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그때 그시절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이 사진들은 이미 한국전쟁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2',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등을 엮어 낸 바 있는
소설가 박도씨가 미 국립 문서
기록보관청(NARA)이 보관하고 있는 한국 현대사
관련 파일들 중에서 발굴한 것이다.
사진은 1951년 1월 촬영한 인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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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17일 탱크를 가로막은 시신들의 모습.
1950년 10월21일 청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하고 있는
미 해군 함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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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26일 원산으로 돌진하는 상륙정들의 모습.
1950년 9월16일 상륙작전 직후 불타고 있는 인천 시가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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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0월2일 촬영한 남대문 전차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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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0월 2일 인천의 모습.
1951년 7월 30일 미 해군 전투기에서 내려다 본 파괴된 철교의 모습.
1950년 12월19일 철수하는 유엔군을 따라가기 위해
부두로 몰려든 피란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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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5월24일 터널을 폭파하려는 영국군의 인솔하에
터널 밖으로 대피중인 피란민들.
1953년 8월5일 억류중 당한 부당한 처우를 혈서로써
항의하고 있는 귀환 국군 포로의 모습.
1951년 2월 추위에 떨고 있는 중국군 포로들의 모습
1951년 9월20일 수풀에서 기어나와 투항하고
있는 인민군 병사의 모습
1950년 8월22일 면도중인 미군 병사와
거울을 들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
1952년 부산 국군병원에서 퇴원하는 상이군인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
1951년 2월16일 미군들이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어린이들에게 DDT 살충제를 살포하는 모습
포항의 고아원에서 어린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주고 있는 미군 병사의 모습.
1951년 2월8일 부산에서 동생을 업은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
1951년 2월8일 부산에서 촬영한 한 가족의 모습.
1950년 8월18일 벌거벗겨진 인민군 포로가 유엔군
작전에 협조하고 있는 모습.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시 투항하고 있는
인민군 병사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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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후인 1954년2월26일 미군 장병들을 위문하는 인기 여배우 마릴린 먼로
김포 비행장을 시찰중인 맥아더 장군.
움막에 살고있는 다섯 어린이.
투항하고 있는 인민군 병사들.
중국군의 참전으로 후퇴중인 유엔군 병사들이 강추위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1950.12.6
북한에 억류된 유엔군 포로들.1952.1.7
임진강 부교를 정비하고 있는 국군병사.1951.8.3
원산으로 돌진하는 상륙정들.원산 상륙작전 1950년
10월 26일, 유엔 연합군의 상륙정들이 원산으로 돌진하고 있다.
인천 상륙작전에 이은 원산항의 확보로 연합군과
국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섰다
한국 해병대원들이 야전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밥과 국뿐이며 반찬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예전 우리농촌의 일상들을... 가물가물 하시지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예전에 이렇게 자랐단다.
하고 말씀해 주실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 흔히 보던 풍경입니다.
마을사람이 모두 모여서 모내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 Adam씨가 1950년대에 촬영한 칼러사진 ♣
아래의 사진들은 6.25전쟁 직후인 1954년 교회 봉사활동을 위해 한국에 머물렀던
‘아담’이란 미국인이 촬영한 칼라 사진들로서,
재미 유학생(정찬권)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공개된 소중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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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입수 정찬권(미국 유학생)...
http://blog.naver.com/texasatm...2007.02.06
1주일 전에 아내가 영어를 배우러 다니는 미국 교회의
Adam이란 할아버지 선생님의 저녁 초대가 있었습니다.
한국인들만 초대하는 저녁식사였습니다.
전에 한국에 가본 적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방문을 했었습니다.
처음엔 Adam의 나이 79세, 우리나라로 따지면 80이었다는 것에 잠시 놀랬습니다.
80세의 나이에도 volunteer로 교회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6.25남침전쟁이 끝나고 복구가 한참이었던 1954년부터 1955년까지
대구에서 2년간 교회의 봉사활동을 자원해서 한국에 왔었다고 하면서,
그 당시 찍었던 귀한 한국의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대구를 들어가면서 찍은 대구의 표지판입니다. 그 당시에도 사과가 유명했군요.
