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셔브롬-Ⅰ 가셔브룸-Ⅱ 브로드피크 K-2 시샤팡마 낭가파르밧 로체
에베레스트 칸첸중가 마칼루 다울다기리 마나슬루 초오유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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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068m ,위치 : 카라코람 발토로 무즈타크 가셔브룸(Gasherbrum) 산군은 콩코르디아(Concordia)에서 남동쪽으로 나아가 아브룻지 빙하에 들어서면 만나는 남가셔브롬 빙하를 말굽형으로 둘러싼 산군을 말한다. Ⅰ봉은 동쪽에 있고, 북으로 Ⅱ, Ⅲ봉. 서쪽으로 Ⅳ, Ⅴ, Ⅵ봉이 자리잡고 있다. Ⅰ봉과 Ⅱ봉의 동쪽땅은 파키스탄과 중국의 소유권 분쟁이 되고 있다. 발티어로 '아름답다'라는 'Rgasha'와 '산'이라는 'Brum'의 합성어이다. 이 산군에는 Ⅰ봉에서 Ⅵ봉까지 있는데 Ⅰ봉이 8,068m, Ⅱ봉이 8,035m, Ⅲ봉이 7,925m, Ⅳ봉이 7,980m, Ⅴ봉이 7,321m, Ⅵ봉이 7,003m이다. 이 봉우리들은 능선상의 혹처럼 늘어서 있는 것이 안고 각각 독립된 산의 자세를 가지고 있으므로 Ⅰ에서 Ⅵ까지의 일련번호가 붙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 산을 처음 오른 원정대는 스위스의 지질학자인 군터 디렌프르트가 이끄는 국제대였다. 2년 후, 세고뉴가 이끄는 프랑스 최초의 히말라야 원정대는 아브룻지 빙하 입구(4,950m)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다. 이들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남동릉을 택했다. 남동릉에서 아브룻지 빙하로 내려 뻗어있는 지릉은 2개인데, 그 하나는 1934년 디렌프르트대가 시등한 곳이고 또 하나는 그 좌편에 있는 것으로, 프랑스대는 이곳을 택했다. C6예정지인 7,069m봉을 뒤로하고 하산해야 했다. C2로 하산도중 셀파 2명이 700m 아래로 떨어졌으나 무사히 구조됐다는 기록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전에 히든피크를 겨냥했던 팀은 이 두 원정대 뿐이었다. 최초의 정상등정은 1958년, 미톨라스·클린치(N. Clinch)가 이끄는 미국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하여 미국은 8,000m 봉우리를 초등정하는 대열에 끼게 되었다. 1958년은 카라코람의 명봉이 많이 초등된 해이다. 일본대의 쵸코리사, 이태리대의 가셔브름 Ⅲ봉, 영국대의 라카포쉬 등이 초등되었다. 그러나 초등정 이후 이산은 조용해졌다.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의 여파로 입산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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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셔브룸-Ⅰ 등반루트 ▶ 남동릉 : 1958년 미국대의 초등정 루트 ▶ 북서벽 1975년 매스너와 하벨러가 2회의 고소적응 후에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했다. 8,000m봉에 있어서 최초의 알파인 스타일이었다. 베이스 캠프에서만 10명의 포터를 고용한 이들은 8,000m라고 하는 높이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해소했다. ▶ 서릉 : 1977년 유고대의 등정루트. | |
