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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충북 도지정문화재 188호인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주임신부 이범현 토마스)을 찾았다. 주차를 하고 입구를 향해 보니 계단 오른쪽에 방문을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매괴 성모님 액자가 눈에 띄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탁 트인 마당과 벽돌로 된 성당이 보였는데 성모어머님께서 두 팔 벌려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1896년에 설립된 감곡본당 초대 신부였던 임 가밀로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 받은 후 바로 입국하여 그 다음해인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이자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 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 부락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 장호원에 이르러 산 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직감했다. 그 즉시 임 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 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성모님께 기도한 후부터 1년4개월 만에 그리고 우연하게도 1896년 5월 성모 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묵주기도 어머니의 축일인 10월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 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매괴성모성당이 된 것이다.
임 가밀로 신부를 통한 성모님 사랑이 살아 숨 쉬는 곳
감곡성당은 성모님 사랑과 성체 신심을 바탕으로 신앙의 못자리이며 성소의 못자리이다. 150여 명의 성직자, 수도자를 배출한 이곳은 임 가밀로 신부를 통한 성모님 사랑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성모님의 사랑과 신앙을 체험할 수 있는 매괴성모순례지, 기도의 순례지로 감곡성당이 광범위한 지역의 사목 중심지로서의 역할과 결실, 역사에 드러난 성모님을 통한 하느님 은총의 여러 표징들, 오랜 세월 많은 신자들의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순례 등을 숙고한 끝에 지난 2006년 10월7일 청주교구장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는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으로 승인하고 공식적인 선포식을 가졌다.
매괴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제작하여 1930년 대성전 건립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 되었다. 한국전쟁 때 성당은 인민군 사령부로 사용됐는데 인민군이 성당 안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일을 겪자 그 원인이 성모상이라 생각하고 총을 쏘았다. 그러나 7발을 맞고도 성모상이 부서지지 않자 기관총으로 사격을 했으나 총알이 피해갔다. 그래서 성모님을 끌어내리려고 올라갔을 때 성모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인민군들은 성모상을 건드릴 수 없었고 그때부터 성당에서 철수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는 이 성모상은 ‘칠고의 어머니’, ‘매괴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성모님상, 이콘 앞에서 기도하고 많은 이들이 외적 내적 치유를 받고 있다.
51년 동안 감곡본당에서 사목생활을 하셨던 임 가밀로 신부는 1947년 10월25일 “성모여, 저를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에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와 신자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잘 말해준다. 임 가밀로 신부는 프랑스 타르브교구 빌레아두르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루르드에서 20km 떨어진 곳으로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을 잡고 정기적으로 루르드를 방문하여 루르드의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성장했다는 것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 가밀로 신부님은 성당 뒤편 매산에 안장되었다가 1983년 성당 안 예수성심상 제대 아래로 이장하였다.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과 한평생 함께하신 신부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 밖으로 나와 매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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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한국 최초로 성체신심행사인 성체거동
충청북도 최초의 석조 건물로 지어진 매괴 박물관은 구 사제관을 개조하여 그동안 흩어져 있던 많은 역사적인 서적과 귀중한 가톨릭 유물들을 전시함으로써 방문하는 많은 이들에게 신앙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매산 중턱의 성모광장이다. 성모광장은 1943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려고 터를 닦자 임 가밀로 신부가 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두고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시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공사 중 여러 가지 기상이변으로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2년 만에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은 물러가게 된다. 신사 터가 될 뻔했던 곳이 1955년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성모광장으로 봉헌되었고, 매년 거행되는 성체거동 때 현양대회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성모성월에 성모의 밤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된다.
성체거동은 지방에서 거행되는 최초의 성체신심행사였다. 성모님 사랑을 바탕으로 신앙의 기초를 놓았고, 우리 신앙의 핵심은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이시며 성체성사가 신앙생활에 중심이라는 것을 깊이 심어주기 위해 1914년부터 한국 최초로 성체신심행사인 성체거동을 거행하였다. 이 행사는 1914년 성체성혈 대축일 이래 전쟁 등의 어려운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거행되어 왔는데, 매년 10월 첫 주 목요일 성대한 사제단의 행렬로 시작하여 미사와 함께 성체강복으로 끝나게 된다.
이번 방문을 통해 매년 성체현양대회를 위해 감곡 교우 분들이 톱밥 길을 만들고, 어린 소녀들이 장미꽃을 뿌리며 주교님, 사제, 수도자, 신자들과 함께 성체거동을 하는 길로 성모광장을 지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산상 십자가까지 처음으로 올라가 보았다. 특히 올해 10월4일(목)은 감사와 봉헌의 해로 100차(104주년) 성체현양대회가 있는데 많은 분들이 참석했으면 한다.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에서는 매월 첫 토요일 오후 6시30분~10시30분 성모님의 메시지(회개와 기도, 성체성사, 고해성사, 성체조배, 희생과 단식)를 실천하기 위해 “기도와 찬미의 밤” 행사와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미사 후~오후 2시까지 성체 현시와 강복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성당 옆에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함이 놓여있는데 방문시 잊지 않고 편지 쓰는 체험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매괴 성모 동굴 건립과 성모님 사랑과 신앙을 체험할 수 있는 기도 순례지로 거듭나도록 우리들의 마음과 작은 정성을 모았으면 한다.
< 후원계좌 >
농 협 301-0063-8415-81 감곡천주교회
신한은행 100-026-567443 감곡천주교회
우 체 국 300855-01-000697 감곡천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