는 달본(1594. 4. 20)
수군에 소속된 수령은 각각 대장(代將)(대신)을 시키고, 때에 따라 번갈아 쉬기도 하며, 서로 교대하여 임지로 돌아와 본래의 임무를 겸해서 보살피도록 하라‘는 명령에 따라 “농사를 권장하고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들에 정성을 다해서 보살피되, 다시 전령이 있으면 곧 달려오라.”며 벌써 내보냄.
⇨ 세자의 지시로 행했음을 아룀. 지방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권농이었다.
23. 방비군을 결석시킨 여러 장수의 처벌을 청하는 계본(1594. 4. 20)
금년 정월에는 진중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누워서 앓는 자가 서로 잇닿았으므로....
정월부터 2•3•4월까지 3도의 사망자 수는 전라좌도가 406명에 현재 앓아누워 있는 자가 1,373명, 우도의 사망자는 603명에 앓아누워 있는 자가 1,878명, 경상우도의 사망자는 344명에 앓아누워 있는 자가 222명, 충청도는 사망자가 351명에 앓아누워있는 자가 286명으로, 모두 3도의 사망자 수는 1,704명이며, 앓아누워 있는 사람이 3,759명입니다.
사정상 부득이하여 떠돌아다니면서 걸식하는 무리를 모아서 격군에 충당해 보니, 오래 굶주린 사람들이 되어 중병에 걸리지는 않아도 곧바로 죽어 버리니 더욱 통분합니다.
⇨ 못먹어서 면역이 떨어진 상태에서 바이러스가 침입하니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음.
무고한 군사와 백성들이 이렇게 사망하여 수군의 사부와 격군이 날마다 점점 줄어드니 여러 전선을 재빨리 운용하기가 어려우며, 근일에는 새로운 왜병들이 많이 나와서 호남으로 침범할 걱정으로 참으로 답답하고 걱정이 됩니다. 수군이 있는 수령들은 위급한 형세를 생각지도 않고 출전할 수군들을 전혀 징발해 보내지 않으므로....
24. 조총을 올려 보내는 장계(이충무공전서에만 나오는 장계2)
조총 30자루
25. 방답첨사를 선정하여 임명해 주시기를 청하는 장계(이충무공전서에만 나오는 장계3)
방답첨사 어영담이 유행병에 전염되어 4월 10일에 사망 - 그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해 부임을 독촉함. ⇨ 어영담은 이순신의 초기 작전 참모로, 만호로 경상도 해안에서 오래 근무해 지리와 지형을 잘 알았음.
26. 충청도 전선이 기한에 맞춰 도착하기를 청하는 장계(이충무공전서에만 나오는 장계4)
27. 의원을 보내 전염병을 구호하시기를 청하는 장계(이충무공전서에만 나오는 장계5)
3도의 수군들이 한 진영에 모여 있어서 봄부터 여름까지 전염병이 크게 번져 사망자 속출 – 조정에서는 충분히 참작하여 유능한 의원을 특명으로 내려 보내 구호하고 치료해주시기를 바람
<참고> 『이충무공전서』이외의 장계 7편
1. 적의 귀로를 차단하라는 유서를 받았음을 아뢰는 장계
(1) 1592년(선조25, 임진) 12월 28일 성첩하여 선전관 채진이 가지고 온 우부승지의 서장 내용(1593. 1.22)
(2) 선전관 안세걸이 받들고 온 좌부승지의 서장 내용(1593. 1. 25)
(3) 선전관 이춘영이 받들고 온 것으로 지난 4월 17일 성첩된 좌승지의 서장 내용(1593. 5. 2)
2. 배를 정비하여 무찌르라고 명령하는 유서를 받았음을 아뢰는 장계(1593.5.14.)
3. 일족을 침해하기 말라는 명령을 받았음을 아뢰는 장달(1593.12.25.)
4. 진중에서 과거 보이는 일을 청하는 장달(1593.12.29.)
5. 적을 무찌르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을 아뢰는 장달(1594.1.15.)
▪ 『이충무공전서』의 장계는 모두 71편. 그런데 『임진장초』, 『충민공계초』, 『충무공계초』에는 『이충무공전서』,에 없는 장계 7편이 실려 있음
▪ 이충무공전서에만 나오는 장계에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질의 응답>
< 1 > 1594년 이후의 장계는 왜 이충무공전서에 없나요?
