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은 인류 앞에 닥친 생태적 재앙을 막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조화로운 삶’을 택하고 있다. 길은 여러 갈래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안솔기마을의 실험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마을의 ‘생태성’에 의문부호를 붙이는 이들도 있지만, 안솔기마을도 도시형 생태마을의 새로운 실험으로 애정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마을만들기가 한창인 안솔기마을을 찾아가 봤다.
솔향짙은 솔동네 우리가 가꾸며 산다
산새들의 지저귐에 잠을 깨면 창밖 멀리 산골짜기에 구름이 피어 오른다. 아이들과 손잡고 지나는 오솔길에서 이웃들과 정겨운 인사를 나누고, 저녁이면 모여 앉아 파전에 소줏잔을 기울인다. 안솔기마을의 풍경이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 둔철산 자락에 자리한 이 마을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계획적 생태마을이다. 계획적이란 충남 홍성 문당리처럼 이미 있던 마을을 생태적으로 만든 곳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성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또다른 점은 주민들이 농사를 주업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 열 집이 살고 있고 올 가을까지 여덟 집이 더 합류할 이 마을에는 공동 대표인 최세현(43)씨 외에 농사를 주로 하는 이가 없다. 마을 사람들의 직업은 한의사, 약사, 교사, 사업가, 건축가, 노동운동가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 점에서 안솔기마을은 생산공동체가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의 크리스탈워터스나 미국의 팜같은 도시형 생태마을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안솔기마을의 탄생은 간디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간디학교를 만든 양희규 교장은 학교 주변에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생태마을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1999년 간디학교 소식지에 그의 구상이 실리자 단박에 20여 가구가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들이 가구당 2천여만원씩을 내 간디학교 뒤편 둔철산 자락 4만9천평을 마을 터로 사들이면서 ‘마을만들기’가 시작됐다. 그래서인지 주민 가운데 아이들이 간디학교에 다니는 집이 다섯 가구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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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솔기마을에 사는 어린이들이 등교 버스를 타기 위해 마을길을 뛰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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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학교를 지나 고갯길을 조금 올라가면 안솔기마을이라 쓰인 간판이 보인다. 이곳이 마을 초입이다. 소나무가 울창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보였다. 대부분 통나무와 나무를 사용해 지은 집이었고 벽돌로 지은 집도 보였다. 얼핏 보면 여느 전원주택단지와 다름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애쓰는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나무도 돌도 있는 그대로 두기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비탈진 곳이어서 집터를 마련하기 위해 땅을 깎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또한 최소화하기 위해 자연지형에 순응하도록 집을 지었구요.”
또다른 공동대표인 김명철(45)씨의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4만5천평 가운데 9000평만을 집터와 도로, 주차장, 연못 등으로 쓰고 나머지 당은 모두 마을 공동소유로 손대지 않고 그대로 뒀다. 어찌보면 돈주고 산 땅을 놀리고 있는 셈이다. 대신 집주변에는 옮겨심어진 나무가 아니라 수십년을 자란 나무들이 ‘제자리’에서 자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현관문을 나서 몇걸음만 걸어가면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 잣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돌과 흙이 어우러진 마을길이 먼저 눈에 띈다. 길 양옆에는 우거진 소나무가 가로수 노릇을 하고 있다. 길은 곧지 않고 바위를 돌아가기도 한다. 처음 도로를 닦을 때 노인과 함께 사는 집에서 포장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끝에 포장 대신 돌을 깔기로 했다. 포장을 했을 경우 날이 더워지면 길 때문에 주변 온도가 함께 올라가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안솔기마을은 생태화장실 전시장처럼 보인다. 집집마다 다양한 실험이 진행중이다. 최씨는 마당 끝자락에 ‘푸세식’ 화장실을 만들었다. 집터보다 전망이 더 좋은 곳이다. 화장실 안벽에는 선반을 만들어 책을 놓아두었다. ‘볼일’을 보고 난 뒤에는 화장실 안에 놓인 부엽토를 뿌린다. 부엽토에 든 미생물은 똥을 발효시켜 냄새를 없애고 최고급 퇴비로 변화시킨다. 공기도 잘 통해서 이 화장실은 도시의 수세식보다 냄새가 적다. 1년에 한 번씩 똥통을 꺼내 볕에 말린 뒤 퇴비로 쓴다고 한다. 똥통을 만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다른 방식을 쓰는 집들도 있다. 미생물을 사용한 자연발효식 화장실을 만든 집도 있고, 물 대신 거품을 사용한 포세식(泡洗式) 화장실도 있다.
주민들은 주로 식물을 이용한 자연정화방식으로 생활하수를 처리한다. 자연정화방식은 작은 물웅덩이 3개를 층이 지도록 만들고 미나리, 고마리, 갈대, 부레옥잠 등을 심어 이들 식물들이 생활하수를 처리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집안에서 흘러나온 생활하수는 높은 웅덩이에서 흘러내려 마지막 웅덩이를 거쳐 하천으로 들어간다. 애초 잿빛 구정물이 마지막 웅덩이에서 흘러나올 때는 시냇물처럼 맑게 바뀌었다. 한 집에서는 토양 속 미생물이 생활하수를 정화하는 토양트렌치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모기가 들끓어 현재는 다른 방안을 찾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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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공동대표 최세현씨의 딸 나눔(12)양이 자기 방에서 연필을 깎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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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솔기마을에는 가로등이 없다. 인공 조명을 최소화해 자연에 주는 충격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려는 생각에서다. “달빛이나 별빛만으로도 길을 걷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말이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작은 손전등을 쓴다. 마을 사람들은 합성세제나 삼푸 등을 쓰지 않는다.
