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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내용은 네팔(Nepal)지역 여행체험기의 일부를 요약하여 올려놓았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네팔(Nepal)지역 여행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통합검색창에서 "네팔 여행체험기" 로 검색 하거나 또는 http://blog.naver.com/kosungkwan 주소로 들어가 크릭하시면 출발시 부터 돌아올때까지 순서대로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네팔로 떠나면서
무한대의 우주공간에 태양계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지구라는 위성에는 유일하게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있다.
또한 우리 인간이 살고있는 지구는 다시 동양이있고 서양이 있으며 이러한 동.서양에는 여러나라 여러민족이 살고 있다.
그래서 지구라는 위성에서 함께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인간이지만 우리와 문화가 다른 민족이 살고있는 나라에 대한 궁금한 부분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문화와 그들의 풍습을 직접보고 체험하기위해 또 한차례 여행을 출발하게 되었다.
여행은 항상 설레임으로 출발하는 여정(旅程) 이지만 막상 시행을 하면 고난투성이고 고달픈 일들이 수시로 접할때가 있다.
이처럼 고달픈 일정임을 알면서도 주기적으로 떠나는것은 여행이라는 것이 아마 자연스러운 나의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해서 여행에 대한 열정은 소년시절이나 60이 조금넘은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할땐 항상 아내와 함께 하였는데 사정에 의해 함께 떠나지 못하게 되어 마음한구석엔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나의 영원한 친구 조순(교장 은퇴)과 둘이서 함께하게 되어 더욱 뜻이 있는 여정이될것으로 기대된다.
지난달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조 순 친구는 필자와 초등학교 동창이다.
54년전 철부지 시절 서로 만나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서로의 우정은 변함이 없는 친구이다.
따라서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조순 친구와 함께 새롭게 접하는 네팔(NEPAL)에서 많은것을 체험하고 돌아올 계획이다.
또한 이번 여행은 먼저 네팔지역을 3-4일정도여행하고 네팔에서 국경을 넘어 인도로 들어가 북인도와 남인도 일주를 하는 13일간의 긴 여정(旅程)이다.
첫 여행지인 네팔(NEPAL)은 한반도 면적의 3분2정도(14만7000제곱킬로미터)의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를 국교로 하고 나라이기도 하다.
아무튼 또 다른 세계인 네팔(NEPAL :네팔연방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등을 많이보고 체험하고 돌아오길 마음속으로 기대해 본다.
네팔 여행을 출발하며
고 성관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탑승게이트에서 미국인 관광객과 함께 기념촬영(이들은 히말라야 산악등반을 위해 네팔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나이가 70이된 여행전문가였으며 여행관련한 여러가지 정보를 알려주는등 친근감과 인정이 많은 분들이었다.
네팔에 대한 여행정보
1.네팔로 가는방법
1)네팔가는 항공편
인천공항에서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대한항공 직항편이 있고 방콕이나 홍콩,상해를 경유해 가는 비행편도 있다.
비행시간은 필자가 탑승했던 대한항공 직항의경우 7시간정도 소요 되었다.
2)출입국
관광목적으로 네팔에 입국할 경우 관광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비자를 만들기보다는 네팔은 공항이나 인접나라와 맞닿아 있는 국경의 출입국사무소에서 도착후 비자를 발급받는 것이 편하다
*필자의 경우도 공항도착후 공항에서 US달라 25$을 주고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하였다.
2.네팔의기후와 시차
1) 기후
네팔의 기후는 크게 나무면 6-9월이 우기이고 9-5월이 건기이다.
건기에는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확율이 높기 때문에 우기때 여행하는것 보다는 건기때 즉 10월과 11월이 가장 좋은 기후이다.
특히 여름인 4-5월이되면 최고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10월과 11월은 밤과 낮의 기온차이는 있지만 평균기온이 25도전후이기때문에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
2) 시차
네팔은 한국보다 3시간15분 느리다.
*즉,한국이 12:00일때 네팔은 08:45분이다.
이웃나라인 인도 보다는 15분 빠르다.
3.네팔의 일반정보
1)국가 명칭및 면적
국가명칭은 네팔연방민주공화국(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
면적은 14만 7,000제곱키로미터(한반도의 3분의2)
2)인구및 수도
2008년현재 2천950만정도 수도는 카트만두(Kathmanu)
*통계자료:네이버 백과
3)네팔 국기
모양은 고대 힌두교 신들이 사용한 삼각형을 형상화 했다. 가운데 그려진 달은 평화,태양은 빛,적색은 네팔,청색은 하늘을 나타낸다.
4)종교
네팔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이며 전체 인구의 80%이상이 힌두교인다.
5)통화와 환율
화폐단위는 루피(Rupee)이다.
2011.10월현재 1루피는 우리나라돈 15-16원 정도이다.
그러니까 우리돈 10만원이면 네팔돈 약 6200루피정도 계산하면된다.
*환율은 수시로 변동이 있기때문에 여행일자에 따라 달라질 수있다.
네팔의 지폐종류는 Rs1,2.5,10,20,25,50,100,250,500.1,000 등이 있으며 동전은 Rs1,2.5,10이 있는데 거의 통용이 되지 않는 편이다.
특히 기념품을 구입할때 고액권을 주면 거스럼돈이 없는 경우도 있기때문에 가능하면 소액 지폐로 환전하면 사용에 편리하다.
6)전압과 플러그
전압은 220볼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자제품 충전기등은 사용하는데 불편이 없다.
플러그는 호텔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구멍이 3개된 플러그는 가운데 볼펜등으로 꽃고 사용하면된다.
7)식수
네팔에서는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지 않는것이 좋다.
호텔주변 상가등에서 쉽게 물을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구입하여 마시는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호텔이나 음식점등에서 나오는 물은 끊인물이거나 정수기에 거른후에 사용하기 때문에 그대로 취식해도 문제가 없다.
8)기타
언어는 네팔어를 사용하고 전체인구의 95%가 농촌에 살고 있다.
4.네팔 여행시 참고해야할 사항
1)흥정은 과감하고 끈기있게 하라.
관광지에서 기념품을 구입할때나 인력거인 릭샤를 타고자 할때에는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요금을 씌우는 경우가 있으므로 흥정은 끈기있게하되 과감하게 하라.
*예를 들면 2인승 자전거 릭샤(Rickshaw)를 체험하고자 할때 10불을 요구하면 2-3불로 흥정을 하면 된다.
2)화장실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아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호텔이나 식당같은곳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외곽으로 7-8시간씩 장거리 이동시에는 별도의 화장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야외 전체가 화장실이기 때문에 갑자기 설사등으로 급한일을 대비하여 사전에 휴지를 반드시 휴대하여 움직이는 것이 좋다.
3)금품을 구걸하는 꼬마들이 귀엽게 보이더라도 머리를 함부로 스다덤거나 만져서는 안된다.
네팔사람들은 머리를 가장 신성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꼬마들이 관광지 등에서 금품을 요구하며 구걸하더라도 머리를 함부로 만지지 않는것이 좋다.
4)처음 만난사람에 대한 인사는 "나마스테"라고 하면된다.
네팔인을 처음만났을땐 상대를 보면서 가슴 앞에 양손을 모으고 "나마스테"라고하면 상대쪽에서도 "나마스테"라고 복창하면서 무척좋아한다.
여행시 그냥 화난사람처럼 보이기 보다는 생긋웃으면서 "나마스테"라고 꼭 한번해보기 바란다.
이때 그들의 반응은 무척 좋아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긍정적인 의사표시 즉 "예"라고 할때 우리는 보통 고개를 앞뒤로 끄덕이지만 네팔사람들은 머리를 옆으로 기울인다.
다시설명하면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는 모습이 부정적인 의사표시인처럼 보이지만
긍정(Yes)의 의사표시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된다.
5.참고문헌및 자료
1) 세계를 간다(네팔편),랜덤하우스 코리아(주),2011
2) 필자의 현지 여행체험을통해 습득한 사항
3) 인도 가이드(Ajay)를 통해 득문한 사항
4) 네이버 백과자료
5) 현지 여행시 수집된 현지 유인물
여행한 주요도시
여행기간및 여행한곳
1.여행기간
2011년 10월 13일 ~ 10월 16일
2.이동항공기및 이동경로
- 이용항공기 : 대한항공 KE695(출국시)
*에어버스 332
대한항공 KE 656(입국시)
*에어버스 332
- 이동 경로 : 인천국제공항 - 네팔 카트만두 국제공항(출국)
*비행시간:7시간(인천-제주-중국 - 미얀마 -스리랑카 상공통과후
목적지 네팔 카트만두공항에 착륙)
*육로로 네팔국경을 넘어 북인도로 입국
인도 봄베이 국제공항 - 인천국제공항(입국)
*비행시간:7시간30분 (인도 봄베이공항-스리랑카-미얀마 -중국
-제주상공통과 목적지 인천공항 도착)
3.여행한곳
1일차 :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지역
- 카트만두 국제공항, 카트만두 시가지, 카트만두의 대표적인 불탑 스얌부나트(Swayambhunath).
- 옛 왕궁과 사원이 있는 더르바르 광장(Durbar), 카스타만타프(Kasthamandap)사원, 살아있는 신이 살고 있는 쿠마리(Kumari) 사원, 옛왕궁 하누만 도카(Hanuman Dhoke), 시바사원.
- 더르바르 광장에서 2인승 자전거 릭샤(Rickshaw) 체험,"BHANCHHA GHAR"에서
네팔 전통음식 체험, 네팔의 전통 민속춤공연을 감상하면서 티카(Tika) 바르기 체험.
2일차 : 중앙 네팔 포카라(Pokhara)지역
-카트만두에서 중앙 네팔 포크라지역으로 이동, (이동간 자연과 함께하고 있는 네팔의 농촌 풍경 감상,여러가지 색상으로 그려진 화물차량및 차량 지붕위에 사람을
태워 다니는 네팔버스등에서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봄,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갠지스강 상류등을 감상함)
- 포카라 시가지, 특이한 지형으로 만들어진 데비폭포,티벳 난민촌 둘러봄,포카라의 심장 페와 호수에서 보트를 이용 유람.
