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과 모더니즘 시: 신비평적 읽기
안 영 수 (경희대 영어학부 명예교수)
1. 문학의 조건 (Criteria of Literature)
문학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어떤 것이 순수문학이고 어떤 것은 순수문학이 아닌가 하는 문제는 두 가지 범주에 의해 결정된다. 첫 번째 코드는 외부적인 요소(extrinsic elements)이고 두 번째는 내재적 요소(intrinsic elements)라고 할 수 있다. 외부적인 요소는 그 작품이 쓰인 시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문화 코드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면 김지하 선생이 쓴 오적은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출판 금지 당했고 외국의 경우 로렌스(D. H. Lawrence)의 소설 챠타레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은 외설문학이라고 영국에서는 출판 금지가 되었다.
그러나 외부적인 조건만으로 문학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16세기 영국의 르네상스 시대에는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보다 벤 존슨(Ben Jonson)이 계관시인으로 당시의 추종자들을 ‘Ben's Tribes"라고 부를 만큼 독보적인 문인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잊혀진지 오래고 오히려 세익스피어는 영문학의 정점에서 현재도 세계 도처에서 그의 극이 공연되고 있다. 형이상학 시의 원조인 존 던(John Donne)도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한 이단자였지만 20세기에 이르러서 그리어슨(Herbert J. C. Grierson)과 엘리엇(T. S. Eliot)에 의해 재발견되어 현대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익스피어와 던이 영원히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문학이 갖고 있는 내재적인 조건 때문이다. 내재적 조건은 시적기능(poetic function), 허구성(fictionality), 그리고 당시의 문학 코드와 비교(Comparison with the work with the existing code)하여 전통성을 이어갈 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새로운 문학 양식을 창출하여야 한다.
첫째 조건인 시적 기능(poetic function)이란 무엇인가?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은 언어의 기능을 아래와 같이 구분하였다.
1. Expressive Function(표현기능) : to express one's emotion
2. Conative Function(의욕기능) : to influence others
3. Referential Function(조회기능): to provide information about a referent
4. Metalinguistic Function(메타언어기능) : to clarify the word itself
5. Phatic Function(의례기능) : to create contact with people
6. Poetic Function(시적기능) : to play with the language
위의 여섯 가지 언어 기능 중에서 시적기능이란 언어를 놀이의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소리가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어 음악성이 생기도록 하는 일종의 게임이다. 스펜더(,Stephen Spender)는 「낱말」(“Words")이라는 짧은 시에서 시 쓰기를 낚시에 비유하였다.
낱말이 물고기처럼 깨문다.
그것을 자유롭게 바다로
되던져버릴까.
사색이 꼬리와 지느러미를 펄떡이는 곳에?
아니면 그것을 낚아
접시 위에 각운을 맞출까?
The word bites like a fish.
Shall I throw it back free
Arrowing to that sea
Where thoughts lash tail and fin?
Or shall I pull it in
To rhyme upon a dish?
망망한 대해에 낚시를 드리워 물고기를 낚아 올리듯이 시인은 하구 많은 언어들 속에서 꼭 맞는 표현을 낚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글쓰기란 시인이나 소설가나 모두 언어를 운동선수가 공을 갖고 경기 규칙에 따라 경기하듯이 원하는 목적에 맞게 만들어낼 때 즐거움과 함께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의 목적은 사람을 계도(Indoctrination)하거나 저항(protest)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entertainment)이다.
두 번째 조건인 허구성(fictionality)이란 문학 텍스트는 모두 허구라는 것이 전제된다. 작품 속의 화자(persona/ speaker)는 작가와는 엄연히 다르다. 특히 시에 나오는 화자와 시간 그리고 장소는 읽는 독자에 따라 무한히 변한다 (indeterminated). 그래서 독자는 화자의 발화(utterance)를 자신의 말과 동일시하게 된다. 텍스트에 표현되는 사랑, 슬픔, 분노, 절망 등이 독자의 것이 된다.
세 번째 조건은 기존 문학작품과 비교되어 전통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것이 가미되어 새로운 문학 양식을 창조하여야 한다. 영문학의 계보를 잇는 세익스피어, 던, 밀튼(John Milton), 드라이든(John Dryden),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컬리지(Samuel T. Coleridge), 테니슨(Alfred Tennyson), 브라우닝(Robert Browning) 등이 각 문학사조를 대표하는 정전에 등재된 이유가 전통의 계승과 아울러 독창성을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2. 형이상시와 모더니즘
19세기의 영국 문학사조는 낭만주의와 빅토리아 시대를 거친다. 대영제국의 번영과 낙관주의로 일관된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동시에 과학의 발달과 종교적 회의와 불안과 함께 전통적인 가치들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문학의 특징은 인생문제, 현실문제로 귀착되어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태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과 경제 공황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극심한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된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따른 빈부 격차, 전쟁으로 인한 대량살상, 권위에 대한 도전, 기독교의 붕괴 등 유럽을 지탱하였던 문화 코드는 중심을 잃게 되었다. 당시의 유럽의 혼란 상태를 예이츠는 「재림」(“Second Coming”)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점점 더 넓어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매는 주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만물이 와해되어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완전한 무질서가 세상에 범람한다.
핏빛 조류가 흘러넘친다. 사방에
순수의 의식이 익사한다.
선한 자는 신념을 잃고, 악한 자는
열정적인 집념으로 가득 차 있다.
Turning and turning in thee widening gyre
The falcon cannot hear the falconer;
Things fall apart; the center cannot hold.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
The blood-dimmed tide is loosed, and everywhere
The ceremony of innocence is drowned;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그러나 1910년대의 문학의 주류는 빅토리아 문학을 계승한 조지안 (Georgian) 시인들이었다. 이들은 거창한 종교. 철학적 주제를 피하여 자연. 사랑. 인생의 안일한 가정생활과 전원 풍경을 소박한 시어와 운율 형식으로 노래하였다. 대표적인 시인인 데이비스(W. H. Davies)의 「안락」(“Leisure”)을 예로 들어보자.
