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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디고운 강천산의 가을 / 11월
강천산 전북, 고창 전남, 담양
동자암 – 금성산성 남문 – 북문 – 가루방죽 삼거리 – 왕자봉 – 현수교 – 구장군폭포 - 강천사 – 맨발황토길 - 강천산매표소
강천산은 곱다. 금성산성의 초입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곱고 담양의 대숲이 곱다. 산성의 오름길이 곱고 구장군폭포의 갈지자 물줄기가 곱고 진노랑에 진분홍의 애기단풍이 곱다. 곱지 않은 게 있다면 강천산 현수교가 아찔하다.
흔히 강천산을 전북에 속한 산으로 알고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전남과 전북의 경계에 솟아오른 산이다. 정상인 왕자봉이 전북 순창에 위치하지만 강천산 금성산성의 초입은 전남 담양군의 금성면 금성리가 들머리다.
나무마다 연등이 걸려있는 동자암을 지나 한참을 오르면 금성산성의 남문이 열린다. 산성엘 들어서면 다시 내남문이 있고 좌측과 우측으로 기다란 산성이 능선을 따라 서문과 동문 쪽으로 갈라진다. 안부삼거리에서 불쑥 솟아오른 암봉은 북바위봉이다. 가을 논배미에 세워놓은 노적가리와 흡사하다. 이쯤에서 성벽이 끝나는가 싶은데 밧줄을 타고 올라서면 멀리 남문에서 이어지는 산성의 휘어진 성벽이 보이고 북문으로 산성은 연결된다.
꺾인 능선으로 산성은 드문드문 허물어지고 너럭바위에서 멈췄다가는 다시 쌓아올린 자연미가 그만인 산성이다. 내남문에서 동문을 거쳐 북문과 서문을 따라 다시 남문에 이르는 성벽의 거리가 자그마치 7.3킬로미터에 이른다.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에 축조된 산성으로 1997년부터 담양군이 역사적 고증을 거쳐 복원하였다. 문화재 사적353호로 보호되고 있는 값진 문화유산이다.
북문을 지나 평편한 능선을 따라 나서면 호남정맥의 갈림길인 가루방죽삼거리를 만나고 강천산의 정상인 왕자봉에 이른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남녘의 가을 산하가 곱다. 남으로는 광덕산이 펼쳐지고 북으로는 회문산이 지척이며 서쪽 방향으로 추월산이 조망된다. 현수교로 향하는 내리막은 경사진 길이다.
주황색의 강천산의 현수교가 보인다. 지금이야 명산마다 구름다리를 만들고 현수교를 건너지르지만 강천산의 현수교가 완공되던 1980년대만 하더라도 등산로에 현수교를 설치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이 현수교가 완공되던 1981년에 강천산은 국내군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사람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통상적으로 고소공포증을 호소하는 높이는 8미터전후라고 하는데 강천산 현수교는 50미터의 높이로 길이는 78미터에 이른다. 이쪽 바위산과 저쪽의 앞산을 가로지른다. 공중에 붕 떠있는 기분이라 발끝에 힘이 들어가고 머리카락이 위로 뻗힌다.
현수교를 지나 호흡을 가다듬으면 애기단풍으로 채워지는 황톳길이다. 그냥 심심해서 걷는 길이 아니고 황톳길 오른쪽 호수로 떨어지는 구장군폭포를 보면서 걷는 길이다. 옆에서 보면 갈지자로 흘러내리는 폭포가 역동적이다. 하늘이 보이는 꼭대기 봉우리에서 시작되는 폭포가 오른쪽으로 한번 꺾여 흐르고 다시 왼쪽으로 갈라지며 쏟아진다. 붉은 당단풍과 화살나무 잎이 떠내려 오고 애기단풍이 물줄기에 섞여 호수를 채운다. 노을을 가득 담은 가을 호수가 완성된다.
강천산 구장군폭포는 마한시대에 아홉 장군에 얽힌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진다. 삼한시대에 전장에서 패한 아홉 장군이 이곳 구장군 폭포에서 뛰어내려 자결하기로 하였으나 장엄한 폭포의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바꿔 승리를 향한 결의를 가다듬는다. 그리고는 다시 전장에 나가 승리한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으니 이름 그대로 구장군폭포다.
강천사를 지나 일주문을 나서는 십리길이 맨발체험 황토 애기단 풍길이다. 버선발이면 어떻고 맨발이면 또 어떠랴. 저무는 가을이 아쉽거든 남녘으로 가시라. 아직은 단풍이 다 지지 않았으니 지리산으로, 내장산으로, 백양산으로, 두륜산으로, 팔영산으로 그리고 강천산으로 가시라. 주홍으로, 연분홍으로, 곱게 물든 단풍의 끝물을 만끽할 있을 것이다.
산행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산행은 그저 걸으면 된다고 하지만 허투루 여길 일이 아니다. 시작을 하면 정상에 오를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내려올 게 뻔한데 왜 산을 오르느냐고 하지만 뻔한 것을 알면서도 산을 오른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산길을 간다. 누군가가 있는 산에 내 자리가 있다. 산이 없다면 산에 갈 이유가 없다. 산이 있어 산에 간다. 산처럼 살면 산이 된다. 누구나 나중에는 산에서 만난다. 산에 묻힐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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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에도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산이다. 습한 계곡으로 물봉선이 먼저 피고 보랏빛 층꽃나무에 뻐꾹나리, 푸른여로도, 나도송이풀 죄다 볼 수 있다. 구철초는 물론 까실쑥부쟁이가 하늘거린다.