- 세티 간다키(Seti Gandaki)협곡, 포카라 사랑코트(Sarangkot)전망대,
3일차 : 서 네팔 룸비니(Lumbini)지역
- 포카라에서 서 네팔 룸비니(Lumbini)로 이동,이동중 나가르코트(Nagarkot)에서 중식, 서 네팔 평야지대를 통과하여 룸비니도착.
4일차 : 룸비니에서 네팔 국경을 통과하여 인도로 들어감
- 마야데비 사원(Maya Devi Temple)관람,네팔국경지대 이동하여 국경을 통과하여 인도입국
4. 숙박한곳
- 1일차 :카트만두 소재 그랜드 호텔(Grand Hotel)에서 첫째날 숙박
*호텔주소
P.O Box :12872, Tahachal, Kathmandu,Nepal.
Tel : 4-282482,83,84,85
E-mail : grandhotel@wlink.com.np
Web site :www.grandhotelnepal.com
- 2일차 : 포카라 Fulbari Resort에서 2일차숙박
*호텔주소
P.O Box : 334, Pokhara, Nepal.
Tel :(977-61) 432451, Fax :(977-61) 431482
E-mail :adming@fulbari.com.np
Web site :www.fulbari.com
- 3일차 : 룸비니 Buddha Maya Garden Hotel에서 3일차 숙박
*호텔주소
Rupandehi, Lumbini, Nepal.
Tel :(071) 580220, Fax :(977-71) 580219
E-mail : buddhamayagarden @ntc.np
Web site : www.ktmgh.com
네팔지역 여행체험기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 드디어 네팔 카트만두로 향해 날아가다 ]
08:10 네팔 카트만두행 대한항공 에어버스 332(KE 695)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기내에는 한국사람을 비롯한 네팔인,서양인등으로 가득차 빈 좌석이 없었다.
승무원들의 안내로 기내 승객들의 안전벨트 착용이 완료되자 08:40 항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어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저의 대한 항공을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곳 인천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는 7시간정도 소요예정이며 이착륙시에는 안전벨트를 반드시 착용해 주시고 전자제품은 사용을 중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 메인활주로에 대기하던 비행기는 최종적으로 엔진을 점검하는듯 요란한 굉음을 한번내더니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거대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공중으로 부상하였다.
09:15경 본 괘도에 오른 항공기는 수평으로 날아가고 있음을 보아 인천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 약 4,500km의 비행이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내에 나오는 GPS상에는 인천에서 서해안 바다와 내륙를 따라 평택,전주,정읍,광주 무안,목포를 지나 제주해협으로 날아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때 항공기 기장으로부터 한국어와 영어를 병행한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장 000입니다.
카트만두의 기상과 이동간의 고도,속도등을 설명하고 .......목적지 카트만두에는 현지시간으로 12;35분에 도착예정입니다.
아무쪼록 목적지 까지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기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우리 비행기는 제주에서 중국대륙을 횡단하기 위해 상하이 방향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GPS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항공기 이동로(사진: 대한항공GPS)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여기는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번 국제공항]
여기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트리부번 국제공항!
이곳 기온은 섭씨 24도로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였지만 그래도 햇살만은 강해 여름이나 다를바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비행장 규모나 활주로의 규모를 보아 인천공항에 비해 대조가 어려울 정도로 초라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네팔의 수도 공항이지만 우리나라 지방 공항의 규모보다도 시설은 낙후된 공항이였다.
좀 과장을 한다면 우리나라 대전정도 고속터미날수준의 시설이라면 맞는 맞는 표현일것 같다.
얼마후 비행기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는 써틀버스를 이용하여 입국심사장으로 이동하였다.
입국심사장에 도착하면 외국인을 안내하는 여성 공무원이 한사람 있었는데 이나라 풍습인지 모르겠지만 허리춤이 다보이는 네팔전통의상을 착용하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안내를 하고있었다.
아무튼 공항에서부터 첫인상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있음을 볼 수 있었다.
입국장에 안내된 이나라 글씨는 그림을 그리듯 적혀있어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영어로 쓰여진 곳을 찾았다.
자세히 보면 "With Visa"(비자를 지닌사람)라인과 "With out Visa on arrival Visa"(비자를 지니지 않아 도착비자를 받을 사람) 라인등 두개의 라인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친구 조순과 함께 우리는 "With out Visa on arrival Visa"라고 쓰여진 라인에 줄을서서 여권을 챙기고 입국신고서카드,비자발급신청서,비자발급에 필요한 사진 1장을 준비하여 차례를 기다려야만했다.
얼마후 필자의 차례가 되어 비자 발급비용 25$(US달라)를 지급한후 도착비자를 발급받았는데 일처리가 자동화 되어 있지 않고 수기식으로 업무처리를 하기 때문에 일인당 5-10분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어 많은 외국인들이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아무튼 시간은 소요되었지만 그다지 까다롭지 않는 비자 발급과 입국승인 절차를 마치고 가방을 찾아 세관을 통과하여 나오니 공항주변에는 많은 인파들이 붐비고 있었다.
공항 대합실이나 주변시설은 공항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대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날같은 느낌을 주는 카트만두 국제공항이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트리부번 국제공항에 착륙당시 시가지 모습
카트만두 트리부번 국제공항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
카트만두의 중심부 더르바르광장(Durbar Square)으로 이동중 가이드 Ajay(인도인)는 네팔과 카트만두에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도인 가이드지만 한국말을 잘 구사하여 듣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네팔은 히말라야산맥 중앙에 위치한 나라이며 면적은 14만7,000제곱키로미터(우리나라 남북한 합한면적의 3분의2정도)이며 인구는 2천9백만정도이다.
또한 수도인 카트만두는 해발 1,300m 높은 고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400만정도의 인구가 거주하고있다고 한다.
따라서 네팔은 해발 높이에 따라 기온의 차이가 있지만 수도 카트만두의 경우는 1월중 평균기온이 영상10도내외이고 7-8월의 여름에도 25도 정도로 우리나라처럼 혹독한 추위나 더위가 없는나라이기 때문에 살기가 좋은 나라"임을 강조하여 설명해주었다.
이어서 공항에서 나와 시내중심부인 옛 왕궁과 수많은 사원이 둘러쌓여 있는 더르바르 광장으로 이동하였는데 도로의 아스팔트는 되어 있었지만 보수를 하지 않아 울퉁불퉁하였고 도로주변에는 오물이 날아다니고 먼지투성이로 인해 전반적으로 지저분한 느낌을 주었다.
뿐만아니라 아기를 등에 업거나 안고서 구걸하는 걸인도 수시로 접할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 60년대 전후의 모습과 비슷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또한 카트만두의 교통수단은 지하철이나 기차등이 없기때문에 자전거,자전거 뒤에 2인승 좌석이 붙은 인력거 릭샤(Rickshaw)와 오트바이 택시,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기도 했다.
특히 관광버스를 제외한 시내버스의 경우는 우리나라 같으면 이미 폐차가 되어야 할 차량상태의 낡은 차량이 운행되고 있었다.
한편 거리에는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오트바이 ,자전거,개,소등의 동물의 무단횡단,사람들의 무단횡단,차동차,버스, 먼지가 서로 혼합이 되어 엉켜있는 길임에도 경적을 누르면서 묘하게 질주하는 모습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무질서한 가운데도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보아 나름대로 서로 양보를 하면서 곡예 운행을 하는듯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일면이었다.
이처럼 힘겨운 교통체증를 통과하여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던 우리 버스는 시가지 언덕에 있는 스얌부나트(Swayam bhunath)주차장에 멈추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가장 먼저 찾아간 스얌부나트 사원(Swayambhunath Templ)]
카트만두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곳은 공항에서 약2km정도 거리의 언덕에 있는 카트만두의 대표적인 불탑 스얌부나트 사원(Swayambhunath Temple)이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이 사원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으로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라고 한다.
스얌부나트(Swayam bhunath)라는 말은 "스스로 존재함"이라는 뜻을 가진 의미라고 하며 이곳은 약 2,000년전 석가모니가 카필라성을 떠나 명상처를 찾다가 들린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아주 먼 옛날 신들이 사는 히말라야 산기슭에 푸른 하늘을 비추며 빛을 발하는 호수가 있었다. 이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에 연꽃을 뿌렷더니 6개월뒤 이 연꽃은 계곡을 가득 메워 찬란하게 피어 있었다.
멀리 티베트에서 이를 본 문수보살이 니가르코트 언덕위에 와서 사흘밤을 명상하다가 문수보살이 가지고 있던 "지혜의 검"으로 산허리를 내리치니 호수의 물이 빠지면서 현재의 카트만두 분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뒤 연꽃이 있던 자리위에 문수보살이 사원을 지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을 가지고 있는 스얌부나트 사원은 13세기까지 카트만분지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성지였지만 15세기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가 재건되어 현재의 사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원입구부터 빨강,파랑,노랑,초록,힌색등의 네모난천에 불경인듯한 각종문구가 쓰여진 깃발이 만국기처럼 걸려있는데 이것을 "타루초"(Tarchog)라고 하였다.
네팔 사람들이 이러한 타루초(Tarchog)에 각종 기원과 소망을 담아 고갯마루의 나무등에 걸어둔 이유는 기록된 기원과 소망들이 바람에 실려 멀리 멀리 퍼져 나가도록 하기위해서 사진에 보이는것처럼 나무가지등에 연결하여 걸어둔다고 한다.
365계단을 따라 불탑이 있는곳으로 올라가다보면 계단의 양쪽으로 불상과 사자 코끼리 등의 조각상이 있고 사원내에는 오랜역사를 지닌 사원답게 다양한 탑들이 많았다.