What is this life, if, full of care,
We have no time to stand and stare,
No time to stand beneath the boughs
And stare as long as sheep or cows.
No time to see, when woods we pass,
Where squirrels hid their nuts in grass.
No time to see, in broad daylight,
Streams full of stars, like skies at night.
No time to turn at Beauty's glance,
And watch her feet, how they can dance.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도전장을 낸 이단자들이 파운드(Ezra Pound)와 엘리엇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건너온 엘리엇은 이미 불란서 시인 라포그(Jules Larforgue)를 모델로 1911년 경에 「프루프록 연가」(“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를 썼다. 당시의 영국과 미국에서 그의 문학적 멘토를 찾을 수 없었던 엘리엇을 발굴한 사람이 바로 미국을 “반야만국”이라고 비판하면서 영국으로 먼저 와 있던 파운드였다. 그의 권유로 엘리엇은 철학박사 학위를 포기하고 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을 간파한 파운드는 <Poetry> 문학잡지의 편집자인 몬로(Harriet Monroe)에게 그의 발견을 다음과 같이 썼다.
He is the only American I know of who has made what I can call adequate preparation for writing. He has actually trained himself and modernized himself on his own. The rest of the promising young have done one or the other but never both (most of the swine have done neither). It is such a comfort to meet a man and not have to tell him to wash his face, wipe his feet, and remember the date (1914) on the calendar. (Erick Svarny, 'he Men of 1914' T. S. Eliot and early Modernism, p. 45)
20세기의 사회적인 격변과 문화 코드는 파운드와 엘리엇과 같은 모더니스트 작가들에게는 새로운 표현 양식을 필요로 하였다. 그들은 전통과 질서 대신에 본능과 무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인간의 복잡한 무의식과 다양한 경험을 표현하는 현대시가 난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엘리엇은 「형이상학파 시인들」(The Metaphysical Poets")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문명사회에서 시인들은 난해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현 세계는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러한 다양성과 복잡성이 (시인의) 정제된 감수성에 작용하여 다양하고 복 잡한 결과물을 도출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이 언어를 통해 혼란스러운 의미를 표출하 기 위해서는 점점 더 포괄적이고, 암시적이고, 간접적이 되어야 한다.
We can only say that it appears like that poets in our civilizaiton, as it exists at present, must be difficult. Our civilization comprehends great variety and complexity, and this variety and complexity, playing upon a refined sensibility, must produce various and complex results. The poet must become more and more comprehensive, more allusive, more indirect, in order to force, 새 dislocate if necessary, language into his meaning. (Eliot, Selected Essays, p. 289)
현대시의 새로운 표현 양시을 찾고 있던 엘리엇에게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가 가장 어필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그는 형이상학 시풍이 어떠한 체험도 소화하고 삼킬 수 있는 감수성의 메카니즘으로서 감성과 지성을 분리시키지 않고 혼연 일체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기상’(conceit)과 같은 외견상 유사성이 없는 것 혹은 상황 사이의 놀라운 병치를 성립시키는 비유법 외에 아이러니(irony), 역설(paradox), 과장법(hyperbole), 모순어법(oxymoron) 등 화려한 수사법을 동원하였고 시적 구성도 일상대화(dialogue)를 모델로 철학, 종교, 신학, 지리, 연금술 등 서정적인 언어보다는 이지적인 언어들을 구사하여 비관습적 이미저리를 만들어 놀랍고 기지에 찬 효과를 창출했다. 그리고 극적이고 논쟁적이며 분석적인 형식으로 시를 썼다.
윌리암슨(George Williamson)은 엘리엇 시를 분석한 책 T.S. 엘리엇 시 안내서(A Reader's Guide to T. S. Eliot)에서 엘리엇이 형이상시에 몰두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방법(형이상시)은 혼합된 무드를 극적인 방법으로 묘사하여 아이러닉한 가면이나 태 도 그리고 효과와 기지 면에서 반영웅적인 것의 추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은 진 지한 감정을 자조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든다. 그리고 객관에 의해 조롱당하는 주관성, 현상과 실재 사이의 간격 등 사물에 대한 반응도 복합적이다. 권태와 공포, 감정의 좌 절 혹은 조롱, 현대 생활의 허풍은 본다. 그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을 감춘다.
This method (metaphysical poetry) may be summarized as the assumption of an ironic mask or attitude, mock-heroic in effect and wit, expressing a mixed mood, often by dramatic means. It indulges in self-mockery or ridicules serious feeling; it represents mixed reactions to things, the subjective mocked by the objective, the discrepancy between appearance and reality. It sees boredom and horror, the frustration or derision of latent feeling, the shams of modern life; it dissimulates sympathy for their victims. (pp. 51-2)
동시에 그는 형이상학 시에 심취하게 된 이유는 사상과 경험의 통합되었기 때문이었다고 다음과 토로하였다.
던에게 사상은 경험이었다. 그것은 그의 감수성은 수정하였다. 시인의 마음이 작업을 할 준비가 되면 잡다한 경험이 융합된다. 보통사람의 경험은 혼란스럽고 불규칙하며 단 편적이다. 반면에 시인이 사랑에 빠지거나 스피노자의 책을 읽을 때 이 두 경험은 서로 관련이 없다. 혹은 타이피스트의 소음이나 요리 냄새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잡다한 경 험들이 시인의 정신 속에서 항상 새로운 전체로 형성된다.
