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뭔가 행동이 앞서고 나중에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나중에서야 들 때가 있다. 후회하지 않을 행동만을 하고 싶지만 늘 따라다닌다. 으휴... 이럴 때마다 답답하고 지겹... 당시의 나는 그냥 아직 그런 상태나 수준이었던 걸로. 현지가 말한 '잊고 넘기는 관용적 태도'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나에게도 가끔 필요하다. 나는 나에게 계속 말해줘야 한다. 괜찮아. 괜찮다고. 다 지나간다고.
삶이 곧 끝난다는 걸 잊지 않기. 내일 끝난대도 그렇게 후회하며 괴로워하느라 낭비할 거야?
어제 일기에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문장을 가져와서 복습해보아야지.
실패한 사람들은 성공의 과정을 밟는 중이다./ 그것 역시 신중한 선택이었다고. 그 순간을 결정한 스스로를 존중하는 거야.
p.s.
무언가 말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기. 빠르지 않게 천천히.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싶지만 그래도 더 신중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지향점이 있는 건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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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끊임없이 괴로운 건지 생각해 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향점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이미 지금 상태에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상태에 완전히 만족하면(A) 해결되는 문제다. 무언가 모자란 부분이 눈에 띄고, 그럼으로써 A에 자주 실패하기 때문에 괴롭다. 모자라지 않다고 설득해봤자 이미 모자란 것을 인식한 상태 이후의 행위이다. 늘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주문을 외어야 한다. 늘 완벽한 행동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준다. 자아와 행동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자아가 아니라 당시의 행동이 하찮았고, 다음에는 괜찮은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습관을 잡아보자. 자아는 괜찮다. 당시의 행동이 하찮았을 뿐이다. 결국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과 눈으로 보는 것)이다(용서, 수용,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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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 교수는 자아를 배경 자아(해석 이전의 본래 자아. 지켜보는 자아. 평화롭고 고요한 존재), 경험 자아(현재 경험의 해석자. 스토리텔링의 주체), 기억 자아(과거 경험으로 규정된 자아)로 나누고 호흡이나 운동에 집중하는 명상 등을 통해 편안한 본래의 배경 자아를 알아차리라고 말한다.
- 현제는 어제 발표 시간에도 뭔가 궁금하다고 피드백했다. ㅋㅋ 민지의 발표에서 시인 소개가 빠졌다고 질문을 가장한 질타를 하려 했으나(정말 시인이 궁금했던 순수한 질문이었을 수도 있고...) 민지가 사과 대신 답변하여 질타가 아닌 질문이 되었다.
- 서원이는 발표문을 잃어버렸다고 복사를 요청했다. 원래 발표는 발표문 없이 하는 것이며 안 외워도 되고 현재 평가 기준이 상당히 느슨해서 매체 이용하여 발표하기만 해도 만점이라고 했으나, 발표문 중에 외워야 할 부분이 있다며 악마의 속삭임(?)에도 굴하지 않았다. 비록 발표문은 잘 간수하지 못했으나 잘 해내 보고자 하는 태도가 예쁘다. :)
- 관찰해 보면 각자 특색있는 행동 양태가 있다. 예를 들면 예찬이는 발표할 때 문장 끝을 살짝 올린다. 상냥하고 특이한 느낌이다. 지오는 급식 때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금만 더'(×3) 하고 랩하듯 다다다다 떼를 쓴다. 재웅이는 고개를 살짝 아래로 향했다가 들면서 앞머리를 한 손으로 스윽 넘긴다. 그러면 그의 머릿결은 부드럽게 흩어진다. 예지는 매우 얌전하게 걷는다. 흠... 따라하기 난이도는 예지가 가장 높은 것 같다.
p.s.
아이들의 개성을 관찰하고 찾아낼 때 매우 즐겁다.
p.s.2.
어제 서원이가 발표를 위해 메일 열 때 아이디 찾느라 한참 걸리고, 구글 슬라이드 넘기는 명령어 위치도 잘 못 찾았는데 그가 버벅이는 순간마다 현길이와 함께 쯧쯧거리며 한심하다는 메시지를 잔뜩 보내던 재웅이가 스윽 나와 도와주었다. 가볍고 부드럽게 스윽 돕는 행동이 스윽 머리 넘기는 동작과도 좀 비슷하네. ㅎㅎ
- 오늘 블로그에서 본 인상적인 구절(출처: https://blog.naver.com/herennow_/223412362205)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 줄도 알아야 자유를 이해할 수 있고, 마침내 진정한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
상대가 나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하고, 나도 상대에 대한 실망감을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분리와 독립을 위해 중요한 과정이며, 이를 거쳐야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실망할지 말지는 당신이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인생일지라도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해야 한다.
타인의 칭찬과 비난에 의존하는 것은 '자의식 과잉'일 수 있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자신과 관계되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칭찬과 비난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을 조금 더 쾌적하게 만들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이 건강한 마음가짐이다.
내면의 평안을 얻고 싶으면 매일 내면의 공간을 정리해야 한다.
인생의 깨달음이나 성찰 등 가치 있는 일에 내면의 공간을 사용해야 한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연기처럼 곧 사라진다.
- 가볍고 단단하게 살기(이를 위해 필요한 것: 어떤 감정이 들 때 알아차리기. 미소. 호흡에 집중. 평가 판단하지 않고 관찰. 걷기 등 운동). 나는 호흡이다(호흡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나는 공기나 바람과 같다.
가벼움: 모든 것이 사라짐을 앎(붙들릴 것이 없음).
단단함: 외부 요인과 자아를 분리함. 외부 요인에 영향 받지 않음(독립).