청풍호의 새바위를 아시나요 / 9월
가은산 ^^ 충북 제천
옥순대교휴게소 – 새바위갈림길 – 새바위 –벼락맞은 바위 – 둥지봉 – 가은산 – 곰바위 – 물개바위 – 상 천휴게소
옥순대교 주차장에서 전망대 계단을 오른다. 강 건너를 바라보면 왼쪽으로는 옥순봉과 구담봉이 솟아있고 오른쪽으로는 옥순대교가 남한강 복판을 가로지른다. 제비봉과 정회나루를 오가는 유람선도 옥순대교를 만나 한가롭게 물살을 가른다.
한가위 마지막 연휴에 맛보는 번개산행이다. 야트막한 언덕의 새바위 삼거리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탈진 산등성이를 돌아서는데 가은산은 벌써부터 암벽을 타고 오르라고 밧줄을 걸어놓고 있었다.
남한강 줄기를 내려다보는데 기이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작은 산봉우리에 날아갈 듯 앉아있다. 가은산 새바위다. 새의 형태를 온전히 갖췄기에 사람들은 의심 없이 새바위로 부른다.
남한강에서 미역을 감은 물새 한 마리가 가슴에 뭍은 물기를 털어내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얼른 물새 한 마리 잡으려고 소나무 언덕을 내려뛰는데 흥분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런데 다 내려와서 보니 새는 날아가고 물개 두 마리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미 새가 갓 태어난 새끼 한 마리를 가슴에 품고 있으니 참으로 정겨운 형상의 바위다. 다시 새바위를 보던 언덕으로 갔다. 물새가족이 옥순봉을 향해 호수를 굽어보는 모습이 압권이다.
가은산과 옥순봉을 끼고 있는 남한강은 충주다목적댐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보통의 강이었다. 홍수가 나면 넓은 강이 철철 넘치지만 가뭄이 심하면 물속의 바위와 자갈까지 드러나는 강이었다. 충주다목적댐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매일같이 수석애호가들이 강바닥을 뒤지던 최고의 탐석지였다. 골석은 물론 무늬석에 물형석, 형상석, 색채석 그리고 산수경석의 유명한 수석산지였다. 특히 남한강 일대의 새까만 오석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너도 나도 배낭을 메고 남한강으로 몰려들었다. 수석수집이 취미라고 말하면 사회적으로 교양쯤은 갖춘 사람으로 인정받던 시기였다. 지금도 남한강을 끼고 있는 충청북도 엄정면의 목계라는 동네는 마을 전체가 수석가게의 집성촌이다.
가은산 새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다. 남한강이 수몰되기 이전인 아득한 옛날에 이 강을 지키던 새바위는 어슬어슬한 밤이 되면 어디론가 날아가서는 동틀 무렵이 돼서야 가은산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도 이를 목격한 사람이 없어 의문만 증폭될 뿐이었다. 첫 번째의 전설은 새바위가 청풍호에 있는 옥순이라는 후처를 만나고 아침이 돼서야 가은산으로 온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가은산의 새바위가 밤새도록 청풍호에서 물놀이를 했을 뿐이라는 설이 전해져온다. 그래서일까, 가은산 옆에 옥순봉이 있다.
새바위를 내려오는 암릉도 거칠기로 따지면 최상급이다. 벼락바위와 마당바위를 오르는 암벽 구간은 그 흔한 밧줄도 성한 게 없어 그야말로 위험천만이다. 어깨에 멘 배낭이 점점 무거워 지는데 발은 바들바들 떨리고 어깨는 더 처진다. 오금이 저려온다. 둥지봉까지 오는데 속옷이 비에 젖은 듯 흥건하다.
'바우라'는 친구가 있다. 물론 어렸을 때 부르던 이름이다.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어 불러야만 오래 산다는 가당찮은 속설이 존재하던 시대가 있었다. 유아의 사망률이 높았다. 똥간이, 개똥이, 바우 등등로 대충 부르다가 서너 살이 되면 죽을 팔자는 아닌가보다 하면서 그제서야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한새이, 무새이, 진새이 라는 이름이 진짜 이름인 줄 알았다. 한성, 무성, 진성을 부르기 쉬운 대로 적당히 부르지만 다 알아듣고 대답을 하더라.
가은산 새바위를 이곳 상촌마을 사람들은 '새바우'라고 편할 대로 부른다. 강릉에는 선자령 굽이길과 대관령 옛길 그리고 바다 호숫길을 아우르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열일곱 개 구간의 23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인데 아예 '바우길'로 이름을 지어 친근감을 더했다.
"바우야, 잘 지내냐?“
지금도 친구는 어릴 적에 부르던 질박한 이름인 '바우'를 더 좋아한다.
가은산은 내리막 하산 길도 즐비한 기암의 연속으로 풍광이 흡족하다. 왼쪽으로는 청풍호수가 내려다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금수산 정상이 뒤따른다. 전망대에 서면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하늘거리고 용담도 꽃을 피운다. 잘 생긴 소나무들은 저마다 숫자가 새겨진 목걸이를 하나씩 목에 걸고 있으니 가은산의 재산목록인 셈이다.