▶ 남릉 1936년에 프랑스대가 시도한 '남봉'을 경유하는 루트로서 1980년 프랑스대에 의해 등정되었다. 전진 캠프는 만들지 않고 비박을 되풀이 하면서 루트를 넓히고 부분적인 고정로프를 사용하는 일종의 세미 알파인 스타일이엇다. 남봉과 정상사이에 길게 누운 5km 정도의 플라토를 노르딕 스키로 횡단하였다. ▶ 북릉/신북벽 메스너 루트 좌측에 있으며 1982년 서독대에 의해 등정됨. 같은해 미국대가 알파인 스타일로 7,600m까지 올랐던 루트인데 서독대의 3인이 7,100m에서 비박한 후 올랐다. ▶ 남서벽 : 1983년 쿠크츠카와 쿠르티카가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 ▶ 북릉(변형) 1983년 스위대가 북릉과 북서벽의 사이를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 가셔브롬 Ⅰ봉, Ⅱ봉과 브로드피크를 올라 한 시즌 3개 봉우리 등정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 |
국외 가셔브룸-Ⅰ봉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58 미국 대장 크린치가 이끄는 미국원정대가 동면루트로 7월 5일 가셔브롬 1봉 초등정. 1975 이탈리아 메스너와 하벨라 북서벽루트로 초등정. 8천미터급 산에서의 최초의 알파인 스타일 등반 1980 프랑스 가셔브롬 1봉 남서릉루트로 알파인 스타일 등정. 1982 독일 북릉루트로 초등정. 1983 스위스 가셔브롬 1봉, 2봉, 브로드피크 알파인 스타일로 연속등정. 1985 이탈리아 북서벽 신루트 초등. 1995 멕시코 카르솔리오 가셔브롬 1봉 등정. 8천미터 13좌 등정. | |
한국 가셔브룸-Ⅰ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90/여름 대전충남연맹 합동 7월 16일 박현상 대원이 북서벽 루트로 초등정 윤건중외 10명 1995/여름 서울시연맹 구조대 북북서릉 7300m에서 후퇴. 장봉완외 8명 1997/여름 서원대산악회 7월 9일 북서릉으로 지현옥 등정. 국내최초 여성 등정. 지현옥외 4명 1997/여름 한국대학산악연맹 7월 9일 북서면으로 박영석, 한왕룡, 유석재 등정. 이인정외 19명 1997/여름 한.스페인 합동 7월 9일 스페인 대원 1명과 등정. 엄홍길외 스페인대원1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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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047m, 위치 : 카라코람 발토로 무즈타크. 발토로 빙하를 거슬러 올라 콩코르디아(Cincirdia)에 도달하면 고드윈·오스틴 빙하 오른쪽 산들 위로 솟아있는 것이 브로드피크이다. 이 산명의 유래는 알프스의 브라이트·호른(Breithorn)에 있다. 3개의 봉을 가진 모양이 브라이트 호른과 비슷해서 독일어로 '폭넓은 봉'이라는 뜻을 영어로 이름 붙인 것이 브로드피크(Broad Peak)이다. 발티어로 '넓은 눈의 산'이라는 팔첸·캉이(Falchen Kangri)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폭이 넓은 믿음직한 산이다. 왼쪽부터 북봉(7,538m), 중앙봉(8,006m), 주봉(8,047m)으로 이루어진 브로드피크는 K2의 오른편에 가로 걸쳐져 있다. 근처의 K2가 1902년에 초등의 도전을 받은 것에 반해 브로드피크로의 초등 도전은 1954년 이전까지는 없었다. 1953년에 낭가파르밧(Nanga parbat)을 초등했던 헤리히코퍼(Herrigkoffer)는 다음해에 카라코람의 산을 등반할 예정으로 장비의 일부를 길기트(Gilgit)에 남겨 두었었다. 그러나 K2로의 허가는 이찰리아로 넘어가 버렸으며, 포터의 스트라이크로 인해 지연되는 바람에 히든피크(Hidden Peak)까지 갈 시일이 없어서 브로드피크(Broad Peak)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인 2명을 포함한 일행 12명은 약 4,000m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다. 이때가 10월 23일인데 8,000m 봉우리를 오르기에는 조금 늦은 시기였다. 일행이 이름붙인 콩코르디아 빙하를 올라 주봉과 중앙봉 사이의 콜로 계속되는 설전(빙하 상류의 만년설)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C3(6,300m)까지 설치했으나 악천후로 6,900m에서 단념했다. 3년 후인 1957년 6월, 단 4명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대가 브로드피크에 도전했다. 