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km나 되는 거리를 매일 뛰어다니는 게 힘들 법도 하지만 활동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성격에 달리는 것이 재밌어 오히려 그걸 즐겼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시절 학교 체육대회 때 체육을 담당하셨던 정길호 선생님의 눈에 띄어 육상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서산에 위치한 대진 초등학교에서 교감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정길호 선생님은 그를 타고난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당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가 학교에 부임하고 은정이를 보자마자 육상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고 운동을 시켰죠.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스피드와 자세, 체격조건이 상당히 좋았어요.” 라며 “가끔씩 은정이가 스포츠 뉴스에 나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워낙 자기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기대하는 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고 제자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이은정 선수는 중·고교 시절에 접어들면서 800m와 1600m 등 중거리를 주로 달리다 갑작스런 슬럼프와 2000년도 충남도청에 입단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장거리로 전향하게 됐고 그것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성공적 이었다.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시험 삼아 장거리를 뛰었는데 중거리 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저에게 맞아 종목을 바꾸게 됐어요.” 사실, 이은정 선수가 ‘희망’이라는 단어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중·고교 시절 중·단 거리에서 가능성을 보이며 선전했지만 소위 말해 잘나가는 실업팀 선수도 아니었고 기록도 그다지 뛰어나질 않았다. 그러던 지난 2004년. 마라톤 입문 1년, 풀코스 도전 3번 만인 2004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 75회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한국 기록에 5초 뒤진 2시간 26분 17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무명 딱지를 떼고 한국 여자마라톤의 기대주로 급부상하며 육상계를 흥분시켰다. “사실 그 때 그렇게 좋은 기록이 나올지 정말 몰랐어요. 연습은 많이 했지만 28분이나 29분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국기록에 5초 뒤졌다고 들었을 때 조금 얼떨떨했어요.” 그 후 같은 해 열린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마라톤 16년만의 좋은 성적인 19위를 차지하고 제 85회 전국체육대회 여자 5000m에서 15분 54초 44의 기록으로 97년 권은주가 세운 종전기록(16분 7초 52)을 깨트리며 한국 여자 마라톤의 이변이 아닌 당당한 에이스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삼성전자 육상단에서 영입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봉주, 허장규, 경보의 신일용 등 많은 에이스들을 보유하고 있던 육상계의 ‘레알 삼성’이었다. “아테네 올림픽과 동아마라톤을 치루고 나서 좀 더 좋은 팀으로 옮겨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삼성전자에서 입단제의가 들어왔어요. 많은 고민을 하다 결국 제의를 받아들였죠.” 삼성전자로의 이적은 그에게 제 2막의 육상 인생을 만들어 주었다. “충남도청에 있을 때 보다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나 시설이 너무 좋았어요. 체계적인 훈련프로그램으로 정말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죠. 특히, 다양한 전지훈련과 해외에서 열리는 좋은 대회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다 보니 자신감도 생기게 되고 그것이 실력 향상과 기록단축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운동하기 더 좋은 환경으로 옮긴 뒤 제 실력을 발휘하는 이은정 선수는 삼성전자 육상단의 ‘또 하나의 가족’이다. 최근 5개 대회에서의 기록<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 이은정 선수의 무서운 상승세는 한 여름의 ‘폭염’조차 날려버릴 기세다. 뛰었다하면 모두 신기록이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지금 이은정 선수가 한국 여자 마라톤의 1인자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지난 6월 29일 일본 훗카이도에서 열린 2005 일본 디스턴스 챌리지 대회 10000m 경기에서 32분 43초 35의 기록으로 SH공사의 정윤희가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세운 종전 기록(32분 46초 54)을 3초 19 단축한 한국 기록을 세우며 5000m, 하프와 함께 트리플 크라운을 작성하고 본격적인 ‘이은정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제 풀코스에서 ‘아쉬운 5초’만 단축한다면 한국 육상 단일 종목 사상 처음으로 4개 부분 신기록을 보유하는 그랜드 슬램을 이루게 된다. 아직은 트랙경기 위주로 스피드와 체력 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풀코스 출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권은주가 갖고 있는 8년 묵은 한국기록(2시간 26분 12초)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삼성전자 육상단의 손문규 여자부 코치는 “국내에선 더 이상 경쟁자가 없다고 봐야죠. 