새바위가 있는 가은산은 충청북도 제천시와 단양군의 경계에 있는 땅이다. 그런데 이 남한강을 두고 지역주민들이 부르는 지명은 제각각이다. 상류에 있는 단양사람들은 단양호라고 부르고 제천사람들은 청풍호라고 부르는데 충주사람들은 충주호라고 우긴다. 그런데 호수를 담고 있는 면적으로 따진다면 호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땅이 제천 땅이다. 조선시대에 역사지리를 저술한 이중환의 택리지를 펴 봐도 예로부터 청풍명월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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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옥순봉과 구담봉 사이를 순회하는 코스에 이 새바위를 연계한 관광자원개발을 생각해 본다. 벼락맞은바위 근처에 작은 나루터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남한강을 유람하는 관광객들이 나루터에서 내려 30분 거리의 새바위를 보고는 다시 옥순봉과 구담봉을 관광하고 도담삼봉까지 물살을 가르는 것이다. 관광산업이란 동기유발이 중요하다.
금강산 화암사 / 10월
금강산 성인대 ^^ 강원 고성
화암사 입구 – 선인대 – 신선암 – 화암재 – 신선봉
화암사
“장하던 금전벽위 찬재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이은상 시, 홍난파 곡의 우리의 가곡 장안사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광활한 절터만 남아 있으나 금강산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던 내금강의 대찰이었다.
설악산을 내설악과 외설악 그리고 남설악으로 구분하는 것처럼 금강산 역시 비로봉을 경계로 서쪽을 내금강, 동쪽을 외금강이라 하고 동쪽 끝의 해안을 해금강이라 부른다.
2008년 가을쯤이면 고성을 거쳐 비무장지대를 경유하여 3박4일의 일정으로 금강산을 볼 수 있기에 그해의 여름은 기대 부푼 계절이었다. 유점사와 표훈사를 보고 싶었다. 만폭동에 발을 담그고 보덕굴 절벽에 구리기둥 하나로 지탱하고 있는 보덕암도 올려다 볼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미타여래상인 보길상도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다음날에는 구룡연을 찾아 만물상에 홀딱 빠지고 천선대에 올라 집선봉과 세존봉에서 고개를 끄덕인 후, 상팔담을 지나 구룡폭포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해금강을 보리라.
그런데 그 기대는 2008년 7월11일 관광객 피격 시간이 일어나면서 여태까지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강산은 강원도 회양군과 통천군 그리고 고성군에 걸쳐있는 산이다. 흔히들 금강산하면 북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놀랍게도 일 만 이천 봉의 그 첫 봉우리가 고성의 신선봉이요, 팔만구암자(80,009)가운데 그 첫 번째 암자가 고성의 금강산 화암사다. 신선봉도 금강산이고 화암사도 금강산이라는 사실이다.
금강산의 신선봉은 금강산 일만이천 봉(12,000)의 첫 봉우리로 북부능선에 속한다. 백두대간 길의 대청봉에서 마등령을 거쳐 저항령에 이르면 황철봉으로, 미시령으로, 여기 신선봉으로 이르게 된다. 북으로 곧장 가면 금강산이고 백두산으로 이어지는데 더 이상 갈 수 없는 최북단의 산이다.
이른 아침,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은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신선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전형적인 마사토의 육산이지만 금강산 줄기인 탓에 기기묘묘한 암봉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내민다. 뒤를 돌아보면 금강산 초입의 상봉이 보이고 신선봉이 우뚝 솟아있다. 백두대간 길을 거꾸로 올라가면 외금강이요, 더 깊은 내금강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백두산까지 갈 수 있지만, 산새와 바닷새만 넘나들 뿐이다.
오늘 점심은 특식인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다. 속초의 아바이마을에 사는 친구가 특별히 만들었다. 이 친구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단천이 고향으로 실향민이다. 꿈에도 그리는 고향이 그리워 속초에 눌러 산다는 것이다. 아바이마을은 대개가 이북출신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다. 지인은 실향민 2세다. 속초에서 아바이순대국집을 운영하고 있다.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는 모두 이북음식이다. 남으로 내려온 북한 순대가 어떻게 변천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함경남도 단천의 맛일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순대가 당면을 쓰는데 반해 아바이순대는 찹쌀과 선지를 섞어 만든다. 오징어순대 역시 당면은 없고 찹쌀과 멥쌀 그리고 오징어 다리를 잘게 썰어 오징어 뱃속을 채워 만든다. 아바이순대 10인 분에 오징어순대 10인 분이다. 특식으로 포식을 했다.
신선암 너럭바위에 앉으면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보이고 그 사이로 화채봉도 확연하다. 설악동 계조암에서 올려다보던 울산바위가 정적이었다면 신선암에서 건너다보는 울산바위는 사뭇 동적인 모습이다. 같은 암봉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명산은 얼굴을 달리란다. 울산바위는 바위 전체가 사방으로 설악산을 틀어쥐고 있는 형국이다. 속초 바다 쪽으로 몸통을 파묻고 미시령 굽이 길과 금강산 신선봉 방향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떡갈나무 그늘이 시원한 숲속을 빠져 나왔다. 화암사 마당이다. 신선봉을 등진 대웅전이 범종 팔각루 사이로 수바위를 응시하고 있다. 화암사 절집은 대웅전보다도 삼성각이 더 유명하다. 이채로운 그림 때문이다. 금강산의 천선대와 상팔담, 세전봉, 삼선대를 벽화로 그린 것이다.