⇨ 이순신이 감옥에 들어갈 때 일기와 장계 관련 문서 등을 압수함. 나중에 일부 반려되었지만 문서가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일부 장계 내용은 실록에 요약 정리되어 실려 있음.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만 있는 장계(『난중일기』/이순신 지음/박종평 옮김/글항아리에서 발췌)
「수군을 폐지하고 육지에서 전쟁을 대비하라는 명령에 대해 임금님께 청하는 장계」( 『선조수정실록』, 선조 25년(1592) 4월 14일)
2. 「도망쳐 돌아온 사람들을 적극 배려해주실 것을 임금님께 청하는 장계」( 『선조실록』, 선조 28년(1595) 6월 14일)
3. 「영(좌수영 본영)을 한산도로 옮길 것을 임금님께 청하는 장계」( 『선조수정실록』, 선조 26년(1593) 7월 1일)
4. 「수군을 거느리고 부산 근처로 출전할 것을 임금님께 청하는 장계」( 『선조수정실록』, 선조 30년(1597) 1월 1일)
5. 「부산의 왜적 진영을 불 지른 사람들에게 상 주기를 임금님께 청하는 장계」( 『선조실록』, 선조 30년(1597) 1월 1일)
6. 「명량 대첩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 『선조실록』, 선조 30년(1597) 11월 10일)
7. 「명량 대첩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 『선조수정실록』, 선조 30년(1597) 9월 1일)
8. 「도망친 군관 현응신을 처벌해달라고 임금님께 청한 장계」(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2월 9일)
9. 「진을 보화도에서 고금도로 옮기고, 둔전을 실시할 일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3월 18일)
10. 「왜적이 순천 예교에 성을 쌓는 것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3월 18일)
11. 「납속미를 바치고 병역을 기피하는 일에 대해 임금님께 청한 장계」(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4월 18일)
12. 「고금도에서 왜적을 크게 부순 것을 임금님께 보고한 장계」( 『선조수정실록』, 선조 31년(1598) 8월 1일)
13. 「명나라 진린 도독이 왜적의 머리를 벤 것을 빼앗은 것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8월 13일)
14. 「명나라 진린과 함께 순천 예교의 일본군을 공격할 계획을 보고하는 장계」(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8월 24일)
15. 「명나라 진린 도독이 왜적 토벌 작전을 방해하는 것을 보고하는 장계」(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9월 10일)
16. 「순천 예교성 전투 결과를 임금님께 보고한 장계」(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10월 13일)
< 2 > 이순신이 자신을 표현할 때 <정헌대부 겸3도 수군통제사 행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신 이>라고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 행수법(行守法 : 품계가 높은 사람을 낮은 관직에 임명하거나, 품계가 낮은 사람을 높은 관직에 임명하는 경우에 사용한 칭호)이 있다. 중국은 당나라 이후에 사용하였고, 한국에서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사용하였다. 조선에서는 1442년(세종 24) 처음으로 사용하고, 뒤에 가서 《경국대전》에 따라 법제화되었다. 이에 따르면, 모든 관직에는 그에 따르는 품계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 어떤 관직에는 그 관직 자체의 품계보다 더 높은 품계의 관원, 또는 반대로 더 낮은 품계의 관원을 임명할 수 있다. 그중 품계가 높은 사람을 낮은 관직에 임용하는 경우를 ‘행(行)’, 반대로 품계가 낮은 사람을 높은 관직에 임용하는 경우를 ‘수(守)’라 한다.
이순신은 정헌대부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품계는 정2품이다. 수군절도사는 정3품이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품계보다 직급이 낮은 직책을 받으면 행(行)이라는 글자를 계속 쓰고 있다. 거꾸로 내가 3품밖에 안 되는데 2품직에 가면 수(守)라는 글자를 앞에 붙이게 된다. 그런데 이순신은 수라는 글자를 쓴 경우가 한 번도 없다.
< 3 > 당시 국가의 시스템이 전혀 작동 안 되는 느낌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당시 국가의 역할을 전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나라 내부는 엉망이었다.
17세기에 신흠의 손자 신경(申炅, 1613 ~ 1664)이 쓴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라는 책에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이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 조선 중기의 학자 신경이 1577년(선조 10)부터 1607년에 걸쳐 일어난 대명 관계를 기록한 책. 4권 4책. 규장각도서. 신경이 임진왜란 때 명군의 지원을 '재조(再造)'라는 관점에서 보면서 임진왜란 때 명군의 동향과 외교적 관계를 정리한 야사서이다. 임진왜란 때 명군의 동향과 지원 내력을 알 수 있는 국내 자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
⇨ 김완의 『해소실기』라는 책에 전라도 관찰사 이용순의 장계내용(배설 관련 기록)이 나온다. 배설은 의병장 출신으로 상으로 받은 직책으로 경상우수사가 된다. 하지만 그는 배멀미가 심해 배만 타면 기절할 정도였다고 한다. 배설이 도망가자는 얘기를 할 상황이 못 된다. 칠천량 해전 때 배를 탄 배설이 배멀미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배설 이하 첨사와 만호들이 원균 아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해서 10여척이 칠천량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당시는 주장이 죽으면 부하도 같이 죽어야 하는 시대였다. 자신한테 해전의 책임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배설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육지에 내리자마자 고향으로 도망간다. 1599년에 잡혀서 처형당한다.
