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한 3월 18일 토요일 오후, 캐나다 문인들의 겨울나기 회포를 푸는 자리이자 새내기 문인들을 맞는 신춘문예 시상식이 마련되었다.
2023년 밴쿠버문학 신춘문예(늘샘 반병섭 문학상) 시상식에서, 사진 출처: 통신원
이 시간은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지부(회장 임현숙)가 주최하는 캐나다 서부지역의 문인들의 입문을 축하하는 자리다. 수상자 가족과 친구,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타지역에서도 격조했던 문인들이 몇 시간을 운전해서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다. 협회의 시작 때부터 신문의 지면을 할애하여 문인들의 작품을 매주 발표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밴쿠버 조선일보의 김종국 사장과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밴쿠버회의 정기봉 회장이 축사를 위해 참석하였고 포트무디 플루트 연주팀의 축하 공연과 임윤빈 부회장의 성악 연주로 문학과 예술의 어울림 한마당이 되었다.
2023년 서부 캐나다 지역의 신인 문인을 발굴하는 밴쿠버 문학 신춘문예상은 늘샘 반병섭 문학상으로도 일컬어진다. 올해 영예의 대상 수상자는 '12월 31일' 시를 쓴 곽선영 씨였다. 지난해, 단편 소설로 등단한 곽선영 씨가 다시 시로 도전해 대상을 거머쥐었다. 장려상 수상자로는 시 '엄마의 에어메리'를 쓴 윤미숙 씨, 시 '신기루'를 쓴 김영선 씨, 단편 소설 '욕망의 그림자'를 쓴 김 토마스 씨였다. 곽선영 씨와 윤미숙 씨는 수상작 시 '12월 31일'과 '엄마의 에어메리'를 각각 낭독하였고, 좌중은 음미하였다.
수상자들의 작품 낭독에 축하의 박수로 격려하는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문인들, 사진 출처: 통신원
올해 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조정 수필가는 신선한 시어로 시적 정서를 표현한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으며, 사소한 현실과 현상 묘사에 치우치기보다는 생생한 삶의 구체성을 이미지로 형상화 한 시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곽선영의 시는 시적 상상력으로 낯선 이미지를 연결하는 감각이 뛰어나 습작 과정의 치열함을 엿볼 수 있었다고 대상 선정의 평을 발표했다. 김 토마스 씨의 소설에 대해서는 갈등을 겪는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심리 묘사와 작품의 밀도를 높이는 에피소드들이 부족하여 아쉬웠으나, 문체와 문장력이 뛰어나고 형식이나 구성 등 소설 작법을 공부한 후 많은 습작을 통해 능히 채워질 수 있는 부분이라 여겨 장려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심사의 평을 정리했다.
2023년 밴쿠버 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조정 수필가가 심사 총평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통신원
이어 심현숙 밴쿠버 문학상 위원장은 늘샘 반병섭 문학상은 캐나다 밴쿠버에 한국 문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후배 문인을 많이 양성한 고 반병섭 목사의 공로를 기리며, 문인협회와 유족이 협의해 제정한 우리 지역의 문학상이라 소개하면서, "글 쓰는 일은 즐겁고 보람된 일이지만 힘겨운 작업의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을 바른길로 이끌어가는 길잡이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걸어가시기를 바란다."라고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심현숙 밴쿠버 문학상 위원장이 수상자들을 위해 격려사를 발표 이후 포트무디 플루트 연주팀(안지우, 이이삭, 이남미, 조은향)의 축하 공연, 사진 출처: 통신원
임윤빈 부회장이 한국의 가곡을 열창과 2023년 밴쿠버문학 신춘문예(늘샘 반병섭 문학상) 대상을 받은 곽선영 씨(오), 장려상을 받은 윤미숙 씨(왼), 사진 출처: 통신원
"소설을 즐겨 읽다가 끝내 소설을 쓰게 되었고 시를 동경하다가 마침내 시도 쓰게 된 곽선영입니다. 글 쓰는 사람이어서 인터뷰이로 선정되었기에 소개를 이렇게 시작했지만, 실제로 제 사회적 역할 중 가장 큰 비중은 연로하신 부모님의 딸이자 어린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1992년도에 이민을 왔으니 올해로 30년 되네요. 한국에서 살아온 세월의 두 배 이상을 캐나다에서 살았고 법적으로는 명실상부한 캐나다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와 처음 만나는 외국인들은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고 물어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습관적으로 "나는 한국인이야"라고 대답합니다. 뭉뚱그려 '이민의 삶'이라고는 해도 가만 들여다보면 개인마다 '이민자의 삶은 이런 것'이라고 정의 내리는 게 다를 텐데요. 저에게 있어서 '이민의 삶'은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을 각인하게 된 계기입니다. 한국의 정서를 지닌 채 캐나다 문화권에서 사는 것은 양쪽 모두를 경험하는 것이지만 어느 한쪽에도 온전히 동화되거나 스며들 수는 없는 개구리밥이나 부레옥잠처럼 지상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부유함' 자체가 정체성으로 굳어져 버렸달까요. 나이가 좀 든 지금은, 인생이라는 것 자체를 '불멸의 존재인, 영혼이 육신을 입고 한시적인 시간 동안 지상을 부유하는 현상'으로 인식하며 살고 있습니다.