다른 절집과 달리 대웅전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금강산이지만 여기는 초입으로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표식이다. 화암사 일주문에는 금강산 화암사라 적혀있고 절집 입구의 큰 바위에도 간성군 금강산 화암사라고 암각 되어있다. 지금의 고성이 옛날에는 간성이었다.
오늘도 화진포를 지나 고성 깊숙이 이승만별장과 김일성별장의 해솔길에는 망향의 인파로 북적인다. 고성 통일전망대에 오르는 이유는 단지 지척의 해금강을 보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언제고 내나라 내 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벽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금강산 화암사까지만 다녀가노라. 생전에 소원이 있다. 우리 모두의 땅인 금강산에 올라 상팔담에 발 담그고 한나절 소일할 수는 있는 시절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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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의 동해 바닷가에는 절경의 숲속에 역사적인 건물이 하나 있다. 김일성별장이다. 김일성이 1950년 한국전쟁 이전까지 휴양지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화진포의 성’이라고 바꿔 부르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역사는 뜯어 고치면 역사가 아니다. 금강산 내 조국의 땅을 밟고 싶다.
옥정호에서 연애편지를 쓸까 / 11월
오봉산 옥정호 ^^ 전북 임실
영암부락재 - 520봉 - 2봉 - 4봉 - 국사봉 – 대숲 오봉산 – 운암삼거리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바싹 마른 굴참나무 잎이었다. 한여름 짙푸르던 청단풍이 새빨갛게 물을 들이다가 스무 날을 채 넘기지 못하고 발밑에 낙엽이 되어 서걱서걱 밟힌다. 호젓한 가을의 소리다.
새벽안개 내려앉는 옥정호의 오봉산 능선을 오른다. 진홍 핏빛으로 출렁이던 당단풍과 복자기도 절반쯤만 가지 끝에 매달려 팔랑인다. 저무는 가을이다. 고로쇠 넓은 잎과 길쭉한 물푸레 나뭇잎, 새빨간 입술의 화살나무 단풍잎이 오봉산에서 보는 단풍이다. 청시닥나무의 잎에 코를 대면 설탕 볶는 냄새로 달콤하다.
쌓이고 쌓여서 귀찮을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요즘의 단풍 신세다. 낙엽 쌓인 길을 걸어보고 싶지만 금세 쓸어버리고 마는가 하면 낙엽 타는 냄새를 잊은 지도 오래다. 예쁜 단풍잎을 눌러 시집의 책갈피로 쓰던 시절이 있었다. 연인에게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을 적에는 진분홍의 당단풍 잎이 큰 효험을 발휘했었다. 예전에 그랬다.
옥정호의 아침을 보기위해 계단을 오른다. 수북이 쌓인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 잎이 강바람에 책장 넘기는 소리로 들린다. 가을의 소리다. 나무들이 애지중지하던 식솔들을 내려놓고 허리를 편다. 전부를 소유하는 고집이 아니라 일부를 희생했을 때 온전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여명과 함께 옥정호의 강둑으로 아침이 찾아든다. 진안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여기서 한바탕 물안개를 일으키고 섬진강 줄기를 따라 하동을 거쳐 남해 바다로 흘러간다. 섬진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깊숙한 골짜기의 덕치면 진메마을이다.
섬진강 상류의 옥정호의 물안개길이다. 호수 끄트머리 산자락 머무는 외딴집이 보인다. 굴뚝에서는 삭정이 태우는 뽀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나지막한 산등성이에도, 강둑에도, 섬에도 물안개가 가득하다. 옥정호의 아침이다. 무쇠솥뚜껑 여닫는 소리가 두어 번 들리면서 마당 가득 아침 햇살이 찾아든다. 국사봉전망데크에서 내려다보는 옥정호는 너무도 호젓하다. 그만그만한 산으로 이어지다가 끝자락에서 끊기고 또 능선을 이어 놓고 다시 산허리를 감아 돌며 물굽이가 가슴높이로 찰랑댄다.
군청색 어깨띠가 날렵한 물새 한 마리가 옥정호에 물살을 일으키고는 가운데 붕어섬 쪽으로 몸을 숨긴다. 청둥오리가 떼를 지어 내려앉으니 뽀얀 물안개가 번진다. 안개꽃을 물위에 뿌려놓은 하얀 꽃밭이다.
금붕어를 빼닮은 옥정호의 붕어섬이 지느러미를 너풀거린다. 어제의 오목눈이 작은 새가 날아들고 가창오리와 쇠기러기는 이른 봄 내내 옥정호의 물살을 가른다. 하얗게 너울거리는 옥정호의 아침이 신비롭다. 막 세수를 끝낸 뽀송뽀송한 얼굴이다.
새벽같이 달려온 사진작가들은 붕어섬의 물안개를 영상으로 담으려 옥정호 전망대에 진을 치고 있다. 길게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가을 길을 옥정호물안개길이라 부른다. 빨갛게 물든 개옻나무 저편으로 대숲능선이 이어지고 잘 익은 감나무 언덕으로 외딴집이 있다.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가을걷이로 바쁜가보다. 옥정호물안개길이 끝난다는 푯말이 보인다. 자연도 절기에 따라 멋을 낼 줄 안다.
