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무척 감명깊게 읽었던 글입니다.
방금 오랜만에 프리첼에 접속했는데..
그때 읽었던 글이 생각나서 조회해봤는데 아직 지워지지 않았네여^^
함 읽어보세여
우리나라 살사의 역사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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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라틴댄스를 접하게 된 계기는...뭐랄까...어떤 필요성에 의해서랄까....
난 91년 6월 대학을 입학한 그 해 한학기를 마치고 교환학생이라는 제도를 빙자하여 어린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라틴아메리카로 가게 되었었다. 내가 가게되었던 나라는 콜롬비아인데 그곳의 수도인 보고타에 있는 하베리아나 대학에서 두학기간 학교를 다니게 되어 부푼 꿈을 안고 비행기를 탔다.
스페인어라고는 고작 한학기밖에 접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스페인어 그 자체가 생소했을 뿐 아니라 그 문화는 완전히 별천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대한항공을 타고서 미국까지 갔기때문에 그리고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역시 한국인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난 아직 우리나라를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었으나 아비앙까라는 콜롬비아항공의 비행기에 올라타고서.....
께 끼에레 또마르? 라는 질문을 스튜어디스로부터 받았을때에야 비로소 난 실감을 했다. 생소한 어감 그리고 냄새 분위기 이것이 나와 라틴세계와의 첫번째 만남이었다.
도착한 것은 보고타 시간으로 새벽 5시였다. 미리 마중나와 있던 선배들의 도움 으로 입국절차를 마치고 한 선배의 집에 짐을 풀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고 난 깊은 잠에 빠졌다. (비행기에서 잠을 거의 못잤음..)
잠을 깬 나에게 선배는 환영의 뜻으로 밥을 사주겠다고 그랬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어떤 고급 레스토랑이었는데 난 평생처음 그곳에서 송아지구이(?)를 먹었고 그곳의 엄청난 서비스를 받으며 일년간의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하였다.
정신없이 밥을 먹고서 배가 부르자~ 역시 습관이 나왔다.
후후~ 안암골에서 선배가 밥을(특히 저녁을) 사준다는 것은 곧 술자리를 의미 했고 선배와 함께 한 술집을 찾았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디스코텍과 빠를 함께 붙여놓은 듯한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우린 우리나라의 소주와 거의 비슷한 아구아르디엔떼..라는 술을 마셨고 나랑하(오렌지)쥬스를 안주로 (이 점이 우리나라에서 술습관과 다른 점) 큰 병 한병을 완전히 비웠다.
그런데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우리나라 디스코텍에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생소한것 같기도 한 음악이 나의 귀를 잡아당겼다.
뭔지 잘은 모르지만 흥겹고 나도 모르게 몸이 꿈틀되는 듯한 리듬....
선배는 그것을 '메렝게'라고 그랬다.
그때 그 선배는 한 콜롬비아 여자랑 그 춤을 추었고 내 눈엔 너무나 생소한 그 장면을 보면서 너무나 신기해했다. 선배의 춤도 너무 멋있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선배의 춤솜씨는 형편 없었음..^^) 그 리듬이 한동안 계속되다가...바뀐 리듬은 평생 처음 들어본 듯한 리듬이었다.
재즈랑 비슷한거 같기도 하고...여하튼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리듬이 나오자 선배는 춤추기를 포기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선배의 설명으로는 그 리듬이 '살사'였다. 그 나라에서는 메렝게와 살사를 가장 많이 추는데...그 선배는 아직 그 살사를 배우지 못했다며 다른 사람들이 추는 모습을 보며 계속 술을 마셨다.
어릴적부터 춤이라면 너무나 좋아했던 나로서는 그런 생소한 음악과 춤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그로부터 일년동안 공부와 여행과 함께 춤이....
나의 생활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처음...메렝게와 살사를 접했을 때 ... 솔직히 메렝게는 감을 잡을만한데 살사는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파트너로 처음 나에게 메렝게를 가르쳐 준 여자는 선배의 여자친구 였고....난 배운지 30분만에...메렝게의 부엘따(회전)까지 해낼 수 있었다.
쿠쿠쿠...까짓거 별거 아니구나~
그런데...살사는 도저히...기본 스텝조차..흉내를 내지 못했다.
그 후...일주일이 지나고.....학기가 시작되기 전.....
선배 두사람과 함께....깔리~라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곳에 선배가 아는 교포가 있어서 그곳에서 묵기로 하고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타고 길을 떠났다.
낮엔 온종일 그 도시를 구경하고....깔리는 콜롬비아 마약 까르뗄중에 가장 유명한 메데진까르뗄과 깔리까르뗄중의 하나인 깔리까르뗄의 근거지인 도시였고 너무나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의 대부분이 마약을 판매한 돈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나에게 너무나 신기하게 여겨졌었다.
그리고...밤...
교포분과 선배들과 함께...드디어 깔리의 밤을 맞이하였다. 깔리는 콜롬비아내에서도 살사의 메카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그 교포분의 동작들..... 그야말로....사람이 어떻게 저런 스텝을 밟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란한...스텝과 동작들....회전...그리고....열정.... 난 거의 두시간 이상...멍하게 살사음악을 들으며....사람들의 스텝에만 열중 했다.