고드윈·오스틴 빙하의 브로드피크 서릉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4,900m)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으며 루트는 전번의 독일대가 시도했던 남서빙하를 피하고 서릉을 택했다. C1(5,800m), C2(6,400m), C3(6,950m)만을 설치하고 단번에 정상에 오르는 방식을 취한 이들은 두차례의 정상공격으로 브로드피크의 초등정을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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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 피크 등반루트 ▶ 서릉 오스트리아대 초등루트로서 주봉과 중아봉 사이의 콜에서 전위봉을 지나 등정했다. 전위봉은 주봉에서 1시간 거리에 있고 8,035m이다. 57년 초등 당시 1차 공격때 되돌아온 지점으로 이곳을 주봉으로 오인한 예가 몇몇 있다.1975년, 폴란드대는 이 루트를 통하여 중앙봉을 초등했다. ▶ 북릉 : 1983년 이탈리아의 레나토·까자로또에 의해 북봉이 초등됐을 때의 루트이다. ▶ 북서벽 1984년 폴란드의 예지·쿠크추카와 보이텍·쿠르티카가 북봉-중아봉-주봉의 종주를 알파인 스타일로 성공시켰을 때의 루트이다. 이들은 전년에도 가셔브롬Ⅱ봉을 알파인 스타일로 종주했다. 현재까지 대부분이 초등루트인 서릉으로 올랐으며, 다른 8,000m 봉우리에 비해 산소, 고소포터 없이 알파인 스타일로 시도한 경우가 많다. 루트를 찾기가 용이한 이 산은 가셔브롬Ⅱ봉과 같이 '히말라야 입문용'이라 하여 고소에서의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실험대로 여겨지기도 한다. | |
국외 브로드피크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57 오스트리아 대장 슈무츠가 이끄는 오스트리아대가 6월 9일 브로드 피크 초등정. 8천미터봉에서 최초로 알파인스타일 등반. 4명 전원 등정. 1975 폴란드 중앙봉 루트로 초등정. 1978 프랑스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 . 1983 이탈리아 카사로트 브로드 피크 북봉 단독 등정. 1987 폴란드.영국, 캐나다 합동대 브로드 피크 동계 초등. 1991 스페인.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합동대 브로드 피크 북측 루트 6,500m까지 시등. 1992 이탈리아, 스페인합동대 브로드 피크 중앙봉 동릉(8,016m) 초등. | |
한국 브로드 피크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88/6~8월 악우회 8월 20일 서릉루트로 장용일, 한윤근, 신한철대원이 전봉 등정. 장용일 대장 사망. 장용일외 3명 1992/여름 경남연맹 2차 공격으로 7,800m 지점 도달후 단념. 허금외 9명 1993/여름 경희대산악회 네차례의 등정시도로 제 2봉 8,036m까지 진출. 송윤일외 9명 1994/여름 중앙대산악회 7월 24일 7,700m에서 강풍과 폭설로 포기. 박찬중외 6명 1995/여름 한.스페인합동 7월12일 엄홍길외 스페인대원 3명 등정. 엄홍길외 스페인대원4명. 1995/여름 광주전남 합동대 7월12일 박신영, 이정현, 박현재대원 등정. 하산중 박현재 대원 추락사. 위계룡외 9명 1996/5~6월 경희대 산악회 6월 20일 서릉루트로 한동근, 양재모, 등정후, 하산 중 임순택, 한동근, 양재모 실종 홍정표외 5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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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027m, 위치 : 네팔 히말라야와 중국의 히말라야 . 수도 카트만두에서 동북쪽으로 불과 60km거리의 매우 가까운, 지리적으로는 동쪽으로 썬코시(Sunkosi)강과 서쪽으로 트리슬리(Trisuli)강을 경계로 하여 비교적 좁은 산군인 이 지역은 최고봉인 시샤팡마를 중심으로 북쪽에서 부커 푸레푸(Phurephu), 랑탕(Langtang), 쥬갈(Jgal)로 나뉘어 불려왔다. 