연애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유명한 시인이 쓴 시집에서 아름다운 시어들만 골라 편지지에 옮긴다. 쓰다가는 찢어버리고 또 쓰면서 밤을 지새웠다. 사연을 적은 편지지 빈칸에는 빨간 단풍잎을 정성껏 붙인다. 돋보이기 위한 기술이었음은 물론이다. 요즘에도 연애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 한낱 추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 언제부터인가 연애편지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빨강색의 아기단풍잎을 붙이면 샛노란 은행잎으로 화답하던 시대는 갔다.
옥정호 물안개길에서 가을편지를 쓴다. 가을에 쓰는 편지는 그리움의 편지고 기다림의 편지다. 물안개로 번진 편지지에 가을 나뭇가지로 사랑의 잉크를 듬뿍 찍어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힐 때 가슴 한구석 멍한 것은 필시 외로움을 타기 때문이리라. 발코니로 나가 먼 산을 바라볼 때 슬쩍 스치는 얼굴이 있다면 간절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가을 타는 계절병이라고 둘러댈 필요는 없다.
털복숭아 감색 털옷을 꺼내 입고 편지를 쓴다. 지금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면 지체 말고 편지를 쓰자. 가물가물한 어릴 적 친구가 생각날 때도 편지를 쓰자. 한동안 소원했던 선배에게 안부를 묻자. 무덤덤하게 지내오던 평생지기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보라. 가을에 쓰는 연서는 감미롭고 달콤하다.
연분홍으로 익은 당단풍 잎이나 샛노란 은행잎을 붙이지 않더라도 가을에 보내는 편지는 그리움이 묻어난다. 기다림이 넘쳐 흥건하다. 깔짝깔짝 서너 줄 문자로 안부를 묻는다는 게 삭막하지 않던가. 여태껏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잘못된 습관을 타박해보자.
하얀 종이에 손편지를 써보자. 그리고 십 수 년이 지난 후, 퀴퀴한 곰팡이 냄새를 툭툭 털어내며 지난 시절을 읽어 내려가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촉촉한 안경 너머로 편지를 읽는 노신사를 생각해보라. 상상만으로도 고상하지 않은가. 옥정호에서 이 가을에 편지를 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오랜만에 손편지를 썼다. 글씨가 예전만 못하지만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다. 베개를 배에 깔고 엎드린 자세로 두 장이나 썼다. 오래된 습관 때문인지 책상에 앉는 것보다 더 편할 때가 있다. 기계의 간편함에 숙달되어 글 쓰는 일이 어설프다 여기겠지만 가끔은 연필을 들어보자.
구례와 남원과 하동 땅의 지리산 삼도봉 / 6월
지리산 삼도봉 ^^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하동
성삼재분소 - 노고단 - 돼지령 - 임걸령 – 노 루목삼거리 – 반야봉 - 중봉 - 삼도봉 – 화개 재 - 간장소 – 제승대 - 병풍소 – 요룡대 – 뱀사골분소
별빛마저 잠에 취한 새벽 네 시다. 헤드랜턴을 켜고 걸어보는 달빛산행으로 보폭이 점점 빨라진다. 야음의 시간도 아껴야하는 산객들이다. 새벽의 웅성거림과 낯선 발자국소리를 알아챈 텃새 몇 마리가 빈정거리는 투로 울어댄다. 초입의 능선쯤 올라서는데 서서히 바닥에 깔린 디딤돌의 윤곽이 보이는 것 같다. 밟히고 밟히면서도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질경이 이파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노고단을 향해 십 여분을 걸었을까, 후다닥 계곡아래로 내달리는 물체가 있다.
"고라니다. 고라니!"
야생의 존재에 대한 반가움으로 일행이 소리친다. 엉덩이 골격이 예쁜, 지난봄쯤에 태어난 것 같은 새끼 고라니로 뒤태가 날렵하다. 두 눈에 파란 불을 심고 이쪽을 보더니 또 쏜살같이 내뺀다. 해코지할 생각이 없는데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친다.
노고단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반야봉 정상이 저만치 보이고 그 뒤로 천왕봉도 식별된다. 동쪽 하늘이 불그스름한 일출의 시작을 예고한다. 잿빛 구름이 벌겋게 상기되며 지리산에서의 아침을 맞는다. 일출이다. 새 생명이 산고의 아픔을 이겨내고 태어나듯이 하루의 시작이 처연하다.
돼지령 언덕을 벗어나 숲길에 들어서면 임걸령이다. 산악인들은 여기서 휴식을 취한다. 밋밋한 바위가 있고 절기를 가리지 않고 콸콸거리며 넘쳐나는 샘터가 있으니 임걸령 고갯마루가 반갑고 고맙다. 물병마다 지리산 샘물을 가득 채웠다.
고단한 오르막 능선으로 산새들이 일과를 시작한다. 멧새와 개개비가 허리를 펴고 일어서고 곤줄박이와 동고비가 날갯죽지에 묻어 있는 아침이슬을 털어내고 있다. 늦잠에서 깨어난 딱새는 잠에 취한 모습으로 홑이불을 발밑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소쩍새가 아직 기침 전인 것은 밤새 지리산의 삼도를 쏘다닌 고단함 때문이리라.
이쪽 숲에서 오목눈이가 아침을 부르면 박새가 이어 받고 꾀꼬리가 울어주면 종달새가 화답한다. 노랑딱새가 울 때 노랑딱새가 따라 울면 싱겁고 지루할 테지만 서로 다른 추임새, 다른 음색으로 울어주는 새들이 있어 숲은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한다.
