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암면 산해리山海里 유래
진보와 연접하여 있으며 안동시의 임동면으로 넘어 가는 고개가 있다. 반변천과 동산천의 두 냇물이 합하여 호수와 같은 큰 내를 이루었으니 산속의 바다를 연상케 하므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 골짜기에는 옛 성터와 절터가 남아 있다.본래 진보현 북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문해동 · 춘감동 · 신천동 · 주파동 · 삼산동의 일부와 안동군 임동면의 동산리를 합하여 영양군 입암면에 들게 한다. 동산(東山)과 문해(汶海)의 이름을 따사 산해라고 한 것이다.
[마을의 특징]
산해동에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남경대( · 景臺)와 오층모전석탑 그리고 봉람서원과 절터가 있다. 남경대는 문해 앞 반변천냇가 언덕에 있는데 높이 20 미터가 되며 그 아래 소가 있다. 권태시(權泰時) 선생이 이 위에다 정자를 지었으니 경치가 아름다워 붙인 이름이다. 오층모전석탑은 봉감탑이라고도 하는데 봉감사(鳳鑑寺) 터에 남아 있는 벽돌로 된 전석탑으로서 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인 국보 제 187호(1977년)인데 전체의 높이가 11.30 미터요, 기단(基壇)의 폭이 3.34 미터, 높이가 2.04 미터로 앞면 아랫 부분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섬세하게 짜 만든 문주(門柱)에 미석(眉石)을 입힌 불감(佛龕)이 설치되어 있다.
봉람서원(鳳鑑書院)은 본래 병옥에 있었던 옥동서원이었는데 봉감에 이건하였다. 조선조 선조 32년(1599년)에 세워서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을 배향하였다.
한편 절터는 영등산(嶺登山)의 굴 아래에 있는데 이 절이 번창하였으나 이 절의 중이 사월 초파일에 개를 잡아 먹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금강산에 있는 스님이 앞산에 혈(穴)을 자르고 뒷산을 칼로 찔러서 물이 쏟아져 나오게 하여 이 절을 물에 떠 내려 가게 해서 지금은 절의 터만 남아 전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거래마ㆍ거레마
논뚝마 서쪽에 있는 마을로 명상골 물과 동산령 물이 합쳐지는 곳이다. 상인과의 거래가 이루어진 곳이라 하여 거래마라 부르게 되었다(김술이(73) 제보). 물이 합하는 곳에 이루어진 마을임을 떠 올리면 냇물을 이르는 '걸'에서 비롯한 이름으로 보인다.
*동산태ㆍ동산(東山)ㆍ동산동(東山洞)ㆍ동산리(東山里)
문해(汶海) 서쪽 긴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안동부 임동현에 속했을 때 동산령 너머 마을이라 하여 동산동으로 불리어졌다. 윗마을을 동산태, 아랫마을을 아랫동산태라고 한다(김일한(65) 제보).
*무내ㆍ문내ㆍ문해(汶海)ㆍ문해동(汶海洞)
산해동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반변천과 동산천 두 냇물이 합쳐지는 곳이기 때문에 물이 많아 문해라 하였다(김광태(67) 제보). 무내를 한자로 뒤쳐 적은 것이 문해인데 무내는 물내를 속내로 한다. 드러내려는 알맹이는 물이다.
*배두들ㆍ주파(舟坡)ㆍ주파동(舟坡洞)
문해(汶海) 북서쪽 둔덕에 있는 마을이다. 안동 김씨(安東金氏)가 약 200년 전에 이 마을을 개척하여 마을 모양이 배를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를 가득 차면 가라앉는다해서 살림이 일면 사람들이 이 곳을 떠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남진희(60) 제보). 주파(舟坡)는 배두들을 한자로 뒤쳐서 적은 형이다.
*아랫동산ㆍ아랫동산태ㆍ하동산(下東山)
동산리 아래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아랫동산이라 불리어지며 그 아래로는 문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 마을은 주파와 동산동 그리고 문해를 잇는 세 갈래 길이 있으며 현재 산해 3리이다(권오덕(64) 제보).
*논뚝마
동산동에서 서쪽에서 약 1킬로 떨어진 산밑 양지 바른 곳에 위치한 마을로서 마을 앞에 작은 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므로 논뚝마로 불리어지며 동산동과 명산동의 중간 지점에 있다(권영소(58) 제보).