백두산 가는 길을 사랑하자라는 말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Adam 아담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인 한국 노인분들의 담배 피는 사진입니다.
시장의 한켠...
구호물품인 옷가지를 받아 가시는 아주머니와 등에 업힌 귀엽게 생긴 아이의 모습입니다.
추수를 하는 들판의 모습입니다...
추수를 도와주고 있는 Adam 아담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피난민촌의 모습.
붙어 있는 판잣집들,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
줄을 서서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공공 화덕에서 분유를 더운 물에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피난민촌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고 있는 아이들.
어린 여자 아이가 무거워 보이는 한 푸대의 Charcoal(숯?)을 이고 가는 모습
현재의 Adam 아담과 아내 Alice 앨리스의 모습입니다...
왼쪽이 Adam이고 오른쪽은 친구인 burkholder라고 써 있네요...
미국 원조물품이 도착하자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현수막을 들고 환영하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전쟁고아들을 위한 행사라고 하는데...
Outdoor Meeting 야회 집회라고 써있는 사진입니다...
대구 복현동 부근 고아원 어린이들이 달성예배당 앞에서 선물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뒤편 멀리 보이는 붉은 건물은 경북대 과학관이며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사람이 Adam씨이다.
Adam의 목에 걸린 사진기가 이 대부분의 사진들을 찍은 사진기입니다.
좀 사는 집 자제분들 같군요.. 비로도(?) 치마와 양장(?)을 한 자매들입니다..
피난민촌의 우유를 마시는 또다른 사진이군요....
사진의 제목이 'boy wearing only rubber shoes' 입니다...
그 당시 보기 드물었을 거 같은 직업여성이군요...교통정리 아가씨....멋지네요...^^;
Adam의 사진중 유일한 흑백사진인 김치독들의 사진입니다...
돼지 팔러 장터로 가는 한 아저씨의 사진입니다...
사진속의 아가씨는 Louis Khans 루이스 칸스 라고 하네요....
대구에 있는 한 유치원 이라고 합니다...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띄는군요....
마을에 있는 공동 화로에서 분유를 데우고 있는 사진입니다...
놀이터 사진입니다......
소시장에서 소의 상태를 보시는 아저씨의 미소가 ...... 좋아보입니다...
소시장에서 만난 큰 모자(삿갓)를 쓴 아저씨가 Adam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소시장 사진의 담배대를 파는 상인입니다...
유치원 사진이라고 써 있네요....
분유를 데우고 있는 모습...
피난민촌에서 분유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들...
피난민촌의 전체 풍경...
분유 배급중입니다....
이 사진에는 부산이라고 써 있네요.... 어딘지는...
정확히 상표는 모르겠지만 빈 맥주켄을 사용하여 만든 지붕입니다...
전쟁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사진입니다.
군용트럭을 이용해 구호품을 많이 날랐다고 합니다.
장터로 가는 길일까요? 흰 옷의 행열
갓에 도포를 두른 할아버지와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어머니...
구호물품 중 옷을 받기 위해 모여 있는 모습입니다.
평온해 보이는 농가의 풍경....
모내기를 하는 건지 모종을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매일신문사에서 온 감사편지를 프린트해서 보여드렸습니다.
이 공돌이가 리포터 흉내를 내며 인터뷰 하는 사진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서재에서 보여드리고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이날 인터뷰를 같이 한 동네 한인들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관련기사 - 대구매일신문 (2007년 2월)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5일 서울 시립대박물관에서 열렸다.
서울시립대 박물관은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입수해 공개했다.
이 사진들은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군(속) 또는 사진기자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280여장의 컬러 사진들은 한국전 후 일상을 되찾아가는 서울풍경이 담겨 있다.
군용천막으로 지어진 천막촌 옆에 펼쳐진 남대문 시장풍경,
창문 유리창은 없지만 건물외양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는 중앙우체국 건물, 등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사진은 서울시립대 박물관에서 ‘1950’s 서울의 기억’ 이란 제목의 전시회를 통해 9월 30일까지 일반에 공개된다. (02)6490-6587. 영상팀 [서울시립대 박물관]
♠1959년~1960년대의 서울 ♠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4.4 거리에서 파는 냉차 행상. 한 어린이가 시원한 음료수 한병으로 목을 축이는 중학생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1959년 1월16일 을지로2가에서 차량이 충돌해 길가 한가운데 나뒹굴고 있다.