12월 31일
곽선영
나에게는 생각에 빠지면 눈썹을 짓이기는 버릇이 있다 밤마다 눈썹은 무상하게 새로 자라고
고픈 잠 눌러가며 먼 동 같은 화면 위에 한 땀씩 새겨 넣었던 문장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에스프레소로도 지워지지 않는, 멍 자국 같은 그림자를 눈두덩 아래 늘어뜨린
어느 문화부 기자의 책상을 지나 파쇄기 속 한 줌 종이 부스러기로 남았을 저 불쌍한 문장들
젖 한 번 물리지 못하고 내 품을 떠나보낸 핏덩이 같은 그들에게
그러고도 단어의 숲을 헤매는 망자의 원혼 같은 나 자신에게
오늘만이라도 애도를
오늘 밤에도 눈썹은 불쑥 자라오른다
Q. 작년에 소설로 등단하셨고 단편 소설을 집필하고 계시는데요. 시에 도전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수상하신 시 '12월 31일'의 창작 배경을 소개해주세요.
나이를 불문하고, 다들 청소년기에 한 번씩 문학 소년 소녀가 되는 경험을 하지 않나요? 제가 문학소녀이던 시절에 저는 '이상'과 '기형도'를 동경했습니다. 시인의 정신세계는 대체 어떻기에 이렇게 밋밋하기만 한 일상을 저런 독특한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그걸 독자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할 수 있게끔 글로 풀어내는지 궁금했고 시의 세계 자체가 경이로웠죠. 한마디로 원래 시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쓰려고 하니, 뭐랄까, 그냥 불가능했어요. 그래도 글쓰기 자체를 내려놓지 않다 보니 슬금슬금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시에 도전하게 된 건 소설을 쓰면서도 시의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텐데요. 수상작은 신춘문예에 실패한 소설가 지망생의 한탄이 담긴 내용입니다. 신춘문예에 도전할 때, 별도의 통고를 받지 않아도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탈락이라는 게 암암리에 알려진 업계의 관행이거든요. 제가 그 경험을 지난 12월에 했습니다. 당선될 거라는 기대조차 안 했는데도 막상 연락이 오지 않자 '혹시 올해는 통보 일정이 다를지도 몰라', '어쩌면 연락이 잘 못 갔을 수도 있어', 하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을 막 하더라고요. 객관적으로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복권 당첨을 꿈꾸는 마음과 동일한 심리로 당선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12월 마지막 날, 굉장한 실망감을 가지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두서없이 문장들이 떠오르길래 그대로 적었습니다. 그게 놀랍게도 수상작이 되었고요. 사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Q. 이민자에게 한국 문학은 어떤 힘이 되나요?
글쎄요. 문학이 모종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독자가 이민자인지 아닌지보다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그 여파가 다르지 않을까요. 문학에서 의미나 재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문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독자에게 문학이 가지는 힘이란 '동질감에 대한 확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감각적 경험', '글의 맛을 즐기는 기쁨' 등, 결국 타인의 글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보듬거나 북돋는 것 아닐까 합니다.
Q. 앞으로 어떤 시와 소설을 쓰고 싶으신지, 곽선영 님의 작품이 독자에게 어떻게 닿기를 기대하시는지요.
작년에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이런 답을 했었습니다. 아픈 마음에 위로가 되는 글, 메마른 마음에 꿈과 희망을 주는 글, 옹송그린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는 글, 길 잃은 마음에 북극성 별빛이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엄마의 에어메리
윤미숙
구겼다 편 한지(韓紙) 같은 살가죽 밑으로
칼바람에 이는 구멍 숭숭 뼈마디를
따습게 덧발랐을 엄마의 에어메리
다홍도 아니고 분홍도 아닌
연어 속살 똑 닮은 새먼핑크 그 색깔
나 몰래 짐가방에 넣어 보낸 똑같은 한 벌
강산이 바뀌도록 잊고 있던 그 내복을
이제는 입는다 날마다 입는다
물 댄 적 한번 없는 가뭄 논같이
갈라지고 푸석했을 엄마 인생 구십 년
봄비가 오겠지, 장맛비라도 오겠지
기다리던 엄마에게 그 비는 내렸을까?
