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학번 국어국문학과 김숙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포항 국문학과 동문회 문학기행 일정이 담긴 책자의 스프링이 몇 개 빠졌다. 끼워보려니 잘 안된다. 한 개 끼면 한 쪽이 빠지고, 빠진 것을 끼우려 하면 그 옆이 또 빠진다. '안 쉽네.' '세상에 쉬운 게 없어.' 어제 이효석 평창 문학기행을 생각했다. " 이 책은 제가 기부한 것이에요. " " 이 딸기와 토마토는 제가 기부했어요." "여러분들이 타는 이 버스는 제가 준비했어요. " 귓가에서 초롱초롱 여러 후배 말들이 다시 들린다. 한 행사를 하기 위해서 밥을 한 사람, 된장국을 끓인 사람, 야채를 씻어 준비한 사람, 간식거리들을 사서 소분하여 봉지에 담은 사람, 커피를 타서 준비한 사람, 카메라를 둘러메고 온 사람, 일정 책자를 만든 사람, 안내 책자는 또 그냥 만들어지겠는가? 여행 일정을 짜고. 이효석 작가에 대한 검색을 하여 작가 이효석에 대한 상식을 프린트를 하고, 이효석 작가님의 작품을 찾아내서 필요한 부분을 편집하여 프린트하고, 수고한 모두들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아른거린다. 빠진 스프링을 다 끼우고 첫 장을 넘긴다. 06 : 포항 출발, 그래 출발이 아침 여섯시였지. 일주일 중에서 토요일까지 내 업무는 밤 9 시에 끝 난다. 버스 타고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 이번 여행을 위해서 나는 토요일은 하루 일정을 취소했었다.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씻고 따뜻한 누룽지라도 몇 숟가락 들면 11시가 된다. TV 프로 조금 보고 씻으면 밤 12시 가 된다. 아참 내일 집에 있는 남편 반찬이 뭐가 있더라. 황태 미역국은 끓여 놓았고, 배추, 열무물김치도 거 내놓았고, 파김치 꺼내 놓았고, 구워 먹을 쇠고기도 있고, 머릿속을 정리해 보니 뭔가 조금 부족한 것 같다. 그래 닭 가슴살 삶아놓은 것 있지.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냉장고의 삶아놓은 닭 가슴살을 꺼낸다. 어떻게 요리를 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감자 몇 알과 양파, 당근을 꺼내서 씻고 깎는다. 깍둑썰기를 했다, 간장 5스푼, 비정제 설탕 3스푼, 올리고당 1스푼,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짜지 않는 장조림을 만들었다. 그것도 익혀 졸이느라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새벽 한 시 반이 넘었다. 반찬통에 담아놓고 자려고 누우니 피곤한 지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새벽 4시 반에 자명종을 맞춰놓고 잠을 청해본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불면증인지 도통 잠이 들지 않는다. 내일 아침 동문들의 식사 준비를 위해 된장국을 끓인다고 했는데 그들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까 생각한다. ' 대단한 사람들이야 .' 열정과 에너지가 없으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눈은 감았지만 정신은 더 또렷해지고 쉬이 잠이 들지 않는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난다. 같은 기수 M과 S 도 간다고 해서 다행이다. 아무래도 나이 많은 내가 혼자 문학기행을 가는 것보다 절친 우리 기수 동지가 있으면 더 좋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젊은 사람들이랑 어울리려면 젊은 옷을 입어야 좋을 텐데 머리를 굴린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덥지 않아야 하고, 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는 의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바지 위에 청 원피스를 입자. 여행은 주머니가 많으면 좋으니 주머니 많은 빨간 조끼를 걸치자. 사진이 잘 나오고 밝게 보이게 진주 목걸이도 걸자. 메고 갈 가방을 챙긴다. '상비약, 휴지. 물티슈. 물 커피. 만약을 대비한 비를 피할 방수 잠바. 긴팔 잠바까지 챙기니 가방이 묵직하다. 장거리이니 멀미약도 먹어야 하나 생각에 멀미약과 활명수도 챙긴다. 아유 다리도 부실한데 가방은 왜 이렇게 무거운지 궁실 거리면서 가방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뭘 빼야 하는데 뺄 게 없다. 아참 미션으로 나눔 할 책도 두어 권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생각나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다가 "수필과 비평" 두 권을 챙겨 넣었다. 가방이 더 무거워진다. '아참 돈도 챙겨야지.' 아뿔싸 어제 소금 값이 오른다기에 탈탈 털어서 현금으로 소금을 다 사서 현금을 다 썼다. 지갑에 6,000원이 고작인데 어쩌지? 남편에게 좀 달라고 할까? 남편도 늦게 잠들었다는 것을 알기에 깨울 수가 없다. 어쩐다지? '기부금도 좀 내야 할 텐데.....' '아 참! 지갑 속에 비상금 5만 원권이 한 장 있을 거다. 얼른 확인해 보니 있다. 야~~~~~~~~호!'