1959년 1월6일 새해를 맞아 첫 출근하기 위해 열차편으로 상경한 근로자들이 서울역사를 나서고 있다.
1959년 3.1절을 맞아 공무원과 시민 학생들이 탑골 공원에 모여 기념식을 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학생들이 종로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3.1절을 맞아 기념식을 갖고 참가자들이 학생 밴드부를 선두로 종로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서울역앞.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자 행인들이 입을 막은채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고 있다. 1959년 3월1일 여자어린이들이 덕수궁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3.1운동 발상지. 서울 세브란스병원 부근. 남대문로 5가 15-75번지 1959년 3월1일 종로의 탑골공원과 낙원동 일대 1959년 3월 20일 명동성당이 보이는 명동 일대 1959년 3월 20일 명동성당이 보이는 명동일대 전경 1959년 4월8일 서울 종로2가 보신각![]()
1959년 4월8일 서울 종로2가의 화신백화점 과 신신백화점(왼쪽.지금의 제일은행 본점 건물자리)
1959년 4월8일 원구단 방향에서 바라본 조선호텔의 옛모습. 1970년에 헐리고 이 자리에 현대식 고층건물(롯데호텔)이 들어섰다
1959년 3월1일 허니문 카를 본따서 만든 이동 어린이 놀이기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1959년 3월2일 50년대 말 명동거리의 패션. 양장차림의 서양여인과 한복차림에 쪽진 머리의 한국여성이 대조적이다
1959년 4월 4일 냉차, 아이스크림 등 거리의 노점상들이어린이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군것질을 팔고있다.
1959년 4월 6일 유치원생들과 학부모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
1959년 4월14일 비가 내리는 광화문의 한 가게 앞에 비닐우산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959년 4월14일 우량아선발대회에서 한 심사위원이 참가한 어린이들의 앉은키와 몸무게 등을 재고 있다.
1959년 4월18일 덕수궁에 놀러나온 여자 어린이들
1959년 4월15일 급수 리어커가 오면 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15일 수돗물 사정이 좋지않던 시절 급수 리어커가 오면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년 4월 소공동 환구단(원구단) 주변 모습. 환구단 뒤로 반도호텔이 보인다. 환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을 가리킨다.
1959년 4월의 돈암동. 낮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1959년 4월 을지로 입구. 도로에는 버스와 전차가 다니고 있다.
1908년 8월 일제가 설립한 경성동양척식주식회사. 위 사진 오른편에 이 건물 모습이 보인다.
경성동양척식 주식회사 지금은 외환은행 명동본점 건물이 들어서있다.
1959년 4월 종로거리
1959년 8월 미아리 동네 모습. 대체로 낮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다.
1959년 광화문 사거리 주변 모습. 사진 왼쪽에는 서울 시민회관이 건축중이고, 뒤쪽 가운데에 중앙청(구 조선총독부)의 모습이 보인다.
1959년 남대문로 주변 모습. 서양식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1959년 명동거리 모습. 명동거리는 50년대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1959년 서울 중심가 건물 앞에 주차된 다양한 모습의 차량들
1959년 기존의 목조건물을 헐고 준공되어지고 있는 창성동 별관 정부청사 신축지 현장
1959년 명동거리
1959년 서울 을지로 입구. 오른편 맨 윗쪽 끝 건물이 서울시청
1959년 종로 거리. 건물들 사이에 보신각이 보인다.
1959년 종로 거리. 오른편 건물이 화신백화점.
1959년 종로 대로변 모습. 전차가 지나고 있다.
1962년 10월 공사중인 김포국제공항. 1958년 1월 국제공항으로 지정되어 1959년 종합청사를 신축하고 그후 각종 시설의 확충과 기능을 확대하였다.
1962년 3월 서울 명동에 신축중인 유네스코회관 빌딩
1962년 3월 서울 중구 명동에 유네스코회관 빌딩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유네스코회관은 1959년에 착공해 1967년, 8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1959년 4월30일 봄바람을 즐기러 강변으로 외출 나온 주부들.
