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우리 대구의 정려각 이야기
22. 【진양강씨 모열각】
이적을 일으키고 열부우를 내렸다는 진양강씨 부인
글·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전 성균관청년유도회 대구광역시본부 사무국장)
![](https://t1.daumcdn.net/cfile/cafe/254D5B3C587EB7380E)
진주강씨 모열각
프롤로그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기세리에는 옥연지(玉連池)라는 저수지가 있다. 옥연지는 기세곡천을 비롯한 이 일대 산에서 흘러내린 여러 계곡물이 모이는 곳이다. 옥포(玉浦)라는 이름은 ‘옥처럼 맑은 물’ 혹은 ‘옥이 나오는 물’이란 의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옥연지(玉蓮池)의 의미도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옥과 연이 가득한 못’ 혹은 ‘옥빛을 띠는 연못’ 정도쯤이 되지 않을까?
이곳 옥연지가 최근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수년전의 ‘마비정 마을’처럼 조만간 달성군을 넘어 대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관광명소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로 이곳 옥연지에 조성된 ‘송해공원’ 때문이다. 이처럼 송해공원이 조성된 옥연지 상류 동편에는 오래된 전통마을이 하나 있다. 그리고 이 마을 초입 한 편에는 누가 전통마을 아니랄까 봐가 정려각 하나가 당당한 자세를 뽐내며 서 있다. 오늘은 이 정려각에 대해 한 번 알아보기로 하자.
400년 내력의 충주석씨 세거지, 기세리
이 전통마을은 400년 내력의 충주석씨 세거지인 ‘기세리(奇世里)’ 마을을 말하는 것이다. 기세리라는 동명은 ‘마을의 풍치가 참으로 기이하게 생겼다’하여 붙은 이름이란다.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충주석씨 입향조는 ‘석언우(石彦佑)’라는 인물이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석언우는 불과 17세의 백면서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붓을 놓고 칼을 들고 의병으로 활략했다. 난이 평정된 후 세상은 논공행상으로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는 모든 공을 사양한 채 비슬산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이곳 기세리에 정착했다. 때는 임란 직후이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400년 전의 일이다.
기이한 세상이라는 마을이름 때문일까. 400년 내력의 이곳 기세리 충주석씨 문중에서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 중 한명의 인물을 손꼽는다면 단연 한말의 큰선비이자 대유학자였던 소계(小溪) 석재준(石載俊·1866-1945) 선생을 들 수 있다. 현재 이 마을에는 석재준 선생을 기리는 소계정이라는 정자와 함께 선생의 아들과 손자 3대의 영정을 봉안한 영정각이 마을 뒤편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편 마을 가운데에는 인산당(仁山堂)이라는 재실도 있다. 이 재실은 기세리 입향조인 석언우 선생을 기리는 재실이다. 또한 예전에는 인근에 석언우 선생의 아들인 송암(松菴) 석운상(石雲祥)의 정사인 ‘송암정사(松菴精舍)’도 있었다. 하지만 송암정사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퇴락, 그 현판만이 수습되어 현재 인산당에 게시되어 있다.
한편 이 마을의 제일 남쪽 국도변에는 기세마을을 배경으로 잘 단장된 정려각이 하나 있다. 바로 ‘진주강씨(晉州姜氏) 모열각(慕烈閣)’이라 알려진 열녀 정려각이다. 참고로 이를 ‘진양강씨(晉陽姜氏) 모열각’이라고도 하는데 진양은 오늘날 진주의 옛 이름이니 결국 둘 다 같은 말이다. 400년 내력을 지닌 충주석씨 전통마을에 세워져 있는 이 정려각에는 또 어떤 스토리가 숨어 있는 것일까?
진주강씨 모열각
‘진주강씨(晉州姜氏) 모열각(慕烈閣)’
이제는 다들 감을 잡을 것이다. 이런 류의 표현을 이해하는 방법 말이다. ‘진주강씨’라는 표현은 전통시대에 여성을 지칭하는 전형적인 표기법이다. 일반적으로 신주나 지방에서 여성의 신호(神號)로 사용되는 ‘현비유인야성송씨’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전통시대에는 여성을 지칭할 때 이름을 생략하고 본관과 성씨만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모열각’은 글자 그대로이다. ‘한 여인의 곧고, 굳세고, 세차고, 아름다운 열행(烈行)을 추모하고 기리는 집’이란 뜻이다.
