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년도: 18세기 후반
크기: 세로 27cm, 가로 22.7cm
설명: 김홍도는 조선 후기의 농민이나 수공업자 등 서민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생업의 이모저모를 간략하면서도 한국적 해학과 정감이 넘쳐흐르도록 그림에 담았다. 그의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면 군상 속의 각 개인 하나하나의 표정 또한 각기 다르게 표현되었다.
표현 요소와 원리: 주제는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생활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에 어울리게 거친 듯 하 면 서도 투박한 선을 쓰고 있다. 담고자 하는 핵심을 집약하려는 듯 그의 풍속화는 대체로 배경을 생략하고, 꽉 짜인 원형 구도를 이루며 간략한 필선의 묘미가 잘 나타나 있다.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특징: 김홍도의 씨름은 씨름하는 두 사람을 화면 가운데에 그려놓고 구경꾼들을 씨름꾼 주위에 원형구도로 배치함으로써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주제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탁월한 공간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다. 그리고 보물527호로 지정되어 있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앉아 씨름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힘을 겨룬다. 팽팽하게 맞잡은 양손에 긴장감이 흐르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구경꾼들도 눈을 떼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고유 겨루기인 씨름, 그러한 씨름의 역동성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이야기되는 단원(檀園) 김홍도의 「씨름도」의 한 장면이다. 씨름이라는 단어는 ‘시루다’라는 동사에서 왔다고 한다. ‘시루다’는 두 사람이 힘을 겨루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팔씨름, 입씨름 등의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로간에 승부를 겨루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하게 서로의 힘을 겨루는 것이다.
크게 장이 서고, 단오나 크게 행사가 벌어지면 그 자리에 빠지지않고 등장한 것이 바로 씨름이다. 지금은 프로 선수들의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지만, 예전에는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모두 씨름에 출전을 했고, 그중의 누군가는 소를 상금으로 타고는 해서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런 씨름의 풍경은 민중들의 삶을 그린 김홍도의 화폭에도 기록되었다. 단원(檀園) 김홍도의 「씨름도」는 단원의 대표적인 풍속화첩인 「단원풍속도첩」에 속한 잘 알려진 명품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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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그림의 제목은 뭘까?
길잡이>>아이에게 제목을 먼저 물어보는 것은 그림에 대한 흥미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제목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림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아이가 대답한 제목이<씨름>과 연관될수록 좋은 대답이 됩니다.(참고로 씨름 이라는 제목도 그림을 그린 화가, 김홍도가 붙인 것이 아니라 후대에 붙여진 것입니다.)
Q 씨름을 본적이 있니? 씨름이 어떤 운동인지 알고 있는대로 설명해 볼래?
길잡이>> 이 질문은 아이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씨름을 떠올리게 하면서, 앞으로 진행될 토론의 내용을 자기화 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알고 경험한 세계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지며,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동기 유발이 되기 때문이지요.
씨름을 직접 관람해 본 아이들은 별로 없을 것 같군요. 씨름에 대해 알고 있다면 주로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장면을 접해 보았을겁니다.
그렇다면 씨름이라는 운동이 다른 운동과 비교해 보았을때,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해 볼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예를들면, 어느 장소에서 경기를 하는지, 몇 명이 경기를 하는지, 운동복은 무엇을 입는지, 어떻게 해야 이기는지 등입니다)
Q 이 그림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몇 명이나 될까? 부채는 몇 개나 되는지 개수를 세어볼까? 정확하게 찾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어디 한번 재어보자.
길잡이>>이 질문 또한 그림을 더욱 재미있게 보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림을 대충보지 않고 꼼꼼하게 볼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 그림속에는 22명의 사람과 4개의 부채가 있습니다.(이중에서 구경을 하는 구경꾼의 숫자는 19명입니다)
Q 씨름하는 장면이 펼쳐진 이 그림을 그린 계절은 언제일까? 그림속에는 계절을 알려주고 심지어는 이날이 무슨 날인지도 가르쳐 주는 증거까지 담겨 있단다, 그것이 무엇일까?
길잡이>> 대개 아이들은 그림속에 부채가 그려진 것을 보고 여름이라고 추론합니다.
틀린 대답은 아니지요.
하지만 정확한 대답은 될 수 없답니다. 왜냐하면 씨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풍경때문이지요. 조선시대의 씨름판은 음력5월5일인 단오날에 펼쳐지는 행사입니다.
특히 이날은 부채를 선물하는 것이 풍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에게 부채를 선물했다는군요.
음력5월5일은 초여름이 시작되는 때라서 무더위가 찾아오는 시기가 아닌데, 왜 부채를 선물했을까요? 나라 경제가 농업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에는 양반 계급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어요.
초여름은 농사를 시작하는때이기도 했기 때문에 졓봉絹湧?힘들고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흘리는 비지땀을 부채로 식히라는 바램이 담긴 것이지요. 속 깊은 어르신들의 애정 표시였던 것입니다.
Q그런데 왜 여자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온통 남자들뿐인걸까요?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단오날에 여자들은 무엇을 하면서 지냈을까요?
길잡이>> 단오날이 되면 남자들은 장터에 모여서 한바탕 씨름판을 벌렸답니다.
하지만 남존여지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 여자들이 씨름이 구경한다는 것은 큰일날 일이었지요.
Q 이 그림에서 양반과 평민이 한데 어울려 있는데 도대체 누가 양반이고 누가 평민일까? 양반과 평민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한눈에 양반과 평민을 구별할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길잡이>>갓과 신말로 구별할수 있습니다.
양반과 평민은 쓰고 있는갓의 모양이 다릅니다.
왼쪽에 있는 반들의 갓은 챙이 넓고 크지만 위가 오른쪽위에 땅바닥에 놓여있는 뽀족한 것은 말뚝벙거지로 평민인 마부가 쓰던 모자이죠.
또한 신발의 모양을 보면 하나는 평민들이 신던 짚신이고 다른 것은 양반들의 가죽신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 그림속의 씨름하는 두사람중 한명은 한명은 양반이고 한명은 평민인 것을 알수 있겠지요.
이 질문은 통해서 아이들은 현대와 달리 조선시대는 양반, 평민, 천민이 구분되어 있던 <계급사회>였음을 알게 됩니다.
딱딱하고 어럽게 생각하기 쉬운 역사적 지식을 그림을 통해서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것이죠.
Q 그림의 오른쪽 위에 있는 다섯 사람들중에서 씨름을 가장 오랫동안 구경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니?
길잡이>> 비스듬히 누워서 손을 머리에 괴고 있는 마부가 가장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던 구경꾼임을 추론할수 있습니다.
우리도 텔레비전을 오래보게 되면 비스듬히 눕게 되는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이죠.