1959년 5월8일 부랑인 일가족이 종로거리에 누워 구걸을 하고 있다.
1959년 5월12일 제13회 어린이건강심사대회에서 입선한 우량아의 부모들이시상식에 참석해 수상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959년 5월23일 미스코리아와 미스해병 등으로 선발된 미녀들이오픈카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1959년 5월28일 관광업계는 관광객유치를 위해 관광용고급버스를 구입하고 관광버스 시운전 행사를 했다.
1959년 5월29일 자전거 위에 올라가 제1회 국제마라톤 경기대회 골인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과 학생들의 모습.
1959년 5월6일 바느질과 다림질 등 재봉일을 하고있는 50년대 말의 주부들 방안에는 화로도 있다.
1959년 7월 27일 지방선거로 야당의원들이 데모. 서장과 맞붙잡은 김두한 의원
1959년 7월 27일 지방선거로 야당의원들이 데모.
1959년 8월4일 서울 미아리 일대의 50년대 말 모습.
1959년 8월 21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국민학교 학생들
1959년 8월 21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국민학교 학생들.
1959년 8월 26일 야외가설 무대에서 공연중인 시민위안의 밤 무대
1959년 8월 미아리 동네 모습. 대체로 낮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다.
1959년 8월31일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명륜동 주택가 상점 앞을 지나는 주민의 모습
1959년 8월31일 장마로 물이 불어난 청계천벽 천일극장 뒷편에 밀집한 판자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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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8월4일 여성 피의자가 재판을 받기위해 포승줄에 묶인채 호송관에 끌려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1959년 9월16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서 줄을 이루고 있는 귀성객들.
1959년 9월16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서울역의 귀성객들이 광장에 줄을 이루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모델을 둘러싸고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1959년 9월1일 좋은 앵글의 작품사진을 만들기 위해
1959년 도로 공사 모습
정간 당했던 경향신문이 1959년 6월 26일 다시 속간케 되었음을 알리는 대자보가 경향신문 사옥 앞의 게시판에 나붙었다.
정간당했던 경향신문이 1959년 6월 27일 조간부터 속간케되었다.직원들이 그동안 내려졌던 사기를 사옥 옥상에 다시 게양하고 있다.
1962년 1월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
1962년 1월 시민들이 출근을 하기위해 줄을서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1962년 1월 광화문 아카데미극장 매표소 앞에 영화를 보기위해 나온 시민들의 줄이 이어져 있다.
1962년 1월 눈오는 세종로 거리에 펼쳐진 좌판에서 상인들은 물건을 팔고 있지만 시민들은 무관심한채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1962년 창경원(현 창경궁) 수정궁 앞 연못이 얼어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타며 겨울을 즐기고 있다.
1962년 기찻길 옆으로 판자집이 즐비한 가운데, 아이들이 철로에서 놀고 있다.
1962년 청계천 주변 판자촌
1962년 추운 겨울 세종로에 상주하는 한 노숙자가 근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1962년 기찻길 옆으로 판자집이 즐비한 가운데, 아이들이 철로에서 놀고 있다.
1962년 서울 시내버스 여성 버스차장 모습. 대중 교통수단인 모든 버스에는 여성 버스차장이 근무해 운임 수납 업무와 손님의 승하차를 통제하는 등 안전운전을 위한 보조역을 했다.
1962년 서울 청계천 주변 길가에서 넝마를 줍고 있는 사람들
1968년 6월 도로확장 공사가 되기 전의 효자동
1968년 7월15일 중학입시 무시험 발표
1968년 10월12일 종로3가 창녀촌
1968년 10월1일 서울 모습
1968년 10월1일 서울시청 주변 모습.
1968년 10월5일 초만원을 이룬 추석 귀성열차
1968년 8월24일 악명높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행방불명)
1968년 10월 17일 정강자씨 등 젊은 미술가들이 한강변에서 전위예술을 공연하고 있다.
2003.8.26 한국 최초 행위예술가 정강자. 가수 남일해 누이동생이다.
1968년 11월 29일 운행 70년만에 폐차 처분되어 차고에 몰려있는 서울의 전차
1968년 11월 3일 새벽 3시30분 대구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큰 불.아래 왼쪽이 계성고등학교
서문시장 제3지구 1층에서 연탄 과열로 큰 불. 멀리 동산병원 본관 건물이 보인다.