그러나 원래 하나의 산군인 이 지역이 비교적 늦게 탐사되는 과정에서 개척자들이 각각의 골짜기에 들어 가보면서 계곡단위로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졌을 뿐, 지리적으로는 분명히 하나의 산군임에 틀림없다. 산군의 진입로를 제공하는 트리슬리강은 티벳령으로 들어가면 이름도 보테코시(Bhote kosi)로 바뀌며, 가네쉬히말(Ganesh Himal)과 랑탕히말을 갈라놓고 있는데, 예로부터 네팔, 티벳간의 주요한 교역로였다. 특히, 랑탕히말지역은 오늘날 랑탕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수려한 자연경관과 평이한 트레킹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랑탕계곡에서 불과 17km북방 키벳쪽에 위치한 산이 이 지역 최고봉인 시샤팡마로서, 8,000m급 14봉중 유일하게 중국측에 속해있는 산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성스러운 장소" 혹은 "신의 거주지"라는 의미인 "고사인탄(Gosainthan)"이 오랫동안 사용되어져 왔지만, 현재는 티벳명으로 "일기변화가 극심한 산"을 의미하는 "시샤팡마(Shisha Pangma)"가 통일되어 사용된다. 시샤팡마가 최후의 8,000m급봉우리로서 64년가지 등정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이 지역내의 등반활동 자체가 정치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대륙의 공산화에 성공한 중국 공산당의 전폭적인 후원아래 60년에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올랐던 중국 등산계는 최후의 8,000m급 봉우리를 시등하기 위해 61년 봄과 가을에 정찰대를 보내어 남·동·북면을 조사한 후, 세번째 정찰인 63년에는 현재의 주접근로인 북면의 야북캉갈라(Yabukangala)빙하를 통해 7,160m가지 도달했고, 이듬해 64년 봄, 허경(許競)대장 이하 본대는 야북캉갈라 빙하위 표고 5,000m부근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수평거리 36km에 이르는 정상을 향해 6개의 캠프 설치와 함께 산소를 교대로 마시면서 5월2일 드디어 대장이하 10명이 정상에 도달했다. 에베레스트에 연이어 2번째의 8,000km급 봉우리를 등정한 것이다. 이후 1979년 중국이 외국 등반대에게 문호를 개방 할 때까지 10년 이상 발길이 끊겼던 이산은 개방이래 현재까지 남북,북벽, 서릉 등지에 6개의 새루트가 개척되어 있으며, 특히 남벽은 알파인 스타일 등반에 적합한 곳으로 82년 봄, 영국대의 더그 스코트등이 냐낭뿌(Nyanang Pu)빙하를 출발, 남서벽 루트를 등반하여 도중 3회의 비박을 통해 정상에 오름으로써 이 산 최초의 알파인 스타일의 새루트를 개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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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샤팡마 등반루트 ▶ 북면/북동릉 1964년 중국대의 루트로 야북캉갈라 빙하를 통해 5,700m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다. 정상까지의 등반거리가 36km에 이르는 긴 루트이다. 특히 일기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루트로서 10월부터 시작되는 티벳고월의 북풍은 바람을 피할 곳조차 없는 평야 위에 우뚝선 이곳으로 곧바로 불어와 등반가들을 좌절시키기도 한다. ▶ 남서벽 82년 영국대가 초등한 루트로 냐낭뿌빙하를 거슬러 올라 뿐빠리(Pungpa Ri)꿀르와르에 최종 캠프를 설치하고, 뿐빠리(7,445m)를 지나 정상에 도달하는 루트이다. 이 루트의 난관은 대략 7,700m부근에서 두차례에 걸쳐 나타나는 설벽으로 북면이 완만한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냐낭뿌 빙하에서 보이는 남서벽은 상당히 험한벽을 이루고 있다. 