또한 이 다섯 사람중에서 가장 신나게 씨름을 구경하고 있는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질문도 할수 있습니다.
마부 옆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가장 신나 보이지 않나요? 만화영화에 푹 빠져 입을 헤벌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닯았습니다.
Q그림의 왼쪽 위에 모여 앉은 사람들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은 누구일가? 왜 그렇게 생각하니?
길잡이>>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뒷줄에 갓쓴 할아버지입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의 수염빛깔은 다른 수염들에 비해 희끗희끗할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것과 달리 할아버지의 눈꼬리는 아래로 축 쳐져 있기 때문이죠(아이들이 대답을 할때 그냥 ‘할아버지 같아서’가 아니라 생김새에 대해 꼼꼼히 관찰을 해서 왜 할아버지처럼 보이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은 가장 자리에서 발을 잡고 있는 아이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이라는 표시로 상투를 틀지 않은 댕기머리를 하고 있으며, 발을 잡은채 씨름에 빠져 있는 모습이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Q 이 무리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씨름경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출전할 후보 선수가 두명 끼어 있는데 누구일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길잡이>> 무릎에 손까지를 끼고 있는 사람과 그 뒤에 앉은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을 보세요.
한결같이 신나는 표정과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표정과 자세는 그렇지가 않아요. 꼭 다문 입모양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꼿꼿한 자세는 지종일관 긴장된 모습으로 씨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 이 두사람은 씨름을 보면서 어떤기술을 써서 상대를 이길까? 하며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Q열심히 씨름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볼까? 이 두사람 중에 한사람은 평민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양반인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알수 있을까?
길잡이>> 이 두사람이 씨름을 하기 위해서 옆에 벗어 놓은 신발을 보세요.
하나는 양반이 신느 가죽신, 다른 하나는 평민이 신는 짚신입니다.
Q 씨름을 하고 있는 두 사람중에서 이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왜 그렇게 생각하니?
길잡이>> 두 다리가 땅에 굳건히 세워져 있는 씨름꾼이 이제라도 곧 씨름을 끝낼 요량인지 팔에 힘을 주고 상대방 몸을 번쩍 안아 올릴 작정인 것 같아요. 축 처진 상대방의 오른팔과 달리 이기고 있는 씨름꾼의 오른팔에 힘줄이 선명하게 보이지요? 반대로 한쪽 다리가 들린 상대방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네요.
Q 힘센 씨름꾼이 이제라도 곧 상대방을 힘껏 내동댕이 칠 것 같지 않니? 지고 있는 시름꾼의 몸이 곧 쓰러질 것 같구나. 그렇다면 이 씨름꾼의 몸은 어느 방향으로 쓰러질 것 같니?
그림을 꼼꼼히 관찰해 보세요.
화가 김홍도는 지금 이 씨름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씨름에 진 사람이 쓰러질 방향까지 친절하게 가르져 주고 있답니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세요.
팔을 뒤로 젖힌채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습니다. 씨름판에서 지고 있는 씨름꾼이 돋 자기네 쪽으로 쓰러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죠. 아이쿠! 얼른 피해야겠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Q 재미있는 씨름판이 이제 곧 끝날 것 같구나. 그런데 그림속에는 씨름판에 왔는데도 씨름에는 전혀 신경도 안쓰는 사람이 하나 있네, 누구일까? 그사람은 무엇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이니?
길잡이>> 엿장수입니다. 상투가 아니라 댕기머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인 것 같아요.
씨름판을 돌아다니며 엿을 파는 엿장수에게는 씨름꾼보다 구경꾼들이 더 중요하죠.
씨름꾼들이 등지고 선 엿장의 표정을 보세요.
산을보듯 먼곳에 시선을 박고 있는 엿장수의 표정에는 씨익 미소가 번져 있군요.기분좋은 표정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것일까요? 엿판에 놓인 엽전 세 개가 흡족해서일까요? 집에 계시는 늙으신 어머니께 생선 한 마리를 사 드릴돈이 되는걸까요? 아니면 좋아하는 옆집 순이한테 잘 보일 거울이라도 하나 사려는것일까요? 아이와 함께 재미난 상상을 해 보세요.
엄마가 미리 엿을 준비해서 아이와 함께 먹으면서 대화를 하면 참 좋겠지요?
Q그림속에서 소리는 들리는 것 같지 않니? 어떤소리들이 들릴까?
길잡이>>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림속 사람들의 얼굴이 마치 우리동네 사람들처럼 친숙해졌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림을 천천히 보면서 귀를 활짝 열어볼까요? 씨름판의 소리는 마치 운동회를 할때처럼 여러 사람들의 외침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씨름을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소리, 엿장수의 목소리,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나는소리, 씨름을 하고 있는 사람의 기합소리 등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그 목소리를 현장에 있는것처럼 흥겹게 소리쳐 아나운서처럼 흉내내도록 유도해 보세요.(굉장히 재미있게 하더라구요)
Q 김홍도의 씨름그림에속에는 수수께끼가 하나 숨어 있는데 그 수수께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채 많은 사람들에게 궁금증으로 남아있단다. 그림오른쪽 아래에 있는 두 사람중 왼쪽에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잘못그려진 부분이 있는데 한번 찾아볼래? 화가가 그림을 잘못 그리다니 신기하지? 그런데 그속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숨어있단다.
길잡이>> 입을 벌리고 놀라고 있는 왼쪽 사람의 오른손 모양을 보세요.
오른손이 왼손처럼 잘못 그려져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화가가 실수로 잘못그린 것일까요?
아마 씨름에서만 잘못 그려졌다면 김홍도의 실수라고 여겼을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김홍도의 여러 작품속에서 이처럼 손이 잘못 그려진점을 발견할수 있답니다.
모든 그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손이 잘못 그려진 점을 발견할 수가 있죠.
이 사실을 두고 여러 미술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론은 잘못그린 것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가 담긴 화가 자신만의 표시라는 의견입니다.
그 이유는 아이와 함게 추론해 보면 어떨까요? (참고로 저희집 아이는 김홍도가 후세에 자신의 그림을 그린 모조품을 가려내라고 그렸지 않을까 이렇게 추론하더군요)
특히 이질문은 아이들이 이 그림을 신비롭게 여기게 하는 가장 재미있는 질문중의 하나입니다. 아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그림이라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특별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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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타작이나 점심이란 작품에서도 슬그머니 작가는 잘 알아차리기 어렵게 보는 사람들 재미있으라고
살짝 뒤바꿔 놓고 숨은 그림찾기처럼 만든것입니다." 자료 출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그리고 '씨름도'에서 씨름꾼들이 샅바를 매지 않았다는 사실!!
