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몽골인들과 우리 나라의 분기는 아마도 선사시대에 일어 난일이 아니라 고조선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고조선은 bc 약 800년전에 대변혁이 일어났다. 고조선의 단군이 점차 힘이 약해지고 북부여의 해부루가 일어나 장군이 되었다. 그런데 단군은 힘이 다함을 알고 다음 단군 자리를 서우여에게 주려했으나 해부루가 서우여를 잡아 귀양 보내니 어절수 없이 차기 단군은 해부루가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옛조선은 대부여라 이름 짓고 해부루가 단군으로 취임한다. 대부여 이후 부여,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백제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무로 옛고구려가 단군으로서 일대 영웅으로서 해부루를 섬겼는데, 이는 동부여와 북부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중국의 역사서에 동명이라는 이름의 부여 동부여 북부여의 영웅에 대한 전설이 남았던 것이다.
해부루는 색불루라 하기도 하고 동명이라 하기도 하는데 동명은 동쪽의 밝은이라는 듯인데 이를 순 우리 옛말로는 해부루 혹은 새부루이다. 이를 한문으로 차자화한 것이 해부루, 색불루인것이다. 옛 신라가 '시라'라고 했는데 이는 동쪽 나라라는 뜻이다.
'시'나 '히'나 '해'는 다 우리 옛고어에서는 동쪽 혹은 하얀, 혹은 해를 나타낸다.해가 뜨는 곳이니 동쪽인 것이다. 이는 고조선의 어원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원래 고조선은 고대 중국의 발음으로는 '시우진'이다. 이는 숙신의 발음이 '시우진'이고 시를 빼면 우진, 즉 여진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동쪽('시')의 위대한('우')사람('진')(현재의 차이나 혹은 일본인의 조센'징'이라는 말처럼 사람을 나타내는 옛고어이다)이라는 뜻이다. 물론 우리 민족은 스스로를 우진이라 하였다. 즉 스스로를 위대한 민족, 혹은 위대한 사람, 혹은 큰 사람이라 하는것이다.
이것의 잔재가 bc 7세기에서 bc 3세기 사이에 쓰여진 산해경에 동쪽의 우리민족을 '대인'이라고 한문으로듯을 옮긴 글이 남겨져 있고, 더군다나 우리 민족은 스스로를 밝은 땅의 민족이라 하여 밝달족이라 하였지만 이를 산해경에서는 '백민국'이라 하였다. 이렇듯이 고대 조선인들은 주변 땅을 다 배달족 답게 '시베리아'(하얀 벌판), 발해(밝민족의 바다-바다의 옛고어가 바랄과 바다가 있었다. 전자를 분해하면 밝+알이 되는데 '알'은 우리 엣고어에 우물이나 갖힌 물, 샘속는 곳, 혹은 북쪽의 성스러운 물, 혹은 모든 것을 낳는 생명의 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랄은 결국 밝은 바다의 의미였을 것이다), 바이칼(밝+알의 결합어로서 밝은 민족의 성스러운 호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이라는 식은 밝과 관련된 용어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지칭한다.
그런데 바로 대부여를 건설하고 후에 나라가 쪼그라지고 약해져서 고구려에 약 2세기 흡수당하는 북부여는 원래 고주몽의 먼 선조(그렇다고 스스로를 부르고 마치 대부여 마지작 단군인 해모수와 유화부인의 아들로서 천제의 적통으로 스스로를 내세우는 수법은 옛 왕국의 창설자에게는 흔한 일이다)인 해부루(여기서 잠시 백제의 왕들의 성씨가 해시였고 후에 부여씨로 바꾸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에서 그 스스로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스스로를 단군을 섬김으로써 단군의 옛 땅을 수복하고자 '다물'(엣국토를 되물려받는다)을 국시로 삼았던 것은 어쩌면 정복군주로서의 당연한 이ㄷ올로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북부여가 비류수 즉 지금 몽고의 지류인 '비이르'강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역사의 정설이다. 여기에서 고주몽은 스스로 독립하여 나라를 세우는 데 이때 여기에서 송양국의 위치가 바로 '비이르'강이라는 것이다. 이들과 싸워 굴복시키고(이가 바로 송양국왕과의 도술 및 활쏘기 신화로 나온다), 그 딸인 소서노와 결혼하여 고구려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소서노의 전 남편 사이에 난 아들들이 이 후에 해를 성씨로 스면서 백제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부루의 가계는 백제계가 적통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유화부인이 해모수라는 대부여 마지막 단군의 아내로서 고주몽을 낳았다고 함으로서 송양국(즉 약해진 북부여일 공산이 큰데)을 통합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일 공산이 크다.