성격이 워낙 긍정적이라 기복이 별로 없고 체력적인 부분과 스피드를 조금 만 더 끌어 올리면 앞으로 좋은 선수가 한 명 나올 겁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선의의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경쟁자가 있어야 더욱 더 분발하고 자극을 받아 기록도 좋아 질 텐데 국내에선 아직 은정이 만한 선수가 없기 때문에 기록 단축면에선 조금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지난 2005 세계육상권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모로코의 가리브 아오우드는 레이스 초반 좋은 페이스로 5~6분대의 기록이 예상됐지만 30km 이후부터 2위 그룹과 멀리 떨어져 단독 레이스를 펼치는 바람에 결국 10분대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바 있다. 그 만큼 장거리에서는 경쟁선수도 레이스 전략에 포함된다. 현재 상황에선 이런 심적·전략적 부분을 극복 하는 것이 즐겁게 달린다는 이은정 선수의 가장 큰 내부의 적이 아닌가 싶다. 스피드 끌어올려 그랜드 슬램 이룬다 요즘 이은정 선수가 훈련에 임하는 각오와 자세는 평소와 사뭇 다르다. 지난 일본 디스턴스 챌리지 대회 때 한국 기록을 세우기는 했지만 9위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그는 자기 자신에게 오히려 질책을 한다. “한국 기록을 냈지만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만 해도 벽이 높다는 것을 느꼈어요.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물 안 개구리는 되기 싫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일본은 풀코스를 2시간 20분대 뛰는 선수들이 20명 이상이 되고 ‘세계 여자 마라톤의 여제’ 래드클리프는 10분대 기록만 무려 3개씩이나 보유하고 있다. 아직 20분대 중반의 기록인 이은정 선수가 이런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근력과 지구력, 그리고 스피드 등 전반적인 부분을 담금질해야 한다. 그 중 가장 부족한 부분은 체력. 그래서 요즘엔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있다. “정규훈련을 하고 난 뒤 30~40분 정도는 헬스클럽에서 매일 꾸준히 하고 있어요. 특히, 벤치 프레스 같은 운동을 집중적으로 해서 상체 근육을 많이 키우려고 노력 중이에요.” 체력적인 부분과 함께 자신의 성격적인 단점은 지난 아테네 올림픽을 제폐한 일본의 노구치 선수와 비교한다. “노구치 선수는 레이스에서 굉장히 공격적이에요.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연습 때나 시합 때나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이 정말 부러워요. 제 단점 중에 하나가 레이스에서 조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저도 노구치 선수처럼 대담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일단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9월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아 육상 선수권 대회 트랙 경기에서 스피드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금은 계속 중·단거리를 통해 집중적으로 스피드를 끌어 올려서 올 해 말이나 내년에는 꼭 풀코스 한국 최고기록을 새우고 싶어요.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최종 목표에요.”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꾸준한 연습벌레인 그에게 그랜드 슬램의 만루 홈런을 치고 베이징에서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당찬 목표는 이제 더 이상 꿈만은 아니다.
“지금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이은정 선수는 연습이 없는 자유 시간에는 TV를 보거나 동료 선수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팀의 맏언니인 오정희 선수 그리고 한국 남자 마라톤의 기대주 허장규 선수와 가장 친하다고. “오정희 선수는 정말 친언니처럼 항상 절 많이 챙겨줘서 항상 고맙고 허장규 선수와는 훈련이나 대회에 거의 같이 나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어요.” 책을 좋아하기도 하는 그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스펜서 존슨의 <선물>. 누구에게나 주어진 ‘현재’라는 평범한 선물이 우리 일생을 가장 좌우하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일깨워 주는 이 책의 교훈은 “지금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이은정 선수의 좌우명과 얼핏 유사하다.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못 할 것이 없다는 것. 그가 마라토너로서 최선을 다하는 건 바로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아마추어 달림이들을 걱정하는 그이다. “요즘 아마추어 분들이 연습하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일반 엘리트 선수들보다 더 무리하시는 것 같아 조금 걱정도 돼요.”라며 육상의 비인기에 대한 아쉬움이 없냐고 묻자 “일반 마라톤 대회 같은 경우에는 몇 만 명씩 참가하는 일반인 분들과 함께 달리니까 재밌고 즐거운데 트랙 대회에는 관중들이 없어 항상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서 더 좋은 기록과 성적으로 보답할 테니까 항상 지켜봐 주시고 마라톤을 좋아하는 동호회 여러분들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을 위해서 항상 즐겁게 달리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육상을 안했으면 지금쯤 체육 선생님이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이은정 선수.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가 탄력 있는 두 다리를 이끌고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선수로서 당당히 비상(飛上)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주자. 이렇게 말이다. “이은정 파이팅!”
글_김동윤 기자 | 사진_강영국 기자
출처 http://www.runninglife.co.kr/ (RUNNING LIFE)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