A thought to Donne was an experience; it modified his sensibility. When a poet's mind is perfectly equipped for its work, it is constantly amalgamating disparate experience; the ordinary man's experience is chaotic, irregular, fragmentary. The latter falls in love, or reads spinoza, and these two experiences have nothing to do with each other, or with the noise of the typewriter or the smell of cooking; in the mind of the poet these experiences are always forming new wholes.(Selected Essays, 287)
위의 예문은 모더니즘 작가들이 현대인의 다양하고 복잡한 경험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문학 형식에 대한 욕망을 보여준다. 엘리엇은 계속해서 세익스피어를 정점으로 한 16세기 영문학의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고 17세기의 왕당파와 청교도파 시로 구분되면서 18세기 풍자문학으로 이어진 문학 사조가 ‘감수성의 괴리’(dissociation of sensibility)를 가져왔다고 주장하였다.
16세기 극작가들의 후예들인 17세기 시인들은 어떠한 경험도 포용할 수 있는 감수성의 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선배들처럼 단순하고 작위적이며 어렵기도 하고 환 상적이었다....17세기에 감수성의 분열이 나타났고 우리는 그것을 결코 회복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밀튼과 드라이든과 같은 두 사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들의 영향 때문에 이 분열은 더욱 조장되었다.
The poets of the seventeenth century, the successors of the dramatists of the sixteenth, possessed a mechanism of sensibility which could devour any kind of experience. They are simple, artificial, difficult, or fantastic, as their predecessors were; no less nor more than Dante, Guido Cavalcanti, Guinicelli, or Cino. In the seventeenth century a dissociation of sensibility set it, from which we have never recovered, and this dissociation, is natural, was aggravated by the influence of the two most powerful poets of the century, Milton and Dryden. (Ibid. pp. 287-288)
엘리엇이 시인의 이상으로 생각했던 감수성의 통합(unified sensibility)이란 인간의 분열된 감성과 이성을 통합하여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시인은 심장을 통찰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대뇌피질, 신경조직, 그리고 소화기까지도 훑어야한다. (Donne looked into a good deal more than the heart. One must look into the cerebral cortex, the nervous system, and the digestive tracts. p. 290)
엘리엇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케너(Hugh Kenner)는 엘리엇에 관한 평론집의 제목을 보이지 않는 시인(The Invisible Poet) 이라고 붙였을 정도로 개인과 작품을 철저히 분리하였다. 시인의 개인적인 감정이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기 때문에 그는 낭만주의 시인들을 폄하하였고, 한 층 더 나아가 시인의 “몰개성론”(Impersonal theory)을 주장하였다.
시는 정서의 표현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다. 시는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 로부터의 도피다. 그러나 개성과 정서가 있는 사람들만이 이것들로부터의 도피를 원하 는 의미를 알고 있다.
Poetry is not a turning loose of emotion, but an escape from emotion; it is not the expression of personality, but an escape from personality. But, of course, only those who have personality and emotions know that it means to want to escape form these things. (Selected Essays, p. 21)
엘리엇의 이러한 시론들이 당시의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1920-60년대를 “엘리엇 시대”(The Age of T. S. Eliot")라고 명명한 영문학사(The Concise Cambridge History of English Literature)도 있다.
3. 신비평(New Criticism)의 특징
이 용어는 존 크로우 랜섬(John Crowe Ransom)의 저서 신비평(The New Criticism, 1941)이 출판된 후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고 I.A. 리차즈(I. A. Richards)의 문학비평의 원칙들(Principles of Literary Criticism, 1924)와 과학과 시(Science and Poetry, 1926)에 나타난 이론들과 엘리엇의 비평적 에세이들에서 일부 이론의 근거를 가져왔다. 동시에 작자의 생애와 심리 및 문학사에 대한 당대의 지배적인 관심에 반발하는 광범위한 미국 비평의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 비평 이론의 주류를 이룬 사람들이 브룩스(Cleanth Brooks)와 워렌(Warren Penn Warren)인데 그들이 1938년에 출판한 교재 시의 이해(Understanding Poetry)는 미국의 대학에서 40여년간 “신비평”적인 분석이론으로 유행하였다. 신비평가들이 주장하는 이론들을 요약하면 대개 아래와 같다.
(1) 비평의 제일 법칙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작품 자체의 자율성을 인정해아 한다. 작품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작가의 전기나, 그 작품이 씌여질 당시의 사회적 조건이나, 독자에게 끼치는 심리적. 정신적 영향 등에 의존하기를 거부한다.
(2) 신비평적 방법은 작품의 해설 또는 정독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복잡한 상호관계와 언어의 다의성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소위 “텍스트 분석”(textual analysis)이다.
(3) 신비평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언어적이다. 이 비평을 위한 개념들은 단어, 비유, 상징 등의 의미와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구조와 의미의 유기체적 통일성이 중요하다.
(4) 작중 인물이나 사상이나 플롯이 아니라 단어와 이미지와 상징이 중요하다. 작품의 형식은 일차적으로 ‘의미의 구조물’(structure of meaning)이며, 진화하는 ’주제적 이미저리‘(thematic imagery)와 '상징적 행동'(symbolic action)의 작용을 통해서 주제(theme)를 향하여 조직화된다. 존 던(John Donne)의 「소넽 14」(“Sonnet XIV”)을 신비평적 방법으로 분석해보자.
삼위일체이신 신이여, 제 심장을 두드려주소서.
당신께서는 때리고, 숨쉬고, 빛나며 고쳐 주십니다.
제가 일어나 서도록 저를 매치고 힘으로 구부려
꺾고, 날려 보내고, 태워서 저를 새롭게 하소서.
저는 찬탈당한 도시처럼 적의 수중에 있나이다.
당신을 영접하려 하나 아! 소용이 없나이다.