하지만...도대체...스텝이 몇박자이며...어떻게 저런 모양이 나오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나이트에서....한땐스 한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두....^^;
깔리 여행을 마치고...돌아온 난....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고...그곳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혈안이 되었었다.
오랫동안 공부하며 학위를 받으려고 그곳에 간 것이 아니고... 두학기간 공부하며..최대한 말과 그곳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간 나로선... 일단 친구 사귀기가 최고의....지상과제였다.
까페떼리아에서...길거리에서....조금이라두...친절해 보이는 사람이 보이면 인사를 하고 말을 걸고....친구하자며....
그야말로 얼굴에 철판을 깐 철면피가 되어서...친구를 사귀고자 혈안이 되어 있던 그때... 어느새 내 수첩엔 백여명의 전화번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그중 대부분은 여자였지만...^^;
사람을 만나면...표정을 보며...손동작 몸동작으로 짐작하면서....대화를 나눌수 있지만..전화통화는 그야말로 말만으로 모든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했다....그점이 내가 노린 점....(스페인어 공부를 위해..) 하루는...한 여자친구랑 이야길 나누다...(책과 사전을 펴고서..^^) 그 친구에게 초대를 받았다.
친구의 생일파티가 있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이야~~ 드디어 나도 초대를 받았다....^^
택시를 타고서 그친구와 함께 파티장소로 갔다.
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는데....거실에 춤출 공간을...만들고....온 집안이.. 음악으로 가득차서....완전히 웬만한 디스코텍을 방불케 했다.
콜롬비아라는 나라는....음악과 춤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나라인 듯 싶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남미국가들이 그렇겠지만.... 주말이면...온통 집안마다...파티였고....곳곳에서 음악소리가 울려퍼졌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살사와 메렝게.....^^
하지만... 모두가 술을 마시고..이야길 나누고...춤을 추며...흥겨운 파티는 계속되었다. 하지만...난... 후후~~ 우습게도...아무에게도 말도 못하고...춤도 못추고... 그야말로...꿔다논 보릿자루.... 메렝게를 출려고해도...제대로 추질 못하니깐..자신있게 나가질 못했다.
'음..열받는군...그래...두고보자...'
그 날 이후...난 즉시 비디오를 구입했다. 그리고...텔레비젼 프로그램에 나오는...살사나 메렝게에 관련된... 뮤직비디오나 쇼프로그램은 죄다 녹화를 하고서...연구에 들어갔다. 동작 하나하나를...비디오로 천천히 돌려보며...분석... 그리고 씨디도 몇십장을 사고..^^
일주일간 거의 두문불출하고서....연구를 한 결과..... 드디어...살사의 기본스텝을 알아내었다...사분의 사박자... 그리고...메렝게에서 회전의 방향....
살사의 회전...
'그래!!! 바로 이거야!!!!'
후후~ 그때의 내 심정은 그야말로.... 새로운 진리를 찾아내어 알몸으로 길거리를 뛰어다닌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심정이었다.
그 이후 나의 생활은 거의 규칙적(?)으로 변하였다.
주중엔 학교 공부 따라가느라 거의 밤을 새우고 주말엔 거의 춤으로 밤을... 그리고 이삼주에 한번씩은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서 그곳의 풍물을 구경하고 그 지방 특유의 춤들을 배우곤 했다.
예전에 적어둔 백여명의 전화번호중 여자들은 거의 나의 춤파트너화(?) 하였고
특히 크리스티나 라는 친구가 사는 기숙사의 여학생들은 모두가 나의 선생으로 춤을 열심히들 가르쳐 주었다.
그 기숙사는 보고타(콜롬비아의 수도)에 와서 공부하는 다른 지방에서 올라온 유학생들이 사는 곳이었는데 난 그곳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춤과 친교에 열을 올렸다.
그곳의 친구들과 함께 디스코텍을 가게되는 날이면....나혼자서 거의 열명의 여학생들과 함께 번갈아 쉬지않고 춤을 추었고..(거의 초인적..^^;) 각각 다른 스타일의 춤을 추는 여자들의 형태를 모두 배울 수 있었다.
한달에 한번이나 두번정도는 각 도시를 여행 다녔는데.... 깔리...멜가르...뻬레이라...산따마르따...까르따헤나...비야비센시오...등등 여러곳을 다니며 가는 곳마다 친구를 사귀고 춤도 배웠다. 콜롬비아라는 나라 내에서의 춤을 분석해보면....
먼저 수도인 보고타는...살사와 메렝게가 현대화 된 쪽으로 추고 있었고... 미국의 음악인 하우스나 디스코가...록...이라는 이름으로 보편화 되어 있었다.
그리고 깔리..는...역시 살사의 고장...비야비센시오라는 야노(초원지대)지방은 꿈비아와 바예나또라는...전통춤이....
남부 지역인 뽀빠얀..같은 도시엔...살사와 꿈비아가 혼합된 형태로...
북부의 카리브해 연안 지역은....빠른 리듬의 살사와 메렝게가 (내 생각엔 거의 쿠바 스타일의 리듬) 많이 추어지고 있었다.
춤을 추면서...난 춤을 추기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더 친밀하게 사귈 수 있었고 그들과의 이해의 폭 역시 훨씬 넓어지고.... 특히나...내 성격이나...인생관마저도...조금씩 바꾸어가고 있었다. 웬지 근엄해야만 한다는 식의 생각을 버리고....밝고..활달하게.... 젊을 땐 젊게 살아야 한다는....긍정적이면서도...활기있는 라띠노들이 가진 어떤 그런 인생관을...배우게 된 것이었다.
