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 서라
빌4:1-3(3)
지난 시간에 성도는---주안에 서야 하는데
그 주안에 선다는 것이 무엇이냐----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애를 가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형제라는 단어에는 몇가지 중요한 뜻을 가지있다고 하였습니다
1) 한 부모를 뿌리로 하고 있습니다
2) 피를 나눈 사이입니다
3) 같은 기업을 가지고 있는 관계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한 형제요 한 자매라고 합니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나아가 에수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 받기에 우리는 한 형제요 한자매의 관게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맺어진 관계가 형제관게라면
바울이 말하는 주안에 서는 형제애---즉 형제관계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몇가지 말씀을0
사랑은 내가 먼저하는 것이다
1절을 시작하기를----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라고 시작합니다
이말을 다른 말로 말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형제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형제의 사랑은 내가 먼저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주안의 사랑이란 내가 먼저하여야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먼저 사랑하기 위하여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따르는 것이 있는데---- 희생이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랑과 희생은 뗄 수 있다 없다?--------뗄수가 없어요----
그래서---사랑한다고 하면서 희생하기를 거부한다면----
아무리 미사어구를 사용하여----말한다고 하여도----그것은 가짜입니다
사랑의 시작이 무엇이냐----------남을 위하여 희생할 마음을 가지는 것이 시작이요
사랑의 과정이 무엇이냐----------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이 사랑의 과정이요
사랑의 결과가 무엇이냐----------남을 위하여 희생한 흔적이 사랑의 결과라고 하였0
믿습니까?----
바울 사도도 자신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데
얼마만큼 사랑할 관계이냐-----자신을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서라면
자신을 관제로 드릴지라도----자신은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관제로 드릴지라도----이말은 사도 바울같은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이냐
자기의 피를 바쳐서라도 빌립보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바울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말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희생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고
희생이 참 사랑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사모하는 것이 주안에서는 형제애입니다
여기 사모한다는 것은 “에피포데토이”라고 하는데------
이말은 그리워한다는 말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 오늘 바울이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라는 말은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사랑하다가보니
사모하고 그리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모하는 사람---그리워하는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바로 만나기를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면 사모하게 되고---사모한다는 것은
만나기를 소원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가 만나기가 싫어졌다----만나기가 거북하여졌다는 것은
사랑이 식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더 알아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게 되면----하나의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 현상이 무엇이냐하면-----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뭔가를 주고싶어한다는 것0
서로 사모하는 관계-----즉 주일을 지나고보면 서로 그리워하면서
일주일이 기다려지고 나아가 서로 뭔가를
주고 싶고 돕고싶은 그와같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요
이것이 형제된 참 마음이요
나아가 주안에 올바로 선 사람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형제로 인하여 기뻐하라]
1절을 다시 읽어 봅니다
나의 사랑하고 /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라고 합니다
누가 나의 기쁨이라고 합니까?-----빌립보 교인들이 나의 기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참 사랑은 받든지 주든지-----기쁨을 생산하는 매개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빌1:3,4절에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인하여 기쁨으로 간구함은-----”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을 사랑하였기에---생각할때나----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나
무엇이 있었더라?-----기쁨과 감사가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였는데
그 사람이 미워진다---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버려야 할 요소와 가져야할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1) 버려야할 것은----- 시기와 질투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이 말씀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만
시기하고 질투하는 한-----참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인생이 자신을 거르치고-----망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한가지가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많은 사람은-----틀림없이 자신을 잘못된 길로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칭찬을 할 때------
나를 칭찬하는 것을 제가 좋아하겠습니까?
나의 아들을 칭찬하는 것을 제가 좋아하겠습니까?-----
저의 아들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남의 집에 가서--- 칭찬을 할 때-----
아들을 보고-----아따 그놈----자기 아버지보다 훨씬 낫다고 칭찬을 하면 좋아한답니다
그런데 아들을 보고----어이구 이놈----저거 아버지 보다--훨씬 못하네라고 한다면
아들의 기분도 망치고 아버지의 기분도 망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와 형제가 함께 있다고 하였을 때
절대로 일방적으로 칭찬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시기심이 발생을 한다는 것입니다
형이 학교에서 무엇인가를 잘해서 부모님이 칭찬을 할려면-----
비록 동생이 잘못하더라도-------동생의 장점을 생각해 두었다가
꼭 동생에게도 칭찬을 해주는 것이 교육적인 효과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큰애가 잘하고 동생이 잘못한다면
본좀봐라고 하면서 큰애만 막 칭찬을 해주는데
그렇게 하면-----동생이 분발해서 잘할 것 같지만
더욱더 빗나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은 항상 같이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기와 실투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창4 인류최초의 형제가 등장을 합니다
누구와 누굽니까?-----가인과 아벨
형이누굽니까?-----가인이고----동생이 아벨입니다
형은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었고------아벨은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어느해 형과 동생은 함께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리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의 제사를 받으셨나요?----아벨
여기서 우리가 잠시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가인이 형이라면
적어도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을 때
그는 형으로서 어떻게 나와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여야 합니까?-----아니쟎아요
그렇다면 어떻게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벨아---형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형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았는데
그래도 너의 제사라도 하나님이 받으시니 너무너무 기분이 좋구나
동생아 정말 잘했다-----고마워----너의 제사까지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니----정말 수고했어------
하나님이 너의 제사를 받으시니----내 마음도 기뻐”라고 하였다면
기독교의 새로운 역사를 알려 주었을 것이고
두고두고 오고 오는 세대의 귀감이 되고
나아가 하나님은 그 제사를 드린것보다----더 기뻐게 받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으면서-----아벨의 제사만 받자
그의 얼굴의 상이 싹 바뀌어 버리고-----이를 악물고 있다가
마침내 그는 동생을 들판으로 유인하여----쳐죽이는
최초의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사울이 왕이 망한 이유중의 하나가----- 시기와 질투심입니다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천신만고 끝에 승리하고 돌아 올 때
동네의 아낙네들이 나와서 왕의 일행을 맞으면서 부른 노래가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로다
그렇게 노래를 하면서 자기보다 다윗을 더 높이자
사울이 그것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마음에 찾아 온 것이 무엇입니까?-----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자신이 왕입니다-----왕이라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한가지 잘못생각하고 있는 것은
왕이라면 무엇이든지 최고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왕이 무술도 뛰어나고---------학문도 뛰어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을 가져야합니까?----------그렇지 않습니다-----
유다 역대왕 중에서 최연소 왕이 누군지 아시는 분
요아스--몇세?----7세에 왕이 되었어요
그리고 다음으로 적은 나이로 왕이 된 사람이----
요시야인데----그도 8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요아스나 요시야는 둘다 그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이들은 둘다 유다역사에 길이 남는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든 것을 가지고 왕이 되었습니까?
