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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명작의 탄생』 (이광표 지음, 현암사, 344쪽, 2024.04)
〈모나리자〉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인기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다. 〈모나리자〉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그럼 이 같은 인기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그대로 있었다면 지금 같은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그린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19세기 초까지 별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기에 20세기 들어 그의 이 작품이 최고의 그림으로 주목받게 된 것일까. 고려청자를 보자. 1000년 전 고려청자는 밥그릇, 국그릇, 술병과 같은 일상용품 그릇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전통미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작으로 대접받는다. 대체,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것일까.
〈모나리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가셰박사의 초상〉, 〈미인도〉, 〈세한도〉, 백자 달항아리,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사람들이 명작으로 받아들이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지위를 얻게 되었을까.
10여 년 전부터 이런저런 계기로 ‘명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의 산물이 신간 《명작의 탄생》이다. 이 책에서는 모두 25건의 사례를 통해 명작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보았다. 명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명작으로 대접받는 작품의 숨겨진 매력은 무엇인지, 작품을 둘러싼 이슈와 쟁점은 무엇이고 그것이 작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언제 어떻게 어떤 소장자의 손을 거쳤고 언제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정치적 의도와 편견에 의해 수모를 겪지는 않았는지, 예상치 못했던 논쟁과 사건 사고를 어떻게 겪었고 그것은 작품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등. 누군가는 이런 내용을 단순한 가십이나 스캔들로 치부해버릴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그 가십과 스캔들이 쌓여 어느 순간 그 작품의 중요한 미학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명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느 특정 예술작품이 명작 아닌 것에서 명작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다. 명작은 수많은 예술 작품 중에서 선택받은 극소수 작품이다. 창작의 순간부터 예술이 되는 경우는 많다. 공인된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면 그 순간 그것은 예술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바로 명작으로 대접받을 수는 없다. 명작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박사의 초상〉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명작은 다르다. 어느 작품은 창작자의 작업의 결과로 예술이 되지만, 명작은 창작자의 손을 떠나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소비와 향유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명작은 예술보다 훨씬 더 시대상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이고, 우연으로 흘러가기도 하며 심지어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하기도 한다. 이 과정은 절대 평탄하지 않다. 수많은 갈등을 겪고 투쟁하고 논란을 겪는다. 시대와의 불화를 겪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더더욱 확고한 명작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이렇게, 예술은 우연히 탄생할 수 있지만 명작은 우연히 탄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명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그런 흥미롭고 드라마틱한 ‘명작 스토리’를 이 책에 담고자 했다.
마르셸 뒤샹이 1917년 미국 뉴욕의 한 전시회에 〈샘(Fountain)〉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그런데 그것은 흔히 보아은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라 변기였다. 철물점에서 남성용 소변기를 구입해 눕혀 놓고 거기 가짜 사인을 넣어 출품했다. 전시 주최측은 이 작품의 전시를 거부했다.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변기일 뿐 예술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년이 흐른 지금, 뒤샹의 변기는 기념비적인 명작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뒤샹의 변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아름답지 않은데 사람들은 왜 명작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변기 프로젝트는 뒤샹의 창의성과 실험정신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뒤샹의 손을 떠나 오랜 세월 수용과 소비의 과정을 거쳤기에 명작이 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관점과 만나고 충돌했고 그러한 스토리와 의미가 축적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수용 과정과 스토리를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고, 그렇기에 명작으로 대접받는 것이다.
명작이란 이런 것이다. 〈세한도〉는 김정희와 이상적의 손을 떠나 국경을 넘나들며 컬렉터 10명의 손을 거쳤기에 지금의 명작이 될 수 있었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손을 떠나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기에 최고의 인기작이 될 수 있었다. 〈가셰 박사의 초상〉은 나치의 탄압을 이겨내고 몰래 미국 땅으로 건너갔기에 세상 사람들을 다니 만나 명작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되었다. 특정 예술작품의 일생에서 볼 때, 명작 아닌 것에서 명작으로 자리 잡는 과정은 그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영한다.
특정 예술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이후에 명작으로 나아간다. 명작은 해당 예술작품의 수용과 소비의 과정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따라서 명작을 이해하려면 작품이 창작된 이후의 과정 즉 수용의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수용자·소비자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양한 명작 스토리를 통해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이 바로 예술 감상에서의 수용자 관점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그동안의 예술 탐구는 공급자의 관점이 강했다. 작품을 창조한 작가와 그의 시대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작가와 작품 내적인 측면에 집중하게 된다. 즉 작가가 언제 어떤 생각으로 어떤 시대적·사회적 배경 속에서 그 작품을 창작했는가에 관한 것들이다. 그러나 대중들이 예술을 감상하고 향유할 때, 작가의 작품 자체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외적인 측면, 작품 탄생 이후의 과정과 스토리에도 많이 주목한다. 뒤샹의 변기가 그렇고 〈세한도〉가 그렇다.
명작은 예술 작품을 수용하고 향유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작가와 작품의 재평가로 인해, 관련 소설이나 영화 등의 인기에 힘입어, 소장에 얽힌 다양한 스토리에 힘입어, 기증으로 인한 화제와 감동 덕분에 인기를 얻고 그 작품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와 인기작과 명작이라는 지위에 오르게 된다. 또한, 이런저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에 연루되면서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명작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예술을 무어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명작도 마찬가지다. 정의 내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술의 개념이나 정의에 지나치게 집착하다보면 이론에 빠지게 되고 예술이 어려워진다. 이 책에서는 개념이나 정의에 갇히지 않고 예술이 소비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즉 사람들이 예술을 어떻게 소비하고 향유하는지, 그 흐름과 양상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인간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지, 명작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예술을 좀 더 편하고 흥미로운 존재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이광표 서원대·문화유산학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 학과 석사 과정,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각자의 생애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 작품들이 명작이 되기까지 겪는 변화와 사건들에 관심이 많다. 《동아일보》에서 문화유산 담당 기자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 『명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근대 유산, 그 기억과 향유』, 『재밌어서 밤새 읽는 국보 이야기』, 『손 안의 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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