왜?.
왼씨름이나 오른씨름은 근래에 와서 많이 하는 것이고
옛날에는 바씨름을 주로 했으며, 샅바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구도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모든 관중들이 둥글에 앉아 있고
엿 장수를 제외한, 관중들의 시선은 일제히 중앙을 향하고 있다.
이는 그림에 안정감을 더 해주는 역할을 한다.
김홍도의 '씨름도'는 씨름꾼들들의 표정뿐만 아니라
관중들의 표정까지 정밀하게 그려냈다.
화면 중앙에 그려진 씨름꾼들을 보면, 한쪽은 낭패의 빛이 역력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를 넘기기 위해 마지막으로 기를 바짝 모우고 있다.
이에 따른 구경꾼들의 반응도 흥미로운데,
화면 오른쪽 위에 있는 구경꾼들은 상체를 앞으로 굽히면서 승리의 순간을 열렬히 환호하고,
오른쪽 아래의 두 사람은 자신의 편이 넘어가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입을 벌리고 놀라서 몸을 뒤로 젖혔다.
화면의 맨 아래에 등을 보이고 있는 어린이는
이러한 열띤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엿을 팔고 있는 엿장수를 쳐다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김홍도의 치밀함과 해학성을 엿볼 수 있다.
승리와 패배, 이에 따른 환호와 안타까움,
그리고 야단법석 가운데 무관심 등
각 인물에 대한 절묘한 상황설정과 탁월한 심리묘사가 이 그림의 매력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면 등장인물의 감정이
주변 상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화면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씨름」은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성공한 작품이다.
(출처 : 정병모 교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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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두의 문화비평 -
김홍도의 <씨름도> 22명 남자 그림의 정체
- <씨름도>는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신선도 그림을 서민화와 태극화한 것 -
- 일본어에서 감사의 뜻으로 사용하는 '도우모(どうも)'의 기원은
선도성모 도모(度母-桃母) 여신에 감사한 것에서 유래했을 것 -
내가 시카고 한인축제에서 5년동안 외국인들과 코리안들을 위하여 영어와 한국말로 씨름 해설을 하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김홍도는 왜 그의 <씨름도>에서 남자들만 구경꾼들로 그렸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김홍도가 신선도를 여러 편 그린 것에 대하여 그의 민속화로서 서민들을 대변한 <씨름도>에 대입해 보았다.
씨름장에서 씨름하는 선수 두명이야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남자들의 경기였기 때문에 남자 선수들로 그린 것은 이해되지만, 씨름 구경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던 것이 전통 씨름판의 풍경이었는데 왜 김홍도는 그 구경꾼들로 남자들로만 그의 <씨름도>를 그렸을까?
1. 씨름장에서 신선들과 같은 삼매경에 빠진 구경꾼들에 대한 김홍도의 착상
이 의문에 대한 비밀은 그림 속의 남자들의 숫자 22명이란데서 나는 그 수수께끼를 풀게 되었다. 22명이란 중앙에 타라 여신 또는 보살상을 중심으로 하여 21명의 도모(度母)들을 그린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에서 도합 22명이 되기 때문이다. 김홍도 <씨름도>의 22명의 숫자 뿐 아니라 중앙의 씨름 선수를 중심으로 둘러 선 구경꾼들은 '도모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라는 그림은 모(母)에서 보듯이 여성적인 그림인데 김홍도는 그것을 조선시대 유교시대의 남성으로 대신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는 수수께끼같은 인물로 자주 회자되어 왔다. 일본으로 건너가 활약했다는 설도 있는 것도 그 하나다. 지금까지 김홍도(金弘道 1745년~ ?)의 씨름 그림은 단순히 민속화로만 규정되어 왔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남자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다시 말하자면 남자 "二十一度父(이십일도부) 또는 이십일도부(二十一度夫)로 읽어낸다.
김홍도는 신선도 그림을 그리고 또 그의 주된 그림인 서민들의 풍속화를 그리면서 신선들과 대조되는 서민들에 대하여 여러 만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 결과 서민들의 <씨름도>에 22명의 사람을 그려넣어 신불사상을 바탕한 여신 중심의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를 서민화하고 유교시대에 맞추어 남성화시킨 것이 그의 <씨름도>라고고 할 수 있다.
특히 성리학의 태극사상을 의식하여 <씨름도>의 중앙에 두 선수가 음양의 태극이 휘감는 자세를 취하고 주변 관람객들은 네 그룹으로 나뉘어 태극과 사괘(四卦)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티벳 글자로 만든 이십일도모가 기도하는 원형인 이십일도모주륜(二十一度母咒輪)을 보면 사람의 모습들로 마치 김홍도 <씨름도>의 씨름 구경꾼들로 보인다. 김홍도가 티벳의 이와같은 이십일도모주륜(二十一度母咒輪)을 보고 씨름도를 구상했을지도 모른다.
*김홍도의 씨름도.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신선도의 서민화 태극화로 볼 수 있다.
중앙의 음양 두 명의 씨름선수들을 태극으로
주변 구경꾼들을 네 그룹으로 나눈 것은 태극의 사회에 해당한다.
*21도모二十一度母咒輪
사람형상의 티벳 전통 기도문 글자로 만든 이십일도모상.
씨름판을 연상시킨다.
김홍도는 씨름도를 그리기 전 이 그림을 보았을까?
중앙의 글자는 이십일도모주륜(二十一度母咒輪) 그림에 따라 바깥의 글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형식으로 변화한다. 이것은 구경꾼들 중에도 씨름선수가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신선들은 모두 신선으로서 모두 선수이며 모두 구경꾼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속 씨름이다.
김홍도는 씨름장에서 구경꾼들이 전통 씨름 장면에 시선을 빼앗기고 집중하는 모습을 가히 신분을 넘어 "신선들의 삼매경"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하나하나 <씨름도>에 그려진 구경꾼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씨름 장면에 숨넘어가는 신선노름을 하는 모습들이 아닌가.
구경꾼 중에는 손가락이 반대로 '뒤집혀' 그려진 것이 있는 것도 '신선 삼매경'에 빠진 구경꾼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삼매경에 빠진 상태가 어느정도인가 하는 표현을 엿장수가 엿이 안팔려 씨름을 안보고 '먼 산'을 바라보아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사실은 그 엿장수도 씨름장의 전체적인 '신선도 삼매경'을 강조하는 모습에 속해 있는 것이다.
누가 이들을 서민이나 천민의 신분을 가리겠는가 너도나도 신선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천하에 신선이 있다 한들 이보다 더 재미있고 평화로운 모습이 또 있겠는가 하는 그 '씨름 삼매경' 말이다. 갓을 벗어놓았건 초립을 벗어놓았건 같은 신선의 삼매경에 빠진 것이다.
