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입술 같은 새털유홍초
최상섭
물같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늘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경영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서 새롭게 다짐을 하고 오늘은 새로운 출발을 하리라는 각오를 새긴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고개를 숙여야 하고, 아버지란 이유로 못마땅하고 불편부당해도 참아야 한다. 이것이 세상살이라는 굴레이다. 누구나 휴우 하고 한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고 가정을, 새끼들을 생각하면서 참는 아버지의 마음에는 언제나 속울음이 담겨있다. 이 마음을 누가 알까? 또 행여나 누가 알까봐서 조심, 또 조심을 한다.
이렇게 강물처럼 흘러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잠깐 고개를 돌리고 마음의 안위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세상이 모두 경쟁자이고 조심해야 될 어제의 동지가 오늘에는 적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각박한 세상에서도 풀꽃만큼 특히 토종의 풀꽃만큼 우리에게 큰 안위와 기쁨을 주는 동반자도 없을 성싶다.
8월과 9월, 10월에 이어서 피는 풀꽃 중 새털유홍초라는 꽃이 있다. 보통의 유홍초는 잎사귀가 나팔꽃 같은 하트 모양이다. 그러나 새털유홍초는 머리빗 빗살처럼 여린 잎사귀를 하고 있다. 꽃 색깔도 순수한 빨강색이어서 더욱 청순하다. 천일야화에도 나오는 1년생 초화인 새털유홍초는 줄기식물로 씨를 터트리고 그 자리 혹은 옆으로 지평을 넓혀가며 가느다란 손으로 무엇이던 잡고 하늘에 오르려 한다. 그 사이사이에 작고 앙증맞은 꽃을 피워 오가는 사람에게 수줍게 인사를 한다.
나는 화분에 씨를 뿌리고 싹을 돋우어 줄기를 세울 때 지주를 세워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하늘에 오르려는 그 기상이 너무도 가상하고 귀엽다. 그러면서 그 작고 예쁜 꽃을 피워 아침마다 수인사하자고 손을 내미는 모양은 참으로 반가운 나의 진객(珍客)이다.
‘영원히 사랑스러운’ 또는 ‘매혹’이라는 꽃말을 가진 이 새털유홍초꽃은 꼬옥 그녀의 입술 같아 나는 이 꽃을 보면 괜히 가슴이 울렁인다. 모든 꽃이 그렇지만 꽃은 사랑한 만큼 말대답을 미소로 대신한다. 이렇게 한낮 미물인 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의 안위를 삼는다. 청순하고 맑은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받으며 나만이 느끼는 편안함으로 오늘도 새로운 아침을 연다. 그리고 어제의 고리타분한 쭉정이들을 버리고 새날의 새 희망을 담아 새롭게 전진하려는 내 마음에 기쁨이라는 큰 선물을 건네준다.
언제나 이 꽃 새털유홍초와 함께하리라는 약속을, 나는 가을바람 속에 새겨둔다.
(2017.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