여하튼 이렇게 세워진 고구려의 역사로 볼때 몽고와 우리 민족의 분기는 바로 고조선과 대부여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누에치기와 오곡의 생산, 그리고 반농반목 상태가 어울리는 대흥안령 산맥(옛고구려 지명으로는 개마대산)이남의 만주 땅의 기후 상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떨어져 나간 선진 부족일파인 조선족들과 부여족들은 남아있는 몽고족에게는 오직 고구려라는 이름과 비이르(비류)강, 그리고 비이르는 '밝'(부여)의 남은 흔적만이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솔롱고스라는 말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사실 무지개가 있는 땅이니 머니 하는 말은 현대의 몽고말이지 엣말이 아니다. 실은 솔롱고스는 옛 우리말의 몽고화한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 말에 높은, 혹은, 솟아오른 이란 말은 '송골매'에서 남아 있듯이 '소'라는 말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구려말에는 '높다'라는 말은 솟아오르다라는 현대말에서처럼 '소'와 관련이 있다. 높이 솟아오른 나무이니 '솔'나무고, 솟아오른 봉이니 '설악산'이다 수락산, 높은 도시이니 서울이다. 이말이 '소올'이 되고 축약이 일어나면 '솔'이된다. 높이 솟아오르는 매가 송골매가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그러나 'ㄹ'은 여전히 남아서 솔로가 되지만 몽고어 발음상 '솔롱'이 된다. 더군다나 음운 현상에 의해셔 바로 고자와 작용하여 부드럽게 발음이 나도록 솔롱이 되는것이다.(참고로 일본말에 높이 솟아 있는 하늘을 '소라'라고 한다)
여기에 '고스'의 어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구려말에 나라를 '골'이라 하였다 도시이름을 '모라'(후에 우리나라말 마을, 일본말 무라의 고대형)라고 한것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말에는 나라에 대한 말은 세가지가 있었다. 벌, 라, 골이 그것이다. 벌은 후에 벌라 -->펴라(평양의 원래 이름)가 되고 위대한, 큰 벌이 서벌-->서라벌-->서울이 된 것에서 볼수 있다.
라는 현재의 나라(나는 강의 고어/현재의 '내' '냇가'와 비교, 라는 산을 낀 평야이다)에서 볼수 있다. 더군다라 가야 옛 이름이 다 '가라'이다(삼국유사 가락국기 참조) 그것처럼 고구려 계통은 '골'을 나라라는 이름으로 썼다 여하튼 도시성읍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개척하는 시대였기에 고구려의 옛이름은 '솔골'인 것이다 게다가 골은 현재도 그 자취를 남기고 있는데 그것은 '곳'(장소)라는 말에서 남아 있다. 따라서 솔롤고스는 옛말에 높은 나라, 위대한 나라라고 스스로를 불렀던 고구려의 원 이름인것이고 몽고식 전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몽고어로 그리하여 무지개가 있는 나라라는 이름이든지 간에 고구려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어원으로 따져보면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더욱 깊이 알수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몽고인이 우스꽝스럽게도 우리나라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는 의미로 도대체 이상하게도 높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이 해석이 더욱 설득력 있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각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