한학기를 마치고....방학이 되자...난 아예 배낭을 매고...콜롬비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때 당시 우리나라도 다 돌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런 여행이 너무나 하고 싶었던 것이다. (93년도에 전국일주 했음 ^^) 여러 도시를 다 돌고....내가 6개월전 처음으로 가봤던...깔리에 다시 도착하였다. 6개월전 고맙게 잘 대해줬던 그 교포를 만났고... 그당시 그 교포의 여자친구(콜롬비아인)와 함께....역시...디스코 텍을 찾았다.
하지만...6개월전..구경만 하던 내가 아니었다.
살사의 메카라 불리우는 깔리의 디스코텍에서 추는 나의 살사~~~ 내가 스텝을 찾아내지도 못하던 그 살사를.... 육개월만에 정복을 하고서...다시 재도전에 나섰다...^^
그 평은...
역시 잘춘다는 것 (이궁..내 입으루다가 이런 말 하기 넘 쑥스러움) 그 교포의 애인인 콜롬비아 여자가 확실히 인정을 해주고.... 춤을 추다가 주위 사람들이 물러서줘서...가운데서...거의 독무대를 연출 웬지 우쭐한 마음도 생기고...살사를 배운 보람을 느꼈다. 그 덕에 많은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하고..어디서 배웠냐..어느나라 사람이냐.. 정말 잘춘다...등등....서로들 나에 대해 알고싶어서 난리.... 이 때의 느낌이...나에게 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한 첫 사건이었다.
그 후 보고타(콜롬비아의 수도)에 돌아온 난 여기저기 친구들의 파티에 초대 되었었고 그곳에서 춤을 추며..친구들을 사귀었다.
지금은 다들 연락이 안되지만..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시금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리라....
처음 6개월을 자취로 생활을 하던 난...생활비를 아끼는 겸...그 곳 사람들의 생활에 스며들 겸....하숙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엔 은행에서 일하시는 한 아주머니가 딸을 하나 데리고 사는 집이었는데 정말 나를 아들처럼 대해주셨다.
그 분은 원래 태생이 카리브해 연안이시라...꿈비아와 바제나또를 즐겨 추셨고 나에게 그 음악이 녹음된 테이프를 선물해 주시고...집에서 가끔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그밖에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여기선 생략.. 춤에 관한 얘기만) 하루는.... 그 아주머니께서 당원으로 있는 당의 한 국회의원이 선거자금 모금을 위한 파티를 한다시며...같이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아주머니의 딸과 그 애인 그리고 나 네명이...그 파티장을 찾았다.
파티장은 보고타의 산기슭인 깔레라라고 불리우는 곳에 있었는데 남산정도의 높이에 있는 큰 클럽에서 행사가 벌어졌다.
전면이 유리로 둘러져서....보고타 시내의 야경이 온통 다 보이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그 국회의원의 연설을 듣고...지지연설을 하고 식사를 하며....파티가 벌어졌다.
그때...역시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이...댄스시간....^^
난 처음에 못춘다며 빼다가...아주머니와 처음 춤을 추고...그 다음... 아주머니의 딸과 춤을 췄다.
동양인인 내가 그런 장소에서 춤을 춘다는 건 그곳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곧 그 행사의 주인공인 그 국회의원과 인사도 나누었다.
동양에서 오신 손님이 찾아주신거에 대해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며...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를 소개해 주신는 것이었다.
그때 한 점잖으신 신사 한분이 내게 오시면서.... 춤을 잘 춘다고 칭찬을 하시며...두 부부가 딸을 데리고 왔는데.... 딸이 혼자서 너무 심심해 한다며...춤을 같이 춰줬으면...하고 바라셨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그 아가씨와 춤을 추었다.
메렝게...살사...왈츠....내가 아는 모든 춤을 열심히 추고 있는데....
갑자기...플라멩고가 흘러나왔다.
내가 같이 추던 그 여자의 춤솜씨는 대단했다. 내가 옆에서 따라만 추고 있어도 주위의 시선은 온통 우리한테 쏟아졌고 모두를 빙 둘러싼 그 가운데에서... 둘은 열심히 춤을 췄다...그 이후..박수갈채....
내 인생에 그런 날이 있을줄은....보고타에 처음 도착한 그때까지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 후 이런 식의 내 춤은...계속되었다. 어딜 가든 춤을 출때면..시선을 받았고...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 선배가 그 나라 여자와 결혼을 하였는데...그 결혼식의 피로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당에서 예식을 마치고...한 식당에서 피로연이 열였는데... 처음엔 신랑과 신부가 춤을 추고..그 이후...모든 참석자들이 번갈아가며 신랑과 신부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왔다. 그리고 할머니와 손자가....할아버지와 손녀가...서로 어울려...춤을 추고 젊은 청춘남녀들은...서로서로 춤을 추며...새로운 커플의 탄생을...기대하고 있었다...서로 눈총을 주며..^^ 춤으로 어우러지는...결혼 피로연..... 급하게 후다닥...식을 올리고...피로연이라고는 식권을 들고 먹는 갈비탕 한그릇 그리고 피로연이랍시고 친구들이 모여...괴상한 장난을 하는....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와 비교해볼때..... 너무나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결혼을 할땐...이런 댄스파티를 했으면...하는 생각이..내 머리에 가득....