삼도봉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유난히 등이 꼿꼿한 등산객을 만났다. 힘든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걸음걸이였다.
“저 선생님, 힘들지 않으세요?”
“웬걸요, 참아내는 거지요.”
등산모 사이로 희끗희끗 흰 머리카락은 보이지만 한창나이 같았다.
“실례지만 올해 연세가?“
“저 몇 살 안 됐어요. 이제 예순일곱 살인 걸요.”
노루목삼거리에서 배낭을 벗었다. 어차피 반야봉 정상과 중봉을 거치더라도 다시 내려와서 삼도봉을 가기 때문에 빈 몸으로 오른다. 1.732미터의 반야봉은 천왕봉 보다야 낮지만 지리산 한가운데 솟은 산으로 얼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천왕봉은 물론 토끼봉, 노고단, 만복대 그리고 깊은 골짜기 심원계곡이 두루 조망된다.
천왕봉과 노고단 그리고 반야봉이 지리산의 주봉들이다. 높이로 따지자면 더 높고 큰 산이 즐비하지만 이 세 개의 봉우리들이 삼도에 걸쳐있다는 이유로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대접을 받는다. 천왕봉이 경상남도, 노고단이 전라남도, 반야봉이 전라북도에 걸쳐있는 산이다.
삼도봉 암릉 위에 걸터앉았다. 삼각형의 주물표지판에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경상북도의 세 개의 지역이 만나는 정확한 지점이라는 것을 알린다. 삼도가 만나는 지점의 땅위에 주물표지판이 정확히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 삼도봉이다.
산허리를 휘감는 안개가 골골이 깔리고 크고 작은 능선이 마치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둥둥 떠다닌다. 뭉게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몇 개의 봉우리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 또 숨어버리기를 반복한다.
하산 길로 접어드는 화개재는 너른 마당과 같다. 십 수 년 전만 하더라도 전라도 사람들이 이 재를 넘어 경상남도 하동의 화개장터에서 장을 보고 다시 이 재를 넘나들었던 추억어린 고갯마루다.
화개재를 지나 한참을 내려선 것 같은데 뱀사골 제승대를 지난다. 뱀사골처럼 곤한 산길도 흔치 않다. 산행지도를 펴 봐도 느릿느릿 이어지는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산이 깊은 만큼 골도 깊고 골이 깊으니 계곡은 강물처럼 넘쳐난다. 장마철에는 집채만 한 바위가 물살에 떠내려가는 무시무시한 계곡이 뱀사골이다.
지리산의 장엄함은 천왕봉의 높이에서만 가늠되는 게 아니다. 전북의 남원과 전남의 구례 그리고 경남의 함양, 산청, 하동으로 삼 도 다섯 개의 시 군에 열네 개의 면이 머리를 맞대고 포옹한 늠름한 산이다.
지리산을 한 바퀴 뺑 돌면 자그마치 천리 길이나 된다. 설악처럼 기암기석이 들어찬 세련된 산도 아니고 호수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산도 아니건만 지리산은 청년의 심장처럼 튼실한 산이다. 오싹한 추위를 이겨내고 정상을 정복한 어느 겨울의 지리산 산행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 내는 지리산은 모진 산이다.
진달래 철쭉이 봄을 알리는 봄 산도 그만이고 너른 잎이 홍조로 물 드는 가을 산도 빼놓을 수 없지만 수풀이 숨차게 뒤덮는 지리산의 여름 산행이 참 좋다. 여름이면 겨울이 좋다고 말하고 겨울이면 여름이지 싶다고 둘러대는 식이다. 언제 어느 절기 시시때때로 반겨주는 산이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산악인 가운데 지리산의 지리한 코스를 완벽하게 종주한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산 가운데 종주 코스로는 가장 길다. 코스도 무지하게 많다.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가 있고 지리산남부사무소 그리고 지리산북부사무소가 업무를 관장하는데 하동분소, 함양분소, 산청분소, 세석분소, 삼장분소, 성삼재분소, 뱀사골분소가 지리산 들머리마다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 산행은 끈기를 요구한다.
해남과 강진을 잇는 주작과 덕룡 / 3월
주작산, 덕룡산 ^^ 전남 해남, 강진
오소재 -404봉 - 427봉 - 수암재 - 주작산 – 양란 재배장 – 덕룡산 - 서봉 - 동봉 - 소석문
달달한 봄동배추국에 밥을 말아 이른 아침을 먹었다. 헤드랜턴을 비추지만 발아래 풀숲은 어림잡아 발을 내딛을 뿐이다. 청미래덩굴 가시에 정강이를 긁히면서도 살같이 쓰리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오소재를 막 오를 무렵이었다.
앞사람과 뒤따르는 사람의 얼굴이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때를 맞춰 우뚝 선 벼랑도 칠흑을 벗는다. 주작산에서의 일출이다. 새벽을 깨우고 아침을 알리는 태양은 바다 끝에서 장엄하게 떠올라 온통 남해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크고 작은 섬들은 연분홍으로 떠 다닌다. 하늘도, 구름도, 산도, 바다도 온통 고통의 시간 속에 아침을 맞는다.