불탑의 힌돔위에 있는 꼭대기에는 금빛 탑이 하늘을 찌를듯이 세워져 있고 그아래에는 거대한 눈이 그려져 있어 카트만두를 수호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불탑(네팔에서는 불탑을 스투파'stupa'라고하였음)의 앞에는 네팔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앉아서 눈을 감고 두손을 다리위에 올려놓은채 명상을 하는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명상을 하고있는 사람들 바로 앞에는 종을 메달아둔듯한 모양의 마니차(Mani)가 걸려 있다.
설명에 의하면 마니차(Mani)는 내부에 불경을 인쇄한 종이를 넣을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한 바퀴 돌리면 그 불경을 읽은 것과 같다나 ........
설명을 듣고보니 아주 뜻이 있는곳이라 마니차앞에서 친구 조순과 교대로 기념촬영을 한컷 하였다..
또한 불탑의 경내를 산책할 때는 시계방향(오른쪽)으로 돌아보도록 되어있는데 이것은 원시 불교의 관습이라 한다.
한편 불탑 주변에는 각종 불교관련한 기념품 판매하는곳도 즐비하게 늘려져 있고 카트만두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었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본 카트만두 시가지는 높은 빌딩은 보이지 않았지만 네팔특유의 집들로 도시를 형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스얌부나트 사원에는 외국 관광객뿐만이 아니라 네팔의 학생들이나 일반인들도 연일 찾고있어 항상 사찰내부는 많은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거대한 눈이 그려져있는 스얌부나트(Swayambhunath) 불탑앞에서 기념촬영.
*스얌부나트(Swayambhunath) 불탑은 힌색 반구체위에 눈과 코가 그려진 도금된 사면체가 올려져있고 다시 그위에는 13층의 원추형 덮게가 놓여있다.
또 맨 꼭대기에는 금으로 도금된 종(鐘)이 있다.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 스얌부나트 사원에서 만난 네팔학생들 ]
사원내부를 둘러보다 마침 이곳을 찾아온 제복차림의 남녀 고등학생(네팔에서는 고등학교라고 부르지 않고 중등 중기과정 즉, Secondary School 라고 하였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일 수 있었다.
네팔언어를 전혀 구사할 수 없었지만 이들 학생중 일부학생이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있었을뿐만이 아니라 "나마스떼"~ 로 시작했던 필자의 특유의 포용력과 제스쳐등으로 인해 바로 친근해 질 수 있었다.
특히 여학생들은 네팔의 힌두교인들이 전통적으로 이마에 칠하는 붉은색점 즉,티카(Tika)를 바르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또한 성품이 온순해 보이는 네팔 학생들의 새까만 눈은 외국인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 눈에 비친 한국 관광객의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
내심 자세히 관찰해 보았는데 그들은 상당히 호의적이었고 좋아하였을뿐만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어보이면서 한국에대한 자랑도 아끼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천진하게만 생긴 여학생들은의 입술에는 하나같이 미소를 잃지않았던 학생들이었다.
이들의 순진한 미소와 함께 이마에 붙여진 붉은색 티카(Tika)는 더욱 아름다움을 더해주기도 했다.
한동안 네팔학생들과 어우러져 기념촬영도 하는등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사진 촬영땐 대열을 맞추어 미소와 함께 손을 들어 포즈를 취해주는 아름다운 매너도 잊지않았다.
그래서 필자도 이들과 같이 손을 들어 포즈를 취해 하나가 되는데 최선을 다해 보았다.
그리고 촬영된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자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더니 어떤 학생은 또다른 포즈를 취하면서 한번더 셧터를 눌러달라던 천진스러운 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스얌부나트(Swayambhunath) 사원에서 카트만두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
스얌부나트(Swayambhunath) 사원에서 카트만두의 여자고등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옛 왕궁과 사원이 있는 더르바르(Durbar) 광장] 네팔의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동하다보니 어느사이 더르바르(Durbar)광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얼핏 보기엔 광장전체가 사원으로 덮여져 있는듯했다. 이어서 가이드 아제(Ajay)는 이곳 광장입구에서 일행을 멈추게한후 더르바르(Durbar)광장에 대해 알고있는 전반적인 지식을 동원해 개괄적인 설명을 하기시작했다. "더르바르(Durbar)라는 말은 네팔어로 "궁정"이라는 뜻인데 네팔의 옛왕궁인 하누만 도카(Hanuman Dhoka)앞의 광장이라한다. 이러한 더르바르(Durbar)는 12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어 18세기에 완성하였다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건물이 많다고 한다. 또한 이광장에는 하누만 도카등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진 옛 왕궁과 사원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카트만두에 3개의 왕조가 분지에 독립 군립할 당시 이 광장이 3왕국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왕들이 서로 경쟁하듯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여기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광장내에 있는 각종사원과 옛 왕궁인 하누만 도카등에 대해 가이드 설명과 함께 "세계를 간다(네팔편)" 렌덤하우 코리아(주)의 도움을 받아 요소별로 설명하고자 한다. - 네팔에서 가장오래된 건물 카스타만타프(Kasthamandap) 사원 더르바르(Durbar)광장으로 들어가다보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사원이 카스타만타프(Kasthamandap)이다. 가이드 아제(Ajay)설명에 의하면 이건물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중의 하나이며 카스타만타프(Kasthamandap)라는 말은 "나무집"이라는 뜻인데 이 사원을 한그루의 거목으로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사원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건물이 낡기는 하였지만 12세기 목조건물이라고 보기가 어려울정도로 아직도 견고함을 느끼게하였다. 또한 사원입구에서 부터 기념품을 판매하는 장사꾼들이 일행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기념품을 흔들어 보이기도하며 판매 홍보전을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중학생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은 어린이용 장난감 같은 특이한 기념품을 들고와서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하고 가끔씩 한국돈(원)과 US달러로 가격을 알리등으로 홍보전을 하다가 기념촬영이 필요한 요소에서는 기념품 판매홍보활동을 중단하고 기념촬영도 해주는 등으로 재치있게 판매활동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해 정에 이끌려 필자도 하나 구입했다. 구입한 기념품은 접으면 여러가지 모형이 만들어지는 기념품인데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는 괜찮은 장난감이었다.
카스타만타프(Kasthamandap) 사원 건너편 건물배경으로 기념촬영(이곳에는 이렇게 오래된 건물이 ....)
- 살아있는 신이 살고 있는곳 쿠마리(Kumari) 사원
카스타만타프(Kasthamandap)사원에서 다시 이동한곳은 더르바르(Durbar)광장에서 남쪽에 위치한 살아있는 신이 살고 있다는 쿠마리(Kumari) 사원이었다.
이곳은 여신 쿠마리(Kumari)의 화신으로 숭배받고 있는 소녀가 살고 있는데 들어가는 입구에는 2마리의 석조 사자가 지키고 있었다.
입구가 그다지 크지 않고 낮은 통로로 만들어진곳 "Mind your head"라고 쓰여있는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사각으로된 마당과 나무로 만든 작은 창털이 있는 건물이 나온다.
일행이 이곳에 들어갔을땐 벌써 마당과 계단에는 관광객과 네팔사람들은 창문으로 어느순간 살짝보여주는 쿠마리(Kumari) 여신을 보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 일행도 이들과 함께 어울려 여신의 얼굴을 보기위해 사원마당에서 기다렸다.
10여분 정도 기다린듯 했는데 순간 2층 정면의 창틀사이로 나타난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Kumari)가 예띤얼굴로 특별한 표정없이 잠시동안 얼굴을 들어내 보여주고는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이야기 듣기로는 오늘본 쿠마리는 15살이라고 한다.
이곳 사원의 규칙상 쿠마리(Kumari)대상으로 사진촬영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1달라를 주고 쿠마리 사진을 별도로 구입하는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쿠마리 사진을 제외한 기타 건물 배경사진 촬영에는 문제가되지 않아 건물주변촬영과 네팔 사람 들과 어우려져 기념촬영을 할 수 있었다.
한편 쿠마리 여신을 보기위해서는 별도의 관람료를 집사(여신을 모시는 사람)에게 지불해야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특별한 제지가 없는 것으로 보아 가이드를 통해 다른 단체와 함께 지불된것 같았다.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Kumari)가 사라진후 가이드는 쿠마리(Kumari) 관련한 역사적 배경과 선발과정,살아있는 여신 쿠마리(Kumari)역활을 하고 난후 생활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 고대 힌두여신인'탈레주'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쿠어라는 네팔에서 가장 지위높은 신중의 하나로 국왕까지 찾아와 복을 구할 정도였다고한다.
이러한 쿠마리(Kumari)는 보통 2-3세때 간택되는데 쿠마리가 되기 위해서는 32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석가모니의'사카'성을 가진 여자아이들중 완벽하게 건강하고 흉터없는 몸,까만 눈동자와 가지런한 머리카락등 까다로운 신체적인 조건이 충족되면 본격적인 테스트를 받게되는데 이땐 소,돼지,양등 동물의 시체와 하룻밤을 보내야 된다고한다.
또한 쿠마리(Kumari)는 초경이 지나면 자격을 박탈당하고 사원밖으로 쫒겨나는데 예전에는 쫒겨난 쿠마리는 남편이 일찍죽는다는 속설때문에 결혼도 할 수 없고 집안이 망한다는 이유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평생 창녀굴 같은 곳에서 외로운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속설을 믿지않아 집에 들어가 살기는 하지만 10여년간 사원내에서만 살아온 쿠마리(Kumari)가 사회에 적응한다는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고한다."
가이드 설명을 듣고보니 이러한제도는 어떠한 이유에서 만들어진 제도인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임에는 틀림이 없는것 같다.
종교적인 신을 숭상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아이를 신으로 만들어 한사람의 인권이 완전히 박탈되고 있음을 볼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에는 부합되지 않는 잘못된 전통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 소견이다.
