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하셨던 날에
주일날 아침이었다. 삼월 꽃샘추위가 한창이었다. 먼지를 먹은 바람이 꼬리를 휘젓는 바람에 하늘은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아버님 성당에 안 가세요?"
큰며느리 권미혜는 거실에서 청소를 하며 안방에서 꼼짝 않고 있는 시아버지가 시간을 잊고 계시나 해서 소리쳤다.
"글쎄다" 시아버지 요셉(고종성)은 말끝을 흐리고 만다. 아내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성당엘 못 가더라도 아내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며느리 보기엔 별 차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어서
"괜찮겠죠. 다녀오세요."
하루라도 성당에 안가면 불안해하는 시아버지를 생각해 다시 말해보아도
"응"
대답만 한 채 일어날 생각은 않고 아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며느리는 더 이상 시아버지를 채근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차복순 마리아)가 병든 지 벌써 십여년이 넘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동안 고요셉은 참으로 지성이었다. 어떤 때에 남자의 사랑은 더 순수해지는 것 같다. 그때 차마리아의 나이 쉰아홉이었다. 아홉수가 어렵다더니 중풍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충청도 청주가 고향이어서 그곳을 떠날 줄 모르다가 가구업을 하는 큰아들(고만수) 사업관계로 경기도 파주에 있는 금촌으로 이사온 지 얼마 안되어서다. 좋다는 약을 다 써봐도 별 효험이 없었다. 중풍에 특효약이 없다는 것은 뻔한 노릇이지만 환자 본인이나 남편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약을 잘 찾지 못해서 병이 낫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집 근처에 암자라고도 하는 절 비슷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의 보살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부처님께 불공을 정성껏 드리고 부적을 써서 몸에 간직하고 집에도 부치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환자에겐 나을 수 있다는 말 한마디면 안 통하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남편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얼른 대답을 안하자 "내가 이렇게 누워서 꼼짝 못하다 죽기를 바래요?" 화를 내며 원망을 해댔다.
괴로워진 그는 자식들을 불러 그 일을 의논했으나 아무도 찬성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차라리 병원에 가시는 게 나아요."
그렇게 대놓고 말들을 해도 지금까지 불교신자로 살아온 환자는 부적의 효력을 무시하려 하지 않았다. 고씨는 부부의 소중함을 전에는 그렇게 몰랐었다. 이제 늙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고 더군다나 병들어 사족도 잘 못쓰고 죽어 가는 몸이건만 비로소 한 몸임을 절감하고 애틋한 것인가.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다. 진작에 그것을 깨달았더라면 좀더 잘해 주었을 것을. 인생이란 참으로 깨달으면 이미 늦은 것인가. 그래서도 인생의 허망함을 또 한번 절감한다.
이젠 어떻게도 해 볼 수 없단 말인가. 허망의 그늘 속에서도 희망에 매달리는 것이 마지막 꿈인지도 모른다.
무엇인들 못해본단 말인가. 아내의 소원이라면 이제 인생의 마지막 길인지도 모르는데…
고씨는 자식들에게 부탁하지 않고 부적을 사서 부치고 경도 읽고 푸닥거리도 하고 했다. 그러나 점점 갈수록 커져서 나중엔 굿까지 해야 낫는다고 했다. 수백만원 드는 궂은 결국은 못해줬지만 소소한 정성은 다했다. 그래도 병의 차도는 하나도 없었다. 보고 참다 못한 며느리 미혜가 하루는
"그런 것 다 해봐야 소용없잖아요. 어머니!
차라리 성당에 나가보세요."
별러오던 말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했다.
이웃에 사는 성당 반장이 가끔 찾아와서 돈 버려가면서 그런거 하지 말고 성당에 다녀보라고 권면해 왔었던 것이다.
지나다보면 깨끗하고 엄숙한 성당이 그녀 마음에도 괜찮아 보였었다.
"성당에 다니면 돈 같은거 안들이고 기도만 열심히 해도 하느님께서 병을 낫게도 해주세요. 하느님은 정말 전능하신 분이니까요."
시골 여인네의 수줍은 듯 꾸밈없는 말이 진솔하게 들렸었던 것이다.
그들이 솔깃해 하자 반장은 수녀님을 모시고 왔다.
수녀님의 설명은 그럴 듯 했다. 아니 놀라웠다. 이 세상이 생기게된 이유, 만든 분, 그 대단한 분 그 전능하신 분이 참 신이시다. 그분을 믿어야 한다. 그분을 믿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분이시다. 그분을 믿으면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고 부활해 영원히 산다. 그들은 하느님을 믿기로 했다.
신부님이 수녀님과 반장, 여러 신자를 데리고 와서 기도를 하고 벽에 붙어있는 많은 부적들을 말끔히 떼어 버렸다.
그후부터 남편의 부축을 받고 부부가 성당엘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곧 입교하지 못하고 한 일년간 그냥 미사만 다녔다.
