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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스크랩 대둔산 금강리지
스나이퍼 추천 0 조회 5 07.08.04 21: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둔산 금강리지○

 


 - 짧지만 벅차게 작은 금강 오르다

 

대둔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바위가 많은 곳이다.

때문에 최고봉 마천대(877m)를 비롯해 신선바위, MC로드바위, 돼지바위 등에

많은 암벽등반 루트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개척중이다.

하지만 대둔산이 설악산과 비교해 항상 부족한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그것은 아름다운 대둔산의 풍광을 즐기며 등반할 리지 코스의 부재였다.

 

이런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넓은 안목으로 대둔산 바위능선에 첫 개척 작업을 나선 이는

1985년 마천대의 동지길(5.11c/d)을 개척한 오영택, 정상은씨다.

이후 대전 산악계의 큰 형님으로 통하는 윤건중 전 대전산악연맹 회장이 1987년 총 6마디의

연재대리지(5.12c)를 개척한다. 대둔산의 리지 개척에 물골을 튼 초기의 개척등반 이후,

1999년 이기열(41세)씨의 중경산악회가 우정(5.10b/c)길을, 2006년 대둔산산악구조대가

구조대(5.10d)길을 개척하면서 대둔산은 다양한 등반이 가능한 리지등반 대상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취재진은 5월의 눈부신 신록이 반기는 대둔산으로 차를 몰았다.

늦은 밤 도착한 대둔산 초입의 대둔산산악구조대 사무실에는 내일의 보고회를 위해 많은 충남,

전북의 산악인들과 구조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짧지만 만만치가 않아요. 하지만 등반은 아기자기 하고 주변 경관은 끝내줍니다.”

금강 리지 개척의 주역인 대둔산산악구조대 대원들과 늦은 저녁까지 이어진 이야기들을

술잔에 담아 마시고 취재진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짧은 선잠을 잔 후 동그랗게 마천대 위로 뜬 새벽 보름달을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대둔산으로 향했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산정에 걸린 바위들이 여럿 고개를 든다.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양 그 폭이

장대하다. 누구는 이 바위 군을 석림(石林)에 비유했다. 적절한 표현이다.

“저기가 금강 리지예요.”

멀리서 본 금강 리지는 짧았다. 하지만 가팔랐다.

아기자기한 등산로가 끝날 즈음 케이블카 승하차장이 보인다. 휴일이라 많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길은 케이블카 승하차장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주변은 온통 클라이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거대바위들의 행진이다.

좁은 소로에서 벗어나자 동심바위 아래쪽에 위치한 동심정 휴게소까지 비교적 넓은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금강 리지의 등반은 이 동심정 휴게소 전 우측의 희미한 소로를 따라 20미터 정도

옆쪽에 위치한 너른 공터에서 시작한다.

취재진은 장비 착용을 서둘렀다. 초반부터 만만치 않은 벽 때문인지 모두들 암벽화를 착용한다.

초입에서 바라본 금강 리지는 리지의 개념보다는 멀티피치 등반에 가까운 개념이 들 정도의 가파른

경사도를 보인다.

 

“네 마디 모두가 5.10급이 넘습니다.”

“특히 두 번째 마디는 5.11급의 난이도라 부담감이 있죠.”

이왕영 구조대장의 설명이 끝날 쯤 이남식씨의 등반이 시작됐다.

이곳은 거의 페이스 등반이 필요한 루트다. 능숙하게 벽을 헤쳐 가는 그의 몸놀림이 날래다.

벽 주위로는 흥건히 물오른 초록의 나무들이 아름다운 계절 봄의 끝자락을 알리고 있었다.

초록의 행진 뒤에는 전라도 두메산골의 장쾌한 능선들이 첩첩이다.

 

등산학교일로 바쁜 이기열씨와 이남식씨는 첫마디 등반을 마치고 먼저 하산을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등반을 위해 구조대의 맏형격인 이종택씨와 이왕영씨가 작은 테라스에서 등반을

준비한다. 이들의 머리 위로는 금강 리지의 최대 고빗사위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초입부가 오버행인 5.11b/c급의 크랙이었다.

언더크랙을 잡고 넓은 좌향 크랙을 올라야 하는 마디다.

“여기가 제일 알쏭달쏭해.”

