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75] 공간의 주인공 인간을 재발견한 건축가 반 시게루
매일경제 2021.02.26
[효효 아키텍트-75] 반 시게루(Ban Shigeru. 1957~ ) 건축은 가벼운 질감과 비전통적인 구획, 끊임없는 실험성이 특징이다. 반 시게루에게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야간 학교는 인생이 결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뉴욕의 쿠퍼 유니언 건축대학장인 종이 건축가(paper architect) 존 헤이덕(John Hejduk, 1929~2000)을 알게 되었다.
반 시게루는 미국 남캘리포니아 건축연구소(SCI-Arc)를 거쳐 쿠퍼 유니온을 졸업했다. 그 사이 이미 글로벌 건축가 반열에 오른 이소자키 아라타(1931~ ) 도쿄 사무소에서 1년의 실무 과정을 거쳤다. 반은 1985년 도쿄에 건축사무소를 설립하였고, 1986년 큐레이터로서 알바르 알토(Alvar Aalto) 전시에 예산 문제로 나무 대신 종이를 사용하면서 미학적 의미를 갖춘 건축재로서의 종이의 잠재력을 알았다.
▲ 반 시게루 작 '커튼월 하우스'(1995년, 일본)/ 사진=히라이 히로유키
일본 나고야 디자인 엑스포의 종이 정자(1989)는 처음으로 종이 튜브(紙管·paper tube) 48개를 구조적으로 이용해 적용했다. 튜브는 직경 325㎜, 두께 15㎜, 높이 4m이며 파라핀 물-가공으로 방수 가공해 둥근 기초 위에 세워졌다. 구조가 제거되고 난 후에 페이퍼 튜브를 분석한 결과 6개월간 바람과 비를 맞았으나 아교의 경화와 자외선에 적당히 노출된 것이 오히려 튜브의 내압 강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1993년 종이 튜브는 건물기준 강령 38조에 따른 일본 건설부의 영구적 건축구조물을 위한 건축재료의 적절성을 판정하는 건축재 인증을 받는다.
반 시게루는 재난 건축의 대명사로 통한다.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때 난민을 위한 종이 튜브 임시 주택을 만들었고, 1995년 일본 고베 강진 발생 당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임시 주거를 지었다. 고베 종이 주택은 상부의 힘을 받는 기초는 맥주 상자로 이루어져 있고 벽은 직경 106㎜의 튜브 위에 지붕에 사용되는 4㎜의 튜브가 설치됐다. 집 사이 1.8m의 공간은 공동구역, 절연을 위해 종이튜브 벽 사이에 방수 스펀지 테이프가 끼워졌다. 52㎡ 1가구를 짓기 위한 재료 비용은 2000달러 이하다.
이후 터키 이즈미트 지진, 인도 비즈 지진 때도 손을 놓지 않았다. 반 시게루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 UN난민기구(UNHCR)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종이를 단단하게 압착해 만든 '종이 튜브' 또는 '종이관'으로 만든 임시 주택은 내구성·경제성 모두 뛰어나다.
재질이 안정적이고 견고하다. 콘크리트나 목재보다 가벼운 대신 구조재로서의 충분한 강도를 갖춰 수송 및 가공이 용이하다. 전문가에 크게 의존할 필요도 없다. 값이 저렴하고 누구든지 쉽게 조립할 수 있다. 단열 성능이 뛰어나 여름과 겨울 날씨를 버텨낼 수 있다. 가공이 간편하여 건축 외관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
반시게루는 1999년 독일 하노버 엑스포 일본 전시관을 설계하면서 파리의 앤틱숍에서 발견한 중국 전통 모자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독일 건축가 프라이 오토(Frei Otto, 1925~2015)와 함께 그리드 셸(gridshell)의 종이 튜브 디자인을 구상했다. 처음 모자를 봤을 때, 이차원적으로 쉽게 휘어지는 목재(집성재)를 사용한 격자형태 구조를 만들어 지붕을 건물 위에 직접 얹는 형태를 생각했다. 목재는 인장재이자 압축재로도 활용될 수 있기에, 프라이 오토의 커튼형 메시 구조뿐 아니라 압축형 외관을 구현할 다양한 목재구조를 개발하고 연구했다.
