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시절 베트남 파병, 남북 적십자회담, 중동 건설에 얽힌 비사(秘史)를 담은 장우주씨(예비역 육군소장)의 회고록이 지난 4월 18일 나왔다. 장우주씨는 육군 보병 제3사단(백골부대)장으로 근무했고, 남북 적십자회담 사무국 초대 총장, 현대건설 사장 등으로 일했다. 책 이름은 ‘국격의 그림들’(글마당).
서울대 규장각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을 선정, 인터뷰를 통한 기록 작업을 해왔다. 장 장군은 군(軍) 분야에서 선정된 10명 가운데 가장 긴 9시간30분 녹음 분량이 나왔고, 회고록은 이를 기초로 정리됐다. 720쪽에 달하는 회고록 속에는 베트남 파병, 남북회담, 중동 건설에 관한 비화가 미공개 사진 270점과 수록돼 있다. 등장인물은 고 박정희 대통령,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고 김대중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당시 건설부 장관) 등 현대사 주요 인물을 망라한다. 장우주 장군은 회고록 출간을 목전에 둔 지난 2월 4일 작고했고, 회고록은 아들 장순흥 한동대 총장에 의해 출간됐다. 장순흥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 교육과학분과위원으로 참여해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을 주도한 인물이다. 지난 4월 15일 경북 포항 한동대 총장실에서 만난 장 총장은 “아버지는 10년 전부터 회고록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장 총장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통(通)’인 장우주 장군을 신임했다. 1950년대 미국 보병학교와 육군지휘참모대학을 졸업한 그의 영어실력을 높이 샀다. 1965년 미국을 방문해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과 베트남 파병을 논의할 때도 장우주를 데리고 갔다. 장우주 장군은 전역한 후 미국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공부했다. 하버드대에 머물던 장우주는 결정적 정보를 접한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베트남에서 철군하는 한편, 중국과 수교하려고 한다는 것. 장순흥 총장은 “아버지가 미국에 머물 때 헨리 키신저(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역임)와 교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장우주는 미국의 움직임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미국의 베트남 포기에 이은 당시 중국과의 접촉 움직임은 박정희를 놀라게 했다. 미국이, 남북이 분단됐다는 면에서 베트남과 비슷한 상황인 한국을 버릴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장우주는 회고록에서 “미·중 간 데탕트(화해협력)가 시작됐다. 우리도 북한과 남북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박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장우주를 남북 적십자회담 사무국 초대 총장으로 기용해 남북회담의 기획과 준비를 총괄하게 했다. 장우주가 중동 건설에 뛰어든 것은 1975년. 당시 제1차 오일쇼크(1973년)로 인해 중동에 오일달러가 넘쳐날 때다. 박정희 대통령의 명을 받은 김재규 당시 건설부 장관으로부터 “중동에 오일달러가 넘쳐난다. 중동 오일달러를 벌어오라”는 말을 전해 듣는다. 제안을 받았을 때 장우주는 “공병이 아닌 보병 출신”이라며 고사했다. 이에 김재규는 “중동건설 같은 큰 프로젝트는 미국과의 관계 없이는 안 된다. 미국과의 관계는 당신이 잘 아니까 맡아라”는 박 대통령의 명을 전했다. 장우주는 국내 25개 건설사로 꾸려진 ‘한국해외건설주식회사’란 반관반민 성격의 컨소시엄을 꾸려 중동 건설에 진출한다. 베트남 파병 공적을 인정해 미국이 한국의 중동 시장 참여를 용인했다. 장우주는 1977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부사장(국내 담당)의 초청으로 현대건설 해외 담당 사장으로 영입됐다. 장순흥총장은 “정주영 회장과 아버지가 처음 만난 것은 남북 적십자회담 준비 때”라고 했다. 북한 대표단을 맞이할 서울~문산(파주시) 통일로(路) 공사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을 데리고 와 장우주에게 소개해 준 것. 장우주는 현대건설 사장 부임과 함께 ‘20세기의 최대 토목공사’란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港) 건설 공사를 따냈다. 당시만 해도 현대건설을 비롯해 국내 건설사 중에는 그 정도 항만공사 경험이 없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 업체의 시공 능력을 미심쩍어했다. 이에 장우주는 “주베일항은 단순히 산업항만이 아닌 군사 항만이다”라는 점을 미국 측에 강조했다. “주베일 항만공사를 베트남전 때 함께 피를 흘리며 싸웠던 한국에서 가져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결국 현대건설은 주베일항 공사를 수주했다. 이후 장우주는 정주영 회장의 신임을 얻어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종합상사 등 6개 계열사 대표를 두루 역임했다. 당시 중동에는 김재규 당시 건설부 장관의 심복인 박선호가 파견관으로 와 있었다. 박선호는 현지 건설사들과 종종 마찰을 일으켜 본국으로 소환됐다. 김재규와 김천중학교 사제지간으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을 지낸 박선호는 1979년 김재규와 함께 박 대통령 암살에 가담한다. 10·26사건을 중동에서 지켜본 장우주는 “박선호가 중동에서 조용히 있었다면 한국에 돌아가 10·26에 연루돼 사형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우주의 중동건설 경험은 아들인 장순흥 총장에게도 전해진다. 장순흥 총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원전을 수주하는 데 기여했다. 서울대와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핵 공학을 공부한 원자력안전 전문가다. 2009년 카이스트 부총장으로 있던 그는 당시 두바이 투자개발청 수석고문으로 일하던 동생 장순영(현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회장)으로부터 “UAE 원자로 수주가 올해 안에 결정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장 총장은 윤진식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가능성이 높다.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한국형 원전은 경쟁자였던 프랑스에 비해 가격조건이 월등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한국형 원전의 안전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당시 장 총장은 한국형 신형 원자로(APR1400)의 설계인증위원장이었다. 그는 UAE를 수차례 오가며 한국형 원전의 안전성을 설득했다. 국제정치적 역학관계가 재차 발목을 잡았다. 한국은 당시만 해도 UAE와는 대규모 거래 관계가 없었다. UAE는 우리 측 외교장관에게 “한국과 거래를 하고 싶다. 하지만 프랑스와 기존의 우호관계 때문에 어렵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신호가 UAE 왕실로부터 들어왔다. UAE의 한 왕자가 이용걸 당시 기획재정부 제2차관(현 방위사업청장) 일행을 아부다비 외곽의 이탈리아가 지어준 F1 경기장으로 초대했다. UAE 왕자는 “F1 경기장을 누가 지어줬는지 아느냐”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UAE 왕자의 말은 “한국 측이 더 많은 떡고물을 제시하면 원전 공사를 줄 수 있다”는 우회적 의사표시였다. 이 얘기를 들은 장 총장은 윤진식 정책실장에게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다시 전했다. 한동대의 한 관계자는 “장우주 장군이 작고했을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아산병원 빈소에 조문왔다. 이 전 대통령은 장순흥 총장과 1시간가량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장순흥 총장은 공교롭게도 지난 2월 4일 부친이 사망한 당일, 한동대 총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