 

“형님! 위에 작은 홀드를 잡고 발은 재밍 하세요,”

이내 거친 숨소리 사이로 아슬아슬한 오름 짓이 시작됐다.

레이백 자세로 직각이 넘는 경사의 홀드를 잡고 과감하게 동작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강한 근력으로 언더홀드를 지나 직벽의 두 번째 볼트를 지나자 테라스에는 안도감이 흐른다.

“형님! 대단하십니다.”

테라스에는 긴장이 이완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종택씨가 세 번째 볼트를 지나자 경사는 조금 완만해지기 시작했다.

 

짧지만 긴장감이 느껴지는 마디였다. 등반이 마무리 될 즈음 이왕령씨도 손목 인대부상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찔한 크랙으로 향하더니 이내 공제선 너머로 사라진다.

취재진이 두 번째 마디를 끝내자 암릉 틈에는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수령 천년 가량의 소나무가

강한 생명력을 뽐내고 서 있었다. 소나무 주위로는 오후 한갓진 시간 너른 벌판을 내다보며 휴식을

취하기 딱 좋을 테라스다. 배낭도 내려놓고 신발 끈도 풀어낸 후 벽 중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구조대로 활동하며 루트개척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열정이 없으면 루트를 만들 수 없지요. 바쁜 생업을 이어가며 루트개척과 구조작업 모두를

병행하기가 참 힘들어요. 외부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잠시 테라스에서 쉬는 사이 구조대원으로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산사랑 하나로 봉사활동과

등반활동을 하고 있는 산악구조대의 애환을 이야기 한다.

‘우르릉 쾅!’

하늘은 금세 비를 퍼부을 듯 천둥소리와 강한 바람을 동반한다.

“한바탕 쏟아 지겠는데. 바람에 습기가 있어.”

이종택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람도 쇳소리를 내며 귓가를 스친다. 서둘러야했다.

세 번째 마디도 역시 이종택씨가 선등에 나선다.

 

구조대에서 가장 연장자인 그이지만 등반 열정은 마치 막내대원 같다.

세 번째 마디는 우측의 나무 사이로 들어가 벽을 올라야 하는 코스다. 벽은 거의 수직에 가까웠다.

크랙과 페이스등반이 혼합된 루트다. 하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곳곳에 잡을 홀드들이 숨겨져 있었다.

이 직벽을 끝내면 경사도는 다시 완만해져 좌측의 완만한 바위지대로 루트가 이어진다.

로프는 바람에 날릴 겨를도 없이 쉬지 않고 이왕영씨의 하강기를 빠져 나간다.

“완료!”

 

“자일 고정! 주마로 올라갈게.”

이왕령씨는 다친 손목과 강하게 부는 바람으로 인해 등반대신 주마를 선택했다.

바람은 리듬을 타고 강약을 조절하는 듯 일정 한 템포로 불어댄다.

다소 경사진 테라스에서 본 정상은 이제 눈에 잡힐 듯하다.

 네 번째 마디도 좌측으로 돌아나가 직상하는 5.10b/c급의 루트다.

휴식을 취하지 않고 바로 등반에 나섰다.

 

좌측으로 돌아나가는 구간은 밸런스가 요구되는 구간이었다.

이 구간을 벗어나면 직벽 크랙과 페이스가 클라이머를 맞는다.

비교적 좋은 홀드를 이용해 마지막 페이스를 헤치고 작은 턱을 넘어서자 정상의 소나무가

취재진을 반긴다. 벌써 늦은 저녁이다. 서둘러 정상 사진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작은 침니를 지나 짧은 뜀바위를 넘자 머리 위가 바로 구름다리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비는 내리지 않아 다행이네.”

 

등반은 때로는 시간의 흐름을 예측하지 못한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등반에 몰입했던 하루였다.

아마 그 이유는 한시도 긴장감을 풀지 못하는 벽의 각도와 어려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석림과 암릉 그리고 소나무의 조화로움에 둘러싸인 수려한 대둔산의 풍광

 때문일 것이다. 취재진은 구름다리 건너로 하산을 서둘렀다.

낄낄대며 등반 초입으로 내려서는 길에서 우리는 벌써 형님과 아우님이 돼있었다.

산은 빠르게 사람을 하나로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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