<13반>
- 독서 시간이다. 호준이가 질문한 것은 '행복을 정의할 수 있는지'였다. 현지는 각자 행복의 기준이 다르므로 정의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현지에게 언제 행복한지 물었는데 현지는 '지금' 행복하다고 하여 인상적이었다. 제일 좋네. :) 지유는 '좋아하는 거 할 때 행복하다'고 했는데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었더니 '맛있는 거 먹기, 친구들과 놀기' 등을 이야기했다. 먹을 때 느끼는 행복이 크다. 좀 있다 맛있는 거 먹어야지 다짐했다.
희수가 '링어'를 읽고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물었다. 흔히 무시되기 쉬운 소수 의견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좋은 질문이다. 태혁이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다수와 소수 여부로 가릴 수 없고 소수 의견이 다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많은 학생들이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예나가 '작가는 아름다움을 주관적으로 창조하는데 이를 사회에 빗댄다면?'이라고 질문하였다(내가 질문을 맞게 이해했는지 다음 시간에 확인 필요). 다소 어려운데 일단 랜덤으로 태혁이가 된 상태에서 수업을 마쳤다. 다음 독서 시간에 학생들이 어떤 답변을 할지 궁금하다. 질문과 답변을 음미하는데 머릿속 간지러운 부분을 긁는 듯 시원하여 힐링되었다. 학생들도 그런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p.s.
불교에서는 행복을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나도 그에 동의한다. 꼭 큰 즐거움이 없어도 된다. 욕심(욕망:하고 싶음/하기 싫음. 안 되어도 괜찮으면 원/ 안 된다고 괴로우면 욕심), 화(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성질 냄), 고집(나만 옳다고 생각함)으로 발생하게 되는 괴로움이 없다면 행복하다. 괴롭다면 왜 괴로운지 알아차림으로써 벗어날 수 있다.
<15반>
- 혜리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시간 개념과 후회에 대해 말했다. '후회'는 과거에 대한 것이다. 시간 개념이 없다면 인간은 현재만을 살 것이다. 후회가 시간 개념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여 인상적이다. '지금'을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
<11반>
- 여원이가 '길(윤동주)'을 가지고 발표하였다. 화자와 자신을 비교해 본 것이 흥미로웠다.
- 창인이가 '변신(카프카)'을 가지고 발표하였다. 그는 가족이 그레고르를 죽인 것은 살인인지 살충인지 물었다. 흥미롭고 주제와 관련성이 깊으므로 좋은 질문이다. 두 입장이 팽팽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많은 학생들이 '살충'이라고 답했다. 가족 입장에서는 벌레로 대했던 대상을 죽인 것이므로 '살충'이겠고, 그레고르 입장에서는 인간의 자아를 가지고 있으므로 '살인'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타인이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다. 나는 타인을 벌레나 사물처럼 대하고 있지 않나(=대상화하고 있지 않나)도 돌아보아야 한다.
- 하연이는 '독을 차고(김영랑)'를 가지고 발표하였다. 김영랑이 주로 부드럽고 감각적인 시를 썼는데 이 시는 어조가 완전히 달라 선택하였다고 시 선택 동기를 밝혀 흥미로웠다. 창인이의 '변신' 발표 후에 감상하니 '찢기우고 할퀴우는 이리 승냥이'에서 그레고르를 대상화하는 가족이 연상되었다.
그가 선정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는 과정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벗'의 허무주의와 '나'의 저항의지 간 가치관 대립에 대한 의견을 물었던 것과 그 질문에 대한 발표자의 생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허무주의는 쉽게 퍼지고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빠져나오기 어려우므로 벗이 빠져나오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생각을 한 것에 놀랐다. 삶의 태도와 관련하여 여운이 남는 발표였다. 나는 자꾸만 개인 중심이 되고 주변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를 깨닫곤 하므로 하연이 발표를 자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작년에 한 학생 부모님으로부터 축구하느라 반에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문자를 받고 놀랐던 경험이 떠오른다. 나는 '자기 할 일만 잘 하면 된다' 이상의 생각을 잘 하지 못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까지 생각하는 분이 계실 줄은 몰랐다.
독을 차고
김영랑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 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남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낭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12반>
- 오타나 띄어쓰기는 사소해 보이지만 청중의 주의가 분산될 수 있으니 신경써 주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였다. 장훈이가 심미적 체험을 심리적 체험이라고 쓴 것은 오타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 현승이가 소개한 시 '상처(박두순)'를 통해서 '실수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않기'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선우가 시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정현종)'을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고 하였다.
- 채건이는 '중독(강기화)'을 소개했는데 재미있는 시다. 채건이가 각자 중독된 것이 있는지 질문했는데 시험 기간에 도파민에 중독되었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도파민에 중독되었다는 게 뭐지? 도파민 분비가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재미있는 것을 많이 본다는 뜻인가? 궁금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다. 채건이는 이 시를 읽고 분명히 게임 중독인데 아니라고 부인하는 지환이가 생각났다고 한다. ㅋㅋ 가빈이와 지효는 귀여운 윤건이에게 중독되었다고 한다. ㅎㅎ
중독
강기화
틈만 나면 게임한다고
중독이라 하지만
난, 학교 갔다 와서 할 뿐
난, 학원 갔다 와서 할 뿐
난, 밥 먹고 할 뿐
난, 똥 싸고 할 뿐
학교도안가학원도안가밥도안먹어똥도안싸
틈도 없이 하는 게 중독이지
틈도 없이 잔소리하는
엄마가 중독이지
오늘도 학교 다니느라 수고 많았어! 내일은 금요일이네. 내일 또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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