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원각사 청년회를 통해 처음으로 만났다
지금은 보리사를 다니고 있지만 일 년에 두서너 번 원각사를 간다.
일요일(4.28) 원각사를 다녀왔다.
산천은 그대로인데 인걸은 간데 없네 하는 말처럼
원각사는 그대로이건만 알던 분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난 번.. 작년 여름에 왔을 때는 사람들이 벅적거렸는데..
오늘은 커다란 법당이 크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오늘 참 사람이 없네요 하면서 물으니.. 오시는 분의 숫자가 들쑥 날쑥이라고..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하면 전자는 타율적 종교요, 후자는 자율적 종교라 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불안한 시대에는 타율적 종교가 자율적 종교보다 견딜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교 내일은?.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움직여 다가간다는 의지가 아쉽다.
차를 파킹해 놓으면 근처에 원각사 조감도가 보인다.
위에 대웅전이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법회는 여전히 문화센터에서 보고 있다.
예불에 이어 주지 지광 스님의 법문..
내용은 2, 3주 앞으로 다가온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추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살아간 모습이 중심이었다.
2천6백여 년 전에 살다가신 부처님은 한 분이니.. 이미 알고 있는 내용으로 그 얘기가 그 얘기일 것인데..
말하는 분에 따라.. 듣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말하고 이해한다.
지광 스님 목소리는 아주 듣기 좋다. 음성 공양만으로도 충분히 보시가 되는 목소리다.
거기에 선명 스님 목소리 또한 그러하니..
두 분이 주관하는 예불 소리는 그대로 엄청난 보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님께 실례가 되는 일이지만..
찬스가 되면 두 스님이 주관하시는 예불에 참가하여
그냥 귀만 열어놓고 소리 삼매에 빠지는 것도
불자의 기쁨이 아닐까 한다.().
요새 갑자기 미나의 '전화 받아' 라는 노래가 춤과 하나가 되어 세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좋은 목소리를 지니고 태어나려면 전생에 복을 얼마나 많이 지어야 할까?.
다행이랄까.. 요새는 음성을 연습을 통해 좋게 만드는 기술이 엄청 발달해 웬만한 자이면 다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니..
좋은 목소리를 전생의 업보로 여기는 것은 위험한 판단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스님은 말씀하신다.
요새 사람들은 부처님 일생에 대한 관심은 물론 경전 읽기를 등한히 하고 있다.
그런 반면에 '전화 받아' 와 같은 유튜브 숏 화면에 온 시간을 보낸다.
숏 화면은 일 분 남짓인데.. 백 여개 이상 보는 데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며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렇게 재미있게 보았지만.. 남는 게 별로 없다.
그러나 어린 시절 농경제에 참석한 고타마 왕자가 약육강식 세계를 보고 염부수 아래에서 명상에 잠겼다는 장면이나
아들을 낳고 다음 날 출가를 했다는 석가모니 얘기를 들으면
나는 어떤가? 하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곧 짙은 여운이 있다는 것.
하루 종일 짙은 여운 속에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루 종일 남는 것 없는 일상으로 일주일, 한 달, 일 년.. 보내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은 지각생의 지각하는 행동을 야단치는 데..
그 야단을 듣는 학생들은 지각생이 아니라는 것.
오늘 법당에 나와 법문을 듣는 이들은 평소 부처님 일생이나 경을 보는 이들로 보이는데..
정작 오늘 법문 대상은 여기에 없는 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보면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면서..
특히 부처님을 이룬 이후 45년 생활을 서양인들은 완벽 그 자체라고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과거 전생에 쌓은 공덕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고 하시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500여 개 전생이 실린 전생담[자타카]을 말하셨다.
즉 전생에 그리 사셨으니.. 부처님이 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부처가 되려면.. 먼저 부처님 전생에 하신 행동을 지금 여기서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문득 부처님 오신 날이며 아기 부처님만 칭송하고 예배 올리는 데..
거기에 부처님 전생이 더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부처님이 태어나는 바탕에는 전생에 이런 실천을 하셨기 때문이라면서..
너무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인가?.
산과 물은 그대로 이지만 사람은 흘러가듯..
세상은 변한다.
그런 변화와 어울려 하나의 세상을 이루어야만 한다.
우리 불교가 세상 흐름에 금방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분명 그리 될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듯이..
K- 문화를 세상에 보여주듯..
K- 불교를 하나가 되는 세상에 보여줄 것이 틀림없다.
그럴려면 부처님께서 전생에 바탕을 마련해 놓았듯이..
지금 여기서 그럴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리라.
지금 여기서 전생의 모습을..()..
원각사를 벗어나는 이 마음의 무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