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경 한의학 의서 상한론 伤寒论 장티푸스론
출처:바이두백과 소스:이페어케이
《티푸스론》은 동한 장중경이 지은 한의 경전 저서는 외감열병 치료의 법칙을 진술하는 전문 저서로, 전서는 12권이다.현재 10권 22편이 남아 있다.
장중경[1] 원《장티푸스 잡병론》을 저술하여 전해지는 과정에서, 후대의 정리를 거쳐 편찬된 이 가운데 외감열병 내용을 《상한론》으로 묶었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내과 잡병을 주로 논술하였는데, 명칭은 《금(金)》이다.부족은 대방론을 써야 한다. [2]
작품명 장티푸스론 [3]작자 장중경 병음 Shang Han Lun 클래스 별한의학 서술 외감열병 치료법 출 자상한 잡병론 지대의학경전 권수 총 10권 중의학에 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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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티푸스는 중국 고대 사람들의 대외감각이다.병의 통칭은 결코 어떤 병의 전문 명칭이 아니다.옛사람들은 흔히 질병의 유인을 병의 원원으로 삼았는데, 한기는 현대에서 추위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외사가 질병을 일으키는 통칭이었다.출처는 『장중경 장한론』의 장한(張寒)이 전하는 장티푸스(張寒波)가 바로 이런 의미일 뿐 현대의 장티푸스와는 무관하다. [4]
내용
《티푸스론》.
책 10권, 총 22편113곡에 82종의 약물 적용을 받았다.
제1권은 '맥파 판별법'과"평맥법" 두 편은 주로 장티푸스 및 잡병의 맥과 증, 예후를 논술한다.
제2권은 장티푸스의 예이다.'습한 열의 맥증을 판별하고 치료하다'는 육경의 발생, 발전, 치료, 예후의 일반 법칙, 습한 열의 증치를 총론한다.
제3권부터 제6권까지, 주로태양, 양명, 소양, 태음, 소음, 궐음 등 육경병의 맥과 증, 치료와 예후를 논하다.
제7권부터 제10권까지 주요론콜레라, 음양이역, 노역의 증험 및 장티푸스의 땀과 땀, 토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2]
육경형증
육경 형증은 《상한론》이다.『전서』의 강령은, 증후를 분류하여 정한 것인데, 후대는 이를 불폐의 법칙으로 여겼는데, 정중경은 열성병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귀납하면, 6으로 나눌 수 있다.유형별로는 소문의 정신을 살려 양열, 표실, 음한, 내허를 분석했다.삼양증과 삼음증이다. [4]
전해지다
《티푸스론》의 원서는 일찍이 서쪽에 있다.진왕숙과 정리의 편차는 이미 5대 10국 때 일선에 단전, 존망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이 책은 북송국가 서부에 890년 동안 비밀로 보관되어 왔으며, 가우년 동안(10)북송교정의서국(北宋校正醫書局)이 성립되어 고계충진헌본(高啓進憲本)을 저본으로 선정하고, 손기(孫奇)·임억(林 林) 등의 교정에 의해 1065년 조정(朝政)이 국자감(國子監)으로 명하여 판행을 조정한 《상한론(论寒論)》으로 한말부터 송(宋)까지 8백여 년 전을 마쳤다.본질이 삐뚤어지고 조문이 뒤죽박죽된 국면.
김황통 4년 남송 소흥14년(1144)에 성무기 《주해장한론( 注解 伤寒論)》이 간행되었고, 상세한 주해가 있어 점차 백본 《상한론( 伤寒論)》 대신 백본 남송(南宋)을 다시 새기지 않았다.지원대에는 백문본 ' 伤'를 썼다.한론'은 소수의 장서가들이 그 책을 갖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회적으로 책이 없다.
명만력27년(15)99) 장쑤성 상숙장서가인 자오카이메이(趙開美)는 우연히 북송(北宋)의 판본인 장티푸스론(论寒論) 10권을 얻었으니 우수 조각공에게 부탁해 중경전서에 수록했다.북송 원판은 금방 잃어버렸다현재 남아 있는 것은 조개미본뿐이다.조개미는 송판을 실감나게 했는데, 후대에 조개미본을 '송본 장티푸스론'이라고 존칭하였다.조개미는 지금 5부를 소장하고 있다.《티푸스론》은 국외에서도 광범위한 영향을 가지고 있다.