주작과 덕룡이라고 말하면 마치 중국영화에 나오는 배우 이름 같지만 산을 좀 탔다고 말하는 사람이면 땅 끝에 있는 산임을 다 안다. 해남과 강진 땅에 걸쳐있는 험한 암릉이다. 주봉이라야 고작 475미터에 불과한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작과 덕룡은 거친 암봉과 암벽의 연속이다. 봉황의 형세를 닮았다는 주작산은 우측 날개가 해남 땅이고 몸통과 좌측 날개 대부분이 강진 땅이다.
조심스럽게 바위 모서리에 발을 딛고 두 손은 참나무 등걸을 잡는다. 한참을 걷다 가파른 능선을 내려오면 상수리나무가 서 있고 키 작은 국수나무는 들이키고 있다. 생강나무는 진노랑의 꽃을 피우지만 산동백이 피려면 보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길섶으로 노란 복수초가 피었다. 자잘한 제비꽃과 양지꽃이 잰걸음으로 앞장서는데 진달래는 아직 꽃망울을 열지 못했다. 엊그제 설악산에 춘설이 내렸다는 소문을 듣고는 기겁을 한다.
주작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그만이다. 바다가 보이는 팔각정에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완도가 가깝고 왼쪽으로 강진만이 길게 뻗어 있으며 귀퉁이로 보이는 땅이 마량면이다. 뒤를 돌아보면 동행하던 바위능선이 마치 용트림하는 공룡처럼 무섭게 움직인다. 전구간이 암릉이지만 불필요한 계단이 없어 오히려 매력적이다.
저 아래 보이는 강진 땅 지척에는 정약용의 다산초당이 있고 숲속 어디쯤에는 백련사가 있으리라.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골격이 늠름하고 장쾌한 해남의 두륜산이다.
편백나무가 우거진 밋밋한 산등성이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커피 한 잔에 편백 향도 같이 마셨다. 서봉과 동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벼랑 끝을 감아 돈다. 암벽을 오를 때는 물론이고 내려 설 때도 밧줄은 언제나 생명줄이다. 서봉에 서면 동봉이 보이고 동봉에서는 지나온 서봉이 손짓을 보낸다. 서봉은 덕룡산의 주봉이다. 험악한 설악의 공룡과 비교하기는 민망하지만 주작산도 만만한 산은 절대 아니다. 어느 능선, 어느 골짜기, 어떤 산길도 첩첩으로 골산이다.
하산하는 양짓녘 솔밭길을 내려서는데 야생춘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빵 터진 꽃망울이 방실방실 웃는 해사한 얼굴이다. 살아생전 난초를 유난히 아꼈던 이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었다. 그의 수묵화는 늘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난초로 형상화 하는 작업에 골몰했다. 선생은 얼굴난초가 바로 자신이었으면 싶다고 했다. 장일순 선생은 늘 웃고 살았다.
17킬로미터의 그다지 길지 않은 산행코스라 하지만 워낙 거친 암릉의 산이기에 열 시간은 족히 걸린다. 강진에서 유명한 회춘탕을 먹었다. 토종닭에 문어와 전복이 들어가고 인삼을 비롯한 온갖 한약재를 넣고 고아낸 진국의 향토 음식이다. 젊은이도 노인네도 다 좋다고 말한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주작 덕룡은 해남과 강진을 잇는 지루한 산이다. 산의 높이로 치면 별거 아니다 싶지만 17킬로미터의 빡빡한 구간으로 10시간은 걸린다. 결코 쉬운 코스는 아니다. 그러나 가는 곳 마다 바위산이고 암벽이라 암릉을 타는 재미는 쏠쏠하다. 수시로 생각날 때마다 찾을 수 없으니 돌아오는 길에 다산초당도 찾아보시라.
소백산 비로봉의 봄 / 5월
소백산 ^^ 충북, 단양 경북, 영주
천동리매표소 – 다리안폭포 – 천둥쉼터 - 비로봉
연화봉 - 희방사
다리안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다. 졸졸 흐르는가싶으면 어느 절엔가 산허리를 감아 굽이치는 소리가 싱그럽다. 산행을 하면서 계곡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위안이 어디 있을까.
어떤 산은 기암절벽의 골산이면서 초입부터 물소리 하나 듣지 못하고 삭막하게 산을 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소백산은 한참 동안을 계곡물 소리와 동행하며 걷는다.
생각나무 꽃이 지고 진달래가 피고 다시 진달래가 지고나면 계곡으로 치렁치렁 함박꽃나무가 하얀 꽃을 피운다. 순백색의 옥양목 속옷 차림 같은 청초한 꽃이다. 천둥쉼터를 지나면서 물소리는 먼저 하산을 시킨다.
낙엽송이 즐비한 오르막이다. 평소 산행을 하면서 낙엽송은 참 재미없는 나무라고 여겼었다. 키만 멀쑥하게 컸지 대체 눈 씻고 본들 잘 생긴 자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무였다. 싱겁기 짝이 없는 나무다. 그러나 오늘 소백산에서 보는 낙엽송은 100여 년 남짓 연륜을 쌓은 고목으로 산 중턱까지 빽빽하게 들어찼다. 구릉지를 넘어서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낙엽송의 움직임이 재밌다. 밑동은 움직임이 없는데 가지 끝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린다. 가지가 많으면 바람 잘 날이 없다지 않는가. 낙엽송 사이로 반짝 외줄기 햇살이 수직으로 밝은 선 하나를 긋고 사라진다.