수녀님의 깊은 보살핌으로 열심히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차츰 용기를 얻어 마침내 교리반에 입교하게 됐다. 89년 3월에 부부는 함께 세례를 받았다. 남편 고종성씨는 요셉, 부인 차복순씨는 마리아란 이름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 세례를 받고 나자 그들은 신앙 생활을 좀더 깊게 할 수 있었고 재미도 있고 기뻤다. 건강도 차츰 회복되어 갔다. 하느님의 은총은 한없이 커서 드디어 자유롭게 나들이까지 할 수 있도록 변화됐다. 6,7년을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았다.
그후 장남 고만수의 사업관계로 또다시 금촌에서 서울 방이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신천동 성당 관할구역이었다. 그때 이충호 아오스딩 연령회장은 주보에 나오는 전임 교우란에서 요셉과 마리아의 주소를 보고 방문을 하였다. 두 노부부는 낯선 곳에서 같은 반에 열심한 신자를 만나자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
이 아오스딩 연령회장은 레지오 단원이기도 하여서 활동으로 부부에게 단체를 소개해주고 가입시켰다. 부부는 전처럼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요셉은 남자 구역모임인 하상회에 들어 반모임도 하고 연령회 신우회에도 가입하여 매주 토요일이면 주보도 접고 성당에 적극 협조하였다. 초상이 나면 연도도 다니고 일년에 한번씩 하는 봄철 수련대회, 가을 성지순례에도 부부가 빠짐없이 다녀 오랜 신앙 생활을 해오던 신자들에게서까지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할머니들이 신앙 좋은 잉꼬부부라고 놀릴 적마다 요셉과 마리아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도 곧 시무룩해지곤 했다.
"그러면 뭐해요. 자식들이 성당에 안 다니는데. 나는 자식들 모두 다함께 다니는 집이 부럽네요."
그들과 늘 가까이하는 연령회장은 부부의 마음을 넉넉히 헤아릴 수 있었다.
그 가정과 사귐이 잦아지게 되자 연령회장은 레지오 단원의 활동으로 큰아들과 작은아들을 권면할 마음을 굳히고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바쁜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개의 외인들이 그렇듯이 그는 웃으며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시는 것을 보면 참 좋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너무 바빠서요. 차차 믿어야지요."
하고 번번히 점잖게 물리치는 것이었다.
고요셉 부부의 생일때 이 아오스딩 연령회장은 초대를 받고 찾아갔다. 멀리 살아서 도무지 볼 수 없었던 차남까지 마침 와 있어서 만날 수 있었다. 차남은 한국일보 전산부에 다니는데 더 말할 수 없이 시간이 없다고 하였다. 더군다나 그의 아내는 이미 개신교에 다닌지 오래되어 달리 생각할 염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 좋으시다는 대로 다니시고 자기들은 자기들 좋은 대로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개신교에 다녀서 안 된다는 말은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안 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연령회장 아오스딩은 마음이 답답했다. 믿는 사람들도 흔히 그렇게 말하는데 종교란 정말 시간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종교란 인간 삶의 목적을 놓고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일텐데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코앞에 현실(먹고사는 문제)만 생각하고 못 깨닫는데 어쩔 것인가.
어스름 무렵 어느 날이었다. 남편인 요셉이 나가고 무료해지자 마리아 할머니는 이웃집에 마실을 갔다. 계단을 오르다 그만 넘어져 굴러 떨어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풍납동 중앙병원에 입원하여 뇌수술까지 받았으나 의식이 좀처럼 깨어나지 않고 오랜만에 깨어나서도 병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3개월이 넘도록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 천만원 가까운 입원비도 힘에 겨웠으나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많은 신자들이 와서 기도를 해주는 것이 그래도 좀 위안이 되었다. 더 나을 가망성이 없다고 퇴원하라는 병원의 지시에 따라 집에서 치료를 하며 지내던 중이었다.
"네 어머니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모두 오라고 전화해라."
시아버지가 떨면서 다급해하는 소리에 며느리 미혜는 걸래를 내던지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시아버지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있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정말 심상치 않았다.
며느리는 다시 거실로 뛰어나와 시동생네, 시누이네로 전화를 했다.
갑자기 이상하게 소란해지는 소리에 남편과 아이들이 할머니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녀가 전화를 다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시어머니는 임종을 하였다.
시계를 보니 10시 45분이었다.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시아버지도 남편도 뒤이어 들어오는 식구들도 모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시어머니와 절친한 성당에 다니는 옆집 할머니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하니 성당에 가셨다고 했다. 미사시간인 것이다. '어떻게 한다.' 한참 머리를 짜니 방안 시어머니 문갑 위에 주보가 놓인 것이 보였다. 그녀는 얼른 주보를 들고 나가서 성당 사무실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어 초상이 났는데 연령회장님께 알려달라고 했다.
집안이 협소하여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식을 치뤄야 할텐데 입원했던 중앙 병원은 거리도 멀거니와 환절기에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입원실에서 계속 호흡기를 끼고 영안실이 비기를 기다리던 환자들을 보았던 터라 퇴원까지 한 자기네는 영안실을 차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그곳은 경비도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방이동에서 가까운 문정동에 있는 경찰병원을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어서 전화를 해보았다. 빈자리가 있다기에 그곳으로 우선 시신을 모시기로 했다.