*면상골ㆍ명상곡(鳴尙谷)ㆍ명상동(鳴尙洞)마을 뒷산에 사람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명상 바위에서 온 이름이라고도 하나 그 바위의 흔적이 없다. 또 일설에는 이 골짜기의 형국이 새가 입을 벌리고 곡식을 먹는 꼴이라고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천풍길(58) 제보).
*동산령(東山嶺)
동산동에서 서쪽으로 2 킬로 지점에 있는 령(嶺)이다. 서쪽은 안동시 임동면인데, 옛날에는 이 동산령을 넘어서 안동으로 왕래하였으나 지금은 그 길이 없어졌으며 사람도 살지 않는다(권오덕(64) 제보).
*절골ㆍ엿골ㆍ옛골ㆍ사곡(寺谷)ㆍ성곡동(城谷洞)
논뚝마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절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절이 있었던 곳이어서 절골이라 하고 엿골ㆍ옛골로도 불리어지고 옛 절터가 남아 있다(김규백(61) 제보). 사곡은 절골을 한자로 뒤쳐서 적은 형이다.
*옛장터ㆍ구장터ㆍ구시장(舊市場)
진보 땅과 이어져 있는 마을로 1958년 신구동으로 시장이 옮겨 가기 전에 시장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옛장터라 부른다(신태락(76) 제보). 구시장은 옛장터를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다.
*진보땅ㆍ진보촌(眞寶村)
뒷개 동쪽에 있는 땅이다. 옛날 영양현과 진보현의 경계가 되었는데 이 곳은 진보현의 북면에 속했기 때문에 진보땅이라 불렀다. 현재는 산해 1리가 되었다(신태락(76) 제보).
*뒷개ㆍ후평(後坪)
안동 권씨(安東權氏)가 약 400년 전에 처음 정착하여, 봉감 뒷산을 후산이라 하고 마을 뒤의 너른 들을 후평이라 했다. 그 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뒷개라 고쳐 불렀다(이창섭(61) 제보).
*봉가미ㆍ봉감(鳳鑑ㆍ鳳甘)ㆍ봉감동(鳳鑑洞ㆍ鳳甘洞)ㆍ춘감동(春甘洞)
송간공(松澗公) 이정회(李廷檜) 선생이 약 500년 전에 이 곳에 서원을 창건하여 옥동서원(玉洞書院)이라 하였으나 그 후 봉람서원이라 개칭되었다. 지금은 봉람서원이 소실되고 논으로 되었는데 그 주춧돌과 기왓장만이 이따금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봉감에는 국보 제 187호인 오층모전석탑이 있다(김경복(78) 제보).
[참고문헌;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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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20, 197) 입암면 산해리(山海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괴, 빈다, 맨치러, 모데, 그랑, 따닥따닥, 쫘, 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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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山海)는 19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남쪼구로는 진보군(북면 삼산)캉
서쪼구로는 안동군(임동면 산해4리)캉
이사져 있었니더.
글코, 반변천캉 동산천이 엄체지는 데로
그랑물은 억수로 많이 괴(고여) 가꼬
호수가 산속바다 맨치러 빈다 케가
산해(山海)라 카기도 했었꼬
산(山)이 바다(海) 가꺼러
마카다 한테 모데 있따꼬 케서
산해(山海)라꼬 켔따 카기도 하니더.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는
안동군 땅이었떤 동산(東山)의 산(山)캉
진보군(북면) 땅이었떤 문해(汶海)의
해(海)를 따가 산해(山海)라 카면서
문해, 춘감, 신천, 주파, 삼산 일부캉
안동(임동면)의 동산(현재 산해3ㆍ4리)를
포함해서 입암면 산해라 카고
영양군(입암면)으로 편입되었니더.
(동산ㆍ동산태)
산해4리 중심지 마실로
문해(汶海) 서쪼구로 나가 있는
질따란 골짝 마실이시더.
과거 안동군에 속했 있을때
안동 기준으로 볼때는
동쪽산 때백 너머가 있는 데라꼬
동산(東山)이라 카게 된니더.