쿠마리(Kumari)사원 전경(가운데 창틀사이로 살아있는 신 쿠마리(Kumari)얼굴을 보여주고 사라진다)
살아있는 신 쿠마리의 모습(쿠마리 모습을 직접촬영은 하지못하도록 금하고 있어 이곳에서 판매하는 엽서에
실린사진임)
*사진의 쿠마리 신은 현재 15세인데 초경이 지나면 살아있는 신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된다고 함
- 더르바르 광장의 옛왕궁 하누만 도카(Hanuman Dhoke)에서
쿠마리 사원에서 나와 더르바르 광장의 동쪽에 있는 옛왕궁 하누만 도카(Hanuman Dhoke)로 이동하였다.
이동중에 특이한것은 사원내에 개는 평화스럽게 낮잠을 즐기고 있고 또한 이나라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는 동물인 소 한마리는 자유롭게 배회하면서 먹을 것을 찾아 다니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같으면 사찰내에 소가 들어와 배회하였다면 톱 뉴스사항이 될뿐 아니라 상상도 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모습이고 보면 우리와 생활하는 문화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나라 사람들은 신성시 여기는 소 뿐만 아니라 개 등 여타동물에게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평화스럽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았을때 사람이나 동물도 공존하며 어우려져 살아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이색적인 풍경을 보면서 옛왕궁 하누만 도카(Hanuman Dhoke)앞에 도착하였는데 왕궁입구에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우산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하누만상"이 가장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가이드(Ajay)의 설명에 따르면 하누만(Hanuman)이라는 말은 "원숭이 신"을 뜻하며 도카Dhoke)는 문(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문 옆에 하누만 동상이 있다고하여 하누만 도카(Hanuman Dhok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편 "원숭이 신"을 붉은천으로 얼굴을 가려놓은 이유는 건너편의 나무기둥에 못 볼 조각이 새겨져 있어 저렇게 얼굴을 가려놓는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한편 하누만상이 있는 옆에는 옛 왕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관광객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다.
왕궁입구에는 하얀색으로 된 두마리의 동물이 옛 왕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아울러 왕궁을 지키는 공안요원도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또한 하누만 도카(Hanuman Dhoke)가 있는 건너편의 사원에는 여러가지 형상의 에로틱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는데 주로 성에 관한 조각들이 많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지붕아래 기둥이나 처마에 새겨져 있는 조각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남녀가 옷을벗고 뒤엉켜 성행위를 하고있는 형상도 있고 3명이 동시에 성 쾌락을 즐기는 모습도 조각되어 있었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원숭이 신"은 붉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것이 아닐가 싶다.
세계를 가다(네팔편) 자료에 의하면 궁궐의 기원은 릿 처비 왕조 시대로 걸슬려 올라가 17세기 3왕국시대에 완성된 건축물이라고 설명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옛왕궁 하누만 도카(Hanuman Dhoke) : 왕궁입구에는 하얀색으로 된 두마리의 동물이 옛 왕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아울러 왕궁을 지키는 공안요원도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 더르바르 광장의 시바 사원(Maju Dval)에서
하누만 도카(Hanuman Dhoke)에서 다시 이동한곳은 광장 중앙가운데 우뚝솟아 있는 9계단 3층건물의 힌두교사원의 하나인 시바사원(Maju Dval)이었다.
가이드(Ajay)의 설명에 따르면 힌두교는 창조신인 "브라마"와 유지신인 "비슈누" 그리고 파괴신인 "시바"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는데 우리는 그중 하나인 "시바신"사원에 들어와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볼때 기독교(예수)나 불교(석가)와는 다르게 힌두교는 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있는 종교임을 알게 해주어 지금까지 무지였던 힌두교에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가이드는 시바신에 대해 계속하여 설명이 이어졌는데 전문적인 종교용어들은 잘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일반적인 내용들은 메모를 할 수 있었다.
시바사원은 시바신에게 봉헌된 사원이며 네팔사람들은 보통 마주데발(Maju Dval)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시바사원 즉 마주데발Maju Dval)건물은 17세기말 말라 왕조시대에 박타푸르 황태후가 세운것이라 한다.
내부에는 시바 링가(시바의 상징인 남근상)안치 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들어가지 못해 직접 확인은 하지 못했다.
한편 시바사원앞에는 시바 신앙을 나타내는 하얀색의 불당(인도 시카라 양식이라함)도 있었다.
더르바르 광장의 시바 사원(Maju Dval)앞에서
- 더르바르광장의 시바 화신 칼 바이라브(Kal Bairav)
쿠마리(Kumari)사원, 옛 왕궁 하누만 도카(Hanuman Dhoke), 시바사원을 둘러보고 광장의 입구쪽으로 다시 돌아 나오다보면 칼을 들고 있는 거대한 석상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시바의 화신중 하나인 공포의 신" 칼 바이라브"라고 한다.
칼 바이라브 (Kal Bairav)석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손엔 칼을 치켜들고 반대편손에는 잘려진 사람의 머리를 들고 있으며 발 밑에는 사람을 짓밟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공포감을 주고 있지만 얼굴 형상을 보면 공포감보다는 귀여운 느낌도 주는듯했다.
한편 신을 섬기는 네팔사람들은 어떤 기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칼 바이라브상앞에 촛불을 밝혀놓고 참배하는이도 많았다.
가이드(Ajay)의 설명에 의하면 옛날에는 칼 바이라브상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하여 죄를 지은 용의자를 이곳에 데려와 범죄행위를 자백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웃음거리로 지나겠지만 신을 섬기는 네팔사람들에게는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시바 화신 칼 바이라브(Kal Bairav) : 신을 섬기는 네팔사람들은 어떤 기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칼 바이라브상앞에 촛불을 밝혀놓고 참배하는이도 많았다.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네팔전통요리로 석식후 민속춤 공연 감상]
우리차량이 도착한곳은 카트만두 중심가에 있는 "BHANCHHA GHAR"라는 입간판이 부착되어 있는 식당앞이었다.
이곳에는 네팔의 전통차와 전통술,전통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는데 식당규모는 벽돌로지어진 2-3층의 제법 큰 건물로 1-2층은 식당이었고 3층은 음주를 하면서 민속공연을 볼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외국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고급 음식점인듯했다.
입구에서 종업원의 안내로 식당안으로 들어가면 깨끗한 네팔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남녀 종업원이 두손을 가슴가운데 합장한후 생긋웃으면서 "나마스테"라고 인사한다.
필자도 고맙다는 표시로 이들처럼 두손을 모아 합장한후 "나마스테"라고 답례를 하였다.
네팔 현지음식을 처음으로 체험해 본다는 기대감 속에 한동안 기다리고 있으니 네팔의 전통 차 한잔씩 먼저 나오고 이어서 코스요리로 음식이 나왔는데 가장먼저 접시에 고구마 튀김등 몇가지가 나왔으나 전혀 거부감없이 취식할 수 있었다.
이어서 나온 음식은 네팔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형 접시형 냄비에 밥을 비롯한 반찬이 함께 나왔다.
이런경우 네팔사람들은 젖가락이나 포크를 사용하지않고 손으로 먹는다고한다.
일행중 일부가 네팔사람들처럼 실제 체험을 해볼려고 손을 이용해보기위해 시도 하였지만 쉽지가 않아 결국 포크를 이용하였던 같다.
네팔 현지식을 처음으로 취식하였지만 음식이 까다로운 편인 필자뿐만이 아니라 친구 조순도 맛이 괜찮았다는 평이고 보면 한국사람들한테는 거부감이 없는 음식문화였다고 여겨진다.
아무튼 오늘은 아침은 인천국제공항에서 빵으로 대체하였고 점심은 공중에서 기내식,저녁은 이곳 네팔에서 전통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보니 세삼 편리한 세상에 살고있음을 실감케 한다.
현지식으로 저녁식사가 끝나고 3층 룸으로 이동하여 네팔 전통술 "락시"를 한잔씩 하면서 네팔의 전통 음악과 어우러진 민속 춤 공연을 관람 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이 3층으로 올라갔을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유럽인 관광객들은 먼저 올라와 네팔 전통 술 "락시"를 한잔씩 하고 있었다.
공연장 분위기는 전기불을 끈후 각자 앉은 테이블 앞에 있는 특유의 촛대에 촛불을 켜도록하여 약간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어 우리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어서 네팔 전통복 차림의 예쁜 아가씨가 놋쇠로 만들어진듯한 길다란 주전자를 들고 우리 일행이 앉아있는 곳을 돌면서 조그만한 접시모양의 술잔에 한방울 흘리지 않고 "락시"한잔씩을 기술적으로 따라주어 한잔씩 하였는데 우리나라 소주맛과 유사하였으나 약간 칼칼한 느낌을 주는듯 했다.
또 다른 전통의상차림의 한 아가씨는 빨간 가루를 물에 녹여서 만든 티카(Tika)를 필자를 비롯한 일행 한사람 한사람씩 찾아가 이마에 발라주어 서로 마주보고는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이러한 티카(Tika)는 힌두교가 이마에 붙이는 표식으로 신의 은총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티카(Tika)를 이마에 바르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동안 민속 춤 공연을 주관하는 아나운서가 영어로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민속춤 공연(디너쇼)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오고 1막부터 8막까지 전통악기의 음악에 맞추어 다양한 전통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네팔의 전통 민속춤을 멋들어지게 보여주었다.
마지막 장에서는 다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용수들과 함께 손벽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것으로 공연이 종료 되었다.
문화가 다른 네팔의 민속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개성이 있었고 의미가 있었던 멋진 공연이었다.
오늘은 이러한 민속춤 공연을 통해 미미하지만 네팔의 문화를 이해 할 수 있는 값진 체험이었다고 여겨진다.