이 외에 '다른 것'도 있다.당본티푸스론(돈·손사막), 송본티푸스론(송·고계충), 금본주해티푸스론(김·성무이), 송본티푸스론(명·조개미)일본 강설을 근본적인 장티푸스는 살모넬라 고헤이 》 (론 ) 《 일본 본부 계림의 장티푸스 》 (론 ) 《 본 돈황론이 장티푸스 》 《 등 버전이다. 훼손 》 ( [2]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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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위
맥분법 1위 [7]
제2의 맥박법
권2
장티푸스는 3번째이다.
습한 열의 맥을 판별하여 네 번째를 증명하다.
태양병맥증을 판별하여 치료하다.5
제3권
태양병맥증 판별 및 치료 중 급제6
권4
태양병맥증을 판별하여 치료하다7
권5
양명병맥증 판별하여 여덟 번째 치료
소양병맥증 판별하여 9번째 치료
권6
태음병맥증 판별하여 10번째
소음병맥증 판별 및 치료일
기절음병맥증 판별하여 10번째 치료2
권7
호란병맥증 판별하여 10번째 치료3
음양역차를 판별한 후 병맥을 복원하다증거병치 14위
불가한 병맥증을 판별하여 병치하다15번째
발한병맥증을 판별하고 치료하다십육
제8권
발한후 병맥증 병치십칠
변별불가토열여덟 번째
판가토 제19호
권9
불가하병맥증을 판별하고 치료이십
가하병맥증을 판별하여 제2위로 치료하다십일
권10
발한토하후병맥증스물두 번째를 치료하다.
공헌하다
《티푸스론》은 그것을 두드러지게 이루었다.첫째는 육경변증 체계를 확립했다는 점이다.사진팔강을 운용하여, 장티푸스의 각 단계에 대한 진맥·심증·논치·입방·약물의 투여 규율 등을 조문으로 비교적 포괄적으로 서술하였다.장티푸스 육경병 각개장법, 예를 들면 태양상한은 마황탕, 태양중풍은 계수탕, 양명경증용 백호탕, 양명부증용 승기탕, 소양병용 작은 시바호탕.증치경험, 논석의 주위가 분명하고, 조리가 분명하며, 이·법·방·약을 유기적으로 융화하여 증치요령을 보여줄 수 있다.
《티푸스론》의 또 다른 두드러진 성과.바로 한의학에 대한 중대한 공헌이다.본 서기는 397법, 113방을 기재하여, 장한용 땀, 토, 하등치법의 완전한 조방 원칙을 제시하였으며, 아울러 장강술래의 처방을 소개하였다.방제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계지탕·마황탕·대청룡탕·소청룡탕·백호탕·마황아몬드 석고감초탕·갈근황금황련탕·대승기탕·소승기탕·위승기조절탕·대시호탕·소시초호탕 등의 대표명을 소개하였다.방. 책에 기재된 방제의 대부분은 치료 효과가 믿을 만하고, 임상 실정에 부합하며, 천여 년 동안 대의사의 반복적인 응용 과정을 거쳐 여러 번 유효한 것으로 증명되었다.장중경의 박채나 개인이 만든 처방전, 약 선택에 정통하고, 조우를 중요시하며, 주치의가 명확하여 효험이 탁월하여, 후세에 이름하여 '각방의 조상', 이를 '경방'이라 칭하였다.