일년여간의 생활을 마치고...
보고타를 떠나는 날....
내가 친했던 많은 사람들과...송별 파티를 하고....
난 두개의 큰 가방을 들고...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내가 그 곳에서 가져온 가장 큰 것은...그런 가방들이 아니라.. 춤을 배움으로서 터득한 새로운 인생의 방식...그리고 열정.... 남미가 왜 열정의 땅으로 불리우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고... 내가 그런 열정을 지니게 될수 있었다는 것이....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일년간의 콜롬비아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있어 가장 힘들고 답답한 것은 바로 살사와 메렝게를 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직 출 수 있는 방법은 집에서 혼자 음악을 틀고서 파트너가 있다는 상상을 하며 혼자서 춤을 추는 것이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나 하루를 마치는 저녁때 쯔음 난 항상 살사와 메렝게 음악을 들었고 그러다 보니 우리집 식구들까지도 그 음악에 익숙해질 정도였다. 어머님과 같이 집안 청소를 할때에도 메렝게를 틀고서...스텝을 밟으며 청소를 했고 어머님은 잘은 못하셔도 메렝게 스텝을 곧잘 따라 하시곤 하셨다.
우리집안이 (음..이런게 자랑인지 욕인지 모르겠지만..) 식구들끼리 모이면 가끔 나이트도 가고 부모님이 예전에 모임 같은데서 지루박을 추실 정도라서 춤에 대한 감각은 있는지 별로 거부반응 없이 나의 혼자서의 춤추기는 계속 되었다. 추석날 차례를 모시고 저녁에 온 집안의 식구들이 모였을 때 새롭게 생긴 시간이 바로 메렝게 배우기였다. ^^
어머님과 메렝게를 추고 중학교 다니는 사촌여동생에게 메렝게를 가르쳐주어 같이 추고 작은 어머님들도 배워서 작은 아버님들과 추곤 하였다. 완벽하게들 추시진 못하셨지만 즐거운 명절의 하루를 보내었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라틴댄스집안의 탄생인가??? ^^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흥겨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라틴댄스의 본질이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 후 난 군대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역시 군대에서 나에게 가장 힘든건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고 춤을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상병이란 계급을 달고난 후부터는 테이프를 가지고서 혼자 휴대용 녹음기로 들으며 생각으로 춤을 추는 일종의 이미지트레이닝(?)을 했다. ^^ 게다가...(군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초소에 당직을 나갔을 때 소총을 파트너 삼아 지루한 시간을 춤으로 흥겹게 보낸 날들이 허다했다. (역시 난 춤에 loco 했었나 보다....^^)
군대에서 제대를 한 96년 봄 난 고시준비를 시작했고 예전의 내 성격에도 많은 변화가 필요했다.
친구를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런 나의 성격을 조금씩 고쳐야 했다. 하지만 사람의 근본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때 한 소식이 나를 놀라게 했다.
꽈 후배의 말에 의하면 홍대 앞에 라틴댄스를 출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며 그곳에서 외국인들이 모여 살사와 메렝게를 춘다는 엄청난 소식이었다.
그 때 그 소식을 듣자 마자 난 그곳을 찾아갔다.
그곳이 바로 마꼰도가 생기기 전...한국에서의 라틴댄스 메카 역할을 했던 보스톤이었다.
그곳에서 난 아르헨티나 영사의 남편인 라울을 만났고 지금 마꼰도에서 춤을 가르치는 마리아(본명 권은영)누나를 만났다. 그리고 브라질 인인 루이스를 알게 되고 캐나다인인 나탈리아를 만났다.
처음엔 외국인들 위주로만 운영이 되던 곳이라 한국인이 그곳에서 살사와 메렝게 를 춘다는 것이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난 주목을 받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콜롬비아 영사, 베네수엘라 대사관의 사무관, 멕시코 대사관의 사무관 등등 그밖의 많은 외국인을 친구로 사겼다. 춤으로서....
나중에 내가 해야할 외교에 필요한 친구를 사귈 수도 있으며 공부를 하다 답답한 마음을 한꺼번에 풀어버릴 수 있는 나의 탈출구....그곳이 보스톤이었다.
96년 한해동안 수많은 외국인과 그저 구경만 하고 있던 많은 한국인들에게 메렝게와 살사를 가르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즐기고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며 난 열심히 춤을 췄다. (음..제비의 인생고백 같은 느낌)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춤을 추며 96년은 지나갔고 나의 시험 일자는 다가오고 있었다. 11월 이후에는 3월에 있을 시험준비를 위해 보스톤의 출입을 자제했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96년을 보스톤에서 멋지게 보내었다.
통신을 시작한 것도 96년 여름부터였고 처음엔 하이텔을 이용하다가 나우누리에 찾아들게 되었다. 나우누리에서 난 사이버 라틴을 찾아내었고 라틴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통신에까지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반가왔다. 게다가 정모를 라틴댄스를 배워보는 시간으로 한다는 게시는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고 난 그 정모에 참석한다는 게시를 올리게 되었다.
처음으로 사라를 만난건 보스톤에서의 정모에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살사나 메렝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작한 정모였 지만 다들 마음속의 라틴열정을 숨길 수 없는 듯 했다.