<씨름도>에서 22명의 남자들만 그린 김홍도는 신선도 또는 운상신선도(雲上神仙圖)를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서로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왜 <씨름도>가 <神仙圖>인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그림에는 21명의 신선을 주변에 그리고 그들이 중앙에 모신 중심인물인 타라여신(또는 중심 성모)과 합하여 22명으로 되어 있다.
<씨름도>에는 중앙에 두 명의 선수가 음양태극처럼 중심을 잡고 있어 주변에 스무명이 배치된 것이다.
김홍도는 전통 선불도의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그림을 서민화하고 남성화하면서 태극화한 것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김홍도의 풍자성과 이미지 중첩성 등의 그의 독특한 예술성에서 특히 그렇게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김홍도의 <신선도> 그림을 보면 여자들을 포함하여 신선들이 각각의 자신의 하는 행동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씨름도>에서는 구경꾼들이 씨름하는 선수들의 용호상박 힘 겨루기의 홍샅바 청샅바의 음양의 기운에 다 함께 빠져들어 있는 단체적인 삼매경에 심취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묘한 모습을 전통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의 경지를 도입해 온 것이라고 나는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평범한 서민들이 신선들의 이미지와 연관될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신선들의 세상을 평범한 서민들로 바꾼 이미지가 <씨름도>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민풍자 그림의 대가인 김홍도 그림 가운데 '가장 서민스러운 그림'이 <씨름도>이면서 가장 '신선스러운 그림'이 <씨름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홍도의 신선도, 국보 139호
*김홍도의 운상신선도
김홍도의 씨름도의 씨름은 특히 음양 태극의 의미를 지닌다. 씨름장은 중앙의 두 씨름꾼의 음양(샅바도 청홍의 음양이다) 태극이라면 사방의 관중은 4괘의 태극을 상징한다.
그 무엇보다도 청샅바 홍샅바의 의미가 음양 태극을 구성하는 중심이라고 할 때 그 음양설의 우선적인 존재는 여성인 '음'을 앞세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성의 21도모가 남성의 '21도부'로 바뀐 것이 김홍도의 씨름장이 되는 것이다.
김홍도의 <씨름도>를 전통 '21도모((二十一度母)'의 영향으로 보는 필자의 이러한 해석은 김홍도 그림 해석에서 독특한 견해라고 자부한다.
* 티벳의 21도모 (二十一度母),
타라(度母)의 21가지 형태의 둔갑을 통하여 세상의 고통을 이긴다는 21 타라(Taras) 그림
타라 성모를 한자로 번역한 '度母'는 선도성모를 줄인 '도모(桃母)'와 그 음운상 의미상
같은 역사적 일치성을 가진다.
"度母"取义救度无量众生,急切有力。凡能忆念度母名号者,必得诸佛大加持力,能从种种的灾难恐惧中解脱,免除三有的痛苦,因度母之愿力,当世间越浊劣,则其救度之力越快速,摧灭魔军之力越强。度母是集诸佛菩萨事业、功德之本尊,在西藏及尼泊尔地区,累世以来有许多大修行者均修习此法得到共与不共的成就. http://q.sohu.com/forum/20/
2.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란 무엇인가
티벳의 경우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는 이십일다라보살(二十一多罗菩萨)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타라(Tara) 여신에게서 그 배경을 찾고자 한 배경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장경의 하나인 <圣救度佛母二十一种礼赞经>에서 이십일다라보살을 기록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救度佛母二十一种礼赞经>
救度速勇母 百秋朗月母 紫磨金色母 如来顶髻母 怛啰哞字母 释梵火天母 特啰胝发母
都哩大紧母 三宝严印母 威德欢悦母 守护众地母 顶冠月相母 如尽劫火母 手按大地母
安稳柔善母 普遍极喜母 都哩巴帝母 萨啰天海母 诸天集会母 日月广圆母 具三真实母
타라(度母)의 21가지 형태의 둔갑을 통하여 세상의 고통을 이긴다는 21 타라(Tara)가 이십일도모의 탱화라는 것이다. 타라 성모를 한자로 번역한 '度母'는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줄인 '도모(桃母)'와 그 음운상 같은 역사적 일치성을 가진다. 복숭아는 그 이미지나 모양에서 여성적 상징을 가진다.
석굴암의 십일면관음보살은 이러한 21도모에서 전이된 21다라보살에서 11면보살로 남아진 것이 아닐까.
이십일도모는 때로 이십제천(二十诸天) 또는 이십사제천존형(二十四诸天尊形)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天이 복수일 때는 여신을 의미하는 것은 서양의 gods가 여신으로 번역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여성적인 天과 母의 이십일도모상을 김홍도는 그의 <씨름도>에서 '서민 신선들'로 착안한 것이다. 이 얼마나 해학적이면서도 심오한 예술적인 착안인가. 그야말로 김홍도의 <씨름도>는 스물 두명의 신선들이 저마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신들의 경지에 심취해 있는 풍경인 것이다.
이십제천 또는 이십사제천에서 제천(诸天)이란 그리이스의 판테온의 만신전의 만신과 같은 많은 신들을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동양적인 신선들의 기본이 이십일도모였으며 거기에서 나중에 불교에서 천불상 만불상으로 변이된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시조 박혁거세 어머니 해척지모(赫居王之海尺之母)의 선도성모 해척지모를 중심으로 20도모들이 둘러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십일도모들을 불교가 굴복시켰다 하여 보살을 중심으로 21도모가 둘러 서 있는 모습의 이십일도모 그림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티벳에서는 신선도의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와 二十诸天(이십제천) 또는 천법이십일제신(天法二十一财神)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북경 법해사 벽화 이십제천
法海寺壁画二十诸天东壁:帝释天 多闻天 广目天 菩提树神 辩才天 月宫天 散脂大将 金刚密迹 炎摩罗天
http://www.fohua.net/onews1.asp?id=316
*북경 法海寺 壁画 二十诸天 法海寺二十诸天壁画西壁 大梵天 持国天 增长天 大自在天 吉祥天 日宫天 摩利支天 地天 韦驮天 娑竭罗龙天
인도의 타라(Tara) 여신을 티벳불교에서 번역된 것이 도모(度母)였다. 도모(度母)와 신라시조 신화에서 박혁거세 어머니로 나타나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도모(桃母)'는 같은 명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도모(度母)가 불교적인 의미를 강조한 표현이라면 '도모(桃母)'는 신라의 풍류 도가적인 의미를 강조한 표현일 뿐 서로 같은 '도모'인 것이다.