이 책은 옛 사람들의 의학을 총결하였다성과와 풍부한 실천경험은 한대 이전 의학의 대성공을 집대성하였으며, 자신의 임상경험을 결합하여 여러 종류의 외감질환 및 잡병의 변증논치, 이법방약을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구전하여 중의 발전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의의와 선대의 역할을 가지고 중의학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티푸스 이론》은 외감 질환의 진료를 위한 변증 강령과 치료 방법뿐만 아니라, 한의과 임상 각 과목에 제시되어 있다.변증논치의 규범을 제공함으로써 변증논치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후대의 의가에 의해 경전으로 추앙받았다. [2]
작성자
장중경
장중경 [8]
장중경, 동한 후기 의학집. 서기 150년 정월 18일에 태어났으며, 219년에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그는 몰락한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다.아버지 장종한은 일찍이 조정에서 벼슬을 했다.가정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많은 전적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의학을 좋아하여, 박학다식하다.대중과 호흡하는 책, 숨은 악도술"이라고 했다.그가 10살이었을 때,이미 많은 책,특히 의학에 관한 책을 읽었다.그의 동향인 허허는 그의 재능과 특기를 보고 그에게 "당신, 군.사정으로 운치 있게 행동하면 나중에 좋은 의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훗날 장중경은 '의중의 성, 방중의 조'라는 별명답게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이것은 물론 그가 "생각의 정"을 쓰는 것과 관계가 있지만, 주로 그는 의약 전공을 사랑하고, "고훈을 부지런히 구하며, 대중을 널리 얻는다"는 데 능하다.그 결과. 젊은 시절 동군 장백조를 따라 의학을 공부했다.다년간의 각고의 연구와 임상실천을 거쳐 중국 의학사상 뛰어난 의학가가 되다.허우허는 『양양부지』라는 책에서 "중경지술, 백조에 능하다"고 찬탄했다. [9]
伤寒论 编辑
《伤寒论》为东汉张仲景所著汉医经典著作,是一部阐述外感热病治疗规律的专著,全书12卷。现今遗存10卷22篇。
张仲景 [1] 原著《伤寒杂病论》在流传的过程中,经后人整理编纂将其中外感热病内容结集为《伤寒论》,另一部分主要论述内科杂病,名为《金匮要略方论》。 [2]
作品名称伤寒论 [3] 作 者张仲景 拼 音Shang Han Lun 类 别中医学 阐述内容外感热病治疗规律 出 自伤寒杂病论 地 位古代医学经典 卷 数共10卷 所 属中医
目录
1 书名
2 内容
3 流传
4 目录
5 贡献
6 作者
书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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伤寒是中国古人对外感病的通称,并不是某一疾病的专门病名。古人常把疾病的诱因当作病原,寒不仅仅是现代所说的受寒,而是所有外邪引起疾病的统称,出处可参照郝万山先生的讲义视频,张仲景所著的《伤寒论》中的伤寒也正是该义,与现代的伤寒症无关。 [4]
内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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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伤寒论》
全书10卷,共22篇,列方113首,应用药物82种。
第一卷为“辨脉法”和“平脉法”两篇,主要论述伤寒及杂病的脉、证与预后。
第二卷为“伤寒例”、“辨痓湿暍脉证”、“太阳病脉证并治上”,主要总论六经发生、发展、治疗、预后的一般规律、痓湿暍的证治。
第三卷至第六卷,主要论述太阳、阳明、少阳、太阴、少阴、厥阴等六经病的脉、证、治疗与预后。
第七卷至第十卷主要论述霍乱、阴阳易、劳复的证治及伤寒病的可汗不可汗、可吐不可吐、可下不可下等。 [2]
六经形证
六经形证,是《伤寒论》全书的纲领,它是把证候分类而定出来的,后世认为这是不废的法则,张仲景观察到热性病虽然错综复杂,但归纳起来,可分为六个类型,同时又运用《素问》的精神分析了阳热、表实和阴寒、里虚。即“三阳证”与“三阴证”。 [4]