그 정모 이후 난 사라의 빠질 수 없는 멤버가 되었고 통신에 들어오면 사라에 들어오는 것이 낙이 되었지만.....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잠시 춤추기를 멈추었다.
다시 3월...97년의 봄이 오자...난 기쁜 마음으로 보스톤을 찾았다. 하지만...한동안 찾아들지 않은 사이에 주인도 바뀌고 예정에 사귀었던 많은 사람들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마리아를 만났고 마리아에게 색다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보스톤 옆에 마꼰도라는 새로운 라틴빠가 생겼다는 소식....
그 이후 나의 무대는 보스톤에서 마꼰도로 옮겨졌고 그 곳에서 또다시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알레한드로 앙헬 등등 그리고 지금 사라의 시샵인 성호를 만나고 로꼬스의 짱인 재훈이를 만났다. 둘은 전공은 스페인어가 아니었지만 남미에 얼마간 여행을 갔다온 이후 라틴세계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고 우린 소주를 기울이며 친분을 쌓았다. 그들에게 난 나우누리의 사이버라틴을 소개해 줬고 그들은 지금 사라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
마꼰도의 주인은 예전에 보스톤에서 뵌 적이 있는 재경누님이었다. 재경누님은 성우신데....라틴음악과 춤을 즐기시는 분으로 한 미국인 친구와 함께 마꼰도를 차리셨다고 했다.
마꼰도에서 살사 메렝게 콘테스트를 했으나 참가하지는 못하고...... 친구인 라울의 제의로 용산 미군기지 내에 있는 드레곤 힐라쥐라는 호텔에서 있는 공연에 참가를 하게 되었다.
그 날은 라틴의 날로서 그 호텔에서 남미의 음식과 술과 음악과 춤이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행사의 일환으로 세쌍이 춤을 추었는데... 라울과 나탈리아 루이스와 그의 애인 그리고 마리아와 내가 그 세쌍이었다. 처음엔 라울이 탱고 시범을 보이고....그 다음엔 모두가 람바다 살사 메렝게의 시범을 보여서....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날의 참석자의 대부분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었는데....공연이 끝나고 다들 와서는 한국인이 그런 춤을 춘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는 말을 하며... 연방 칭찬을 해주었다. 난 으쓱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한편으로는 답답한 마음이 강했다.
처음에 이 행사에 참가를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했었는데 그 이유는... 그당시 한참 시끄러웠던 대만의 핵폐끼물을 북한에 들이는 사건이 있던 때에 미국의 핵폐기물이 미국의 용산기지로 흘러들어왔서 쌓여져 있다는 소식과 이태원에서의 미군의 아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기지내로 숨어버린 사건.... 그리고 그 외에 미군이 한국에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여러가지 해악들이 나를 분노케 하고 있던 때에 과연 내가 그 기지의 가운데 있는 호텔에서 많은 외국인 (특히 미군이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들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난 춤을 추러 갔었고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곳에서 많은 외교관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마꼰도로 뒷풀이를 갔다.
재경누나는 내 생일을 위해 음악을 틀고 포도주를 한잔씩 돌려서... 다들 내 생일을 축하해줬고 난 기쁜 마음으로 춤을 추었다.
비록 조금 답답한 마음이 없는건 아니었지만...춤을 춘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춤추는 것이 조금은 시들하게 되었다. 나 자신의 정체성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난 사라의 모임엔 계속 참석을 하였고 조금씩 춤들을 가르쳐 드렸다.
이태원의 문라이트에서 있었던 콘테스트도 이야긴 들었지만....별로 참석할 생각을 안하고 있다가....마리아 누나랑 30분가량 연습하고 급하게 가서 출전을 하였는데 뜻밖의 좋은 성적을 내었다. 3등 ^^;
그리고 재경누나의 제의로 성우협회의 연수회에 가서도 춤을 추었다.
조인트 동문회인 덕성여대에 있는 후배의 부탁으로 덕성여대 축제에 가서도 춤을 추었다.
그리고 주말이면 마꼰도에 가서 그 누구보다 더 흥겹게 춤을 추었다.
하지만...내 마음속 깊은 곳엔 무엇인지 모를 허전함이 가득했다.
98년 2월 이후 나에게 있어 춤은 오히려 짐이 되었다.
재훈이와 함께 로꼬스라는 모임을 만들기는 했지만 매주 참가하는 시간들이 점점 아깝게 여겨졌고 힘이 들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위해 투자되어야 할 많은 시간들이 춤으로서 낭비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더이상은 새로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나를 식상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춤은 나를 그냥 가만히 있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책을 쳐다보고 있다가도 음악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몸이 흔들렸고 지하철만 타면 홍대역이 눈에 들어왔다. 참자...참자..... 난 내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춤의 환상에서 이제는 깨어나자.......