내 안에 있는 당신의 양심에 호소하여 지켜 주소서.
그러나 포로가 되어 약하고 진실되지 못합니다.
하오나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적과 약혼한 상태입니다.
저를 이혼시키시어 매듭을 풀거나 끊어주소서.
그대에게 데려가 투옥시켜주십시오. 저는
당신이 제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시면 결코 자유롭지 못하나이다.
당신이 저를 겁탈하지 않으시며 순결하지도 않나이다.
Batter my heart, three person'd God; for you a
As yet but knock, breathe, shine, and seek to mend; b
That I may rise, and stand, o'rthrow me, and bend b
Your force, to break, blow, burn and make me new. a
I, like an usurpt town, to' another due, a
Labor to 'admit you, but Oh, to no end, b
Reason your viceroy in me, me should defend, b
But is captiv'd, and proves weak or untrue. a
Yet dearly 'I love you, and would be loved fain, c
But am bethroth'd into your enemy: d
Divorce me, untie, or break that knot again, c
Take me to you, imprison me, for I d
Except you'enthrall me, never shall be free, e
Nor ever chaste, except you ravish me. e
영시에서 소넽은 형식과 내용이 밀접하게 연결된 시 형식이다. 14행시로 약강 5보격(iambic pentameter)으로 된 소넽은 이탤리안 소넽과 영국식 소넽이 있는데 전자를 페트라르칸 소넽(Petrarchan sonnet), 후자를 세익스피어리언 소넽(Shakespearan sonnet)이라고도 한다. 각각의 형식도 다르다. 이탤리언 소넽은 한 개의 8행시와 한 개의 6행시로 되어 운율 형식은 abba, abba, cde, cde 또는 cd, cd, cd 로 되어 있다. 8행시에서는 질문, 전제, 의심, 경험, 원칙 등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6행시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대답, 결론, 재확인, 응용, 번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에 영국식 소넽은 세 개의 4행시와 한 개의 2행시로 구성된다. 운율 형식은 abab, cdcd, efef, gg이다. 이런 형식에서는 세 개의 주장을 담고 마지막 2행시에서 결론을 도출한다.
존 던의 소넽은 이탤리언 형식으로 많은 수사법(fingurative language)이 동원되었다. 의인화, 직유, 은유, 과장법, 역설, 대조 등이다. 시인은 첫줄에서 신을 가리켜 ‘삼위일체이신 신’이라고 부르며 사람을 개조하기 위해 두드리는 망치라고 묘사한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이 선에게 속하고 싶지만 악이라는 적에게 포로가 되어 있다고 한다. 즉 악과 이혼하여 선과 결혼하고 싶은 신부가 되어 신에게 강간당하고 싶다고 절규한다. 화자는 악과는 전쟁 상태에 있다. 그래서 전쟁 용어(military terms)들이 많이 등장한다. (‘overthrow," 'viceroy,' 'defend,' 'captived,' 'imprison') 반면에 신과의 결혼을 갈구하기 때문에 결혼 용어(marriage terms)들인 ’love,' 'bethroth'd,' 'divorce,' 'enthrall,' 'chaste,' 'ravish" 등이 나타난다.
신비평적 분석에서 중요한 요소는 이미지와 상징이다. 1909년에 시작하여 1917년에 끝난 문학운동이 이미지즘(Imagism)이다. 이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 에즈라 파운드인데 그의 가장 짦은 시를 인용해보자.
군중들 사이에서 홀연히 나타난 이 얼굴들
축축한 검은 가지의 꽃잎들.
「지하철역에서」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파운드는 파리의 콩코드 지하철역에서 군중들이 거리에 범람하는 모습을 보고 그 많은 얼굴들의 인상을 “축축한 검은 가지에 매달린 ” 꽃잎의 이미지로 대치시켰다. 시인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찍힌 영상들을 일체의 설명을 배제하고 이미지만으로 바꾸어 놓는데 1년이 걸렸고 그 결과 30행의 시가 2행으로 줄었다고 고백하였다.
파운드와 엘리엇의 만남은 모더니즘 문학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엘리엇의 대표적 시인 황무지(The Waste Land, 1922>를 다듬어 출판해 준 사람이 파운드였다. <황무지>와 파운드의 모벌리(Hugh Selwyn Mauberley, 1920)의 출판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시는 당시의 트렌드였던 조지안 시(Georgian poetry)와는 너무나 현격한 차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시의 형식이 피카소의 꼴라쥬 기법으로 그린 추상화처럼 조직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시골 생활을 무대로 황혼의 주막집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조지안 시와 달리 이들의 시는 무질서한 도시를 무대로 사무실과 술집, 아파트의 지저분한 생활, 창녀 등을 소재로 한 시를 썼기 때문이다.
이들 시인들은 선배 문인들처럼 문학을 통해 독자를 계몽하거나,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문학 활동을 하지 않았다. 기독교가 붕괴되고 세계가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문학을 즐기는 것이었다. 문학은 그들에게 욕망이며 에너지였다. 현실의 경험은 아이러니, 역설, 감정의 변화, 그리고 우유부단함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문학은 언어의 다의성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아취볼드 맥리쉬(Archibald MacLeish)는 「시의 기법」(“Ars Poetica”)이라는 시의 마지막 2 행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는 의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 존재하는 것이다 (A poem should no mean / But be.)"