< 4 > 진(鎭), 진(陣), 영(營), 진(津)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 진(鎭, 진압할 진)은 군사 진영의 의미로 사용됨.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위치.
진영의 준말.
적용 예 : 첨사진, 만호진 등
진(陣, 진 진, 줄 진)은 바다위에서 진형을 이룰 때 사용됨. 군사들의 대오를 배치한 것
적용 예 : 원형진, 첨자진, 방진, 학익진 등
영(營, 경영할 영)은 범위가 큼. 감영, 관찰사영, 순찰사영 등으로 감사, 만호, 현감, 현령이 다스리는 장소를 의미함
적용 예 : 감영, 관찰사영, 순찰사영 등
진(津, 나루 진)은 민간에서 쓰는 나루를 의미함. 맞은편 양쪽에도 똑같은 이름을 쓴다.
적용 예 : 삼랑진, 벽파진, 노량진 등
드디어 1권을 함께 다 읽었습니다. 함께 읽기의 힘을 느끼며, 3권을 다 읽고 나면 책걸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으며 당시 힘들었던 상황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전쟁보다 더 고통스러운게 배고픔과 전염병이라 해도 될 정도로 백성들에게는 비켜가고 싶은 시절이었겠지요. 백성들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임금에게도 끊임없는 충성심으로 장계를 올리며 자신의 의견과 상황을 보고하고, 문제해결력을 보이는 이순신장군님의 모습을 보면 철저한 유교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기저에 깔려있었겠지만, 제대로 된 역할도 못하는 조정에 답답함을 금하지 못했겠지요. 병력이 모자라 수군징발을 위해 독촉하는 장면을 보니 병사 없이 전쟁해야 하는 상황이 그려집니다. 말을 듣지 않는 부하들을 설득 및 재촉하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도 적과의 전쟁은 순간에 끝난다는 깨어있는 정신으로 무장하고 계신 모습을 보니 늘 긴장 그 자체였을거라 여겨집니다.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전승무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겠지요. 오늘날도 끊임없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무 죄 없는 어린이와 여자 등 약자들이 더 많은 피해를 당하는 전쟁의 모순....앞으로 더 이상 전쟁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늘 변함없이 강의해주시는 웅천현감님이 계셔서 가능한 읽기 과정입니다.
아낌없이 시간과 정성을 쏟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번 시작한 읽기가 끝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길 아자아자 화이팅!!! ㅎㅎ
첫댓글 진해현감님의 정성을 다해 하시는 지부장 역할에 경의를 표합니다.
장계내용을 전부 요약하시고 교수님 멘트내용을 빠짐없이 정리하시는일이 쉬운일이 아닌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기는 쉽습니다.
장계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국가의 기본적인 지원과 역할이 미진한 상황에서도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기위해 노력하시는 장군님의 노고와 역량이 대단함을 느킬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난중일기부분이 더욱 기대됩니다.
지부장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미신불사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 더욱 기쁩니다. 평생을 공부하여 쌓은 능력을 아낌없이 전달해주시는 웅천현감님의 정성에 따라 미력하나마 저도 작은 정섬을 보탭니다. 우리 회원님들이 함께 할 때 먼 길도 쉽 게 갈 수 있겠지요. 타임머신을 타고 책속 여행을 하며 당시 인물들을 만나는 시간은 오늘날 삶의 지혜를 더하게 하는 것 같아서 참 좋습니다.
에궁~~, 우리는 언제 따라갈꼬...
게으른 농부 밭고랑만 셉니다.
창원지회, 박수를 보냅니다.
송현마을님
부산지회 특성에 맞게 하시면 부담이 덜하실 거예요. 웅천현감님 혜택을 우리 지회만 받기엔 아까워서 후기에 조금 정성을 들입니다. 저는 배달부 역할...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우왕! 읽는데만 한 시간 넘게 걸렸어요.
지회장님 정리한다고 '을메나' 애썼을까, 생각하니 허투루 읽을 수가 없었네요.
덕분에 복습 잘했습니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고운밤 되세요~♡
집중해서 읽어줘서 감사해요.