물어보지 못했는데 엄마는 떠났네
잘 입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데
아래위 다 입고 막춤이라도 출 텐데
웃다 지쳐 눈물 난 지 언제였던가
엄마와 한 번만 더 발갛게 웃고 싶네
Q. 윤민숙 씨, 시를 쓰게 되신 계기, 이번 당선되신 시 '엄마의 에어메리'의 배경을 소개해주세요.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시인이셔서 덕분에 그분을 통해 시를 배우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문예반에 들어가 시화전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교내 문학지의 편집일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때는 교내 백일장이나 지역 예술제에서 입상하기도 했는데 대학에 들어가서는 문학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시집을 읽거나 좋은 시를 다이어리에 옮겨 쓰는 일은 꾸준히 해 왔습니다. 이번에 당선된 '엄마의 에어메리'는 돌아가신 엄마가 주신 겨울 내복을 10년 동안 가지고만 있다가 지난겨울에 입기 시작하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쓴 시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2주간의 봄방학이 있어 주로 봄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다녀오곤 했는데, 한번은 한국에 나갔을 때 어머니께서 3월인데도 두꺼운 겨울 내복을 입고 있었고, 내복 없이 다니는 저를 보고는 급기야 엄마랑 똑같은 색의 '에어메리'를 사다 놓으셨습니다. 영어를 모르시는 엄마가 '에어메리'라서 엄청 따뜻하니 꼭 입으라고 하신 걸 보면 아마도 속옷 전문점의 주인이 '에어메리'란 말을 여러 번 강조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가져가도 안 입을 것 같아 엄마가 입으라고 거절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짐가방에 들어 있었지요.
Q. 캐나다 이민, 지금 하시는 일과 간략한 이민의 삶을 소개 바랍니다.
저는 가족과 함께 2000년 여름에 캐나다에 왔습니다. 2003년부터 제가 사는 도시인 아보츠포드(Abbotsford) 교육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국제학생부 소속으로 유학생들의 학교생활 전반을 돕는 일을 합니다. 부모님들을 위해 상담 통역도 하고요. 제 직업과 관련되어 좀 더 자질을 갖추고자 2008년도에 STIBC(Society of Translators and Interpreters of BC, BC 통/번역가 협회)의 정회원이 되었고 번역일도 가끔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공무원 연합회 KCWN(Korean Community Workers Network)의 자원봉사자 중 한 명으로 한인 사회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KCWN에서는 한인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위해 그 직업군에 있는 분들을 초대하여 조언을 듣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하고 밴쿠버에 사시는 한국전 참전용사분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일 등을 합니다.
2021년 8월 말, 윤미숙 씨가 담당했던 초등학교에 새로 온 유학생들과 school tour를 마치고, 사진 출처: 윤미숙
윤미숙 씨는 캐나다 밴쿠버 지역의 한국인 공무원 모임 KCWN(Korean Community Workers Network)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한인 청년들의 구직 워크숍, 한국전 참전용사분들 초청 만찬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 중앙에 파란 앞치마를 입은 윤미숙 씨, 사진 출처: 윤미숙
Q. 이민자에게 한국 문학은 어떤 힘이 되나요?
누군가 제게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냐고 묻는다면 저는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나 지인들과 맛있는 걸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라고 대답할 거예요. 그런데 그 행복한 시간 후에 혼자가 되었을 때, 문득문득 밀려오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타국에서 살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고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이 곁에 안 계셔서일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이렇게 타국에서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저로서는 좋은 글을 읽을 때,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구나! 느끼며 따뜻한 위로를 받습니다. 작년 초, 파친코(Pachinko)라는 소설을 읽으면서는 저의 외로움은 사치에 불과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인 가족의 이야기였거든요. 책을 읽은 뒤 얼마 안 되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과 함께 마침 밴쿠버에서 촬영한다는 소리를 듣고 엑스트라로 참여하고 싶었을 정도였어요.
Q.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으신지, 윤미숙 님의 시가 독자에게 어떻게 닿기를 기대하시는지요.