신비평가들은 문학을 예술로 보고 역사나 철학이나 심리학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문학 작품의 역사적, 자서전적, 도덕적, 혹은 사회학적 측면들이 아니라 문학 작품의 미학적 특질이었다. 작품 자체를 검토하고 문체와 내용과의 관계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주제로 연결되는가를 증명하려고 의도하였다. 즉 시인은 제조자(craftsman)로 혹은 창조자(creator)로서 총체적 경험을 구성하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더니스트 시인들은 신비평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작품과 시인 사이의 거리두기를 고집하였다. 따라서 화자의 감정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배제하고 객관 상관물로 주로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 소통의 부재를 노래하였다. 엘리엇은 자신이 에세이 「햄릿과 그의 문제들」(“Hamlet and His Problems,” 1919)에서 다음과 같이 ‘객관 상관물’을 정의하였다. “예술의 형식을 통하여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서의 공식이 될 수 있는 일련의 대상이나, 하나의 상황이나 사건의 연속을 찾아냄으로 가능하다.”
The only way of expressing emotion in the form of art is by finding an 'objective correlative'; such that when the external facts, which must terminate in sensory experience, are given, the emotion is immediately evoked. (Eliot, Selected Essays, p. 145)
모더니즘 시에서 이미지, 상징과 더불어 가장 많이 쓰이는 비유법이 은유이다. I. A. 리차즈(I. A. Richards)는 은유로 사용된 단어가 적용된 주어를 가리키는 원관념(tenor)이고 은유 그 자체를 가리키는 보조관념(vehicle)이라 하였다. 은유의 의미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상호작용의 산물로서 두 가지에 공통적인 특색이나 연관성이 더 중요하다. 엘리엇의 시를 예로 들면 황무지에서 “강을 덮었던 텐트는 찢어졌다. 마지막 잎의 손가락들이/ 젖은 강둑을 움켜쥐다가 익사한다.”(The river's tent is broken: the last fingers of leaf/ Clutch and sink into the wet bank.) 이 시에서 원관념은 잎사귀다. 여름이 지나 남녀들의 문란했던 성 행위가 펼쳐졌던 템즈 강가의 텐트는 찢어지고 황량하다. 가을의 잎사귀들이 떨어져 젖은 강둑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강에 익사한 사람에 비유한 것이다.
오든(W. H. Auden)은 「W. B. 예이츠를 추모하며」(“In Memory of W. B. Yeats”)라는 시에서 시인의 사명을 다음과 같은 은유로 표현하였다.
시로 밭을 갈아
저주를 포도밭으로 만들고,
고뇌의 환희 속에서
인간의 실패를 노래하라.
사막 같은 가슴 속에서
치유의 샘이 솟게 하고,
시대의 감옥에 갇힌
자유인에게 찬미하는 법을 가르치라.
With the farming of a verse,
Make a vineyard of the curse,
Sing of human unsuccess
In a rapture of distress:
In the deserts of the heart
Let the healing fountain start,
In the prison of his days
Teach the free man how to praise.
이 시에서 ‘시’와 ‘저주’가 원관념이라면 ‘경작’과 포도밭‘은 보조관념이다. 즉 농부가 황폐한 땅을 개간하여 풍요의 포도밭으로 만들듯이, 시인은 저주로 가득한 사람의 마음을 경작하여 고뇌와 실패도 환희 속에서 수용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시는 이기심과 증오 때문에 황폐해진 현대인의 마음에 치유의 샘이 솟아나게 하며 암울한 현실에 갇혀서도 자유로운 정신을 찬미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것이라는 유명한 메시지를 참신한 은유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4. 신비평적 읽기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879-1955)
스티븐스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미국 시인이다. 하버드 대학과 뉴욕 법률 학교를 졸업하고 변호사 개업을 하였고 1916년 하트포드 보험 회사에 입사하여 부사장까지 승진하였다. 그는 낮에는 월급쟁이로 일하고 밤에는 시를 썼다. 첫 시집 소풍금(Harmonium) 이 출판된 것은 1923년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가 시를 쓰는 것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의 시집은 1922년에 발표된 황무지의 인기에 가려 오래 동안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엘리엇의 영향력이 시들해진 뒤에야 그에 대한 관심과 명성이 고조되었다. 그의 시는 형이상학적이고 명상적이다. 이미지의 결합이 희화적이고 주제는 현상(appearance)과 실재(reality)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난해하다. 현상과 실재의 관계를 희화한 시 「아이스크림 황제」(“The Emperor of Ice-Cream”)을 소개한다.
큰 여송연 마는 사람을 불러라.
근육이 씩씩한 자를, 그리하여 그에게 일러
부엌의 컵에 호색의 응유를 거품 일게 하라.
하녀들에게 보통 때 옷을 입고
빈둥거리게 하라, 그리고 소년들에게는
지난 달 신문지에 꽃을 싸 가지고 오게 하라.
실재를 현상의 궁극이 되게 하라.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 황제이다.
유리 손잡이가 세 개 떨어진,
값싼 장롱에서 그녀가 전에 공작 비둘기를 수놓은
시트를 끄집어내어
그 시트를 펼쳐 그녀의 얼굴을 덮어라.
만일 그녀의 굳은 발가락이 삐져나온다면,
그녀가 싸늘하고, 말이 끊어졌음을 보여 줄 것이다.
램프로 하여금 불빛을 비치게 하라.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 황제이다.
Call the roller of big cigars,
The muscular one, and bid him whip
In kitchen cups concupiscent curds.
Let the wenches dawdle in such dress
As they are used to wear, and let the boys
Bring flowers in last month's newspapers.
Let be be finale of see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Take from the dresser of deal,
Lacking the three glass knobs, that sheet
On which she embroidered fantails once
And spread it so as to cover her face.
If her horny feet protrude, they come
To show how cold she is, and dumb.