생각보다는 정리하는데 시간이 쪼매 걸리네요. 정리하면서 저도 복습되어 좋고, 나눌 수 있어 더욱 좋아요.
행복한 꿈 꾸세요~~^^
진해현감님의 학습 후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쉽지 않는 일을 이렇게까지 하시면 끝보기가 ...
수고하셨습니다.
박수받을 일은 아니고요...함께 나누는 거지요. ㅎ
전회장님의 이배사를 사랑하는 열정도 변함없기를~~😊
읽는데만 이렇게 힘이드는데 휴. 이렇게 긴글을 올려주신 진해현감님 정성을봐서라도 완독해야지 하며 ... 고맙고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책내용 요약이 대부분이지요. 파란색 글씨로 된 부분이 웅천현감님의 설명으로 보시면 됩니다. 책장에 꽂힌 책을 함께 완독해나갑시다. 우수사님 열정으로는 벌써 다 읽으셨겠지만...천천히...또 함께^^
진해현감님의 수고 덕분에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날씨가 추워진다네요. 따숩게, 건강하게,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진해현감
벌써 5회차!!
월 1회 예정대로 진행한다면
11월에 15회차 대장정 마칠 수 있을 듯~
함께 가는 길, 멀지 않네요~~^^
내이포판옥선님의 길잡이 역할이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 같아요. 감사해요.
멀지 않은 길...함께 가볍게 가요~~~
<이충무공전서> 읽기는 석/박사 학위 교육과정 수준의 스터디입니다. 진해현감님이 끝까지 꼼꼼히 기록하시면, 훌륭한 <이충무공전서> 읽기의 스터디북이 될 것 같아요. 이건 일반인의 입문서가 아니라..이순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의... 훌륭한 입문서입니다. 이배사가 14년이 되니.....한 차원 성숙한 모습이 ..이런 방식으로 드러나네요. 주관하시는 웅천현감님...콤멘트까지 꼼꼼히 기록하여 전파하시는 창원 지회장 진해현감님께..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전국의 모든 이배사님들...이런 내용의 스터디는 ..우리나라 그 어디에도 없는 스터디이니..진해현감님이 올려 놓으신 자료...꼭 통독하셨으면 좋겠습니다...ㅎ
이끌어주시는 웅천현감님이 계시기에...함께 하는 회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도 함께 하면 수월하게 하듯이 함께 읽다보니 벌써 1/3지점을 통과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깊이 읽지는 못하지만 한번 눈도장 찍고 지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세상에 얼굴 내민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요.
이순신 장군님의 기록정신을 배워보려니 쉽지는 않네요~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운 것을 실천해보겠다는 의지로 한 발씩 내딛습니다~~
일심님께서 강조하신 가치지향적인 리더십도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아낌없이 베푸시는 교수님들 덕분에 조금씩 배워갑니다.
늘 행복한 날 되세요~^^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혼자서 전서를 읽는다 해도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궁금한 점도 많이 있을 건. 당연한 일..
같이 읽고..같이 공부하고..같이 알아간다는 건..참으로 가치있는 일입니다.더불어 반가운 얼굴들 같이 만나니 새록새록 정도 쌓이게 되고요..
창원지회장님의 리더십에 감사드리며 꼼꼼한 복습노트도 더불어 공부합니다. 고생많으셨어요..🙆♀️
그렇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혼자서는 행간을 읽기도, 보이지 않는 배경과 자료도 부족하니 내맘대로 읽기가 쉽겠죠. 덕분에 의미있는 시간이 됩니다.
함께 해서 감사해요
"약무 창원지회 시무 이배사"
여수지회도 화이팅입니다.
올해 신년회의 멋진 추억이 오래 갈 듯합니다~^^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원본은 충무공 이순신의 말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이 모임에서 올라오는 자료는
전서를 번역하는 일과 같은..
해독의 해독을 하는 것이기에
엄청 소중한 자료가 되겠습니다.
과찬의 말씀을....
되새김질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ㅎ
5회독으로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5회차 공부..! 모임 소식은 물론 공부하신 내용까지 정리하여 올려주셔서 쉽게 얻어갑니당.
5회독씩이나!! 5회차!ㅎㅎ
부끄럽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감사한 일이지요. 열공하는 판중추부사님믜 앞날을 응원합니다~~^^
긴글
덕분에 편하게 공부합니다.
창원지회^^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편하게 공부하신다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진해현감님 대단해요~우린이제 필사하면서 읽기 토론공부 시작했으니 언제 따라갈꼬~~
필사까지 하시는 정성이 대단하십니다. 한획 한획 꾹꾹 눌러쓰다보면 난중일기가 통째로 머릿속에 새겨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