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베트남 선교시찰
이기숙
‘베트남’ 하면 우선 선입관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이 못 마땅하여 별로 가보고 싶지 않은 나라이다. 미국이 우방국가로 만들려고 돕다가 실패한 국가, 사회주의 국가인 월맹이 최대 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8년간의 전쟁을 치르고도 끝내는 승리한 나라이다.
면적은 우리한반도의 1.5배이고 인구는 7700백만 정도인 나라, 130년(1817-1954)이상 불란서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54년에 비로소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남과 북으로 나뉘어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남쪽인 월남을 우방으로 만들려는 미국을 도와 우리국군도 전쟁에 참여하였던 나라이다.
미국은 막대한 자원과 신무기로 월맹을 쳐 통일을 하려 했으나 월맹군의 땅굴작전은 지칠 줄을 모르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결국은 미국이 손을 들고 말았다. 구찌 땅굴을 관람하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금 통일된 베트남은 정치는 사회주의지만 낙후된 경제를 살리는 길이 자유경제임을 깨닫고 서서히 개방의 문을 여는 나라이다. 고로 원수로 알던 미국과도 수교를 맺으며 국민의 95%가 불교이지만 한국기독교협회에서 지원하는 선교를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병원을 세워주고 의료비를 지원하며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그곳에 교회를 지어주고 목회자들에게 선교비를 주는 등 물질로 공략하는 간접 선교를 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국제복지협회라는 이름으로 베트남을 돕는 협회가 있다. 이 협회에서는 베트남을 돕기 위해 각 교회 또는 개인에게서 선교비를 모금하여 일년에 두 세 차례 베트남을 방문하여 선교비를 전달한다. 선교비 전달 차 가는 길에 선교에 뜻이 있는 사람들과 동행을 하는데 이번 코스에 같이 가게 되었다.
협회의 사무총장인 박창환 목사님과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과 사모들이 함께 갔다. 전용버스를 이용하여 여러 교회를 순방하는데 우리가 타고 다니는 버스는 방금 출고된 듯 아주 깨끗한 새 차인데 우리나라의 현대 차였다. 이곳에서의 우리나라 자동차는 그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짱의 신학교와 빈프억 교회를 방문하고 그 지역 교역자들을 만나 선교비와 장학금을 주었다. 나짱에서 퀴논 까지 300km 이상 이동하면서 닌호아, 반닌,뚜이호아, 송까우 교회 등을 방문하였지만 지루한 줄 모르고 퀴논 까지 왔다.
다음날도 우리 일행은 퀴논지역의 여러 교회를 방문하여 장학금이나 선교비 또는 교회 건축비를 전달하였다. 해안선 도로를 따라 가면서 년탄, 득포,포득 호이안 교회등 비교적 가까운 교회는 들려서 주고 거리가 먼 곳에 있는 교회는 불러서 오게 하여 전달하기도 했다.
그 중 두 교회에서는 우리 일행에게 점심을 대접하여 그들의 따듯한 사랑을 맛보게 하였다. 한 교회는 지금 건축중인 중부지역 포득 교회로 건축비 20000$을 전달하였다. 다른 한 교회는 서울 신현교회 조홍량 장로님의 딸인 조재선 집사님이 몇 년 전에 이곳을 방문하였다가 이곳 교회 형편을 듣고는 끼고 있던 다이아 반지를 빼 선뜻 목사 부인에게 끼워 주었다는 교회이다. 반지를 받은 사모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단다.
그는 베트남의 교회를 건축할 것을 아버지인 조장로님과 약속을 하였단다. 그러나 심장이 약한 그는 수술을 받다가 운명을 달리 해 하늘나라로 갔단다. 아버지 조 장로님은 625때 목숨을 걸고 살려낸 딸을 잃고 늘 상심하고 있다가 딸의 선교열정을 기념하여 북쪽에 하이쯔엉 교회를 건축하였다.
이 교회에서의 점심 대접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 성찬이었다. 우리는 한 끼 식사비 정도를 사모에게 전해주고 왔다. 이 부녀의 아름다운 뜻은 업적과 함께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국내선 비행기로 북쪽 하노이를 거쳐 하롱베이로 가서 해상 관광을 마친 우리는 남딘이란 도시로 갔다. 남딘은 유명인사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며 여러 가지 입지 조건이 좋아 20여 년 후에는 이곳이 베트남의 중심지가 되도록 구상하고 있다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아가페병원’은 5 년 전에 우리나라 베트남 선교협회 지원으로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직접 선교가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병원을 지어주고 운영비를 지원해 주겠다니 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5억을 들여 지었다는 이 병원은 터는 제법 넓지만 규모나 시설은 우리나라 큰 병원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이 아가폐병원이 사랑의 병원으로 불리어 질만큼 소문이 나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단다.
이번 방문은 ‘아가페병원’ 창립 5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하는 일정이었다. 행정부원장이 나와 그간의 업적을 보고하는데 74,350명의 환자를 치료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한국기독교국제사회복지협회의 도움이 크다며 아낌없는 감사의 표시를 한다.
이어 박 사무총장의 축사는 격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계속 돕겠노라고 하니까 우뢰와 같은 박수로 화답을 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비교적 체구가 왜소한 그들 앞에 선 박 사무총장이야말로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이 빛이 나고 돋보였다. 덕분에 우리도 환대를 받았다. 식이 끝난 후 점심 식사를 대접받고 선물까지 받았다. 우리는 합창을 불러 답례를 하였다.
오늘의 행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하노이로 돌아와 한인교회를 방문하였다. 이 베트남에 한인 교회는 호치민에 하나 하노이에 하나뿐이란다. 아직 외국인이 직접 선교 활동은 못 하게 한단다.
서서히 개방의 문이 열리고 있는 나라이니 우리는 물질로 간접 선교를 할 수밖에 없단다. 우리나라 베트남 선교협회에서 돕는 교회가 45개나 되는데 이번 49차 방문에는 16개 교회를 돕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가페병원’ 후원금은 매달 1500$씩을 전달한단다.
베트남은, 정치는 하노이가 중심이 되지만 경제의 중심은 호치민이란다. 도로 사정은 이제 막 여기저기 고속화도로를 건설 중이고 철도는 단선이고 시내버스나 전철이 없다. 그래서인지 거의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움직인다. 최근 하노이에는 시내버스가 몇 대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은 순수하고 겸손하며 어린아이같이 단순한 것 같다. 잔꾀를 부리거나 사기를 치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사람들은 선교라 하면 특히 외국 선교라 하면 내 나라 내 땅에도 아직 선교를 할 일이 많은데 무슨 외국까지나. 라는 생각들을 갖는다. 나도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교지 시찰로 인하여 나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 내 배를 다 채우고는 남 줄 것이 없다.
* 정치나 사상으로 우방을 만들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사랑으로 베풀어야 만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다.
* 우리도 조건 없이 주는 아가페사랑을 실천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2002. 8
2002년 10월 사모신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