이 벽을 넘어서면 정상에 서게 된다. ▶ 북면/서릉 87년 가을, 폴란드의 J.쿠크츠카가 초등한 이루트는 중국루트와 마탄가지로 야북캉갈라 빙하를 거슬러 올라가지만, 북서쪽으로 두 개의 전위봉을 지나는 루트이다. 특히 쿠크츠카는 북동릉으로 하강하여 이 산 최초의 횡단을 성공시켰다. ▶ 북벽 야북캉갈라 빙하를 통해있는 중국루트의 변형루트로서, 북서쪽의 전위봉을 거쳐 정상으로 오른다. 87년 가을, 폴란드의 A.센쿠스 등에 의해 초등되었다. ▶ 남서벽 냐낭뿌 빙하를 지난 영국루트 왼쪽의 버트레스(Buttress)를 지나는 루트로서, 89년 유고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그들은 알파인 스타일로 2회의 비박을 통해 정상에 올랐다. 오늘날 많은 원정대가 이 루트로 정상에 오르고 있다. ▶ 남동릉 89년 남서벽 루트를 초등한 유고대에 의해 역시 알피인 스타일로 초등된 루트로서, 82년 영국대가 남서벽을 통해 정상에 오른 뒤 그들의 하강로로 사용했던 루트이다. 냐낭뿌 빙하를 지나 뿐빠리의 콜위로 남동릉을 거쳐서 정상으로 이어진다. | |
국외 시샤팡마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64 중국 대장 허경이 이끄는 중국대가 세계 14위 시샤팡마 세계초등정. 8천미터급 14좌 모두 등정. 히말라야 황금시대 막을 내림 1980 서독 북동릉 루트로 대원 6명 등정. 1982 영국 남서벽 루트를 통해 3명의 대원이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정 . 1987 폴란드 쿠쿠츠카 시샤팡마 등정. 사상 두번째로 8천미터급 14좌 완등. 1989 유고 남서벽 신루트로 등정. 1991 구동독 북동릉루트로 중앙봉 등정. 1992 스페인 북동릉루트로 대원 6명, 셀파2명 중앙봉 등정. 1994 일본 중앙봉에 대원 6명, 셀파 1명 등정. | |
한국 시샤팡마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91/가을 대한산악연맹 10월8일 김창선, 김재수 시샤팡마 남벽루트로 국내 초등정. 김명수외 11명 1991/여름 한국 히말라얀클럽 10월 23일 초오유 8100m에서 패퇴한 후 시샤팡마로 옮겨 등반했으나 악천후로 단념. 허금외 9명 1992/가을 울산.서울합동대 10월 2일 남선우, 김영태 대원과 셀파1명 중앙봉 등정. 국내최초 8,000m봉 연속등정. 김관준외 7명 1993/봄 거봉산악회 9월29일 엄홍길, 민경태 중앙봉 등정. 박병태 대원 실종. 강태선외 9명 1994/가을 전국합동 10월 11일 한왕용, 엄홍길, 차진철, 이동헌, 김헌상이 중앙봉 등정. 이동호외 12명. 1996/가을 한.러합동 10월10일 북면루트로 박정헌과 러시아 대원 7명이 중앙봉등정. 박정헌외 러시아대원 8명 1998/봄 개인 4월 26일 시샤팡마 정상정복. 박영석외 2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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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611m ,위치 : 카라코람산맥의 중앙 카라코람 제2호라는 의미의 `K2`라는 측량기호가 이름이 되버린 세계 제2의 고봉 `K2`는 이를 처음으로 측량한 몽고메리 대령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몽고메리`라고 부르기도 했고 K2에 도달하려면 발토로 빙하를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는 것을 발견한 고드윈 오스틴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고드윈 오스틴'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간결하고 독자적인 풍경을 가진 'K2'에 밀려 계속되지 않았다. 지역명으로는 '쵸콜리'(Chogori)라고 하는데 발티어로 '쵸'는 크다는 뜻이며 '리'는 산이라는 뜻으로 큼산을 의미한다. 