(문해ㆍ무내ㆍ문내)
산해3리문해경로당이 있는데로
반변천캉 동산천 두 그랑이 엄체지는 데시더.
물이 억수로 많따꼬 문해(汶海)라 카기도 했꼬.
산이 바다 가꺼러 디게 많이 모데 있따꼬
문해(汶海)라 카기도 하니더.
문해(汶海)는
무내(문내.물내)를 한자로 쓴거시더.
(거래마ㆍ거레마)
논뚝마 서쪼구에 있꼬
명상골 그랑캉, 동산령 그랑이 엄체지는 데로
과거 안동쪽 상인들캉 영양쪽 상인들이
거래를 했던 데라꼬 거래마라 카기도 켔꼬,
양짝으로 그랑을끼고 있는 마실이라꼬
거레마(그랑 마실) 라꼬도 카니더.
(배두들ㆍ주파ㆍ주파동)
산해3리 중심지 마실로
마을회관이 있는데시더.
문해(汶海) 북서쪼구쪽에 있꼬
마실 모양은 배 형국이면서 언덕우에
있따고 주파(舟坡) 라꼬 카니더.
그케서 물이차면 배가 가라 앉듯
살림이 뿔어나면 금방 망하게 된다꼬
마카 여길 떠난다꼬 카니더.
주파(舟坡)는 배두들을 한자로 쓴거시더.
(아랫동산ㆍ아랫동산태ㆍ하동산)
산해 3리 노인회관이 있는 마실이시더.
동산 알게(아래) 있따고 아랫동산이라
카기도 하고
주파(舟坡)캉 동산(東山)캉 문해(汶海)을
이샀는 갈래길이 있니더.
(논뚝마)
동산(東山)서 서쪼구로 1킬로 떨가져 있꼬
댁낄로 양지 바른 마실이시더.
마실에 쪼메한 논들이
따닥따닥 붙어져 있따꼬 논뚝마라 카니더.
(면상골ㆍ명상곡ㆍ명상동)
옛날 마실 뒤산에 사람 맹커러 생긴
방구가 있따꼬 면상곡(面像谷)이라 카다
새가 입을 벌리고 곡식을 쫘서 먹는
형국이 맞따꼬
명상곡(鳴尙谷)이라 부르게 된니더.
(동산령)
동산서 서쪼구로 2킬로 쯤에 있는
만디(嶺)이름 이시더.
이 고개 서쪼구는 안동(임동)인데
옛날에는 여기 동산령(東山嶺)을 넘어가
안동으로 걸어 댕겼으나
그 길은 지금 달부 없어 졌뿌렌니더.
(절골ㆍ엿골ㆍ옛골ㆍ사곡ㆍ성곡)
논뚝마 북쪼구 골짝이에 있는 마실이시더.
과거에 절이 있었따꼬 절골(寺谷)이라
카다가 옛꼴, 엿꼴로도 바까 불렀니더.
그후 여기 골짜기에 성터가 있었떤 데라꼬
성곡(城谷)이 카기도 했니더.
사곡(寺谷)은 절골을 한자로 쓴거시더.
(옛장터ㆍ구장터ㆍ구시장)
과거 진보현캉 이까져 있는 마실로
입암파출소가 있는 근바시더.
1958년 지금 입암면 중심지로 시장이
옴겨 지면서 부터 옛장터라 켔니더.
구시장(舊市場)은 옛장터를 한자로 쓴거시더.
(봉가미ㆍ봉감ㆍ춘감동)
봉감탑이 있는 근바의 마실이시더.
옛날 옥동서원(玉洞書院)이 있었꼬
그 후 봉감서원(鳳鑑書院)이라 카면서
마실 이름또 봉감이라 카게된니더.
(뒷개ㆍ후평)
봉감 뒷산이라꼬 후산(後山)이라 카고
마실 뒤 널따란 뜰을 보고는
후평(後坪)이라 카니더.
후평(後坪)은 뒷개를 한자로 쓴거시더.
(진보땅ㆍ진보촌)
뒷개 동쪼구에 있꼬
과거에는 영양현(남면 산해)캉 진보현
경계마실(고구령)로
진보현(북면)에 속해 있었따꼬
진보땅(眞寶村)이라꼬 카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