영안실에서 시신을 모시고 좀 있으니까 연령회장 이 아오스딩이 많은 연령회원들을 데리고 금방 나타났다. 천주교식으로 장례할 것인가를 묻고 그렇게 하겠다 하자 참으로 모든 준비를 다해주었다. 상주들은 아주 편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시부모님이 열심하여 집에서 반상회도 하고 해서 천주교가 별로 낯설지 않고 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몰랐었던 것이다. 그저 한 서너 분이 오셔서 한시간 정도 기도나 해주고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나 놀랍다고 말할 수 밖에 다른 말이 없었다.
주일날 미사가 끝나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와서 연도를 해주고 가는데 한이 없었다. 밤중에도 그 이튿날도.
나중에 너무 놀라워 대충 세어보기 시작했는데 육칠백명도 더 다녀간 것 같았다. 마치 기도의 군대라고나 할까. 기도의 천사들이 줄지어 들어와서 꽉꽉 찬 방안에서 노래하고 나가는데 놀랍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남 3녀의 5남매 상주들이 있어서 상가가 외로워서는 결코 아니다. 그 많은 형제 가족들로 채워질 수 없는 다른 이상한 신비로운 분위기에 그들은 떠밀려 가며 감격했던 것이다.
성당사람은 사실 몇 사람밖에 알지도 못하는데 시어머니는 삼일동안 수많은 사람의 기도 노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마치 기도의 노래가 향처럼 피어오르는 흰 국화꽃덩이 속에 묻혀서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덩달아 그들도 노래와 기도가 향내처럼 피어오르는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저절로 천당에 올라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장례 미사를 하러 성당에 들어서는데 그 장엄한 분위기에 더 마음이 휘말렸다. 이상하게 엄숙해지며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높은 천장에서 반향해 울려퍼지는 곱고도 슬픈 성가소리는 여지껏 한번도 듣지 못했던 천상의 노래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슬픈 죽음이 아니라, 죽음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며느리라 그런 생각을 했을거라고 할지 모르지만 성당 안의 분위기는 정말 그랬다.
산에서의 슬픔과 외로움 그것은 상주들이 아니더라도 장지에 간 사람은 모두 느끼는 일이다.
어제까지 살아서 숨쉬던 사람을 땅속에 묻고 발로 밟는 것은 인생의 허망함을 역력히 보게 하는 슬픈 삶의 마지막 현장인 것이다. 그 삶의 허망함을 그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부활로 바꿔버리는 신비. 그 희망의 절정에서 사람들은 위로와 뜨거운 감격의 슬픔을 맛본다. 연령회원들은 희망의 클라이막스를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 나는 부활이요 -
집에 돌아와 영정을 모셔놓고 돌아갈 때까지 마지막까지 예식에 정성스럽고 진실한 태도를 다하는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삼우가 왔다.
연도 할 몇 사람의 연령회원들과 가족들만의 단촐한 시간이었다.
구름 떠도는 높은 하늘과 솔향 그윽한 푸른 나뭇잎 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땅바닥에 앉아 연도를 하고 준비해 가지고 간 많은 음식을 나눠 먹으면 사랑하던 사람을 멀리 여행 보낸 후 호젓한 시간을 맞은 것 같은 쓸쓸하고 다정한 분위기가 된다.
"이번에 성당 분들이 너무나 많이 와서 기도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우리도 식구가 모두 성당에 다녔으면 좋겠어요."
큰며느리 미혜가 다 먹어서 비는 듯한 그릇에 반찬을 더 놔주며 의논이라기보다 자기 소감을 말했다.
"대단히 놀랬어요."
"장엄한 장례식이었어요. 정말."
"참, 감격스럽더라구요."
모두 한마디씩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탄의 표현을 했다.
"정말 놀라운데 혹시 인해전술 아니셨어요."
역시 개신교 집사라는 작은며느리가 악의 없이 애교스럽게 꼬집어본다.
"인해전술이라니요?
마침 주일날 미사시간에 돌아가셔서 많은 신자들이 모인 때라 한번 공지를 하니까 그렇게 간거죠. 우리는 초상이 났다고 공지하면 사람들이 그냥 알아서 그렇게들 갑니다.”
말하며 머쓱해하는 이아오스딩 연령회장을 보고 분위기가 잘못될까봐 조금 걱정스러워진 큰아들 고만수가
"자, 우리 모두 이번 기회에 성당에 다니도록 하자."
힘찬 소리로 아내의 말에 찬동하며 마무리하려 했다.
"좋아요."
모두들 어린애처럼 박수를 치며 얼굴이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주들이 각기 자기 자리에서 옆에 있는 연령회장과 회원들에게 악수하며 웃는 소리가 산에 메아리쳤다.
지금. 큰아들 고만수와 큰며느리 권미혜는 열심히 교리중이고 곧 세례를 받게 될 것이며 작은 딸 부부는 이미 세례를 받았고 막내딸 부부는 리비아에서 거주하면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