* BHANCHHA GHAR 식당주소
P.O Box - 3011. Kamadiadi Kathmandu. Nepal
Business - 4225172. 4228723
E-mail : bhanchhaghar@gmil.com
Website - www. bhanchhaghar.com
네팔 전통요리(네팔 사람들은 손으로 먹는 음식이다)
* 주로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는다.(사진에 보이는 스픈은 현지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네팔 남성전통의상을 입은 직원들과 함께 기념촬영
네팔 민속춤 관람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카트만두에서 중앙 네팔 포카라지역으로 가다]
오늘은 중앙 네팔지역인 포카라로이동하는 날이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오늘 이동하게될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200km정도 떨어져 있는 포카라까지는 프리티비 하이웨이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역활을 하는 중요한 도로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으면 2시간이면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이곳 네팔의 도로는 노선이 고르지 않고 산악지대 길이기 때문에 버스로 8시간 또는 9시간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탑승한 관광버스는 네팔에서는 가장 고급스러운 차량이기 때문에 그래도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고급차량도 안전벨트는 보이질 않았다.
07:00~
이제 우리버스는 포카라로 향해 출발하였다.
한동안 카트만두 시가지를 빠져나간후 프리티비 하이웨이로 접어들었다.
히말리야 산맥에 만들어진 이도로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꼬부랑 길이어서 시속 30km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는듯 했다.
이동하다 가끔씩 아래로 내려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천길 낭떠러지같은 절벽도 있었지만 아슬아슬 하게 잘 지나는 운전솜씨였다.
필자가 이동하는 창가의 시야에는 평지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고 검은 연기이든 힌색의 연기이든 연기가 나오는 제조공장이라곤 전혀 보이질 않았다.
다만 산간도로 주변의 산악지대에는 계단식 밭을 만들어 농사를 하는 사람들과 산언덕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곳만이 간혹 보일 뿐이었다.
또한 반대방향으로 지나가는 낡은 버스의 지붕에는 짐과 함께 사람들이 매달려 태연하게 이동하는 차량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하이웨이라는 이름이 붙은 고속도로이지만 도로포장상태가 좋지 않아서 가끔씩 움푹 파여진 아스팔트때문에 차량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것이 보통이었고 가끔씩 먼지도 날아와 앞이 보이지 않을때도 많았다.
거기에다 간혹 마을이 형성되어있는 주변의 고속도로위에는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마차가 다니고, 오트바이가 다니고, 자전거가 다니고 ,소가 함께 다니는 곳도 있어 자동차의 경적소리는 쉴틈 없이 빵빵~ 소리를 내고있었다.
이처럼 도로사정이 좋지않기 때문에 이동중 길가에 세워두고 잠을 자는 차량이나 고장이나서 길을 막고 있으면 아무불평없이 태연하고도 침착하게기다리다 차례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항상 빨리~ 빨리~ 를 생활화 하고 있는 우리와는 다소 대조적이라는 느낌을 갖게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고속도로에 왕래하는 차량이 수시로 엉켜있고 경적 소리는 귀가 따갑도록 요란하게 들려오는등으로 인해 얼핏 보기엔 일반사회의 법은 무시하는듯 하였지만 그래도 이들만의 법칙과 관습이 따로 있는듯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키면서 서로 이동하는 모습은 또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오늘 이동하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의 거리는 우리나라 서울에서 추풍령까지 거리 즉 215km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선 1시간30분 또는 2시간 가량이면 도달하는 거리지만 도로사정이 이정도이다 보니 8시간 이상 소요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이동하는 길은 힘들기는 하였으나 이동중 네팔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욱 더 값진 체험이었던 같다.
따라서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필자가 나름대로 이동중에 보고 느낀사항 하나하나를 소제목을 붙여 추가로 설명하고자 한다.
화려하게 치장한 네팔화물차량
카투만두에서 포카라 가는길의 농촌
상수도물을 이용하여 목욕도 하고 머리를 감는 여성(네팔에는 이러한것은 일상화 되어 있는듯 주의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갠지스강 상류]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프리티비 하이웨이를 따라 3시간30분가량 경과하다 보면 네팔 특유의 계단식 밭을 만들어 일을 하고 있는 농민과 허술하게 지어진 농촌마을이 스쳐가고 도로변에는 남녀학생들이 유니폼을 착용하고 삼삼오오 짝을지어 시골학교에 가는 모습은 티없이 맑고 순수하게만 보였다.
또한 이러한 농촌마을 주변에는 마치 시멘트가루가 혼합된듯한 색상과 유사한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수시로 접할 수 있었다.
이렇게 흘러가는 강물은 히말라야 북쪽의 만년설이 녹아 모아진 계곡물이 이처럼 강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만년설의 계곡물이 모아져 만들어진 강물은 다시 흘러내려가 인도에서 가장 신성시 여기는 강 즉 갠지스강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뉴질랜드 남섬지역 여행시 보았던 남극 만년설이 녹아내린 계곡물은 우유빛 처럼 티하나 없이 맑게만 보였는데 이곳 네팔지역으로 흘러내리는 히말라야 만년설 계곡물은 깨끗하다기 보다는 석회석 물처럼 흐리게만 보인다.
그 원인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자연이 만들어준 환경때문이 아닐까 싶다.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강(갠지스 강 상류)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차량 지붕위에 승객을 태워 다니는 네팔의 장거리 버스]
포카라로 가는 프리티비 하이웨이 길에는 화물차 뿐만이 아니라 장거리로 이동하는 버스도 많이 왕래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네팔은 기차가 없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은 주로 버스가 담당하지만 버스가 오래되고 낡은 차가 많아 언제 고장이 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왕래하고 있는 버스가 어느정도 고물인가 하면 폐차직전의 차량이라면 적정한 표현일것같다.
뿐만아니라 심지어 유리창이 없는 차량도 운행하고 있음을 간혹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버스 탑승객중 일부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것이 네팔의 버스 교통현실이었다.
무엇보다 장거리 교통수단은 버스가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장거리 버스는 대부분 만원이 됨으로 인해 짐을 싣는 지붕위에까지 승객을 태워서 이동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실정이었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장거리 버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한것이 첫째 이유이지만 산악지대의 굽이길에다 열악한 도로사정으로 인해 차량소통이 원활하지 못한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교통 사정이 열악하다보니 안전이라는 것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것이 오늘날 네팔 대중교통의 현실이라 하여도 과장된 표현은 아닐듯 싶다.
버스 지붕위의 짐칸까지 승객이 타고 이동하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었다.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포카라 티벳 난민촌에서]
포카라 중심가를 통과하여 도착한곳은 티벳 난민촌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난민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허수럼하게 지어진 판자촌이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그 앞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계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곳이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티벳트식 불교사찰과 조그만한 탑도 있다.
또한 앞마당에는 물소 몇마리가 한가로히 풀을 뜯고있어 얼핏 보기엔 평화로운 난민촌이란 선입관을 갖게 한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1959년 티벳트에 중국이 침략할당시(티벳동란) 네팔로 피난을 나와 정착한 마을인데 현재 어린이를 포함해 8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정착한 그들은 네팔에서 살고있지만 티벳트 고유의 생활습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터전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민예품 공장 즉 각종 무늬를 넣어 카펫을 만드는 곳이 바로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다.
공장 입구에는 나이가 많아보이는 할머니들이 특이한 자세를 취하면서 손으로 실을 감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앞뜰에는 천진스럽게 뛰어노는 어린이들도 있어 그들의 삶 일면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들이 손으로 감고있는 실은 카펫을 만드는데 사용되는듯 했다.
공장안에는 초라한 옷차림의 난민촌 티벳아즘마들이 서로 분담을 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도 생긋웃으면서 배푸는 친절은 생활화 되어있는듯 했다.
또한 이들이 분담하여 하는 일들의 공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었는데 일부 아즘마들은 카펫의 천을 손으로 베틀(수공으로 옷감짜는 기계)같은 곳에 앉아서 직접 짜기도하고 또다른 아즘마들은 손으로 카펫에 들어가는 각종 무늬를 색상을 넣어 만들고 있는이도 있었다.
이렇게 각자의 손으로 여러공정을 거쳐 만들어져 나오는 카펫은 현지에서 판매도하는데 얻어지는 수익금은 개인보다는 난민촌을 위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자금으로 사용되거나 또는 난민자녀들을 위해 쓰여지거나 공동생활에 필요한 복지비등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아무튼 그들만이 이용하는 좁은 공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티벳난민의 모습은 오늘날 어려움 없이 많은 문화혜택을 받으며 풍족하게살아가는 우리모두에게 경종을 울려주는듯 했다.
티벳 난민촌 카펫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난민과 함께(이렇게 기념촬영을 하고 나면 옆에모금함에 모델료를 넣도록 되어있었다)
*이렇게 모아진 돈은 개인이 사용하지않고 난민촌사람들과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티벳 난민촌에서(여기가 이들 난민의 생활터전이요 바로 삶이었다)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페와 호수(Phewa Lake)에서]
15:45분!
데비폭포(Devi,s Fall)에서 포카라 남쪽으로 약2km정도 이동하여 페와호수(Phewa Lake)에 도착했다.
관광지 주차장이라고 하나 정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관광객이 타고온 버스와 자가용등이 뒤엉켜 주차되어있는 모습은 후진성을 면치못하고 있는듯했다.
이곳 주차장에서 호수쪽 방향으로 들어가다보면 크다란 보리수나무가 몇그루 있었는데 카트만두에서 보았던 깃발"타루초"(Tarchog)가 걸려있는 나무그늘 아래에 이곳 주민들로 보이는 많은 젊은이들이 일거리가 없어 놀고 있는모습도 보였다.
호수가에 들어서면서 가이드는 "페와 호수(Phewa Lake)"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해발800m 고지에 위치한 "페와 호수"는 네팔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인데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서 내려온 물이 모여서 형성된 호수라고 한다.
호수의 총면적은 4.43km2이고 평균수심은 8m이지만 수심이 깊은곳은 19m정도 되는곳도 있다는등의 일반적인 설명이 끝나고 이어서 이곳의 모든 보트는 구명쪼끼가 없기 때문에 노젖는 이의 말을 잘들어 안전에 유의하라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로 보트유람선이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는 보트에 4명씩 나누어 승선하였다.