Let the lamp affix its bea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아이스크림 황제」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스티븐스는 그의 다른 시 「눈사람」("The Snow Man")과 「일요일 아침」("Sunday Morning")에서도 신(God)이 죽은 현대에 남은 것은 현상이고 자의식뿐이라고 역설한다. 물질의 세계에 안주하는 인간일수록 그와 대치되는 죽음과 영원한 세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물질세계에서는 아이스크림이 절대적 존재가 되고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신’이다. 가장 일상적인 것, 즉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없어지고 변화하는 현상적인 것들이 ‘실재’가 된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이 곧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부연 설명하는 구절이 ’실재를 현상의 궁극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일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곧 존재이고, 실재이므로 절대적 가치가 된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궁극적인 것은 일상의 사물들뿐이고 그 이상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을 상실한 현대에는 물질적 현상만이 남는 것이다.
삭막한 그 세계를 보여주는 이 시에는 상가에서 밤샘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열거되어 있다. 근육이 씩씩한 남자와 하녀들과 소년들이 돌아다닌다. 보통의 상가에서처럼 꽃도 꽂고, 촛불도 밝히고, 시트로 시신의 얼굴을 가린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에는 감정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죽음은 일상사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일상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난달의 신문지’에 싼 꽃, ‘손잡이가 떨어진 값싼 장롱’, 시트 밑으로 삐져나온 발 등의 이미지가 제시되어 있다. ‘공작 비둘기를 수놓은’ 시트로 몸체만 가리고 두 발을 내민 채 누워 있는 시신의 이미지에는 오히려 희극적인 느낌마저 든다.
T. S. 엘리엇 (T. S. Eliot: 1888-1965)
영미 모더니즘 시인들 중에서 엘리엇의 위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의 업적은 시인으로서, 비평가로스 극작가로서 각각 동등한 평가를 받고 있다. 흔히 시인으로서의 그의 궤적을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에 비유하는 평론가들이 많다. 20세기 문명의 정신적 황폐상을 그린 황무지는 지옥편(Inferno), 종교적 서정시인 성회 수요일(Ash-Wednesday)은 연옥편(Purgatorio), 그리고 후기의 네 개의 사중주(Four Quartets)는 천국편(Paradiso)으로 현대의 부조리, 무질서, 인간의 소외와 고뇌를 종교를 통해 질서를 추구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따라서 본인이 천명했듯이 개인 엘리엇은 정치적으로는 왕당파, 문학적으로는 고전주의, 종교적으로는 영국성공회에 속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재능」("Tradition and the Individual Talent"으로 부터 시작한 수많은 평론은 “시를 시로서” 읽어야 한다는 신비평 이론을 정립하여 40-50년대의 영미 비평계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1920-60년대를 「엘리엇 시대」(“The Age of T. S. Eliot")라고 명명한 영문학사(The Concise Cambridge History of English Literature)도 있다.
그의 초기시가 특히 형이상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J. 알프렛 르루프록의 연가」의 중요한 부분을 읽어보자.
만일 나의 대답이 저 세상에 돌아갈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고 내가 생각한다면 이 불길은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러나 내가 들은 바라 사실이라면 이 심연에서
살아 돌아간 사람이 일찍이 없으니, 내 그대에게
대답한들 수치스러울 염려는 없으리라.
그러면 우리 갑시다, 그대와 나,
지금 저녁은 마치 수술대 위에 에테르 마취된 환자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널부러져 있습니다.
우리 갑시다, 거의 인적이 끊어진 거리와 거리를 통하여
값싼 여인숙에서 불편한 밤이면 밤마다
중얼거리는 말소리 새어 나오는 골목을 지나
굴 껍질과 톱밥이 흩어진 식당들 사이로 빠져 나갑시다.
음흉한 의도로
싫증나게 질질 끄는 논의처럼 이어지는 그 거리들은
그대를 압도적인 문제로 끌어넣으리다...
아, <무엇이냐>고 묻지 말고
우리 가서 방문합시다.
방안에선 여인들이 왔다 갔다
미켈란제로를 이야기하며.
유리창에 등을 비벼대는 노란 안개.
유리창에 주둥이를 비벼대는 노란 안개,
저녁의 구석구석까지 혀로 핥고서,
수채 구멍 위에서 머뭇거리다가
굴뚝이서 떨어지는 그을음을 등에 받으며,
테라스 옆을 살짝 빗겨 껑충 한 번 뛰고선,
아늑한 10월의 밤인 줄 알았던지
집 둘레를 한 바퀴 빙 골고서는 잠이 들었다.
.................................................
나는 이미 그것들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다
저녁과 아침과 오후를 알고 있다.
나는 내 일생을 커피 스푼으로 되질해 왔다.
저편 어느 방에서 음악에 섞여
갑자기 낮아지며 사라지는 목소리들을 나는 안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감히 해 볼 것인가.
..........................................
이렇게 말해볼까, 나는 저녁때 좁을 거리를 지나 왔습니다
셔츠만 입은 외로운 사나이들이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뿜어내는 파이프의 연기를 나는 보았습니다, 라고...
나는 차라리 고요한 바다 밑바닥을 어기적거리는
한 쌍의 엉성한 게 다리나 되었을 것을,
.................................
아니다! 나는 햄릿 왕자가 아니다ㅡ 될 처지도 아니다.
나는 시종이다. 행차를 그럴듯하게 벌리고,
한 두 장면 얼굴을 비치고,
왕자에게 진언이나 하는, 틀림없이 만만한 연장,
굽신거리며, 심부름이나 즐겨하고,
빈틈없고, 조심성 많고, 소심하고,
큰 소리는 치지만, 멍청하고,
때로는 정말 바보 같기도 하다 --
때로는 틀림없이 ‘어릿광대’.
나는 늙어간다 ... 늙어간다....
바지가랑이 끝이나 접어서 입어볼까.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 넘겨볼까? 감히 복숭아나 먹어볼까?
흰색 프란넬 바지를 입고 해변 가를 걸어 볼까.