이것이 줄곧 이어진 나의 춤에 대한 열정의 위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개척해 가는 면도 있지만 주위의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참 춤에 시들해 있을 쯔음.....마꼰도와 이태원의 문라이트에서 그리고 심지어 미국에까지 가서 살사를 배우고 연구하고 음악까지 수집해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살사에 빠지기 시작하신 민수형 그리고 파트너이신 가브리엘라누나, 나한테 처음 96년 말쯔음 살사의 기본스텝과 턴을 가르쳐 달라고 하실때의 두사람이 아니었고 이제는 어떤 외국인보다 더 나은 춤을 추게 되었다. 그 분들의 살사는 내가 추던 중남미식 살사가 아닌 미국에서 더 세련되게 변형된 뉴욕식 살사였다. 나는 구경조차 하지못했었던-보고타에서 그런 스텝이나 부엘따를 보지 못했다.- 화려한 동작들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살사계의 대부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로꼬스의 짱인 재훈이는 그동안 부단한 노력과 꺼질줄 모르는 열정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의 멋진 살사를 완성하여 춤을 추었고 꺼져가는 춤에 대한 나의 열정을 다시 되살려 주었다.
그리고 마꼰도에서 살사와 메렝게를 가르치던 다운이형 역시 그간 엄청난 연습을 통해 또다시 새로운 스타일의 살사를 이루었다. 미국 L.A에 가서 LA의 특색있는 살사를 배워와서는 자신의 스타일과 접목시키는 노력에 게으르지 않아 멋진 춤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전에 처음 보스톤에 구경을 와서 메렝게와 살사를 배우던 현정이와 부정이도 뉴욕살사를 열심히 연습하여 나름대로 멋진 춤을 추고 있었고 김홍근 선생님과 영진이도 로꼬스 모임에 충실하며 멋진 춤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열정을 보고 듣게 된 나에게....예전과는 다른 열정이 다시 불붙게 되었다. 오히려 잠시나마 춤에 대해 회의를 가졌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였다.
이에 나의 춤을 다시 불붙게 하는 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김유리님의 공연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결성되 라틴그룹인 COBANA의 창단 공연에서 유리님은 싱어를 맡았고 그 춤을 우리 로꼬스에서 맡기로 하고 그 일을 나와 재훈이 현정이 그리고 수연이가 함께 나서서 하기로 하고 연습을 시작하였다.
솔직히 내가 추던 춤은 단지 내가 즐기기 위한 춤이었고 남에게 감히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단조로운 동작에 음악의 리듬과 느낌에 충실하던 나의 춤은 단지 나만의 것이었으나 공연을 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예전과 같이 단순함만을 가지고서는 불가능했다. 더 많은 연습과 새로운 동작들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다시 춤에 내가 열중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연 당일.......비록 시간관계상 많은 연습을 하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연대 백주년기념관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춤에 대한 나의 열정은 다시 활활 타올랐다.
학교에서 과후배들이 중심으로 'La Vuelta'라는 살사모임이 만들어졌고 그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학교 수업 중 고전음악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하게된 발표도 살사에 대한 것이었으며 나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살사에 대해 더 가까이 접근하고 우리학교 최대의 공연장소인 인촌 기념관에서 오백여명의 학생들을 앞에두고 춤을 추었다. 그 일 이후에....우리학교에서 라틴댄스를 추는 희안한 인간으로 유명해졌고 나의 살사에 대한 열정은 더 깊어갔다.
내가 다시 살사의 열정이 살아나게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로꼬스'의 역할이 가장 컸다. 마꼰도나 보스톤이라는 공간적인 환경은 나의 열정을 다시 살아나게 하기엔 역부족이었고 로꼬스라는 인적 정신적 환경이 나를 다시 불붙게 하는 휘발유가 되어주었다.
그 이후 라틴댄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솔이손, 사보르 라티노, 바히아, 말만, 필라댄스 등의 새로운 라틴클럽들이 생겨났다.
나는 그 이후 내가 사는 곳인 안암동에서 가까운 솔이손을 자주 찾았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좋으신 사장님과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까람바 재훈이가 그곳을 자주 찾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99년 외시에서 낙방한 이후 방황을 하던 난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갈 계획을 세웠고 6월 말 출국전까지의 시간들을 솔이손에서 보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레슨을 해주고 좋은 많은 사람들을 새로 사겼다.
미국으로 가기전 솔이손에서 이루어진 환송회는 라틴댄스파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안형수님의 기타연주와 김유리님과 친구 의석이의 라틴노래들은 너무나 멋있었다.
미국으로 간 나에게 있어 라틴댄스는 큰 무기가 되었다. 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데에서도 그리고 플로리다에서 만난 수많은 라띠노 친구들을 사귀는데도 라틴댄스는 큰 힘이 되었고 그로 인해 난 정말 많은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나의 춤은 솔이손에서 이어졌고 '리키마르틴' 등의 라틴가수들의 열풍으로 우리 나라 내의 라틴댄스는 많은 유명세와 인기를 안을 수 있었다.
여러 인터넷상의 동호회들이 생겨나고 거의 만여명에 다다르는 사람들이 춤을 배우고 추고 있다.
난 얼마전 '스윙'이라는 잡지에 라틴문화의 열풍에 관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이 라틴댄스를 직업으로 삼고싶지는 않다. 다만 가장 좋은 취미로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정말 멋진 양념으로 삼고싶다.
살사와 메렝게는 파트너가 함께 추는 춤이다. 난 오랜시간을 파트너가 없이 혼자 춤을 추었고 공허함을 달래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난 혼자가 아니다. 추고자 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춤을 출 수 있다.
나에겐 수많은 꿈들이 있다.