저는 일상을 살아가다가 느끼는 것을 시로 옮기곤 해서 제 시는 쉬운 생활 시입니다. 제 시를 읽으시는 분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를 앞으로도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기루
김영선
나는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아무도 내 언어를 말하지 않는
그곳에서 살고 있다
두 대륙의 중간
그 중간 바다 한가운데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부표처럼
정체 없는 사람처럼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하고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혼란 속에서
그림자조차 없는
아무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나의 목소리만 허공에 울리는
그곳에서 살고 있다
나는 그 누군가와 소리 없는 대화 하려고 애쓴다
나는 허상의 그 누군가를 붙잡으려 애쓴다
나는 오늘도 그 신기루에
가까이 다가가려 애쓴다
여기 내가 사는 곳은
아무도 나의 언어를 말하지 않는다
잔인한 현실
나는 오늘도 아무도 살지 않는
허허벌판
그 바다 한가운데
나는 그곳에서 살고 있다
Q. 김영선 씨, 본인의 소개 부탁합니다. 캐나다 이민, 지금 하시는 일과 간략한 이민의 삶을 소개 바랍니다.
1997년, 캐나다로 여행을 왔다가 잠깐 거주하며 공부를 하던 중, 그해 12월 마지막 날에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어요. 그 후 한국에서 짐을 싸 들고 와서 살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어 캐나다로 완전히 이사를 왔어요. 저는 현지인과 결혼해서 모든 일상이나 그 문화와 생각의 저울질이 다름을 항상 느껴서 어쩌면 더 어려운 이민 생활이었을 수도 있지만 남편 덕분에 이국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살아온 문화가 달라 서로의 의견이 같지 않을 때, 영어로 논쟁해야 하는 게 상당히 힘이 들었어요.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서 더욱 힘이 들었지요. 전 그게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당연한 생각의 방식, '상식'이라고 말하면 제 남편은 그건 여기선 'common sense'가 아니라 하더군요. 처음에는 어떻게 그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건지, 이건 너무 당연한 건데 하면서 기가 막히기도 했고 답답했었지요. 부모 형제 다 두고 여긴 저 혼자여서 특별히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고요. 저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 가족이에요. 지금도 남편이 업어 줄 정도로 다정한 부부면서 가장 절친한 친구로, 같이 웃고 이런저런 주제로 토론하는 상대도 되기도 하고 취미도 함께 즐기고 와인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이입니다.
옛날부터 호텔 경영을 하고 싶어서 이사 온 후 호텔경영과 관광학을 다시 공부하여 아주 조그만 부티크 호텔을 스키장 근처에서 13년 운영하면서 그 소원을 대략 이루었고 최근에는 그 호텔을 정리하고 나서 2년 좀 넘게 쉬면서 오랫동안 소망하고 설계했던 우리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짓고 현재는 글 쓰면서 그림도 그리면서 책 읽으며 평상시 좋아했던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slow living을 연습하는 중입니다.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믿으면서 다음 소망을 설계하는 중이기도 하고요.
Q. 시를 쓰게 되신 계기, 이번 당선되신 시 '신기루'의 배경을 소개해주세요.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열심히 쓰고 편지도 쓰고 고1 때는 단편 소설을 하나 써서 인쇄한 후 같은 학교에 있는 친구들에게 돌려 읽게 하기도 했었죠. 시는 몇 년 전부터, 함축된 말로 전달되는 그 간교하면서도 심오한 깊이에 매혹되어, 한번 시도해 봤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번 작품인 '신기루'는 이민자로서 느끼는, 온전한 한국 사람도, 캐나다 사람도 아닌, 정체불명자 같으면서 때론 더 외로운 이민자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밴쿠버 외곽 도시에 거주하는 김영선 씨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여 며칠 후 밴쿠버 지역에 방문했을 때 상패를 전달받았다. 문협의 많은 선배 문인이 함께 축하했다. 사진 출처: 임현숙
Q. 이민자에게 한국 문학은 어떤 힘이 되나요?
이민자에게 한국문학은 고향과도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화가 같아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말 안 해도 서로를 다 아는 것이라고 할까요. 고향 같은 그 편안함이요.