도모(桃母) 즉 선도성모(仙桃聖母)의 '桃'는 '어머니 타라(Tara Mother) 즉 도모(度母)를 보다 화랑의 仙道 음운에 연결시킨 결과가 '도모(桃母)'가 된 것이며 그것을 높이 칭하여 선도성모(仙桃聖母)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모에는 백도모(白度母)와 녹도모(绿度母)가 있다. 흰 태양의 여신을 상징하여 흰 색으로 칠한 선도성모상을 보면 선도성모는 백도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녹도모는 그에 비하여 바다의 미역과 연관한 고래해신에 연결된 도모로 해석할 수 있겠다.
*白度母와 绿度母 Green Tara & White Tara
"度母"取义救度无量众生,急切有力。凡能忆念度母名号者,必得诸佛大加持力,能从种种的灾难恐惧中解脱,免除三有的痛苦,因度母之愿力,当世间越浊劣,则其救度之力越快速,摧灭魔军之力越强。度母是集诸佛菩萨事业、功德之本尊,在西藏及尼泊尔地区,累世以来有许多大修行者均修习此法得到共与不共的成就. http://q.sohu.com/forum/20/topic/2123832
*녹도모(绿度母 Green Tara)
녹도모는 미역을 따던 해녀들의 고래토템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도모(度母)에는 백도모 녹도모가 더 유행했지만, 오색 도모는 각각의 권능의 특징을 지닌다.
홍도모는 세속의 욕심을 어떻게 긍휼과 사랑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만들어내는 지혜를 가르친다. 청도모(Ekakati)는 티벳의 4대 불교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닝마파의 수호신으로서 정신적 깨달음을 가져오고 행운을 발생시키며 모든 장애물을 헤쳐나가도록 하는데에 있어서 모질고 강인한 여성적 에너지를 표출해낸다.
As Red Tārā she teaches discriminating awareness about created phenomena, and how to turn raw desire into compassion and love. As Blue Tārā (Ekajati) she becomes a protector in the Nyingma lineage, who expresses a ferocious, wrathful, female energy whose invocation destroys all Dharmic obstacles and engenders good luck and swift spiritual awakening.
신라의 선도성모의 정체성은 불교와 유교의 천년 역사 동안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약화되어 있다. 나는 타라 성모(Tara Mother)를 티벳불교에서 도모(度母)로 번역한 티벳인들의 이해를 통하여 신라시대의 선도성모의 성격과 그 배경을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티벳 불교에는 도모 즉 타라가 21가지의 형태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21도모들이 각각의 색갈을 따로 가지며 에너지도 각각 21 가지로 다르다고 믿어 왔다. 타라(Tara) 성모의 둔갑된 각 형태들은 그녀의 가호를 기원하는 자들에게 최선의 도움을 베푸는 여성적인 권능을 행사한다.
Within Tibetan Buddhism, she has 21 major forms in all, each tied to a certain color and energy. And each offers some feminine attribute, of ultimate benefit to the spiritual aspirant who asks for her assistance.
*21도모 (二十一度母.
도모(度母)는 티벳 여신으로서 인도의 타라성모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티벳 자체의 토착적인 전통 대지의 여신이며 태양의 여신이기도 했다. 티벳에서 도모(度母)는 6-7세기에 그 숭배가 크게 일어났다.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다. 일반적인 도모는 붉은 색 승복을 입힌다. 숭실대 박물관의 '성모상'이라는 것은 붉은 토기로 만들어진 것은 그런 붉은 승복의 도모상일 것이다.
타라(Tara) 성모는 티벳과 중국에서 때로는 베이징 올림픽의 마스코트의 하나로 등장하기도 했던 "星星"으로 불렀는데 별신을 의미한다. 불교 등의 다른 종교의 압제로 태양신이라 하지 못하여 별신으로 대신 부른 결과가 아닐까? 여신숭배가 남성지배자들에게 밀려나면서 태양의 여신 숭배는 북두칠성 숭배로 전이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의 종교인 정화수에 물을 떠서 기원하는 것은 별이 그 정화수 사발 물에 비치어 내려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십일도모상의 둥근 원들은 그런 '사발'의 의미가 있다.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 '도모(度母)'는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서는 민간에서 각 가정의 새벽별 숭배인 정화수 신앙의 대상으로 전이되어 내려온 것라 할 수 있다. 무속에서는 지리산 선도성모를 전국 모든 무당들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도 이러한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의 중심에 선도성모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제주도 전통 무속에서 5백 자식의 중심에 선도성모(仙桃聖母)와 같은 설문대 할망이란 바로 이십일도모의 구조의 확대라 할 수 있으며, 바리데기 오구굿에서 그대로 도모(度母)의 전통이 남아져 있다고 생각한다. 씨름판으로 말하자면 수 백명 이상의 대 관중이 모이는 천하장사 씨름판으로 확대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인기를 누렸던 전통 씨름경기
*황해도 안악 3호분의 씨름도.
*대쾌도(大快圖). 여자 구경꾼들도 보인다.
혜산(蕙山) 유숙(劉淑)의 1846년(헌종 12) 작품.
씨름판에 택견도 곁들여져 있다.
신라의 선도성모는 고려시대에서도 남아 있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東神聖母'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東神聖母'와 함께 '仙桃聖母' 이름 그 자체가 고려시대 때까지 존재했다. 조선시대에도 경주의 서술산에 선도성모 또는 서술성모의 이름으로 성모사(聖母祠)까지 존재했으며 한 때 유지하지 못하다가 지난 70년대 성모사를 복원하여 두고 있을 정도이다.
<삼국유사> 권5 감통(感通) 제7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隋喜佛事)'편에는 선도성모의 명칭과 그 일화가 전해져 온다. 다만 불교적으로 포교적 의도를 가진 의미로 일연이 신라 시조모인 선도성모가 불교를 옹호한다는 선전의 의미로 사용된 면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지혜라는 비구니가 선도성모의 현몽에 따라 선도성모를 모신 신사(神祠)로 가서 성모상 밑에서 발견한 황금으로 불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 이전 신라인들의 전통 신선풍류도의 여신이었던 선도성모가 결국 불교를 지원했다는 윤색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도성모가 불교나 그 뒷 시대에 의하여 윤색 왜곡되었다 해도 우리는 '仙桃聖母'의 '도모(桃母)'의 의미를 티벳의 '도모(度母)'를 통하여 그 배경을 추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도의 타라(Tara) 성모가 티벳의 전통 성모에 습합되어 '도모(度母)'로 표현되면서 일본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3.일본어 '도우모'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도모(桃母)'에 대한 감사에서 유래
씨름은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相撲,すもう)'가 되었다. 해외에서 씨름을 보는 외국인들은 '스모'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본다. 우리는 스모가 씨름에서 건너갔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스모'가 우리의 '씨름'에서 건너간 말인 것은 "씨름 - 씨르모 -> 스모"에서처럼 "구름 - 구르모 -> 구모"에서도 보듯이 일본어의 일정한 규칙에서 드러난다.