이제 출발이다. 호돌이 탑 앞으로 가자. 걸어가더라도 시간은 넉넉하다. 40분 전이다. 다리가 부실하니 무릎 보호대도 했다. 혹시나 관절 진통제도 먹었다. 비가 오려고 하면 관절 구석구석이 아프다. 일기예보에서 일요일에 비가 올 것이라고 했으니 미리 약을 챙겨 먹어야 한다. 아들을 셋을 낳았고, 평생을 부려 먹어서인지 온 관절이 성치 못하다. 무릎, 손가락 마디마디. 허리. 어깨. 말 그대로 구석구석 통증이 있다. 좀 덜한 날이 있고, 더한 날이 있다. 뱃 속도 시원찮다. 조금만 색다른 것을 먹거나 속이 냉하면 설사를 한다. 나이 일흔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유산균과 혈압약을 챙겨 먹는다. 이러한 나를 젊은 사람들이 반겨 나 줄까? 나도 주책이다. 혼자서 피식 웃어본다. 모르겠고 일단 가보자. 아침 공기는 시원하고 청량하다. 하늘은 모처럼 옥색 비단이다. 하늘을 봐서는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자그맣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새파란 수평선 ~~~~. 하늘이 바다로 보인다. " 모두들 왔는지 손목의 워치에서 소식이 왔다. " 우리 버스는 영신고속관광입니다. " 세상 참 좋다. 시계에서 문자도 본다. 혈압도 체크해 주고, 운동량도 체크해 준다. 시계의 기능이 이렇게 바뀌리라는 것을 옛날 해 시계, 물시계를 사용했던 우리 선조들은 짐작이나 했을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인터넷 세상이 있고, 형체도 없는 와이파이, 데이터라는 것도 있어서 세상을 소통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저만치 " 영신관광 " 이 보인다. 먼저 나와서 반겨주는 동문회장님이 보인다.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신 것일까? 버스기사님도 미리 잘 청소하여 반짝반짝 윤이 나는 버스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잇따라 안녕하세요? B 씨가 보인다. M 씨가 언니를 데려온다는 소식도 들려준다. 좋다. 인사와 함께 동문들이 차에 오른다. 강원도까지 가려면 거리가 멀다. 멀미를 안 해야 할 뗀데...... 가방 속의 멀리 약을 만지작거린다. 망설이다 그냥 둔다. 드디어 강원도 평창으로 출발~~~~~
우리가 가는 곳은 " 강원도 평창군 효석 문학 길 73- 26" 간단한 동문 후배님의 인사와 함께 핑크빛 표지의 안내 책자를 나눠 준다. 내가 이 문학기행에 참여한 것은 나태한 나의 채찍질의 한 방법이다. 문학 탐방을 하고 먼저 간 이효석 문학 선배님의 기를 받기 위함이다. 나는 내 문학기행의 목적을 이렇게 잡았다. 재치 있는 행사부장님의 사회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놀았더니 영덕 휴게소에 다다랐다. 된장국. 밥 ,나물, 회 무침. 과일. 커피. 언제 이렇게 다 준비했을까? 차 안에서 받은 간식 봉지에서 떡도 꺼내 먹었는데도 아침밥은 술술 잘 넘어간다. 여행길에 바다를 차창으로 볼 수 있음은 행운이다. 차창 밖으로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실컷 볼 수 있었음은 행운이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푸름이 끝없이 펼쳐지고, 하얀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기암의 향연이 펼쳐지는 동해안의 바다. 초곡 용굴 촛대바위는 기암의 향연이 펼쳐지고 고요하고 아늑하다는 것이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친환경 태크. 출렁다리. 전망대 등 해안 길을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만들었나 생각해보니 의구심마저 들었다. 강원도 삼척의 해안 전경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행복감에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초곡 촛대바위 현판이 걸린 입구에서 방송대학 동문회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을 찍었다. 