이런 이 마을 사람들의 생태적 생각은 ‘안솔기마을 자치규약’에 반영돼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크리스탈워터스의 주민자치규약을 참고로 만들었다고 한다. 규약은 먼저 한 가구당 필지를 200평으로 제한하고 환경친화적 건축재료를 사용해 연면적 60평 이하, 높이 2층 이하의 집을 짓도록 강제하고 있다. 또 경관을 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처마 높이도 최대 7m로 정했다. 특히 마을 안에서 건축을 할 때는 주민대표회의의 승인을 얻도록 해 마구잡이식 건축을 막고 있다. 한 주빈은 스치로폼 양쪽에 철판을 댄, 일명 샌드위치패널로 20평짜리 조립식 집을 지었다가 주민대표회의에서 철거 결정이 나 집을 헐고 마을을 떠나야 했다. 규약에는 애완 동물을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자기 땅 안의 수목을 보존할 의무를 두고 있다.
안솔기마을에는 아직 목재를 자르는 전기톱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진행중인 미완의 마을을 알리는 소리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이 마을이 생태마을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주민들은 그런 외부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애초의 간디생태마을이란 이름 대신 마을 안쪽에 소나무가 많다는 뜻의 안솔기마을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마을의 실험을 따뜻한 눈길로 지켜보자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마을을 찾았던 생명공동체운동센터 이근행씨는 “생명사회로 이행하는 다양한 실험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안솔기마을은 나름의 지향을 갖고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마을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애정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청/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bokkie@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root2@hani.co.kr
안솔기마을 사람들이 사는 법
이웃 뒷얘기 절대 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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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솔기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주민대표회의와 공동노동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의 크리스탈워터스같은 도시형 생태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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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도 가까이 살면 척이 지는 경우가 많다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안솔기마을 주민들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생각이 같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주민대표회의와 공동작업을 통해 이웃의 정을 도탑게 쌓아가고 있다.
주민대표회의는 마을일을 결정할 뿐 아니라 주민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장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웃에 대한 뒷얘기를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주민대표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말한다. 가로등을 없애고, 세제 사용을 막고, 자연발효식 화장실의 의무화 등 마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주민대표회의에서 결정됐다. 논쟁을 벌이다 보면 서로 서운한 감정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안솔기마을 사람들은 주민회의에 올린 안건에 대해 표결을 하지 않는 묘수를 찾았다. 표가 갈리면 마을 주민들도 패로 나뉜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이 마을에서는 애완동물 키우는 문제를 놓고 몇달째 논란을 벌이고 있다. 시골에 온 이유 가운데 하나가 마당에서 개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는 볼멘소리도 있지만 애완동물에 쏟는 정성을 가난한 이웃에 돌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공동 대표인 김명철씨는 “한집 한집 들어올 때마다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난다”면서도 “주민회의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노릇을 해왔다”고 말한다.
주민대표회의와 함께 한달에 한두 차례 있는 공동작업도 이웃 사이의 벽을 허무는 데 큰 구실을 한다. 한의사인 김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일거리는 경옥고 생산이다. 6년근 인삼, 백봉령, 지황, 토종꿀을 섞어만드는 경옥고는 재료를 갈아 섞은 뒤 가마솥에서 나흘 동안 쉼없이 끓여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재료를 가는 일에서 밤새 불 때는 함께 한다. 한번에 1㎏짜리 50통 이상을 만드는 데 주민들은 부수입도 올리고 공동노동으로 얻는 일체감도 느낀다고 한다. 이밖에 송화차 등 한방차와 홍삼액도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안솔기마을 생산품들이다.
한의사 김씨처럼 주민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나눔의 생활도 실천하고 있다. 김씨는 제천에 있는 간디중학교 한문 교사로 강단에 서고, 인근 시골 마을 노인들과 희귀병 환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도 한다. 생태적 닭사육으로 유정란을 생산해 판매하는 최세현씨는 숲해설가이기도 하다. 그는 간디 계절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산으로 데리고가 숲에 대한 지식을 전해준다. 생태건축가인 김준희씨는 마을 사람들의 집짓는 일을 도맡아 한다. 이 마을에 그가 지은 집만 세 채다. 다른 이들 집을 짓느라 정작 자신의 집은 아직도 공사중이다. 이밖에 언론인 출신 김승현 간디학교 이사장, 녹색대학에서 일하는 김문수씨, 간디학교 교사인 정미숙씨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산청/권복기 기자
첫댓글 신문기사를 주의 깊게 보았는데 올려 놓으셨군요. 저는 '도시형'이라는 표현보다는 '개방형 공동체'라는 개념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넬집'과'애완견'의 예에서 보여주듯이 '규격화된 규율'보다는 '만들어 가는 이해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