나는 일본인들이 감사의 말 표현에서 '도우모'라는 말의 기원에서 대해서 흥미를 느낀다. 그 뜻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직도 불분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혹여 도우모 아리가도우 고자이마스(どうも ありがとう ございます)의 '도우모'가 신라의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仙桃聖母) 도모(桃母)에 감사의 의미로 '도우모 아리가도 고자이마스'의 '도우모'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그냥 줄여서 '도우모!'라고만 해도 감사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그 원뜻은 선도성모 여신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신에 대한 표현이 일상용어로 바뀐 영어의 'Oh! My God'과 유사한 의미로 말이다.
일본의 생활 용어들 중에는 그 어원이 애매하고 모호한 것들이 아주 많은 것은 한반도에서 도래한 말을 다른 한자로 윤색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일본말의 '도우모 아리가도 고자이마스'의 '도우모'가 혹여 '도모(桃母)' 또는 '도모(度母)'에서 비롯되었다는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일본의 전통 종교에서 가장 감사해야 하는 신이 그들의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선도성모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仙桃聖母)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 여신이 선도성모라는 것은 선도성모가 태양의 여신을 의미하는 동쪽의 여신 東神聖母'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테라스(天照)의 '아마'란 일본인들이 '어' 발음이 되지 않아 '어마마마'의 '어마'를 '아마'로 표현하여 '아마테라스'가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준말인 도모(桃母)에 감사하는 '도모'에서 일본인들에게 '도우모 아리가도 고자이마스'의 '도우모'가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십일도모의 도모 즉 '타라'와 관련하여 일본인들이 우리의 삼국시대에 대한 존숭한 말에이 또 있다.
일반적으로 인도의 타라(Tara)를 일본 불교에서 표현할 때는 '타라니 보사츠(陀羅薩陀)로 표현한다. 때로 우리나라에서 '타라(Tara)' 여신을 다라관음(多羅觀音)으로도 표기한다.
만다라의 한자는 '曼陀羅' 또는 '曼茶羅'로 쓴다. 진언을 의미하는 만트라(Mantra, 眞言)도 만다라와 유사한 뜻인데 이러한 '다라'에 대한 불교적 용어들은 불교 이전의 타라(Tara) 성모의 음운 '타라'에 연계성이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백제를 일본인들이 '쿠다라'로 부르는 것을 '큰 나라'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구다라'의 어원은 필자의 생각으로 도모(度母 Tara) 즉 '큰 다라(tara)' 어머니라는 의미에서 왜국의 '큰 어머니'가 백제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석한다.
<日本書記>에 나타나는 '오다라(意多郞)'와 '구다라(百濟)의 표현은 각각 작은 나라의 의미와 큰 나라의 의미가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오다라'와 '구다라'의 의미는 타라(Tara) 여신 주변의 다섯 아이들과 아홉 아이들의 차이는 아닐까?
일본이 백제보다 작은 나라라는 의미가 일본인들이 백제를 존칭하여 부르는 '구다라'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한반도 관련한 일본어에서 한자 표기는 발음기호도 아니며 원뜻과는 전혀 다른 한자로 표현할 때가 많다. '오다라'와 '구다라'는 글자 그대로 '다섯 타라 = 오다라'와 '아홉 타라 = 구다라'라는 해석이 필자의 해석이다.
일본어에서 맏아들을 '타로(太郞)'라고 하는데(둘째는 치로, 셋째는 사부로), 신라시대 화랑의 랑(郞)에서 일본인들은 '로'로 발음한다. 화랑은 본래 여성인 원화를 의미했기 때문에 타로 성모의 아들들의 숫자가 다섯이 새겨지는 급이면 '오다라(五 多郞)' 아홉이 새겨지면 구다라(九多郞)로 표현했을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일본어의 숫자 발음의 강력성 때문에 숫자 표기는 바뀌어 意多郞(오다라)로 표현하면서 발음은 그대로 우리민족의 발음 그대로 '오다라'로 남아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구다라의 경우도 백제의 '百'은 구궁수(九宮數)의 최고수인 아홉과 같은 많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백제(百濟)의 '百'을 '九'로 표현했던 것에서 타라(Tara) 성모에 대한 주변 아홉 얼굴의 의미로 그렇게 '구다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 '타라' 여신과 우리말의 '딸'
지금은 '딸'이란 그저 여아 정도의 의미이지만, 본래는 남성 지배자를 '천자(天子)'라고 표현한 것만큼 '딸'은 "땅의 딸" 즉 '따랑(太郞)'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어의 맏아들 따로-타로(太郞)은 본래 '맏딸' 즉 남성의'천자(天子)'에 해당하는 지녀(地女의 뜻이 '따랑 - 따로 - 딸'의 의미로 생각된다.
하늘천 따지 라고 할 때 '땅'은 '따'로 발음된다. 아사달처럼 달(達)로 표현되는 '땅'의 의미의 '따'이기도 하다. '따'와 '나라'를 합치면 '따라 - 타라(Tara)' 여신이 된다.
백제를 '구다라'로 부른 것은 말하자면 왜국이 백제를 그들의 '큰 어머니'나라의 의미로 '구다라'로 표현하면서 그들 나라는 성모와 그 다섯 딸들의 나라로 '오다라(다섯 딸)'로 백제는 아홉 딸들의 나라 즉 '구다라(구딸)'로 표현했을 수 있는 것이다.
타라(Tara) 성모가 티벳에서 '度母'로 번역되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어떻게 발음했을까?
나는 그 발음은 '따모'였다고 생각한다. '타라'를 '딸'로 보며 그것이 접두어가 될 때는 '따(땅)'로 되어 어머니 모(母)자를 붙여 '따모'가 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도성모(仙桃聖母)에서 선(仙)과 성(聖)이 지위적 존칭을 형용하는 것이라 할 때 도모(桃母)만이 본 명칭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자의 의미는 선도적 복숭아(桃)를 썼지만, 그 뜻은 '딸 - 땅'의 의미로서 '따 어머니' 즉 '따모'로 발음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따모(桃母 - 度母)'는 대지지모(大地之母)의 우리말인 것이다.