이 이름 역시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발토로 빙하 깊숙히 위치한 콩코르디아(Concordia) 북쪽 끝에 우뚝솟은 K2는 크게 나눠 북릉, 북서릉, 서릉, 남릉, 남동릉, 남서릉, 북동릉의 7개의 주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K2빙하, 스키앙(Skyang)빙하, 마르포퐁(marpophang)빙하, 고드윈 오스틴(Gidwin Austen)빙하, 필리피(Filippi)빙하, 사보이어(Savoia)빙하 등 6개의 빙하에 둘러 쌓여 있는 삼각뿔 형태의 독립봉이기 때문에 주위의 산들과 연봉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이처럼 K2가 여러 대신들을 거느리고 있는 대왕처럼 주위를 완전히 압도하며 준엄하게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파키스탄 사람들이 '하늘의 절대군주'라고 부르는 듯 싶다. 주위에 안부 및 연봉이 없는 완전한 독립봉이기 때문에 빙하를 통과하는 기류가 급해 바람이 매우 강하다. 처음으로 'K2'등반을 시도한 것은 1902년이었다. 영국, 오스트리아 합동대에 의한 북동릉으로의 시도였다. 서(西)에서 흐르는 발토로 빙하는 가셔브롬Ⅳ에 부딪쳐서 좌우로 갈라지는데 그곳의 평지를 파리의 광장 이름을 따서 '콩코르디아'라고 부른다. 여기까지 와야 비로소 K2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에켄스타인은 발토로 빙하를 거슬러 올라가 K2바로 아래 5,700m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다. 쟈코·갸르모와 베세리가 6,525m까지 도달했으나 대원들의 부상과 악천후로 퇴각했다. 1909년 이탈리아의 아부릇지(Abruzzi)공작이 이끄는 12명의 대원과 360명의 포터로 구성된 대부대가 후에 아부릇지능선으로 불리워진 남동릉으로 약 6,000m까지 진출했으나 암벽에 막혀 단념했다. 그후 1937년, 영국대가 중구으로부터 진출하여 북벽을 정찰했으며, 이듬해에 챨스·휴스톤의 미국대가 무산소로 남동릉 7,925m까지 진출했다. 1939년 후릿츠비스너가 이끄는 2차 미국대는 무산소로 남동릉 8,380m까지 진출했으나 셀파 3명을 포함해서 4명이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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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3차 미국대는 1차때의 챨스·휴스톤을 리더로 남동릉을 재시도했으나 악천후와 대원의 부상으로 7,700m에서 퇴각해야 했다. 1954년 아르디토·데지오가 이끄는 이탈리아대는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성과를 얻었다. 선배 아부릇지 공이 닦아 놓은 남동릉으로 K2의 정상에 선 것이다. 만전의 준비와 잘 조직된 대원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이탈리아대는 팀의 단결된 정신을 존중해서 등정자의 이름을 공표치 않았다. 후에 그들이 아치레·콤파뇨니(A. Compagnoni)와 리노·라체델리(Laccedelli)라는 것을 알았다. | |
K2 등반루트 ▶ 남동릉 1954년 이탈리아대에 의해 초등된 루트로서, 초등한 이탈리아대는 아브룻지릉 전반에 걸쳐 고정자일을 걸고 C4와 C5중간에는 수동 리프트로 물자를 올리는 작업으로 캠프를 고소로 전진시켰다. 8,050m에 최고거점을 설치하고 정상에 올랐다. ▶ 북동릉 1978년 미국대에 의해 초등된 루트로서 초등정자 4명중 3명은 최초의 무산소 등정자였다. 이 루트의 기술적인 곤란은 C₁과 C₂사이에 있는 얼음의 심한 경사면과 C₃와 C₄사이에 있는 톱니 모양의 산등성이의 급한 크레바스이다. C5에서 동면을 트레버스해서 아브릇지릉으로 향하면 기술적인 문제는 없지만 눈이 유난히 많다. ▶ 서릉 1981년 일본대에 의해 초등된 루터로서 정상부근에서 남릉으로 우회한다. ▶ 북릉 1983년 일본대에 의해 초등된 루터이다. ▶ 남벽 1986년 국제대의 J. 쿠크츠와 W.뷔르시에 의해 초등된 루트이다. ▶ 남릉 1986년 폴란드, 체코 국제대에 의해 초등된 루트이다. ▶이외에도 1978년 미국대가 최후의 난관을 넘지 못했던 북동릉, 중국쪽에 나와 있는 북릉, 북서릉, 서릉과 남서릉이 있다. | |