진주강씨 부인의 열부행에 대해서는 예전에 이미 필자가 한 번 소개를 한 적이 있다. (클릭 ☞ http://cafe.daum.net/3169179/Dbvq/41 ,‘【인산당·소계정·모열각】(충주석씨)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기세리 세거 400년’) 그 글 중에서 오늘 이야기에 해당하는 부분을 한 번 인용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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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마을 입구 도로변에는 한 여인의 열부행(烈婦行·강한 기상으로 절개를 지킨 행동)을 기린 비와 비각이 서 있다. 그 여인은 석구홍(石龜泓·1760-1776)의 부인인 진주강씨(晉陽姜氏)이다. 그녀는 상서(尙書)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후예인 강유곤(姜裕昆)의 딸인데, 1758년(영조34) 9월 13일 기세리 이웃 마을인 만수리(晩守里)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세 때에 기세리에 사는 17세 청년 석구홍에게 출가하였다. 하지만 혼인한지 수개월 만에 남편을 잃었고, 그녀는 예법에 따라 장례의 모든 절차를 마쳤다. 그 후 그녀는 시댁의 가족에게 말하기를 “이제 저는 마땅히 남편을 따라 죽을 것이니 남편 곁에 묻어 주기를 원한다” 하고는 음식을 끊고 스스로 목숨을 마치니 1776년(영조52) 11월 8일, 그녀의 나이 꽃다운 19세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진주강씨 부인은 자신의 유언과는 달리 남편과는 다른 산등성이에 묻혔다. 그런데 부인의 장삿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발인을 하는데 문의 서까래가 부러지고, 부엌의 가마솥이 깨어지고, 우마(牛馬)가 죽더니, 나중에는 내리 3년 동안 이 일대에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관청에서 부인의 유언과 관련된 소문을 듣고 곧 관에서 장례비용을 내려 부부를 합장(合葬)하게 했다. 그날 저녁, 합장한 부부의 묘 봉분 위로 한 줄기 상서로운 기운이 길게 이어졌다가 잠시 후 큰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모두 이 비를 보고 ‘열부우(烈婦雨)’라고 일컬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부터 기세리 석씨문중에서 진주강씨 모열각을 지어 선양하고 매년 음력 3월 상정일에 향사를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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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용문을 읽고 고개가 끄덕여 지는가. 물론 아닐 것이다. 21세기형 인간의 사고로는 이 내용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옛사람들의 기록이나 또는 연세가 많은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한편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한 겨울철에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에 구멍을 뚫어놓으면 팔뚝만한 잉어가 얼음구멍 위로 뛰어오르는 경우가 있단다. 또 불길한 일을 앞두고 집의 처마나 기둥이 허물어진다거나 가축이 죽는 일 등도 실제로 왕왕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진주강씨 부인 사후에 일어난 여러 이적들을 무조건 황당무계한 일로만 치부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참고로 현재 이 비각 내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현판들이 게시되어 있다. 「석열부진양강씨 창문(石烈婦晉陽姜氏 彰文), 오륜행실중간소발행(五倫行實重刊所發行)」, 「열부강씨실기서(烈婦姜氏實記序), 인천 채헌식 찬(仁川 蔡憲植 撰)」, 「모열각기(慕烈閣記), 인천 이병운 찬(仁川 李炳運 撰)」, 「열부진양강씨비명병서(烈婦晉陽姜氏碑銘幷序), 강양 이직현 찬(江陽 李直鉉 謹撰)」, 「강씨열행기 및 모열각상량문(姜氏烈行記 및 慕烈閣上樑文), 충주 석재준 찬(忠州 石載俊 謹撰)」
그리고 모열각 바로 곁에는 1974년에 세운 또 다른 여인의 비가 하나 있다. 이 비는 「효부고령신씨지비(孝婦高靈申氏之碑)」인데 석종균(石琮均)의 부인인 고령신씨의 효부행(孝婦行)을 기린 비석이다.