반 시게루의 '페이퍼 프로젝트'는 사회적 건축 모델이 되었다. 2014년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종이 등 혁신적 재료 사용과 인도주의적 노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스승인 이소자키 아라타보다 5년 먼저 수상했다.
▲ 반 시게루 작 '골판지 대성당'(2013년, 뉴질랜드)/사진=Stephen Goodenough
일본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네이키드 하우스(Naked House, 2000)는 바깥 벽은 흙으로, 안은 목재를 사용하면서도 플라스틱과 아크릴까지 재료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스틸의 실루엣이 바깥으로 스며나온다. 내부에서 보면 지붕과 내벽을 지탱해주는 빗금 형태의 스틸이 꿰맨 흔적 같아서 병원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 반 시게루 작 '네이키드 하우스'(2000년, 일본)/사진=히라이 히로유키
주택 주변의 비닐하우스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불투명한 외벽은 자연광이 실내로 들어오기 위한 장치이며, 외벽이 없는 느낌을 주기 위한 인테리어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이질적인 재료를 혼합하며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동시에 공간 안에 비추는 빛의 퀄리티까지 섬세하게 조율했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미국 뉴욕의 노메딕(NOMADIC) 박물관(2005)은 그레고리 콜버트의 대규모 사진전이 열린 임시 미술관이다. 페이퍼 튜브와 148개의 수송 컨테이너가 사용됐다. 미술관은 세로 20m이고 가로 205m이며 면적은 4500㎡이다. 4층 높이로 쌓아올린 컨테이너는 내력벽으로, 종이 기둥은 지붕을 지지하도록 디자인됐다. 종이 기둥은 이전 것을 사용하되 컨테이너는 다음 전시 장소에서 조달하도록 하였다.
이 미술관은 건축에 대한 패러다임을 확장한 의미가 있다. 148개의 운송용 컨테이너 박스를 205m 길이로 2열로 평평하게 세우고 4층 높이로 쌓은 것으로 상단에 정삼각형 지붕 트러스를 떠받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천막은 그림자를 만들어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분관인 '퐁피두 메츠센터'(2010)는 지리적으로 룩셈부르크, 벨기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인접해 있다. 파리에서 고속철도 테제베로 1시간30분 내 거리이다. 반 시게루의 설계안이 2003년 당선되었다.
▲ 반시게루 작 '퐁피두-메츠센터'(2010년, 프랑스)/사진=Didier Boy de la Tour
나무로 짜인 비정형의 건물 자체가 미술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부드러운 곡선과 날카로운 직선이 만나 우아함과 예리함의 교감을 보여준다. 건축물은 가벼운 캐노피 지붕 때문에 파빌리온이나 대형 천막 같은 느낌을 준다. 외관은 중국 농부가 쓰는 전통 모자 형상을 하고 있다.
모자의 챙을 캐노피에 적용하여 채광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넑직한 원추형의 지붕 아래 전체 구조를 하나로 통합시킨다는 구상이었다. 밀집 모자를 엮듯이 통나무 프레임과 8각 격자를 엮어 너비 90m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왕관 지붕 모양을 만들어냈다. 격자는 패턴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구조로 기능한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종이 교회(Cardboard Cathedral. 2012~2013)는 지진으로 무너진 대성당을 대체했다. 전체적으로는 뽀족한 삼각형 지붕이 높게 올라간 대신 몸체는 매우 낮아 보인다. 정면 지붕 아래는 삼각형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되어 통일성을 갖춘다. 전체적인 외형은 직선과 세모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내 종이 튜브가 만들어내는 원통형 곡선으로 인해 조화가 이루어진다. 제대, 벽, 의자, 심지어 십자가도 원통형 튜브 모양이다. 천정은 튜브 사이로 빗살 무늬가 만들어내는 빛이 쏟아진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 accuchung(정명희) 블로그, yeongbeom89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