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1 : 거긴 비만 오면 원래 그래. 오래됐어 그런지...
경비 2 : 장마뿐이 아니고 평소에도 비가 조금만 많이 왔다싶으면 물바다가 되는거지.
관리과장 : 왜요? 멀쩡히 배수로가 있는데요. 배수로 준설작업을 잘 안 한거 아니에요?
기전기사 1 : 안 하긴... 해마다 정기적으로 하기도 하거니와 비만 오면 문제니까 그 때마다 긁어내지. 소용없어, 그래도...
관리과장 : 흠... 문제가 뭘까요? 장마때 보니까 완전 물바다이던데..
경비 3: 나무뿌리....
관리과장 : 나무뿌리요?
경비 4: 그 배수로 근처에 큰 나무들이 많이 있지? 그 나무들 뿌리가 뻗쳐서 그래....
관리과장 : ???
기전기사 2 : 맞어, 나무뿌리땜에 그래... 나무뿌리는 물을 따라가거덩. 조금만 틈새가 있으면 뿌리를 뻗어 버려.
관리과장 : 나무뿌리가 배수로를 꽉 막고 있다는 거에요? 그럼 해결을 해야죠. 그렇다면 이 문제는 한 두해의 문제가 아니었네요?
경비 1 : 비가 조금만 왔다하면 물바다 되는거여~` 오래 됐어 그런지... 몇 년동안 해마당 그런 걸 뭐..
기전기사 1 : 뭔 수로 해결해... 모르지 뭐, 공사업자 부르면 될지도. 돈 써서 해결 안 될 건 없지..
흠, 몇 년동안 비만 오면 물바다인데 왜 해결이 안 되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물이 안 빠지는 배수로의 길이가 대략 80m정도인데 이 중에서 일체형으로 된 콘크리트 배수관이 15m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겁니다.
즉 스틸 그레이팅으로 된 부분은 열고 준설작업을 할 수 있는데 일체형으로 된 콘크리트 배수관은 통째로 깨지 않는 한 작업이 불가능하다라는 것이죠.
또 하나의 문제는 배수로의 최종 끝인 맨홀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라는 겁니다 ^^
도면엔 분명 맨홀이 있는데 현장에는 없는, 귀신 곡 할 노릇이....
일체형 콘크리트 배수관을 깨고 작업을 하고 다시 설치하고 근처 맨홀로 배수관을 뚫는데 필요한 경비가....
가견적을 받아보니 200만원 가깝더군요.
고민스럽더군요.
결제를 올려 볼까... 무식하게 한번 덤벼볼까... 매 번 물바다되게 내버려 둘 수는 없고....
예전 직원들이 몇 번을 시도하다 실패한 걸 내가 한다고 될까....
결론은,
무식하게 덤벼보기로 했습니다. 고민스러울 때는 무식한 게 장땡인거죠. ^^;;;
화창한 초여름 아침부터 안 된다고 투덜거리는 경비원들, 기전기사를 모두 동원해서 갔습니다.
무식하게 덤벼든 방법은 이렇습니다.
1. 압력을 최대로 건 소방호스로 해당 부분에 물을 쏩니다.
- 나무뿌리와 엉켜 있을 흙을 제거하기 위해서요.
2. 손이 닿은 곳까지 나무뿌리를 잡아 뜯습니다.
3. 전지가위를 이용해서 닿는 곳까지 나무뿌리를 잘라냅니다.
4. 그리고 갓난아기 손목 굵기만한 1m짜리 쇠파이프를 빙글 빙글 돌려가며 컨크리트 배수관으로 넣습니다.
- 수 년에 걸쳐 배수로를 막을 정도의 나무뿌리라면 아마도 미친 년 머리카락처럼 서로 엉켜 있을 것이고 그 엉킨 힘을 이용해서 강제로 뜯어내려고요 ^^
무식했던 과정은 간단한데 역시나 어렵더군요.
쇠파이프와 나무뿌리가 잘 엉키지도 않고 어쩌다 걸렸다 싶으면 바로 톡톡 부러지고....
출근하자마자 시작한 일이 점심때가 되어도 뜻대로 안 되는 겁니다.
배수관과 배수관 사이의 조그만 틈새로 비집고 들어 온 나무뿌리라 굵기는 그다지 굵지 않은데... 정말 대단한 나무뿌리구나 싶더라고요.
포기를 해야 하나... 싶을 즈음에,
아, 걸린 겁니다. 느낌이 오는거에요.
낚시하시는 분들, 월척 걸렸을 때 느낌 아시죠?
걸렸구나하는 강한 느낌과 함께 바로 직원 4명이 달라붙어 살살~~ 그러나 강하게 잡아챘습니다.
좀 지저분하게 비유를 하자면 코 후비다가 왕건이 걸려서 뺄 때?
뭐 그런 기분입니다.
무겁던데요.
아래 사진은 당시 빼 낸 나무뿌리 덩어리의 일부입니다.
사진상으로는 별 게 아니죠?
무게가 하도 무겁고 부피가 커서 버리기 전에 토막을 낸 후 찍은 사진이라 그렇습니다.
경비원 3분, 기전기사, 저까지 5명이 오전내내 전투를 벌인 결과입니다. ^^;;
뭐 이렇게해서 문제 하나는 해결을 했는데....
맨홀이 답이 안 나오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배수로와 연결된 맨홀이 없으니 말입니다.
가장 가까운 맨홀로 어떻게든 연결을 하려니 중간이 단지 내 도로라 아스팔트를 까야 하는데 이건 엄두가 안 나고요...
무식하게 또 들이댔습니다.
천만다행히도 문제의 배수로 끝 부분이 단지 내 정원인거에요.
그리고 그 정원너머에 맨홀이 하나 있고요.
아스팔트를 깔 수는 없어도 땅이야 못 파겠습니까?
투덜거리는 직원들 달래가며 한마디로 삽질을 시작했습니다. ㅎㅎㅎ;;;
그래서 다음 사진과 같이 배수로를 만들었지요.
작업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 빼고 하루 꼬박 걸렸습니다. 엄살 피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힘들었던 작업이었어요.
하지만 마음만은 기가막히게 통쾌했던 작업이었습니다 ^^;;
아직도 나무뿌리를 끄집어 낼 때의 느낌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대표회장 : 정말 고생했습니다. 정말 고생했어요. 수고많았는데 식사라도 푸짐하게 하세요.
관리과장 : 영양탕...으로 먹어도 됩니까?
대표회장 : 드세요, 맘껏 드세요. 소주도 한잔하시고 모자라지 않게 맘껏 시켜 드세요.
나무뿌리와의 전투후에 허리띠 풀고 맘껏 영양탕 먹었던 하루였습니다 ^^
첫댓글 우리 아파트에도 이런 숨은 일꾼이 있을 것입니다. 찾아 내어 상을 줍시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박수를 보내려는데..우리 아파트가 아니네요 그래도 속이시원합니다 우리 아파트 에도 수고하시는 분들이 많을겁니다 ~~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137동 경비실 화장실 오수관,
127동 경비실 화장실 오수관
129동 경비실 화장실 오수관
나무뿌리가 미세한 오수관 틈새으로
뿌리가 성장해서 이 경우와 똑 같습니다.
과거 설비과에서 원인을 찾지 못하다가 원인을 제거해서
관통이 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