국외 K2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09 이탈리아 최초의 대규모 원정이었으나 실패. 1938 미국 미국 최초로 K2 원정. 남동릉 7,925m 도달 1939 미국 남동릉 8,380m까지 진출. 3명 조난사. 1953 미국 남동릉으로 7700m까지 도달했으나 악천후와 대원의 부상으로 후퇴 1954 이탈리아 아치레·콤파뇨니(A. Compagnoni)와 리노·라체델리(Laccedelli)가 남동릉을 거쳐 초등정 1977 일본 K2 제 2등 1978 미국 북동릉으로 3인 무산소 초등정 1986 폴란드 반다 루트키에비츠 K2 여성 초등정 1996 일본 남남동릉 제3등. K2 등반사상 최다 12명 등정. | |
한국 K2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86/6-8월 대한산악연맹 8월 3일 남동릉 루트로 장봉완, 김창선, 장병호 등정 김병준외 18명 1994/여름 마산산악동지회 제3캠프에서 악천후로 후퇴 김인태외 13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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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125m 위치 : 히말라야 산맥 북서쪽 끝 카시미르 지구상에서 최대의 절벽의 히말라야 산맥의 가장 북서쪽 끝 카시미르(kashmir)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인더스강이 뒤로는 카라코람(kashmir)과 히말라야의 평행한 봉우리 사이로 600마일이나 멀리 북서쪽을 향해 흐르고, 남으로는 수많은 봉우리들을 지나 평지까지 해발 3,000피트 이상의 거대한 도랑을 새기면서 낭가파르밧의 기본둘레를 형성하고 있다. '벌거벗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이곧은 디아미르(Diamir) 즉, '산중의 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다섯 개의 큰 빙하위에 수직 암벽인 루팔벽(Rupal, 4,500m)이 남쪽으로, 디아미르벽(Diamir, 4,500m)이 서쪽으로, 라키오트벽(Rakhiot. 3,400m)이 북동쪽으로 내리 뻗고 그러한 벽위에 북봉, 주봉, 남봉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400m 정상벽을 이루어 장엄하게 서 있는 산이 낭가파르밧이다. 낭가파르밧(8,125m)은 1895년 영국의 등산가 머메리(A.F. Mummery)에 의해서 세계에 그 신비의 모습을 드러냈다. 등로주의(머메리즘)의 효시자인 머메리는 알프스의 침봉과 북벽에서 첨예한 등반을 하며 어려운 베리에이션 루트를 개턱하는 등 등산에 있어서 벽의 시대를 열게한 록클라이밍의 선구자라고도 칭해진다. 알프스에 대한 등산의 열기가 식어가게 되는 19세기 후반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서게 되었고, 그가 히말라야의 오지에 나타나 8천미터봉에 도전을 시도함으로써 등산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1932년 메르클(W. Merkl)이 이끈 독일·미국 합동대는 낭가파르밧의 북쪽을 방문하여 당시로는 미답지인 라키오트 피크에 올라 동릉까지 진출하였고, 1934년 그는 다시 5명의 독일 등반대원과 11명의 셀파로 구성된 원정대를 꾸려 전에 시도한 루트를 따라 7,800m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악천후로 하산도중 9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1937년 카알비인(K. Wien)이 이끈 독일원정대는 등반기간 중 눈사태가 제4캠프를 덮치면서 7명의 포터를 포함한 7명의 대원이 몰사하게 되고, 1938년 바우어(P. Bauer)가 강력한 팀을 구성하여 북면루트를 공략했으나 역시 실패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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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아우프슈나이더(P. Aufschnader)가 이끈 정찰대는 디아미르벽의 2개 루트로 공격하여 각각 약 6,000m 지점까지 진출하였다. 