소백산에도 가리왕산만큼이나 나물이 지천이다. 돌계단 옆으로 두릅은 이미 쇠고 있었고 산고들빼기가 무리로 자란다. 원시림 같은 숲에서 단풍취, 참취, 떡취, 곰취 등은 서로 어울려 취나물 세상을 이루고 고사리는 물론 고비, 참나물, 곤드레, 산미나리, 풀솜대 같은 오만가지 산나물이 다투어 피고 자라는 산이다.
소백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낮은 봉우리도 더 높은 봉우리도 찰진 육산이다. 세 시간 가까이 산행을 했을 때 목책의 좌우로 주목나무 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인 비로봉이 보인다.
소백산이야말로 평탄하면서도 봉긋한 능선의 대표적인 육산으로 사슴이나 양떼를 불러들일 것 같은 얌전한 산이다. 드문드문 키 작은
주목과 철쭉이 자라고 있지만 사방이 훤하게 트였다. 하나같이 키가 작다. 한겨울엔 매서운 눈보라에 몸을 사려야 하고 늦여름 장마와 태풍이 닥칠 적에는 몸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바람찬 들판에의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제 몸을 불리지 않는 것이다.
연화봉으로 가는 길목에 산꽃이 어지럽게 피었다. 샛노란 양지꽃이 햇볕을 마주보고 피었다. 보라색의 벌깨덩굴 꽃과 오랑케 꽃도 피고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중댕가리 꽃도 큰 키를 자랑한다. 마타리 꽃대궁에 머무르던 노랑나비 한 마리가 얼른 산딸기 꽃잎 곁으로 자리를 옮긴다. 태백산과 오대산에서도 귀하디귀한 노랑무늬붓꽃인데 보호목책 너머로 네 개의 꽃잎을 펴든다.
정영엉겅퀴, 승마, 까치고들뻬기, 오리방풀, 진범, 가는장구채 등등, 이쪽 산자락은 빨강빛깔로 그리고 노랑색깔로 저쪽 능선은 하얗고 보라색이다. 상큼한 향기를 전해주는 배초향 꽃도 소백산의 향기고 오월에 꽃빛이다. 소백산은 야생화의 보고다.
연화봉 전망대에 올라서서 비로봉을 바라본다. 정상으로 산객의 움직임이 선명한데 마치 내 누이의 예쁜 가르마처럼 둥그스름한 소백산 능선이다. 하얀나비 한 쌍이 등산객 머리 위를 나풀거린다.
오늘의 점심은 소백산국립공원표 도시락이다. 방금 받아온 도시락인데 보온밥통에 배추국까지도 따끈따끈하다. 한정식 차림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산 정상에서 이만한 대접은 과분할 따름이다. 단양에서 재배한 마늘을 기본 재료로 만든 마늘불고기가 있고 소백산자락의 더덕구이에 엄나무장아찌, 멸치조림, 소백산취나물무침, 고등어 한 토막으로 구성된 도시락이다.
2018년 우리나라에서는 소백산국립공원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자연환경도시락이다. 사전에 주문받은 도시락은 소백산 들머리에서 찾게 되는데 하산할 때 반납하면 끝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 그릇이 아니니 소백산도 반길 것이다.
희방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깔딱고개가 두 군데 있다. 올라오는 이들은 비로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며 하산하는 일행을 부러워하는 표정이다. 나이든 활엽수로 탐방로가 어둠침침하다. 느릅나무도 자장나무도 고로쇠나무도 한 덩치 하는 소백산 자락의 재목들이다. 저녁나절에 봄비라도 맞으면 금세 파란 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물푸레나무도 아름드리 거목이고 늙은 오이의 피부를 닮은 노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희방사계곡 아래로는 겹겹으로 층층나무가 도랑을 덮고 있었다.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서는데 묵직한 음성의 불경소리가 들린다. 금강경이 분명하다. 내일 모레가 사월초파일이다.
희방사 절집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서 희방폭포 앞에 섰다. 한 줄기 햇볕도 들지 않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수만 년 전부터 쏟아 붙는 물줄기는 아직도 기운찬 폭포로서의 여름을 적신다. 오늘밤 하늘 높이 기운 상현달 하나 크게 떠오를 것이다. 희방사 연등도 내걸릴 것이다.
희방사역에서 열차를 탔다. 오늘 열차를 타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희방사역은 오는 연말이 되면 역으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중앙선전철복선화사업으로 희방사역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산행을 할 때는 정해진 곳까지의 이동수단은 필수적이다. 승용차가 가장 편한 것 같지만 대중교통수단이 편리할 때가 더 많다. 대개의 산행은 원점회귀 보다는 들머리를 초입으로 정하고 날머리가 도착지점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주의 불국사역과 장성의 백양사역이 유명한 사찰의 이름에서 따온 기차역인 것처럼 희방사역 또한 희방사 사찰이 있어 붙여진 고유명사다. 날이 저물고 있는데 희방사역도 멀어지고 있다. 기차를 타고 희방사역에서 내려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던 시절이 그립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소백산은 주목나무 군락지를 벗어나면서 별반 나무그늘이 없다. 그러나 연화봉 능선을 따라 비로봉까지 십 리 남짓한 능선에는 온갖 야생화가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가거들랑 노랑무늬붓꽃을 꼭 보고 내려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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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회원님들의 간절한마음 신께서 받아주실거 라 믿습니다.
필수고문님의 외침을 다시한번 되세겨 봅니다~
경건함 속에서 치뤄진 시산제
무탈한 한해를 바램해요
수고하셨어요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