에필로그
2016년 개원한 옥연지 송해공원. 하지만 송해공원 관련해서는 계획 단계에서부터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사실 이곳에 국민오빠로 통하는 방송인 ‘송해’씨의 이름을 딴 공원이 조성된 것은 그 사연이 있다. 수년 전 ‘KBS 전국노래자랑 달성군편’을 촬영할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송해씨가 김문오 달성군수에게 자신의 부인이 옥연지 옆 기세마을 출신 석씨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달성군과 송해씨는 각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 관계가 지금의 ‘송해공원’으로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필자 역시 달성군에 또 하나의 관광명소가 생겨났다는 점에서는 송해공원 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필자의 입장에서는 기세리의 옥연지 송해공원을 바라보면 다소 아쉬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문화관광의 대세는 ‘스토리’에 있다. 이 말은 문화관광유적지에 스토리를 적절하게 잘 접목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지금의 옥연지 송해공원에는 스토리가 빠져 있다. 다시 말해 하드웨어는 잘 갖추어졌지만 소프트웨어가 약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옥연지 송해공원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까?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옥연지 옆에 ‘400년 내력의 기세마을’이 있는데 걱정할게 뭐가 있는가! 400년 내력의 마을 이야기와 문중 이야기라는 스토리는 결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송해공원에 쏟아 부은 관심과 열정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기세마을로 한 번 돌려보면 어떨까? 무궁무진한 스토리들이 마을 곳곳에서 자신들을 알아봐줄 이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상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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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8일
팔공산이 바라보이는 대구 풍경산방에서
송은석
☎018-525-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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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유교유적, 유교문화, 문중 등은 기존의 자료가 충분치 못한 관계로 내용 중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류를 발견하신 경우 전화 또는 댓글로 조언을 주시면 적극 경청하고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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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모열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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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열각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는 1945년에 모열각을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진주강씨 부인이 열부로 인정을 받은 것은 1922년이며, 정려각이 세워진 것은 1931년이다.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41913C587EB73D15)
열부 진양강씨실행비
![](https://t1.daumcdn.net/cfile/cafe/2203173C587EB74147)
석열부진양강씨 포장문, 오륜행실중간소발행
오륜행실중간소의 이 포장문에 의하면 열부로 포장을 내린 때는
공부자탄강 2473년 임술 2월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1922년이 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44023C587EB74414)
모열각 중수기
![](https://t1.daumcdn.net/cfile/cafe/244B8F3C587EB74710)
모열각기(慕烈閣記), 이병운 찬
![](https://t1.daumcdn.net/cfile/cafe/2149D636587EB74B1C)
![](https://t1.daumcdn.net/cfile/cafe/224C8136587EB74E1A)
유사실기, 석재준
![](https://t1.daumcdn.net/cfile/cafe/22491736587EB7521B)
열부강씨실기서(烈婦姜氏實記序), 채헌식 찬
![](https://t1.daumcdn.net/cfile/cafe/2456DE36587EB75510)
비각창건
![](https://t1.daumcdn.net/cfile/cafe/2651DC36587EB75915)
모열각상량문(慕烈閣上樑文), 석재준 찬
![](https://t1.daumcdn.net/cfile/cafe/2649F836587EB75C1B)
![](https://t1.daumcdn.net/cfile/cafe/22485C36587EB75F1B)
모열각
![](https://t1.daumcdn.net/cfile/cafe/2557AF33587EB76316)
모열각 바로 옆 효부고령신씨지비(孝婦高靈申氏之碑)
![](https://t1.daumcdn.net/cfile/cafe/215CC133587EB76814)
효부고령신씨지비
![](https://t1.daumcdn.net/cfile/cafe/265CB533587EB76B13)
좌 효부고령신씨지비, 우 진양강씨 모열각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4F04855450B4906)
기세리 마을표지석
![](https://t1.daumcdn.net/cfile/cafe/2169FC4A55450B3A01)
소계정
![](https://t1.daumcdn.net/cfile/cafe/27316F4755450B440B)
소계정 영당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6764855450ACB04)
영당 내부
![](https://t1.daumcdn.net/cfile/cafe/2569DD4A55450B3801)
마을과 앞산 사이로 옥연지가 보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2FEC4755450AD80C)
진주강씨 모열각
![](https://t1.daumcdn.net/cfile/cafe/24629C5055450ADA21)
좌 효부고령신씨비, 우 진주강씨 모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