보트의 규모로 보아 4명이 정원인듯했다.
필자가 승선한 보트는 30대초반으로 보이는 뱃사공에 의해 호수의 물길을 따라 서서히 보트의 노를 저어 호수중심으로 향해 이동하였는데 노젖는 솜씨가 거의 달인이라 할 정도로 능숙한 기술이었다.
뿐만 아니라 반대편에서 노를 젖는 여성도 힘은 남자에비해 부족하였지만 역시 능숙한 솜씨로 배를 저어나가고 있었다.
필자일행을 담당한 노젖는 남자 보트 주인공은 호수위를 이동하면서 영어로 설명도 해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보트아래의 호수의 물을 보니 뉴질랜드여행시 체험했던 우유빛색갈의 호수와 다르게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야기 듣기로는 날씨가 맑은 날은 히말라야 설산이 호수위에 반사된다고 했으나
필자 일행이 유람할당시에는 물안개가 호수주변에 깔려 있어 히말라야산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우리 보트는 25분정도 이동하여 호수가운데 인공섬으로 보이는 조그만한 섬에 도착했는데 이곳에는 "바라비"라는 힌두교사원도 보였다.
아울러 이섬에는 계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과 네팔의 학생들로 많은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우리배는 섬을 깃점으로 한바퀴 돌아서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수로 향해 노를 저어 이동했다.
이때 일행중 누군가 "벳노래"를 구성지게 불러주어 페와호수(Phewa Lake)에서 보트유람은 절정을 이루었다.
한편 호수 가운데에서는 대형보트와 우리가 승선한 소형보트가 서로 노를 저어면서 이동하다 조우가 되면 전혀 알지못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지만 손을흔들어 인사를 하는 아름다운 미덕(美德)도 있었다.
선착장이 가까와지자 호수의 건너편에는 호텔시설과 낚시터도 있었고 평범한사람들이 살고있는 마을도 보였다.
또한 호수가에 보이는 빨래터에는 전통의상을 착용한 여성이 빨래를 하는모습도 보여 60-70년대 우리나라 시골 아낙네들이 시넷가에 둘러앉아 빨래하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방에서 세탁기로 모든것을 해결하는 시대로 변천이 되었지만 말이다.
17:00!
이제 우리 일행은 페와 호수에서의 유람을 마치고다시 관광버스편으로 Fulbari Resort호텔로 이동하였다.
페와호수(Phewa Lake)
페와호수(Phewa Lake) 중앙에 있는 인공섬주변의 네팔사람들
페와호수(Phewa Lake)에서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전망대로 오르다 도코(Dho Ko)를 울러맨 여성을 만나다]
포카라 페와 호수 북쪽에 위치한 사랑코트전망대로 올라가다 중턱에서 차량이 더이상 오르지 못해 전망대까지 도보로 산길을 타고 오르게 되었는데 어둠이 깔려있는 산악길에서 지금까지 매스컴등을 통해 사진으로만 보았던 도코(Dho Ko)를 울러메고 가는 네팔여성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도코(Dho Ko)는 네팔의 산간지역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간단한 물건을 운반할때 사용되는 운반도구의 일종이다.
우리나라 과거의 지게와 비슷한 역활을 한다고 보면 된다.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인데 사진에서 보는것처럼 여성들이 어깨에 울러메고 있는것이 아니라 머리의 수건과 연결하여 채소,과일등을 담아 운반하는 도구이다.
그러니까 어깨힘보다 머리힘을 많이 이용하는 도구인듯했다.
이러한 도코(Dho Ko)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이동중에도 시골의 산간지대에서 농촌 여성들이 메고 있는 모습을 가끔씩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어제부터 도코(Dho Ko)를 카메라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해 있었던터라 오늘 어둠이 깔려있는 산간지대에서 도코(Dho Ko)를 메고 있는 여성을 발견하는 순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심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욕심에 도코(Dho Ko)를 메고 있는 여성에게 카메라를 들어 보이면서 몸과 손으로 간신히 의사전달이 되어 사진촬영을 해도 좋다는 OK를 받았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몇카트를 찍고나니 모델료를 달라는 눈치였다.
우리돈 1천원짜리를 몇장주었더니 무척좋아 하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는동안 일행은 벌써 다 올라가버리고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어두운 새벽의 산길을 따라 헐떡이면서 전망대를 향해 뛰어 올라가 일행과 합류를 했다.
일행을 따라 올라가느라 다소 땀을 흘렸지만 도코(Dho Ko)에 대한귀중한 자료를 필림에 담아 못내 흐뭇하기만 했다.
네팔 여성과 도코(Dho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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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코트(Sarangkot)전망대에서 맞이한 히말라야 일출]
05:10분 !
드디어 사랑코트(Sarangkot)전망대에 도착했다.
도코(Dho Ko)를 울러멘 여성의 사진을 촬영을하다 뛰어서 정상으로 올라왔더니 땀으로 옷이 험뻑 젖었다.
벌써 전망대에는 우리일행보다 먼저 올라온 세계각국의 관광객들이기념촬영을 하느라 바쁜 표정들이었다.
전망대 계단에 올라서자 산허리에 지어진 몇채의 가옥이 보이고 입구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등 만년설을 담은 엽서등을 판매하는곳과 각종 기념품판매하는 매점도 있었다.
또한 매점의 한곳에는 중년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베틀같은 틀에 앉아서 실을 이용하여 천을 만들어 무늬를 직접 넣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전망대 아래쪽에는 포카라 시가지가 아직 어둠이 깔려있지만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
이어서 안개가 자욱한 전망대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았는데 산정상의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삼각형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공간이 넓지는 않았다.
그래서 주변의 일부 민가에서는 옥상처럼 별도의 전망대를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있는 곳도 있었다.
05:36분!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기위해 꽤 오랜시간 기다면서 히말라야의 갖가지 풍경을 담을 수 있었는데 특히 포카라 시가지를 둘러싼 물안개의 조화는 천국이 따로없는듯아름다운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 날이 어느정도 밝아지는듯 하더니 멀리 구름사이에서 주변을 붉게 물들인후 둥근태양이 순간적으로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순간 일출을 보기위해 모여든 세계각국의 사람들(300명-400명정도추산)이 일출의 모습을 보자 모두가 순간적으로 환호를 보냈고 필자도 또한 이들과함께 히말라야 일출의 아름다운 분위기에 젖어보았다.
낮게깔린 구름에 뭍혀 선명한 일출모습은 카메라에 담지못햇지만 그래도 히말라야의 장려함과 신비한 자연의 아름다움속에서 일출을 보았다는 성취감으로 마치 신선이나 된 듯이 즐겁기만 하였다.
아무쪼록 일출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게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이곳 히말라야에서 본 일출은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같다.
사랑코트 전망대에서 (일출시 )
사랑코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카라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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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코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06:20분!
일출행사가 끝나고 해가 구름 사이로 비취주는 동안 지금까지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만년설의 설경이 먼거리에서 모습을 들어내 보였다.
모처럼 윤곽은 보였지만 안개와 구름이 주변을 가리고 있어 아쉽게도 완전한 모습은 보기가 어려웠다.
저곳을 정복하기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목숨을 앗아간 설산이 안나푸르나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전문가 아닌 우리는 원거리에서 바라보아야만 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완전한 일출과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것은 년중 몇일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이곳 기념품 매장에서 구입한 엽서에 기록된 히말라야의 봉우리의 높이에 대해 설명하고자한다.
사랑코트 전망대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 즉 아래 사진에서 가장 높게보이는 것이 마차푸차레봉인데 높이는 6,997m이다.
그러나 좌측의 봉우리가 안나푸르나 제1봉인데 높이가 8,091m이며 우측의 3번째 봉우리가 안나푸르나 제2봉으로 7,939m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우측의 첫번째 봉우리가 안나푸르나 제3봉으로 7,555m이고
우측의 두번째 봉우리가 제4봉으로 7,525m이다.(봉우리 높이의 통계자료는 포카라 관광엽서에 기록된 자료임)
우선 사진으로 보았을땐 마차푸차레봉이 더 높게 보이는데 기록엔 여타 봉우리가 더 높은것으로 되어 있다.
안나푸르나 각종 봉우리를 감상하는동안 주변에는 많은 망원랜즈를 장착한 각종 카메라를 동원하여 장엄하게 펼쳐진 안나푸르나 경관을 촬영하기에 분주하였고 필자도 카메라에 담느라 한동안 정신이 팔렸던 같다.
이렇게 하여 포카라 사랑코트전망대에서 맞이한 아침은 자연이 만들어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경관에 감동과 환호로 일관하였던 아주 특별한 아침이었던 같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모습을 보고 관광객 한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다(전망대에서 촬영)
*구름이 가려 선명한 설산의 모습은 보기가 어려웠다.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무글링 삼거리를 지나 룸비니로]
포카라에서 출발한지 2시간정도 달린 우리버스는 하이웨이 휴게소에 잠시 정차하여 휴식을 하였다.
시골휴게소이기 때문에 입간판은 허술하였지만 휴게소 내부는 깨끗하게 청소된 화장실도 있었고 휴게실 주변의 정원이 산뜻하게 잘 단장되어 있었다.
잠시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룸비니로 이동하였는데 무글링삼거리까지는 어제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들어갈때 체험하였던 도로의 역순으로 달리고 있었다.
11:15분경!
우리 버스는 카트만두와 포카라,그리고 룸비니로 갈라지는 무글링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는 수도카트만두로 가는길,룸비니로 가는길,포카라쪽으로 가는길등으로
세갈래길로 갈라지기 때문에 삼거리 이름이 붙여진듯했다.
무글링 삼거리에 놓여있는 아치형다리를 통과하면 두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어제 카트만두에서 올라오던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룸비니로 가는길이었다.
얼마후 우리 일행이 탑승한 버스는 룸비니로 가는 오른쪽길로 접어들었다.