1968년 봉천동 꼭대기 까지 차곡차곡 들어차 있는 가옥들
1968년 봉천동 주민들이 마술단 공연을 보기위해 공연장 앞에 줄을 서 있다.
1963년 9월 7일, 자하문으로 가는 청운동 언덕길을 달리던 서울 시내버스가 때마침 휘발유를 가득 싣고 고갯길을 내려오던 트럭에 들이받혀 인근 가옥과 충돌하는 바람에 길에서 놀던 어린이 5명중 2명이 즉사하고 승객 39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사고 피해자는 대부분 하교하던 학생들이었다. 사진은 사고현장의 모습
사고현장에 학생들의 가방이 길에 나뒹굴고 있다.
사고현장의 부서진 버스의 내부 모습
사고현장의 부서진 트럭과 버스의 잔해
효자동 야간 도로공사. 대낮의 교통불편을 막기위해심야에 도로포장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인부들
60.4.19 서울 효자동 전차종점에서 경무대로 꺾어 올라가던 데모대가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100여명이 흩어졌다.
1960년 4월 29일 학생데모대가 경무대로 가는 것을 경찰이 최초로 발포한 곳이다. 해무정 앞 지금의 종합청사와 국립박물관 사이 효자동으로 가는 길
서울 효자동 전차종점에서 경무대로 꺽어 올라가던 데모대가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100여명이 쓰러졌다
1968년 6월 도로 확장공사가 되기 전의 효자동
95,10,22 금융실명제 실시후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세일에 나선 괴자금과 5-6공 비자금의 연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자금 보관소로 애용되었던 상업은행 효자동지점
아래의 사진 게시물은 1950년대 말 ~ 1960년대 중반까지 주한미군의
군속으로 근무하였던 Leroy Smothers씨가 한국에 근무하면서
남한의 여러 곳에서 찍은 8mm 비디오카메라 또는 35mm 스틸사진을
그의 아들 Bill Smothers씨가 스캐닝하여 그의 웹사이트에 올린 것을 발췌하였다.
50~60년대의 서울의 어느 시장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칼러사진으로 찍은
모습은 따뜻하고 정다운 느낌을 준다.
1960년대서울풍경
*1967년의 한국영화*
아래 영화 포스터들은 정확히 1967년 국내에서 상영된 한국영화의 포스터들이다. 흐르는 곡은 가수 남진의 데뷔곡이자 당대 최대의 히트곡 가슴 아프게인데 남진 의 곡을 구할 수 없어, 그의 라이벌이었던 나훈아의 노래로 실었다
가 심박님의 도움으로 다시 남진의 노래로 바꾸었습니다. 심박님, 땡큐 ~ !!!
솔의향기는 그 해 고딩생활을 접었다지...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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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내외가 영식 지만군과 함께 서울시청 앞 고급 쇼핑명소로 각광을 받기도. 지금 상상이 어려운 장면이다.
‘국민가수’ 패티김과 지금은 고인이 된 길옥윤 커플. 열사의 나라 베트남에 참전한 공병부대인 풍부한 성량과 카리스마 넘치는
67년 겨울, 일선 장병 위문차 전방 마을에 도착한 영화인들. 당대의 톱스타들이 총 출동한 듯 하다.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동시대에 활약했었다.
한강로와 이태원, 용산구청앞 길을 경부선 철길 넘어 고가차로로 잇는 삼각지 입체교차로가 준공되어 (손으로 가리키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둘러보고 있다. (67년 12월 27일)
마지막 중학교 입학시험. 문교부가 69학년도 중학 신입생부터 무시험입학제를 실시 (서울 외 지역은 70년도부터)키로 결정하여 애 쓰는 모습이 안쓰럽다.(67년 12월 1일)
입시 2일째인 체능고사 시험장. 엄숙한 표정의 감독관과 가슴에 수험표를 단 수험생들이 1, 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여 (요즘은 종목조차 없어진 연식 야구공 사용) 등
[ 출처 - 대한뉴스 http://www.daehan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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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의 똥장군의 모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