이러한 타라 성모에 대하여 표현된 도모(度母)의 상은 도모상(度母像)이라하고, 불교에서는 때로 도불모(度佛母)라고도 하여 그 '불상'을 도불모상(度佛母像)이라고 표현한다. 때로 도모(度母)의 이미지를 없애려 존성불모상(尊胜佛母像)이라고 변형시켜 표현하거나 길상천모상(吉祥天母像)으로도 표현한다. 땅이 없어지고 불(佛)과 천(天)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따모'의 딸 '따랑'에서 '딸'에 남아 있다.
딸의 의미가 유래된 땅(따)은 바다와 함께 해신들의 다신적인 바다의 여신상들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다라니경의 다라니(陀羅尼)는 그래서 따라(陀羅)에 비구니 여성을 뜻하는 니(尼)가 붙어 '딸'의 불교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십일도모 중심에 도모상 대신에 보살상을 그리거나 수염까지 배치하여 부처상으로 바꾸기도 하고 그 대좌로 물에서 솟은 연꽃을 그리면서 바다를 그린다. 그것은 본래 바다에서 솟은 고래해신의 도모(度母) 여신에서 변이된 종교적 표현이라 하겠다.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미역이미지의 신선의 옷을 포함한 바다 고래 해신 '해척지모'를 중심한 21도모들이 묘사되어 있다.
불교문화에서 천불상 만불상의 배경은 이러한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에서 그 기본 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겠다.그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는 해척지모(海尺之母)의 고래토템 즉 용왕신앙에서 기원한 것을 불교적으로 제어 통합시킨 의미로 그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글검색에서 '이십일도모'라고 입력하여 검색하면 정보가 전무하다. 그러나 '二十一度母'로 입력하면 다양한 자료들이 나오는 것은 중국과 일본에는 불교 이전 문화들과 함께 포함된 이십일도모 자료들이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십일도모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쓴 한국사람은 필자 외에는 별로 없어 보인다.
세계최고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다라니경의 '陀羅尼'란 말은 타라(Tara) 여신에서 비구니의 니(尼)가 붙은 여신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의보륜왕다라니(如意寶輪王陀羅尼)> 그림을 보면 이십일도모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중앙에는 보살상으로 대치하고 수염도 그려넣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모(度母)여신을 고로 바꾼 것이다.
*여의보륜왕다라니(如意寶輪王陀羅尼)
중앙에 도모도모(度母)여신을 부처로 바꾸어 수염까지 그려넣고 있다.
동남아의 불교에서 불교 이전의 신상들이 남아 있고 일본에서도 신라의 神國의 道를 이어받은 신도(神道)의 영향으로 여러 여신상들이 남아 있는 반면에 한국 불교 전통에서는 불교 이전 신상들이 거의 사라진 것은 중국의 사대주의 문화의 이면에 우리민족의 해신신앙 특히 고래토템을 중심한 무속전통을 죽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유교는 '부자유친'으로 상징되는 남성중심의 지배구조를 강조한 문화다. 음양신선도는 모계유친의 음을 앞세우는 여신숭배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는 여신숭배 구조를 가지는 것에서 김홍도는 유교적으로 남성화시킨 것이 그의 <씨름도>로 표현한 것이다. 이십일도모는 말하자면 '딸이 한 첩(20)'만큼 많다는 딸부자 여신이라는 의미가 된다.
21도모신상(二十一度母)은 결국 용궁(龍宮) 즉 고래궁인 경궁(鯨宮)의 고래여신 용녀신앙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런 바다의 여신들의 신선도를 김홍도는 조선시대 유교문화에 맞추어 남성화시켰을 것이고 서민화 의미를 담고자 했을 것이다.
바다에서 암수 고래 두 마리가 엉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의 음과 양이 땅을 의미하는 모래판에서 청샅바(음)와 홍샅바(양)가 서로 엉켜 승자와 패자 즉 '자웅'을 가리는 것인데 그 자웅을 가린다고 할 때의 자웅(雌雄)이 암컷과 수컷을 가린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암컷 자(雌)를 앞세워 자웅(雌雄)을 가린다고 하는 것이 흥미로운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터진다"는 말은 두 씨름 선수가 자웅을 겨루는 가운데 심판의 왜소함을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처럼 씨름판을 매년 이틀씩 거대 씨름판에서 수백 경기를 한 오년쯤 보면서 일천 번쯤 경기를 중계 해설하다보면 씨름장의 모든 세밀한 기운에서 음양신선도의 자웅(雌雄)을 가리는 그 자웅(雌雄)의 의미가 청샅바 홍샅바를 넘어 주변의 구경꾼들이 이십일도모에서 오백도모 천도모 만도모에 이어진다고 느끼게 된다.
일본어에서 친구를 '도모타치'라고 하는데 우리말 '동무'에서 '도모'가 유래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21도모들은 저마다 '동무'가 아니었겠는가. 이십일도모 중심의 신상에 대해서는 동무가 '도우모'가 되어 감사의 말로 도모끼리는 서로 '동무'가 되어 '도모타치'의 '도모'가 되었을 것이다.
김홍도의 <씨름도>에서 구경꾼들을 보면 모두가 '동무 신선들'처럼 보이는 것은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다. 김홍도는 씨름판에서 신선들을 보았으며 결국 그는 '씨름판의 신선도'를 그린 것이다.
남자들만 씨름하는 <씨름도>에서 20명의 구경꾼과 두명의 선수가 음양으로 태극 위치에서 씨름하는 구도로 그린 것은 김홍도시대의 남성적 성리학적 시대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신불도의 귀족적인 신선도에서 서민적인 사람들로 대치한 면도 가지고 있는 그림이 김홍도의 <씨름도>를 그린 것은 그가 신선도를 그리면서 그와같은 서민들의 풍속화에 재해석하고자 하는 구상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씨름도>를 그리면서 중앙의 두 명의 씨름선수들을 음양의 태극으로 주변 구경꾼들을 네 그룹으로 나눈 것은 태극(太極)과 그 사괘(四卦)로서 김홍도시대의 유교문화의 성리학을 배경한 서민들의 풍속에 맞춘 새로운 '신선도'를 그리고자 의도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태극(태극(太極)이 무엇인가? 큰 딸고 큰 '아딸'(아들: 딸에서 유래한 부속어 의미였다)이 서로 자웅을 가리는 것이다. 본래는 딸이 이기는 것이 음양 태극의 본래의 의미가 아니었겠는가 말이다. (04/30/11 오두 김성규 odunamsa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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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미학을 걷어내면 무엇이 남을까
김홍도와 신윤복과 김준근과 정선 등의 그림에서 조선 풍속을 읽어낸 책들이 나왔습니다.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가 펴냈습니다.