나는 인어들이 서로 노래를 주고받는 것을 들었다.
......................................
Let us go then, you and I,
When the evening is spread out against the sky
Like a patient etherized upon a table;
Let us go, through certain half-deserted streets,
The muttering retreats
Of restless nights in one-night cheap hotels
And sawdust restaurants with oyster-shells:
Streets that follow like a tedious argument
Of insidious intent
To lead you to an overwhelming question...
Oh, do not ask, "what is it?"
Let us go and make our visit.
In the room the women come and go
Talking of Michelangelo.
The yellow fog that rubs its back upon the window-panes,
The yellow smoke that rubs its muzzle on the window-panes,
Licked its tongue into the corners of the evening,
Lingered upon the pools that stand in drains,
Let fall upon its back the spot that falls from chimneys,
Slipped by the terrace, made a sudden leap,
And seeing that it was a soft October night,
Curled once about the house, and fell asleep.
.............................................................
And I have known them all already, known them all ---
Have known the evenings, mornings, afternoons,
I have measured out my life with coffee spoons;
I know the voices dying with a dying fall
Beneath the music from a farther room.
So how should I presume?
.....................................................
Shall I say, I have gone at dusk through narrow streets
And watched the smoke that rises from the pipes
Of lonely men in shirt-sleeves, leaning out of windows?...
I should have been a pair of ragged claws
Scuttling across the floors of silent seas.
...............................................
No! I am not Prince Hamlet, nor was meant to be;
Am an attendant lord, one that will do
To swell a progress, start a scene or two,
Advise the prince; no doubt, an easy tool,
Deferential, glad to be of use,
Politic, cautious, and meticulous;
Full of high sentence, but a bit obtuse;
At times, indeed, almost ridiculous --
Almost, at times, the Fool.
I grow old... I grow old...
I shall wear the bottoms of my trousers rolled.
Shall I part my hair behind? Do I dare to eat a peach?
I shall wear white flannel trousers, and walk upon the beach.
I have heard the mermaids singing, each to each.
.........................................
이 시는 엘리엇의 1917년에 출판된 최초의 시집에 수록된 시로 그를 현대시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작이다. 에피그라프는 단테(Dante)의 신곡 중 「연옥」편의 27장 61-66절에 나오는 것이다. 단테와 버질은 지옥의 계단을 내려가다가 기도(Guido da Montefeltro)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그는 지식을 남용한 죄로 지옥의 불길에 싸여있다.
여인에 대한 사랑 고백을 너무 소심해서 할 수 없는 중년남자의 독백인 이 시는 신비평에서 중요한 은유, 상징, 그리고 반복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화자의 분열된 자아를 ‘객관적 상관물’로 극화하고 있다. 도시의 저녁은 마치 “수술대 위에 마취되어 누운 환자처럼” 몽롱하고 10월의 안개를 고양이의 이미지로 제시하여 화자인 프루프록의 소심하고 결단력 없이 무기력한 심리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사랑 고백을 “압도적인 문제”라고 과장하며 주저하고 망설이는 자의식의 벽을 깰 수 없음을 에피그라프에 나오는 기도에 비유한다. 그는 고백하는 일이 너무 엄청난 것이라서 차라리 “바다 밑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한 쌍의 게 다리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소심함과 소시민적인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자의식 때문에 차라리 의식이 없는 갑각류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화자는 자기 연민에 빠져 “늙어간다”는 자탄과 함께 자신이 햄릿의 하인 혹은 희극의 어릿광대에 불과하다고, 인생을 커피 스푼으로 되질해왔을 뿐이라고 체념한다. 엘리엇은 이 작품을 통해서 현대인이 내면의 갈등 혹은 좌절된 자아와 직면하지 못하고 자의식의 방에 갇혀 있어서 표현하지 못하는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W. H. 오든 (W. H. Auden:1907-1973)
1930년대를 대표하는 오든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대학시절 그는 엘리엇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스펜더, 맥니스, 루이스와 같은 재기 발랄한 작가들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는 문명이 와해되어 가고 있다고 결정하고 시에서 현대인의 정신 질환을 의학적, 과학적으로 해부하였다. 이에 해결책으로 좌익정치와 사회 혁명이라고 판단하여 스페인 내란에 참가하였다가 크게 실망하여 미국으로 귀화하였다. 그가 현대인의 병리 현상을 다룬 소넽(sonnet) 한 편을 소개한다.
「기원」(“Petition”)
아무에게도 적이 아니신 님이여, 의지라는 부정적 倒錯 이외는
모든 것을 용서하는 님이여, 아낌없이 주시오.
힘과 빛을 우리에게 주시고 숭고한 손길로 만져서
견딜 수 없는 신경의 가려움증과
離乳로 인한 허기증과 거짓말쟁이의 편도선염
그리고 내면화된 왜곡된 처녀성을 치유해 주시오.
되풀이되는 대답은 단호하게 금하시고
겁쟁이의 자세를 차츰 바로 잡아주시오.
도망가는 자들은 적당한 때에 조명을 비춰서
잡히면 되돌아오게 오도록. 그 역전은 힘들겠지만.
도시와 찻길 끝에 있는 시골집에 살고 있는
치유자는 누구나 세상에 알려주시오.
亡者들의 집을 부셔버려요. 그리고 빛나는 눈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건물과 새로워진 심장을 보시오.
Sir, no man's enemy, forgiving all
But will its negative inversion, be prodigal:
Send to us power and light, a sovereign touch
Curing the intolerable neural itch,
The exhaustion of weaning, the liar's quinsy,
And the distortions of ingrown virginity.
Prohibit sharply the rehearsed response
And gradually correct the coward's stance;
Cover in time with beams those in retreat
That, spotted, they turn though the reverse were great;
Publish each healer that in city lives
Or country houses at the end of drives;
Harrow the house of the dead; look shining at
New styles of architecture, a change of heart.