오른쪽길을 따라 얼마동안지나자 가파른 산을 깍아만든 절벽의 길이 나왔다.
무엇보다 필자가 앉아있는 오른쪽은 까마득한 절벽이었기에 얼마나 놀랐는지 순간적으로 안색이 변했던 같다.
이러한 절벽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맑은 물이 아니라 회색빛갈의 흐린물로만 보였다.
이렇게 손에 땀을 쥐면서 한시간정도 산악지대 도로를 지난후에야 약간의 평지가 나왔다.
이곳에는 방목으로 키우는듯한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있는 모습도 보였다.
산악지대와 농촌지대가 지나자 차량 통행료를 지불하는곳이 있었다.
통행절차를 마치고 다시 이동하여 얼마되지 않았는데 지나온 산악지대와 다르게제법 큰 도시가 시야에 들어왔다.
갑자기 왠 도시일까?.........
궁금증이 발동해 가이드를 통해 확인해본결과 "나가르코트(Nagarkot)"라는 중소도시 이며 아울러 수도 카트만두에서 35km정도 이격된 도시라고 한다.
무글링 삼거리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나가르코트(Nagarkot)에서 현지식으로 중식]
12:25분!
점심시간이 되어 나가르코트(Nagarkot)라는 도시에 있는 Loyal Century Business Hotel앞에 우리버스는 멈추었다.
이어서 Loyal Century Business Hotel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중식을 하였는데 가이드가 음식이름을 알려주었으나 메모가 정확히 되어있지 않아 음식이름은 잘모르겠지만 중국음식의 코스요리 비슷했던같다.
식사후 타고오던 버스가 에어콘이 고장이나서 수리를 하는동안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휴식을 하는동안 대구에서 온 김동준 사장님과 함께 호텔앞 건너편 도로가에서 판매하고 있는 사탕수수 노점상에 들려보았다.
네팔말을 모르기 때문에 영어로 먹는방법을 문의하였는데 젊은 노점상인은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말도 없이 쌓아둔 사탕수수대궁을 몇개 꺽어서 믹사기 모양의 기계에 넣어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믹사기 기계에서 사탕수수가 대궁이 부숴지고 돌면서 설탕물같은 즙이 흘러나오는면 한번 걸러서 맛을 보도록 준다.
시원한맛은 없었지만 달큰한 설탕물맛은 아주 일품이었다.
우연하게 사탕수수 즙을 맛볼 수 있는 체험을 하였던같다.
혹여 독자중에서 이곳을 여행한다면 노점상에서 한번쯤 사탕수수의 꿀맛을 느껴보는기회를 만들어보도는것도 좋은 체험이 될것으로 생각된다.
사탕수수즙 맛을 체험하고 있는동안 도로에는 릭샤에 짐을 가득 싣고 페달을 열심히 밟고 가는 모습,릭샤에 승차하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승객,폐차기간이 지난듯한 고물버스,자전거,화려하게 치장한 화물차, 오트바이 택시,자가용등이 혼합이되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통해 이곳 서민들이 살아가는 숨결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가르코트(Nagarkot)는 관광도시로 이곳에도 히말라야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카트만두를 거처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라한다.
아무튼 약 1시간동안 이곳 나가르코트(Nagarkot)에 머물면서 네팔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일부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나가르코트(Nagarkot)에서
사탕수수 대궁을 기계위의 둥근 구멍에 넣어면 이처럼 즙이 만들어진다.만들어진 즙을 찌거기를 걸른후 쥬스처럼 마시게 된다.
무거운 짐을 싣고 딸로 보이는 여성은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아버지는 뒤에서 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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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생지 마야데비 사원에서]
네팔 청소년의 서툰 발음으로 암송하는 "관세음 보살" 주문 소리를 들어며 숲속길을 따라 한동안 걸어들어가자 절터가 보이고 힌색으로 단장된 정사각형 모형의 사원 즉,마야데비 사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부터는 운동화와 양발을 모두 벗도록 되어있었다.
다소 귀찮은 면은 있었지만 이곳의 규칙에 의해 맨발로 붉은색 벽돌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어서 마야데비 사원앞에도착했다.
사원이라고 하나 겉으로 보아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되어 있어 세계문화 유산의 유적지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얼마후 가이드로 부터 사원내에서 주의할 사항을 간단히 설명듣고 안내에 따라 줄을서서 차례로 사원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앞서 주의사항에서 설명을 들어 미리알고 있었지만 내부로 들어서자 일체의 사진 촬영은 할 수 없도록 관리자가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사원내부의 유적지 사진은 한장도 촬영하지 못했다.
따라서 사원내부는 유적을 발굴할 당시의 사원의 터 즉, 당시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여 방문객들이 직접눈으로 볼 수 있도록 되어있었으며 주변에는 더이상 유적이 훼손 되지않도록 방어펜스도 둘러져 있었다.
아무튼 겉으로 보았던 콘크리트건물에서 실망감을 주었던것과 다르게 현장감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필자의 시선을 끌었던곳은 석가모니의 왼쪽발자국이라는 유적이 유리덮게 속에 보존되어 있는 모습과 석가의 탄생 장면을 묘사하여 돌로 만들어진 부조였다.
"인도 가이드(아제)는 돌로 만들어진 부조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석가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오른손으로 감잎나무를 잡고 석가(싯다르타)를 낳은 모습과 그 아래 중간쯤에는 새로 태어난 아이가 빛을 내면서 연꽃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왼쪽으로 창조신 브라흐마가 태어난 아기를 받아드는 모습이고 나머지 여인으로 보이는 조각은 마야부인을 시중하고 있는것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현지에서 직접 부조를 보면서 가이드 설명을 들었지만 조각을 보는 전문지식이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해가 잘 되지않았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부조에 맞추어 말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들게 한다.
마침 어제 투숙했던 마야 호텔에서 모조품으로 전시되어 있는 부조와 마야부인이 석가를 낳는 모습을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카메라에 담아둔것이 오늘 설명과 일치하여 사원내부에서 촬영하지 못한 일부를 보조할 수 있었다.
이제 사원내부를 둘러보고 입장할때와는 반대쪽에 있는 문을 통해 사원밖으로 나가면 2,500년전 마야부인이 석가를 낳고 목욕을 했다는 연못이 하나있는데 연못주변의 제방에는 현대식 붉은벽돌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것 같아 고전적인 이미지는 특별히 느끼지 못했다.
설명에 따르면 이 붉은색갈의 벽돌제방은 1939년에 제작된 별돌이라한다.
그러나 연못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야데비사원의 불탑을 비롯한 사원전체의 그림자가 연못에 그대로 비추어주고 있어 또 다른 운치를 느끼게 하였다.
한편 연못건너편에는 네팔어느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타루초"(Tarchog)가 갖가지 소원을 비는 갖가지 경문을 적어 보리수 나무사이에 걸어두어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타루초"(Tarchog)가 걸려있는 500년된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행하는이들도 있었는데 무엇인가 경문을 계속 암송하는듯 했다.
다행이도 이들과 사진촬영이 쉽게 허용이 되어 필자도 수행자들과 함께 두손을 합장한 어색한 모습의 귀중한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지금 있는 보리수 나무는 석가모니가 수행한 보리수가 아니고 그당시 나무들은 고목이 되어 없어졌지만 지금의 보리수나무는 그 후손나무들이라고 한다.
기타 사원을 둘러싼 주변에는 갖가지 역사가 담긴 유적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먼저 사원의 지붕위에는 네팔에서 흔히 볼수 있는 불탑(스투파)이 우뚝하게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불탑의 위에는 금으로 도금된 종이 있다고 하였으나 자세히 관찰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원의 바로 옆에는 지금부터 약2,200여년전 아쇼카왕이 석가탄생지를 확인하고 룸비니 동산에 기념으로 세웠다는 대리석기둥(아쇼카 석주)이 우뚝서 있는 유적도 있었는데 일부 불교신도들은 이곳에서 합장을 하면서 기도하는 이도 있었다.
또한 사원주변에는 순례자들이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으며 불교가 성행할 당시 수행자들이 명상을 하였다는 둥근 좌선대도 있었다.
또한 주홍색 승복을 걸친 불자들이 넓은 사원둘레를 청소를 하면서 관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사원 주변을 돌면서 절터같은 모형의 벽돌 하나 하나에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은 해주었지만 모두 기록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던 같다.
그러나 교과적으로 배운 그 현장 즉, 석가모니 탄생지인 룸비니의 마야데비 사원에 와서 보고 느끼는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마야데비 사원에서(이곳에 들어갈땐 입구에서부터 신과 양말을 벗고 들어가야했다)
500년된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자와함께 (수행자와 함께 촬영이 어려울것으로 예상했으나 다행이 쉽게 허용이 되었다)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마야데비사원에서 만난 베트남 성지순레단과 현지사람들]
세계문화 유산 마야데비 사원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어제투숙했던 마야호텔로 이동했다.
마야데비사원에서 나오는 길에는 룸비니의 학생및 현지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할 기회도 있었다.
현지사람들과 만나고 이어서 호텔을 향해 걸어 나가다 우연하게 어제 같은 호텔에서 투숙했던 베트남 성지 순례단을 만나게 되었다.
베트남 성지순례단은 한일자로 대열을 맟추어 눈을 지긋이 감은채 두손을 합장하고서 질서 정연하게 느린걸음으로 마야데비사원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베트남말로 암송하는 불교용어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무엇인가 주문을 외는듯 했다.
짙은 밤색같은 유니폼과 옅은 푸른색의 유니폼을 착용한 베트남 순례단은 남녀 혼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나이가 지긋한 이도 있는가 하면 젊은이도 보였다.
필자는 아침에 호텔에서 사진을 촬영하면서 만난 베트남 성지순례단의 일원(남녀두분)의 주선으로 이들의 대열에서 함께 기념촬영도 하는 영광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면모를 볼때 베트남사람들도 인정이 많음을 느끼게 하였다.
잠시였지만 베트남사람들과 값진 만남을 하였던같다.