앞 줄에 서서 찍었다. 그러고 싶었다. 다시 젊어져서 피가 끓는 나이고 싶은 거였다. 곳곳에 놓인 포토존에서는 여기저기 발 빠른 동문들이 바다의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고 있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는 짜릿함과 약간의 두려움은 덤이었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삼척시 근덕면 초곡항 해변 절벽을 따라 600m 정도의 해안절벽 둘레길. 그리 멀지도 않는 산책길로는 너무나 멋졌다. 특히 촛대바위는 넋을 잃고 감상했다. 시간이 조금만 더 허락된다면 더 보고 싶은데 갈 길이 먼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맛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강원도의 메밀국수를 먹으러 간다고 하면서 비빔과 물냉면 중에서 선택하라고 해서 물냉면을 시켰다. 그런데 식당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니 메밀전. 메밀 묵. 막걸리. 정말 진수성찬이었다. 회장님의 배려로 우리는 평창의 별미 맛을 감사한 마음으로 호강했다. 드디어 이효석 숲에 도착했다. 기대하던 메밀 꽃은 보이지 않았지만 자생 식물들이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산책길도 잘 닦여져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일행들은 사진을 찍었고, 평화로운 산책을 했다.
효석문학 100리 길. 가산 이효석 선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배경지인 평창 봉평 효석 문화마을에서 평창읍까지 소설 속의 옛길을 따라 평창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걷는 길이라는 안내판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다 걸을 수는 없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문학의 길을 우리들은 걸었다.
그리고 사진으로 남겼다. 이효석 작가님의 흉상옆에서도 함께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도 당신의 글재치를 나누어 주세요. ' 꺼적거림이 있는작가님의 문학의 방에서 받은 감명이 진하게 뇌리속에 자리 잡았다. 꺼적거림. 그래 맞다. 맞다 그것이 문학작품의 초석이 아니겠는가.
달빛 언덕. 이효석 문학관. 덕봉산 둘레길. 결코 한 번의 여행길에서는 다 음미할 수 없는 아쉬운 관광을 접고 우리들은 해물 순두부찌개를 저녁으로 먹고 포항으로 향했다. 행사부장님의 입담과 재치 있는 전개로 노래방 노래를 부르면서 버스 안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멀미도 하지 않았고, 먼길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의 수고로움이 행복한 여행을 만들었고 ,고향을 만들었고, 친정을 노끼게 해 주었다.
강원도 평창 문학 기행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 갔다. 덕봉산 둘레길 전망대가 눈앞에 아련거렸다. 35세에 저 세상으로 가신 이효석님의 굵고 짧은 삶이 가슴을 아렸다. 휴대폰에 속속 도착하는 사진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다음에 또 끼워줘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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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님 긴 글을 읽으면서 몇칠전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금 느껴봅니다
다음에도 물론 모셔야지요 끼워주기는요
저희를 데려가 주세요 ^^
멋 지시다.
울, 숙임 선배님
따뜻한 마음으로
후배사랑을 몸소 실천해 주시는 김숙임 선배님
오래도록 숙임 누님의 글은 회자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