<조선 풍속사 ①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 <조선 풍속사 ② 조선 사람들 풍속으로 남다>, <조선 풍속사 ③ -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강명관은 <조선 풍속사 ①> 들머리에서 "이 책을 시작으로 조선의 풍속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길이 열렸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미학의 관점에서 아름다움을 논하는 대신, "풍속화에 그려진 내용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문헌적 증거에 입각"해 할 뿐이라 했습니다.
"미술사학의 연구는 화가로서 단원의 탁월함과 빼어난 그림 기법을 해명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옛 그림을 회화사적으로만 접근하는 연구 방법은 그림의 저 풍성하고 다양한 성취를 도리어 좁히는 것이 아닐까?…… 풍속을 소상하게 알아내는 일이야말로 풍속화의 풍부한 이해에 도움이 될 터이다."
강명관은 이를테면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자기 글이) 단원의 풍속화에 대한 글이지만, 사실은 단원을 꼬투리 삼아 생각이 번지는 대로 이런저런 가지를 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같은 강명관의 가지 치기는 다양합니다. 당대 사회 단순 사실 확인에서부터 인간 관계의 사회적 배경은 지배-피지배 고락의 상반됨 따위까지이지요. 게다가 미학적 성취 운운에 가려진 풍속 자체의 재확인도 더해진답니다.
단순 사실 확인은 <조선 풍속사 ②>에 나오는 '엿장수'랍니다.
"김준근의 '엿 파는 아이'를 보자. 두 소년은 엿목판을 메고 있는데, 왼쪽은 판엿을 팔고, 오른쪽은 가래엿을 판다. 나는 '엿 파는 아이'를 보고 오래된 의문을 풀었다. 엿장수의 가위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이 그림을 보고 적어도 19세기 말에는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김준근은 주로 19세기 말에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은이 강명관의 호기심이 어린아이를 닮은 듯합니다. 절로 웃음이 나지 않으시는지요. ^.^
놓인 자리에 따라 즐거움과 고달픔이 달라지는 대목은, 이를테면 <조선 풍속사 ①>에 들어 있습니다.
"단원의 '타작'으로 돌아가자. 중앙에는 알곡을 떨어내는 사람이 넷 있다. 왼쪽 구석에는 떨어진 알곡을 쓸어 모으는 사람이 있고 왼쪽 위에는 볏단을 지게에 진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오른쪽 고깔을 쓰고 볏단을 묶는 사람과 그 위쪽 맨상투 바람의 사내는 표정이 밝다. 위쪽 지게에 볏가리를 지고 오는 사내 역시 밝은 표정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왼쪽 볏단을 치켜든 납작코 사내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오른쪽 위에는) 한 사내가 볏가리 위에 돗자리를 깔고 장죽을 빨며 빈들거리는 자세로 자빠져 있다. 갓까지 젖혀 쓴 모습이 영 게으른 꼬락서니다. 시무룩한 납작코 사내와 아주 대조가 된다. 단원은 한 폭의 그림에 기쁨, 수심, 빈들거림 셋을 동시에 섞어놓은 것이다."
해설을 덧붙입니다. "타작하는 농민들의 미묘한 표정을 확연히 드러내어 수확의 기쁨과 수탈의 슬픔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이어서는 자기 생각을 덧붙입니다. "'타작'을 볼 때마다 누워 있는 사내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땅은 원래 경작하는 것이고, 경작하는 사람만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양반은, 마름은 경작하지 않고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정말 해괴한 일이 아닌가."
말미에 갈무리하기는 이렇습니다. "소농이야말로 인류를 이제까지 살려온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의 농민과 농촌은 어떻게 되었는가." 근대 조선과 현대 한국이 이로써 이어져 버렸습니다.
진경산수에서, 가려진 신분 관계를 읽어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엄청난 힘입니다.
"정선의 '백천교'(외금강 유점사 아래에 있는 다리)를 보자. 우거진 솔숲, 작은 폭포 계곡물이 있다. 말이 있고 말구종이 있다. 가운데는 갓 쓴 양반들이 서거나 앉아 있다. 모두 풍경에 취해 있는 것이다."
강명관의 눈길은 당연히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왼쪽을 보면, 흰 모자를 쓴 사람들이 남여(탈것)를 내려놓고 쉬고 있다. 모자를 벗은 사람은 머리털이 없다. 다름 아닌 금강산에 있는 절의 스님들인 것이다."
이어서 여러 양반들의 산에서 노닌 기록을 들춰내 보여준 다음에 또 달아 붙입니다.
"양반들은 제 몸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인간들이다. 산수가 좋은 곳으로 가고 싶지만, 점잖은 체면에 땀을 비처럼 쏟아가며 헐떡거리면서 산을 오르는 것은 체신머리 없는 짓이다."
"양반은 걷지 않는다. 걷는 양반은 부릴 위세가 없는 양반이다. 금강산을 찾으면 으레 산 속 중들을 닦달한다. 걸어서 올라가기도 힘든 산길을 양반을 메고 올라가니, 얼마나 고되었을까?"
"우리는 조선 회화를 보면서 진경산수라, 사실주의라, 국토산하의 아름다움이라 찬양해 마지 않는다. 하지만 그 찬사를 낳은 그림과 시와 산문의 그 이면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지배 그리고 지배를 당한 천한 것들의 노동과 땀이 배어 있다. 만약 진경산수와 국토산하의 아름다움이란 이야기를 당시 가마꾼들이 듣는다면 무어라 할 것인가. 정말 우습다."
미학적 성취를 뒤로 물린 '사뭇 수준 낮은 의문'에 대한 답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신윤복을 다룬 <조선 풍속사 ③>이 대표격입니다.
"혜원의 풍속화에 대한 논고는, 언제나 모든 사람이 다 알기에 생략해도 무방하다는 듯한 어조로 에로티시즘·기방·기생·유흥 등을 그린 것이라고 아주 간단히 언급한 뒤, 구도와 배치, 생채가 이룩한 미적 성취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나 도대체 궁금한 것은 '풍속화라고 하는데, 저 그림에는 무슨 풍속이 담겨 있다는 말인가?' 또는 '그림 속 인물들이 벌이는 행각과 복색이 각각 다른데, 과연 이들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따위랍니다.
강명관은 이런 방식으로 '어떤 사회 배경 아래에서 그림이 그려졌는지, 어떤 사회적 변화가 그런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는지'를,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합니다. 자세 내용이 궁금하시거들랑 ^^* 한 번 사서 보세요. 하하.
<조선 풍속사 ①>(2만1000원)과 <조선 풍속사 ②>(1만9000원)는 이번이 완전 초판이랍니다. 하지만 <조선 풍속사 ③>(1만8000원)은 2001년에 펴낸 것을 크게 뜯어고친 '개정' 초판이라 합니다
첫댓글 단원 김홍도님은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화가입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