스펜더(Stephen Spender)는 오든의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2원적인 하나의 관념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징후(symptom)와 치유(cure)의 관념이다.” 오든은 현대인들이 지나친 자기애(self-regard)로 인하여 각종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의학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현대인의 초조한 신경과민,(the neural itch), 이유의 허기증(the exhaustion of weaning), 내면화된 왜곡된 처녀성(the distortions of ingrown virginity)을 ‘님’(Sir)에게 치유해달라고 기도한다. ‘님’의 존재는 기독교적인 신이라기보다는 아집(selfhood)에서 벗어나 변화를 수용하는 건강한 개인의 본성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망자의 집‘을 부순다는 표현은 낡은 문명과 과거의 인습을 말하고 ’내면화된 왜곡된 처녀성‘은 인간의 본능인 이드(Id)를 초자아(superego) 혹은 외적 조건에 의하여 억압될 때 병적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든은 이 모든 신경증을 치유하는 것이 ’마음의 변화‘ 즉 자유롭고 자연적인 에로스의 화신으로서의 건강한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 결론
엘리엇은 그의 최대 걸작시인 사중주에서 시는 “단어와 의미 사이의 견딜 수 없는 갈등”(intolerable wrestle with words and meaning) 이라고 정의하고 시 쓰기가 항상 만족스럽지 않다고 고백한다. 즉 형식과 내용이 꼭 맞게 쓴다는 것이 시인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사중주는 「번트 노턴」(“Burnt Norton”), 「이스트 코커」(“East Coker”), 「드라이 셀비지스」("The Dry Salvages”), 「리틀 기딩」(“Little Gidding”)의 4개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시의 2부에는 시에 관해서 기술하고 있다. 마지막 시인 「리틀 기딩」에서 엘리엇은 후배 시인들에게 시인의 사명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의 관심은 언어였고, 언어 때문에
우리는 민족의 방언을 순화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정신을 채찍질하여 앞뒤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소.
내 그대의 평생의 노력에 왕관을 씌우고자
오랫동안 간직했던 선물을 공개하고자 하오.
첫째는 육체와 영혼이 산산히 무너지기 시작할 때의
내뿜는 감각의 차디찬 마찰,
매혹도 없고, 음지에 맺은 과일의 쓰디쓴 맛 이외는
아무런 약속도 주지 않는.
둘째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의
의식적인 무력과, 이제는 즐겁지 않은 것에 대한
웃음의 쓰라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의 모든 과거의 행위와 존재를
재연하는 찢는 듯한 고통, 그리고 후에
폭로된 동기의 부끄러움, 그리고 그대가
한 때는 덕의 행사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되고 남에게 해가 된 것에 대한 의식.
그 때에는 우물들의 찬성은 고통이 되고, 명예는 오점이 되오.
그대가 댄서처럼 절도 있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정화의 불 속에서 재생하지 않는 한,
격앙된 정신은 과오에서 과오로 진행할 것이오.
Since your concern was speech, and speech impelled us
To purify the dialect of the tribe
And urge the mind to aftersight and foresight,
Let me disclose the gift reserved for age
To set a crown upon your lifetime's effort.
First, the old friction of expiring sense
Without enchantment, offering no promise
But bitter tastelessness of shadow fruit
As body and soul begin to fall asunder.
Second, the conscious impotence of rage
At human folly, and the laceration
Of laughter at what ceases to amuse.
And last, the rending pain of re-enactment
Of all that you have done, and been; the shame
Of motives last revealed, and the awareness
Of things ill done and done to others' harm
Which once you took for exercise of virtue.
Then fools' approval stings, and honour stains.
From wrong to wrong the exasperated spirit
Proceeds, unless restored by that refining fire
Where you must move in measure, like a dancer."
("Little Gidding," II. 116-146)
위의 시는 엘리엇이 2차 대전 중에 소방관으로 런던에 근무하였을 때를 상상하면서 썼다고 한다. 런던이 폭격당하여 여기 저기 검은 연기가 솟아나고 있는 시내를 새벽에 순찰하다가 그의 영원한 멘토인 단테가 유령처럼 나타나 그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단테는 “지난 철의 과일을 다 먹고 나면. 배부른 짐승은 빈 통을 찰 것이다./ 왜냐하면 작년의 말은 작년의 언어에 속하고/ 내년의 말은 또 다른 목소리를 기다린다”고 후배 시인에게 가르쳐준다. 즉 언어는 시대에 따라 표현양식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시인은 오로지 “감각의 차디찬 마찰”과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와 “과거의 행위와 존재를 재연하는 듯한 고통”을 간직하여 “댄서처럼 절도 있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정화의 불 속에서 재생하지 않는 한/ 격앙된 정신은 과오에서 과오로 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말은 시인의 사명은 오로지 겸허하게 생명체를 가진 언어를 탁마하며 정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T. S. Eliot, The Complete Poems and Plays of T. S. Eliot. London: Faber & Faber, 1973.
T. S. Eliot, T. S. Eliot: Selected Essays. Faber & Faber, 1972.
Ruth Miller & Robert A. Greenberg. ed. Poetry: An Introduction. London: St. Martin Press, Inc. 1981.
David Perkins, A History of Modern Poetry: From the 1890s to the High Modernist Mode. Cambridge: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 Press, 1976.
Erik Svarny, 'The Men of 1914' T. S. Eliot and early Modernism. Milton Keynes: Open Univ. Press, 1989.
George Williamson, A Reader's Guide to T. S. Eliot, London: Thames and Hudson, 1974.
<모더니즘> Peter Faulkner 저. 황동규 역. 서울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