이어서 베트남 성지순례단의 행열은 마야데비 사원으로 들어가고 우리일행은 다시 호텔에 들어와 휴식을 하면서 인도 관광버스가 도착할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호텔 정원에 심어져있는 열대과일 나무인 망고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담기도 했는데 망고 과일은 먹기는 하였지만 망고나무는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제 몇분후에는 인도 관광버스가 도착하면 몇일간의 네팔여행을 모두 마치고 필자 일행은 국경지대를 거쳐 북인도로 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야데비사원에서 (네팔 어린이와 기념촬영)
호텔에서 만난 베트남사람의 도움으로 이들대열에 합류하여 사진을 촬영을 할수 있었다.
*아래글은 체험기중 일부를 소개한 글임
[네팔 국경을 통과하여 인도로 가다]
08:20분!
인도에서 보내온 관광버스가 도착했다.
인도 관광버스가 쉽게 네팔로 들어오는것으로 보아 네팔과 인도는 이웃을 오고가듯이 국경을 넘는것 같은 느낌이다.
"세계를 간다(네팔편)"의 여행책자에 의하면 네팔에서 육로로 인도에 들어가는 방법은 3가지 코스가 있는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 하나는 네팔의 바르건즈에서 인도 파트나로 가는방법,
두번째 방법은 네팔 수노올리에서 인도 바라나시로 가는 방법,
세번째 방법은 네팔 카카르비타에서 인도 다르질링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
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 일행이 선택한 코스는 두번째 방법인 네팔 수노올리에서 인도 바라나시로 가는길이었다.
그래서 호텔에서 45분 정도 달린 우리버스는 네팔의 국경지대(수노울리)에 도착햇다.
국경지대라고 하지만 별도의 울타리가 있는것이 아니고 바리게이트 하나에 무장공안요원이 지키고 있는것이 전부였다.
또한 국경지대의 풍경은 각종 상인들과 오가는 행인들이 혼합이 되어 마치 재래시장을 연상케했다.
뿐만 아니라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어린아이는 맨발로 다니면서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것들이 오늘날의 네팔의 현실이고 보면 우리는 정말 잘 살고 있음을 새삼느끼게 한다.
얼마후 가이드와 우리일행중 최고 연장자인 한 사람과 국경사무실에 출국수속을 하기위해 가고 남어지 일행은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시간이지만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오는 사람과 네팔에서 인도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떤사람들은 도보로 넘어가는 이도 있고, 또 일부는 통행증이 있는 릭샤(자전거를 개조하여 만든택시)를 타고 가는이도 있고 ,기타 자가용 차량으로 넘어가는이도 있었다.
국경지대의 자연스러운 이러한 면모를 볼때 네팔 - 인도간의 국경넘는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다.
또한 국경지대를 오가는 인파도 많았지만 그 보다도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울긋불긋하게 치장한 화물차량은 밤동안 이곳 국경지대까지 달려왔는지 많은차량이
통관절차를 밟기 위해 줄어서있었는데 끝이 보이질 않았다.
얼마후 별다른 제지없이 네팔국경사무소를 통과하고 이어서 인도국경사무실을 통과해야하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동안 기다렸다.
나중에 일행대표로 부터들은 이야기지만 급행료를 지불하고 조치하였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한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한정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인도국경사무실 입구에는 "Welcome to India "라고 쓰여진 환영 아치도 걸려있었지만 급행료가 없으면 대기시키는 인도의 후진성은 아직도 묘연하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국경사무실의 환영아치 뒤에도 네팔로 들어가기위해 줄을 서있는 화물차 행열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이제 4일간의 짧은기간동안 네팔여행을 마치고 인도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네팔이여 안녕~
네팔 국경지대 수노올리마을에서
네팔 국경검문소
네팔과 인도국경선(네팔지역)
*좌측의 사람들은 네팔에서 인도로 들어가는 사람들이고 우측에 사람들은 인도에서 네팔로 나오는 사람들임
네팔지역 여행을 마치고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 아래에 위치한 그다지 크지 않는 나라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힌두교가 성행하는 네팔이라는 나라와 남북인도 일대를 병행하는 여행을 하게 되어 어느때 보다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여정이었다.
또한 네팔의기후는 6-9월의 우기(Rainy Weather)와 10-5월의 건기(Dry Weather)가 있다.
그래서 여행은 우기때 보다는 건기때가 좋은 편이다.
따라서 필자가 갔을땐 10월의 건기였기 때문에 원거리에서도 히말라야를 볼 수 있을정도로 항상 맑은날이 계속되어 여행에 전혀 불편이없었다.
이번에 여행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와 네팔의 중부쪽에 위치한 포카라,서쪽에 위치한 룸비니는 나름대로 특색을 갖고있었다.
시가지에 신호등이 없는 수도 카트만두 도심지의 경우는 얼핏보기엔 차량과 사람,자전거,오트바이,릭샤가 서로 뒤엉켜 경적소리가 귀를 따갑게할 정도로 무질서하게 보였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혼잡한 가운데에서도 나름대로 서로 양보를 하면서 질서를 유지하는듯하였다.
무엇보다 카투만두에서 포카라와 룸비니로 이동하는동안 굽이굽이 돌았던 산악길의 낭떨어지를 달리면서 손에 땀을쥐게했던 순간들의 스릴은 이번 여행이 만들어준 또하나의 값진 추억이 되었던 같다..
또한 포카라 사랑코트전망대에서 바라본 거대한 히말라야의 마나슬루, 안나푸르나의 우뚝 솟은 거봉의 주변에 쌓여있는 만년설의 설경과 어우러진 일출의 모습은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의 자연을 배경삼아 산 허리에 집을 짓고 계단식으로 개간하여 자연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네팔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리는듯 하다.
장시간 이동하여 도착하였던 네팔의 마지막 여행지 룸비니에서는 석가탄생지의 유적지 탐방을 통해 불교에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같다.
그러나 네팔이라는 나라는 이러한 장점이 있는반면에 개선되어야 할 점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나는 도시나 농촌할것없이 온통 쓰레기가 천지로 덮여있어 깨끗한 거리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둘째는 일부관광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는 화장실 시설이 없어 대자연의 하천 도로변이 모두가 화장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셋째는 관광지에 도착하면 나이가 지긋한 아즘마를 비롯한 맨발의 아이들이 서로손을 내밀면서 구걸하는 모습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실감케 하였다.
끝으로 짧은 기간의 네팔여행이었지만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과 아울러 네팔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었던 값진 여정이었음을 확신한다.
2011년 12월 네팔여행을 마치고
고 성 관
이상은 네팔여행관련하여 일부를 요약하여 올려두었습니다.
아울러 네팔여행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통합검색창에서 " 네팔 여행체험기" 로 검색 하거나 또는 http://blog.naver.com/kosungkwan 주소로 들어가 크릭하시면 출발시 부터 돌아올때까지 순서대로 상세하게 볼 수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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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님 그간 안녕 하세요, 오늘 여기카페에서 건강하신 모습을 뵈오니 무척반갑습니다
그리고 또한 조순 선배님의 정년 퇴직의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이제 선배님의 하고픈 즐거운 생활이시길 바라겠습니다 ,,
저도 조금이지만 산행을 취미삼기에 네팔이라는 나라는 그냥 히말리아산맥 아래 평범한 나라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은 역사가 숨쉬는곳인지 선배님 여행기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신 쿠마리 여신과 무시시한 시바화신의 칼 바이라브, 그리고 저는 믿는종교는없지만 불교에 애착심은 있는데
석가모니 탄생지가 룸비니의 마야데비사원 이라는걸 처음알았습니다,,참으로 부끄럽군요,,
후배님 오랫만입니다.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조순 교장의 정년퇴임후 둘이서 함께 네팔과 인도지역을 15일정도 여행하였습니다.
먼저 졸필에 불과한 나의 글을 자세히 읽고 극찬을 해준 조홍락 후배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네팔이라는 나라는 대부분 산악지대로 형성된 나라이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평야도 일부있습니다.그런데 한가지 특이한것은 험준한 산악지대 이지만 국민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후배님이 지적한대로 네팔이라는 나라는 유일하게 힌두교를 국교로 하고 나라이기 때문에 쿠마리 여신,시바신등 등 수많은 신을 숭상하는 편이었습니다.
또한 이곳의 열악한 환경속이지만 학생들에 생기있는 눈망울 모습보니
장래가 어둡진 않군요
선배님덕분에 네팔이라는나라가 산악인들만 가는 나라가 아니라는걸 알게되고
자세한글을 올려주어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이시길 바라겠습니다,,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석가 탄생지 룸비니의 마야데비사원에는 500년된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는 스님과 석가와 관련된 다양한 유적들을 볼 수 있었답니다.
후배가 이야기 한것처럼 네팔 어린이나 학생등은 생활은 궁핍하지만 천연스럽고 순박한 모습들이었답니다.
끝으로 나의 여행험기를 상세하게 읽고 좋은 조언과 격찬을 해준 조 홍락 후배님께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항상 하시는 사업 꾸준히 번창하시길 바라고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네팔아래 나오는 인도여행편에도 인도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풍경 사진과 글이 실려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한번 둘러보길 바랍니다)
두분 선배님의 여행 잘보고 갑니다..두분 선배님의 건강하신 모습 보가 좋으시고요...맨발이 인상적입니다...글은 쪽 다음에 보겠습니다 선배님
하늘님 ! 방문해 주셔서 고맙고 ~
맨발의 사진이 많은 이유는 사원에 들어갈땐 양말까지 벗어야만 입장이 가능합니다.그래서 이곳 네팔사람들은 길거리에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많아요
왜냐하면 네팔에는 힌두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힌두교사원이 있습니다.이러한 사원에 들어갈땐 반드시 양말까지 벗고 들어가기 때문에 아예 맨발로
다니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체험기는 시간을 두고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좋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럼 항상 하늘님의 건승을 기원 합니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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