Q.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으신지, 김영선 님의 시가 독자에게 어떻게 닿기를 기대하시는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조병화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자랐습니다. 그분의 시처럼 화려한 수사보다는 그냥 의식하지 않은 채로 읽다 보면 마음속 깊이 담기고 다가가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읽어준 것 같은 그런 공감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Q. 김 토마스 씨, 본인의 소개 부탁합니다. 캐나다 이민, 지금 하시는 일과 간략한 이민의 삶을 소개 바랍니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벌써 30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민 초기에는 전공을 살려보려고 SAIT에 입학해서 공부했습니다. 학교 성적은 좋았는데 캐나다 실무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취업을 거절당해서 결국, 전문직 찾는 일은 포기했지요. 할 수 없이 아내와 함께 두 번의 비즈니스를 하며 생활비는 해결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아내는 10년 전에 은퇴했으며 아이들은 결혼해서 자식 낳고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18년 전에 캘거리(City of Calgary)의 공무원이 되었고, 현재는 Transit operator로 일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직장 생활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Q. 시인으로 활동 중이셨는데요. 이번에 소설을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단편 소설 '욕망의 그림자'의 창작 배경을 소개해 주세요.
이민 초기부터 타향살이의 애환을 글로 풀어내는 습관이 붙더니 어느새 시를 쓰게 되었지요. 수년 전부터 톨스토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안에 성찰과 치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믿게 되었고요. 이만큼 살아보니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시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자연스레 소설 작법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요즘, 에드거 앨런 포, 안톤 체호프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글을 즐기고 있습니다.
졸작 '욕망의 그림자'를 쓰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동서고금을 통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다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서 몸부림치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어요. 단순하게 살면 될 텐데, 어떨 때는 사람들 사는 모습이 너무 치열해서 마치 각자도생하려고 미쳐서 날뛴다는 생각까지도 하였지요. 천태만상을 한 인간의 삶을 쳐다보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이런 현실을 파헤쳐서 글로 드러내 공론화하고 올바른 삶을 모색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기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은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견문에 상상력을 더해서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Q. 이민자에게 한국 문학은 어떤 힘이 되나요?
한국 문학은 동포들의 정서 함양과 위안에 도움을 주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자그마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비의 귀소본능처럼 이민자들은 한글문학을 은근히 갈망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많은 이들이, 이민자들이 쓴 문학작품을 '한풀이 문학'이라고 치부하거나 외면한다는 점이에요. 이민자들의 의식 수준은 이민 올 때 당시의 한국문화와 사고에 멈춰있다는 말이 있어요. 그 때문인지 현지에서 발표되는 한국 문학을 살펴보면 대부분 과거지향적이며 향수에 젖은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좀 더 현실을 타개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미래지향적 작품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시와 소설을 쓰고 싶으신지, 김 토마스 님의 작품이 독자에게 어떻게 닿기를 기대하시는지요?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소설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가 찾아와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거나 시원하게 땀을 씻어내며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또는 자기 모습을 투영해 보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벽녘 풀잎에 핀 이슬 꽃 같은 시, 뇌성벽력같은 힘찬 시,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시, 그리고 글재주를 벗어난 착한 시를 쓰고 싶어요. 복주머니처럼 보기에도 즐겁고 새겨볼 만한 가치도 있는 그런 글을 쓰는 게 소망입니다. 제가 꿈이 너무 많지요?
저는 작가의 삶과 글이 상반된다면 그 문학은 이미 존재 가치나 생명력이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삶이 올바른 삶이듯이, 작가의 작품활동은 무한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진정성 있게 살고 겸허하게 공부하면서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독자를 만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글 쓰며 지내는 생활 자체가 즐거움이고 보람이니까요.
*김 토마스 씨의 '욕망의 그림자' 단편 소설 보기 링크 : https://cafe.daum.net/klsv/LUu7
신춘문예에 글을 응모하려 마음먹은 작가 지망생이라면, 한 겨우내 사색의 씨름을 할 것이다. 긴긴 창작의 터널을 지날 때의 캄캄한 시간을 견디며 시 한 줄이, 수필 한 문단이, 단편 소설의 한 장면이 만들어진다. 윤문의 갈고 닦는 탈고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덧 새순이 중력을 거슬러 올라오는 시절에 다다르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자에게 치유를 경험하게 하고,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위로를 주는 넉넉한 문학은 타향살이 이민자들에게 큰 힘을 북돋워 준다. 요즘 세상은 초, 분 단위로 연락을 주고받는 세상이지만, 문학은 공감을 만들어내는 시간이 더디 걸린다. 그런데도 문학의 의사소통은 바쁜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느 한인사회에서도 문인들이 교류하고 글을 나누고 글쓰기를 연마하여 발표할 수 있는 다양한 길과 무대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재외동포재단 해외통신원리포트 2023년 4월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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