그 중에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꿈은 결혼한 이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댄스파티를 즐기는 것이다. 집에는 작은 댄스홀과 빠를 만들어 언제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출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힘들고 험난한 인생을 가까이서 춤과 함께 한다면 그 어떤 삶보다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 우리 모든 로꼬스 회원들이 참가하여 멋진 뒷풀이로 살사, 메렝게 파티를 벌이는 것 역시 작은 바램이다. 내가 예전에 선배의 결혼식에서 본 그 댄스파티와 같이 멋진 파티가 나의 결혼식에서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전에는 하지 못했지만 바램을 버리지 않고 있었고 지금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라틴댄스가 있는 한 내 삶은 언제나 풍족하고 멋진 삶이 계속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 인생을 뒤돌아보며 회상을 할 때, 이 춤과 함께한 나의 시간들이 너무나 기쁘게 여겨질 것이고 반평생을 함께한 백발의 아내와 함께 가볍고 아름답게 살사를 추며 인생의 황혼기를 보낼 것이다.
와~~~깊은 열정에 감탄사가 나오는군요.. 그리고 살사를 배우게 되신 계기를 보면서 정말 깊은 인연이 있는 분 이라고 느껴 집니다.. 라틴을 배울수 있는 콜롬비아를 가시게 된것두 그렇고.. 거기서 그춤에 매력을 느끼게 된것두 그렇구..선배님이 혼자 비디오를 보면서 리듬을 공부했다는 것두 그렇구.. 초보인 저에겐 많이 놀라울 뿐입니다.. 또 살사를 가장 좋은 취미로 삼고 싶다는 말도 공감이 가네요.. 우연히 동호회에 들었지만 선배님의 열정과 노력을 보면서 저역시도 조금 더 조금더 노력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적어도 이분은 풍요로운 삶을 만드신 분이구나 하는생각이 드네요...누구나 무언가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주고, 많은 영향을 끼치는것이 있는데...적어도 이분은 스스로 선택했고, 열정적으로 행하였고, 그것이 가장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는것 같아서 부럽다는생각이 듭니다.
사람에게는 3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는데, 대부분 알지 못한다고 하지요. 글을 읽으면서 축복을 많이 받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몰입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 많은 삶의 유혹이 있었을텐데...자기 자신에 확고한 신념과 열정...나 자신에게 반문을 던지게 되면서 반성하게 되네요..^^
이 사람 대단하네요~~ 정말 열정이 가득하네요.. 그리구 저렇게 할수 있는 자신감도.. 끝까지... 어떻게든 하려고 했든 그 열정도..... 다른나라에선..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해요... 살사를 추는걸 봤을때..즐거워보이기도 했고 글구 멋있었어요....... 배우고 싶단 생각에 취미삼아 시작을 한거였는데.. 이왕 할거라면 좀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저렇게 출수 있으면... 더 즐겁구 유쾌할거 같애요....^^ ...즐겁게 출수 있을때까지...열심히해야겠어요..^^ 사실 지금두 즐겁답니다...^^
춤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시네요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고 할때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라던데 아름다운 인생을 사시는 분이시네요^^ 아무 열정도 없이 시간에 쫓겨 사는 제 인생이 초라해 보이네요 살사를 시작한 이상 이분 보다는 못하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가 끓어 오르네요 살사를 길수 있는 수준이 될때까지 GO GO
한참~ 글을 읽으면서 누구나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인생의 뭔가가 필요한것이 맞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저도 연기에 미쳐서 10년 가까이 언더생활이라고 해야하나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연기는 취미로 갖기는 너무 힘든 일이었거든요..돈이란 불가피함에 매달려 3년쯤을 보내다가 10년동안 이상으로 삼던것이 없다보니 너무 상막했답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저에겐 춤이란것이 항상 숙제로만 남아서 도전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는데, 이젠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에는 여러요인이 있겠지만, 내게 맞는 내가 좋아하는 즐길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원동력이 되니.. 늘 멋지게 살래요.!!
우와. 저도 언능 언능 연습 많이 해서 실력을 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두.. 결혼할 때 라틴댄스 파티를 열고 싶다는... 라틴 댄스가 제 삶의 활력소가 된 것 같아요! 제 열정이 식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는 아직은 섣부른 욕심도 생겼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각국의 사람들과 또 처음 만나는 사람과 친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춤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난 항상 뭔가...그게 사람이들, 취미든, 공부든 푹 빠지는 성격이 아니지만 살사엔 푹 빠져보고 싶어요...과연 그렇게 될수 있을까....^^
춤에 대한 열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정을 쏟아붓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대학교 초반에는 댄스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동아리 친구들과 춤 연습도 많이하고 공연도 했는데 취업준비,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춤과 멀어지게 됐어여..항상 음악이 들릴때면 꿈틀꿈틀 소심하게만 움직였던 나의 어깨, 하지만 이제부터는 자신감이 생길것 같아요~ 이렇게 춤을 사랑하고 라틴댄스를 즐기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춤이라는 열정을 알게된 지금 많이 행복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조금은 늦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때가 가장 적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뛰어볼래요~
첫댓글 정말 춤에 올인 하셨던 분이시네요... 저도 2002년쯤인가에 보스톤과 말만에 갔었던 적이 있었던 듯 ㅡ_ㅡ;; 그때 살사라는 춤을 처음 접했었거든요. 아무튼 무언가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멋있는 분이시네요!!!