전쟁을 잘해서 왕이 되었고 이름을 날렸습니까?
아니면 학문이 뛰어나서 왕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나라의 국민을 먹여 살릴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왕이 되었습니까?
그런 것 가진 것 아닙니다------누가 세워서 왕이 되었습니까?---하나님
그래서 이들의 공통점은-----모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울도 마찬가지 쟎아요
자기가 다 잘할 이유가 없단 말입니다
또한 신하가 잘하는 것은 임금 자신이 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한다고 칭찬을 받으면-----결국은 누가 잘하는 것과 같습니까?
그것은 내가 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서 믿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죄와 더불어 살고----세상의 물결따라 이리저리 살아간다면
결국은 누가 욕먹습니까?----지도자인 내가 욕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역자의 중심은
여러분이 가정에가면 가정에서-- 직장에 가면 직장에서-----
이웃에게 가면 이웃에게-----사회속에 들어가면 세상사람에게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교역자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사울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다윗이 자기보다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지를 못합니다
그 마음속에 질투와 시기심이 불일 듯 합니다
그러자 그 마음에 무엇이 찿아왔습니까?-------악령이 찿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참 사랑의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시기심과 질투심을 버리는 것이 첫 번째라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섬김을 가져라]
는 섬김의 삶의 살때-----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섬김을 받으려고하는 삶이 아닙니다
섬기는 삶입니다
장로님 교회를 몇 개 개척을 하셨어요?-----두개?
쉬워요 어려워요?------참으로 힘들고 어려워요
사실은 제가 이곳에 들어오기전에 개척을 할려고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개척을 한다면 도와 주겠다는 사람들도 15-6여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개척을 할려고 작정을 하고 보니
나와 함께 개척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신앙적으로 사는 사람들이지만------돈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내가 사랑하는 저 신앙적인 사람들을
고생시킬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이곳으로 들어 왔습니다
말씀이 조금 딴 곳으로 갔습니다만
저의 첫 임지가 개척교회였습니다
개척교회에 봉사를 하면서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은
한 교회가 개척을 하여 성장하기 위하여서는-----
자신을 던져 섬기는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들이 없이는 교회가 성장할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님도 교회를 개척하실 때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을 보십시오
교회를 하나두나 개척을 하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수십개의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하나 하나를 세울 때 마다-----그는 섬김의 삶이 없이는 안되었을 것0
섬기며 교회를 세웠을 때----그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 것 같습니까?----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김의 길을 걸어가본자만이 아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울진 지역에서 제일가는 교회는 성장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성도를 사랑하기에-----
섬기고자하는 성도가 많아질 때----교회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안되게 하고자 하기를 원한다면----섬김의 시간을 없애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섬김이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섬김은 하나님의 기쁨을 받는 통로라고 생각하십시오
경기도 시흥시에 엘림양로원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의 원장은 김성애 권사님이시라고----
88년 남편이 지병으로 돌아가시자 당장에 먹고 살기가 힘이 들었다고합니다
그래서 이분이 생각한 것이 일단 배를 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그것이 분식집을 하면 아들이나 자기나 배는 곰지 않을 것 같아서
분식집을 내고 새벽에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오늘 15000원을 벌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하고 시작을 하였는데
하루에 15000원을 벌면 3아들의 학교 다니는데 필요한 돈을 억지로라도
맞출 것 같아서 큰 맘먹고 기도를 하였는데
하나님이 얼마를 주셨는가 하면----4만원-----
그래서 하루에 15000원은 자기의 것으로 쓰고----
나머지는 저금을 하여---500만원이 모이자 어디에 쓸까라고 기도를 하였는데
집을 사서 수리를 하여---오갈 때 없는 노인들을 한두사람 모시기로 하였다는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단 먹을 것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이 엘림양로원이----지금은 연립주택 3개를 매입하여
34명의 무의탁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에게 국민일보 기자가 찾아가 인터뷰를 하였는데
그분이 한마중에 너무나 아름다운 말이 두가지가 있는데
1) 섬김이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을 얻는 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섬김은 당장에 찾아 쓸수 있는 현금은 아니지만
삶의 기쁨을 주는 행복의 저금통장이라고나 할까요라는 말입니다
그는 섬김을 통하여 기쁨을 얻었고
섬길 때----삶의 기쁨이 하둘 쌓여가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통장이라는 것입니다
2) 자신의 섬김의 가장 큰 잣대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나라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고 그 중심에서 섬긴다는 것입니다
말한마디를 하더라도 내가 이 말을 들었을 때
음식을 대접을 하더라도----내가 이 음식을 대접받았다면이라고 생각하고 하니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