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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낸 『불멸의 여인들
이병철 저/ 1993, 김영사
13.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
- 미국의 무용가로 현대무용의 창시자 이사도라 덩컨은 정열적으로 춤추고 정열적으로 살면서 4개 대륙에서 뉴스의 중심이 된 인물이다. 보스턴에서 금지 당했고, 세인트루이스에서 조롱당했으며, 파리에서 찬사를 받았고, 뮌헨에서 떠받들렸다. 그는 조국이 없는 미국인이었고, 히피의 선조였으며, 불타는 듯 빨간 머리카락과 보랏빛 눈을 가진 춤의 여신이었다.
- 이사도라 던컨은 개인적 삶에서도 숱한 화제를 뿌리며 현란한 삶을 살았지만, 예술의 한 분야에서는 미술에서의 피카소처럼 위대한 개혁을 이루어 냈다.
- 서양 춤의 전형이란 고전파 혹은 낭만파 발레를 의미한다. 그 우아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에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 이사도라로서 , 그녀는 기계적인 테크닉과 약속된 동작에 얽매인 발레의 형식이 인간의 형태를 왜곡시킨다면서 일체의 틀을 깨고 ‘자기 멋대로’의 춤을 추었다. 전통과 기존 관념을 송두리째 뒤엎은 이 ‘자유로운 예술’ ‘미래의 춤’에 대해서 비평가들이 감탄했다. “던컨이야말로 춤으로 음악의 의미를 표현한 첫 인물이다. 그녀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추었다.”
- 1898년 팔과 다리를 드러내고, 몸에는 얇은 튜닝만 대충 걸친 채 무대에 선 이사도라의 춤은 청교도 전통이 강했던 미국사회의 점잖은 분위기에서는 예술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보내준 지성인 한 사람도 없었다. 실망한 이사도라는 영국으로 떠났다.
- 런던은 달랐다. 아무도 맨발로 춤추는 데 대해서도, 훤히 비치는 베일을 사용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정중했다. 그녀는 갑자기 런던 사교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파리의 예술가들도 그의 춤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베를린은 이사도라를 ‘성스럽고 신과 같다’고 격찬했다. 고전 발레의 요람인 러시아에서도 이사도라를 평하여 “러시아 제국의 고전 발레에 치유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고 평했다.
- 불의의 사고로 두 아이를 잃은 이사도라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뉴욕, 나폴리, 몬테비데오, 부에노스아이레스, 샌프란시스코, 아테네 등을 유랑민 같이 누비며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그녀는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
- 1916년 독일군이 베를린을 포격하자 그녀는 <미르세예즈>를 트로카데로 무대에 올렸다. 이 공연에서 그녀는 도발적인 몸짓으로 표현했다. 절정의 순간에 그녀는 “시민들이여 무기를!”하고 외치자 관객들은 울면서 떨쳐 일어섰고 열광적으로 앙코르를 외댔다. 그러자 그녀는 윗도리를 찢어서 한 쪽 젓 가슴을 드러냈다.
- 1927년 니스에서 자동차 사고로 그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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