와~~~깊은 열정에 감탄사가 나오는군요.. 그리고 살사를 배우게 되신 계기를 보면서 정말 깊은 인연이 있는 분 이라고 느껴 집니다.. 라틴을 배울수 있는 콜롬비아를 가시게 된것두 그렇고.. 거기서 그춤에 매력을 느끼게 된것두 그렇구..선배님이 혼자 비디오를 보면서 리듬을 공부했다는 것두 그렇구.. 초보인 저에겐 많이 놀라울 뿐입니다.. 또 살사를 가장 좋은 취미로 삼고 싶다는 말도 공감이 가네요.. 우연히 동호회에 들었지만 선배님의 열정과 노력을 보면서 저역시도 조금 더 조금더 노력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적어도 이분은 풍요로운 삶을 만드신 분이구나 하는생각이 드네요...누구나 무언가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주고, 많은 영향을 끼치는것이 있는데...적어도 이분은 스스로 선택했고, 열정적으로 행하였고, 그것이 가장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는것 같아서 부럽다는생각이 듭니다.
열정이 정말 대단하시네요~사실 전 춤에 대해 욕심이나 열정은 그다지 없었는데 이글보니 반성하게되네요~^^ 살사는 열심히해서 잘추고싶어집니다~
사람에게는 3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는데, 대부분 알지 못한다고 하지요. 글을 읽으면서 축복을 많이 받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몰입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 많은 삶의 유혹이 있었을텐데...자기 자신에 확고한 신념과 열정...나 자신에게 반문을 던지게 되면서 반성하게 되네요..^^
이 사람 대단하네요~~ 정말 열정이 가득하네요.. 그리구 저렇게 할수 있는 자신감도.. 끝까지... 어떻게든 하려고 했든 그 열정도..... 다른나라에선..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해요... 살사를 추는걸 봤을때..즐거워보이기도 했고 글구 멋있었어요....... 배우고 싶단 생각에 취미삼아 시작을 한거였는데.. 이왕 할거라면 좀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저렇게 출수 있으면... 더 즐겁구 유쾌할거 같애요....^^ ...즐겁게 출수 있을때까지...열심히해야겠어요..^^ 사실 지금두 즐겁답니다...^^
춤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시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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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열정을 가지고 할때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라던데 아름다운 인생을 사시는 분이시네요^^ 아무 열정도 없이 시간에 쫓겨 사는 제 인생이 초라해 보이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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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를 시작한 이상 이분 보다는 못하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가 끓어 오르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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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를 ![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길수 있는 수준이 될때까지 GO GO![!](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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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부럽기도 하고 무엇에 대한 자신의 의지와 결의,새로운것에 대한 도전등은 남자로서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도 글쓴이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상상이 되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분 행복하구나!!
무엇인가를 가슴에 품은 사람의 힘이 느껴지는 글이네요...얼굴은 모르지만,,왠지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고 계시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합니다..이거~~열심히 해야겠는 걸요^^
살사가 이렇게 한국에 정착하게 된거군요~정말 화려하고 멋진 인생인거같아요. 저도 소박한 꿈을 가져봅니다 . 가족과함께 야외에나오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을.. 글을 읽으니 마음속으로 한장면 한장면을 보는거 같습니다. 열정 !! 정말 아름다운 말입니다.~
한참~ 글을 읽으면서 누구나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인생의 뭔가가 필요한것이 맞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저도 연기에 미쳐서 10년 가까이 언더생활이라고 해야하나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연기는 취미로 갖기는 너무 힘든 일이었거든요..돈이란 불가피함에 매달려 3년쯤을 보내다가 10년동안 이상으로 삼던것이 없다보니 너무 상막했답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저에겐 춤이란것이 항상 숙제로만 남아서 도전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는데, 이젠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에는 여러요인이 있겠지만, 내게 맞는 내가 좋아하는 즐길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원동력이 되니.. 늘 멋지게 살래요.!!
멋있습니다. 춤에 대한 열정이... 이 글은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네요. 요즘 슬슬 노래가 흥겹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토요일이 기다려지고... 글의 주인공 처럼 저 역시 열정적이고 더욱 도전적이고 싶습니다.
우와. 저도 언능 언능 연습 많이 해서 실력을 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두.. 결혼할 때 라틴댄스 파티를 열고 싶다는... 라틴 댄스가 제 삶의 활력소가 된 것 같아요! 제 열정이 식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는 아직은 섣부른 욕심도 생겼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각국의 사람들과 또 처음 만나는 사람과 친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춤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난 항상 뭔가...그게 사람이들, 취미든, 공부든 푹 빠지는 성격이 아니지만 살사엔 푹 빠져보고 싶어요...과연 그렇게 될수 있을까....^^
춤에 대한 열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정을 쏟아붓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대학교 초반에는 댄스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동아리 친구들과 춤 연습도 많이하고 공연도 했는데 취업준비,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춤과 멀어지게 됐어여..항상 음악이 들릴때면 꿈틀꿈틀 소심하게만 움직였던 나의 어깨, 하지만 이제부터는 자신감이 생길것 같아요~ 이렇게 춤을 사랑하고 라틴댄스를 즐기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춤이라는 열정을 알게된 지금 많이 행복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조금은 늦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때가 가장 적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뛰어볼래요~
열정이 대단하세요^^ 요즘 들어 느낀거지만 여태까지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에너제틱함,,,살사가 그걸 알게 해준것같아요!!! 살사가 제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제 삶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된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