流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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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伤寒论》原书曾经西晋王叔和整理编次,在五代十国时期已经处于一线单传、存亡继绝的危机状态。此书在北宋国家书府秘藏八九十年,嘉佑年间(1056-1063),北宋校正医书局成立,选高继冲进献本为底本,由孙奇、林亿等校定,于1065年由朝廷诏命国子监雕版刊行,名为定本《伤寒论》,结束了从汉末至宋凡八百余年传本歧出、条文错乱的局面。
金皇统四年即南宋绍兴十四年(1144)成无己《注解伤寒论》刊行,有详注,逐渐取代白文本《伤寒论》,白文本南宋未再翻刻。至元代,白文本《伤寒论》除少数藏书家偶有其书外,社会上已无该书。
明万历二十七年(1599),江苏常熟藏书家赵开美偶然得到北宋刻本《伤寒论》十卷,请优秀刻工将此书收刻于《仲景全书》中。北宋原刻本旋即丢失,现今仍在留存的只有赵开美本。赵开美本逼真宋版,后世尊称赵开美本为《宋本伤寒论》。赵开美本今存五部。《伤寒论》在国外亦有广泛影响。
除此之外,其他还有《唐本伤寒论》(唐·孙思邈)《宋本伤寒论》(宋·高继冲)《金本注解伤寒论》(金·成无已)《宋本伤寒论》(明·赵开美)《康治本伤寒论》(日本)《康平本伤寒论》(日本)《桂林本伤寒论》《敦煌本伤寒论》(残卷)等版本。 [2] [5-6]
目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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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第一
辨脉法第一 [7]
平脉法第二
卷第二
伤寒例第三
辨痓湿暍脉证第四
辨太阳病脉证并治上第五
卷第三
辨太阳病脉证并治中第六
卷第四
辨太阳病脉证并治下第七
卷第五
辨阳明病脉证并治第八
辨少阳病脉证并治第九
卷第六
辨太阴病脉证并治第十
辨少阴病脉证并治第十一
辨厥阴病脉证并治第十二
卷第七
辨霍乱病脉证并治第十三
辨阴阳易差后劳复病脉证并治第十四
辨不可发汗病脉证并治第十五
辨可发汗病脉证并治第十六
卷第八
辨发汗后病脉证并治第十七
辨不可吐第十八
辨可吐第十九
卷第九
辨不可下病脉证并治第二十
辨可下病脉证并治第二十一
卷第十
辨发汗吐下后病脉证并治第二十二
贡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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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伤寒论》突出成就之一是确立了六经辨证体系。运用四诊八纲,对伤寒各阶段的辨脉、审证、论治、立方、用药规律等,以条文的形式作了较全面的阐述。对伤寒六经病各立主证治法,如“太阳伤寒”用麻黄汤;“太阳中风”用桂枝汤;阳明经证用白虎汤;阳明腑证用承气汤;少阳病用小柴胡汤……归纳总结了不同的病程阶段和症候类型的证治经验,论析主次分明,条理清晰,能有机地将理、法、方、药加以融会,示人以证治要领。
《伤寒论》另一突出成就是对中医方剂学的重大贡献。本书记载了397法,113方,提出了完整的组方原则,介绍了伤寒用汗、吐、下等治法,并将八法具体运用到方剂之中,介绍了桂枝汤、麻黄汤、大青龙汤、小青龙汤、白虎汤、麻黄杏仁石膏甘草汤、葛根黄芩黄连汤、大承气汤、小承气汤、调胃承气汤、大柴胡汤、小柴胡汤等代表名方。书中记载的的方剂,大多疗效可靠,切合临床实际,一千多年来经历代医家的反复应用,屡试有效。由于张仲景所博采或个人拟制的方剂,精于选药,讲究配伍,主治明确,效验卓著,后世誉之为“众方之祖”,尊之为“经方”。
该书总结了前人的医学成就和丰富的实践经验,集汉代以前医学之大成,并结合自己的临床经验,系统地阐述了多种外感疾病及杂病的辨证论治,理法方药俱全,在中医发展史上具有划时代的意义和承前启后的作用,对中医学的发展做出了重要贡献。而且,《伤寒论》一书不仅为诊治外感疾病提出了辨证纲领和治疗方法,也为中医临床各科提供了辨证论治的规范,从而奠定了辨证论治的基础,被后世医家奉为经典。 [2]
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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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仲景
张仲景 [8]
张仲景,东汉后期医学家。生于公元150年正月十八日,于219年溘然长逝,享年69岁。他出生于一个没落的官僚家庭。其父张宗汉曾在朝为官。由于家庭条件的特殊,使他从小就接触了许多典籍。
他从小嗜好医学,“博通群书,潜乐道术。”当他十岁时,就已读了许多书,特别是有关医学的书。他的同乡何颙赏识他的才智和特长,曾经对他说:“君用思精而韵不高,后将为良医”。后来,张仲景果真成了良医,被人称为“医中之圣,方中之祖。”这固然和他“用思精”有关,但主要是他热爱医药专业,善于“勤求古训,博采众方”的结果。年轻时曾跟同郡张伯祖学医。经过多年的刻苦钻研和临床实践,成为中国医学史上一位杰出的医学家。何颙在《襄阳府志》一书中曾赞叹说:“仲景之术,精于伯祖”。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