이리하여 34, 37년의 대참사는 낭가파르밧을 독일인들의 운명의 산으로 만들었고, 1953년 독일 및 오스티리아의 메르클 추모등반으로 7월3일 헤르만불(H. Buhl)이 낭가파르밧 첫등정을 이루게 된다. 이전 등반에서 철수한 적이 있던 헤를리히코퍼(K. M. Herrligkoffer)와 아쉔브르너(P. Aschenbrenner) 리더하에 헤르만 불과 프로이엔베르거(W. Frauenberger) 및 에르틀(H. Ertl)이 정상공격을 맡았다. | |
낭가파르밧 등반루트 ▶ 불루트 북쪽 라키오트 빙하로 접근하는 불루트는 북동벽을 피해 크게 우회하기 때문에 히말라야를 통틀어 가장 긴 등반로를 형성한다.(고도차 4,200m, 수평거리 18km) 기술적인어려움은 없으나 등반거리가 길어 오히려 불의의 조난이 잦은 편이다. ▶ 킨스호퍼루트 사실상 낭가파르밧의 노말루트로 간주되는 킨스호퍼(Kinshofer)루트는 1962년 헤를리히코퍼 주축의 원정대에 의해 이루어 졌고 등정자는 킨스호퍼와 만하르뜨 (A.Mannhardt), 그리고 하산도중 사망한 로우(S. Low)이다. 서쪽 디아미르계곡을 총해 디아미르벽 좌측의 가파른 바위홈통을 거쳐 북봉 근처에서 우회해 정상에 이르는 루트로 많은 베리에이션이 있다. ▶ 디렛티시마 1970년 로우 추모등반으로 메스너 형제는 6월 27일에, 쿤(P. F. Kuen)과 숄츠 (P.Scholz)는 6월 28일에 루팔벽으로 정상등정에 성공하였다. 특히 메스너 형제는 표고차 4,500m로 지상최대의 벽인 루팔벽 중앙의 동남릉을 수직으로 오르는 디렛티시마(Diretticima)루트를 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은 2차 공격조의 도움을 받지 못해 어쩔수 없이 위험한 디아미르쪽으로 트래바스하여 예정에 없던 횡단을 하게 되었고 동생인 군터는 눈사태에 묻히고 말았다. ▶ 쉘루트 1976년 오스트리아 산악인 쉘(H. Schell)이 4인의 소규모 원정대를 구성하여 남쪽 루팔벽으로 들어가게 된다. 벽의 좌측 남서릉을 따라 오른 것으로 토니킨스호퍼가 이미 수 년 전부터 이 루트의 가능성을 예언해 왔기 때문에 쉘루트를 킨스호퍼루트로 부르기도 한다. 이 루트는 위험도, 길이, 난이도 등을 종합해 보면 지금까지 정상에 이르는 루트 중 가장 간단한 것이 된다. ▶ 메스너루트 1978년 라인홀트 메스너는 8년 전의 조난을 딛고 디아미르벽 정면을 더듬어 올라 8,000m급 최초의 완전 단독등반을 이루어 냈다. 이상적인 선을 따르는, 보다 쉬운 루트이기는 하나 하단의 암빙 혼합지대가 눈사태 다발지역이어서 스피드한 등반을 요구하고 있다. 8,000m급 산 중에서 낭가파르밧만큼 등반로에 변화가 많은 곳도 드물다. 자연의 선을 따라 독립된 루트들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등반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 다양한 루트로는 디렛티시마 우측의 동남측 능을 오르거나, 라키오트피크를 남쪽에서 오르거나, 디아마(Diama) 빙하에서 서북능선을 잇는 루트 또는 다소 위험하기는 하나 북쪽에서 표고차 3,000m의 동북벽을 직등하는 루트 등이 새로 개척할 수 있는 루트로 남아 있다. | |
국외 낭가파르밧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31 독일.미국 합동 대장 매르클이 이끄는 독일.미국합동대가 첫 낭가파르밧 원정. 1934 독일 제 2차 낭가파르밧 원정. 7,450m 도달. 악천후로 하산중 대원 4명, 셀파 6명 눈사태로 조난사. 1937 독일 제 3차 낭가파르밧 원정. 눈사태로 16명(대원 7명, 셀파 9명) 조난사. 히말라야 등반사상 최대 조난사고. 1938 독일 4차 낭가파르밧 원정(대장 바우어). 최초로 경비행기를 이용해 물자 수송. 폭설로 후퇴 1953 독일 독일대(대장 헤를리히 코퍼) 낭가파르밧 초등정. 등정자 헤르만 불은 표고차 1,220m를 단독으로 왕복. 1962 서독 서독대(대장 헤를리히 코퍼) 낭가파르밧 서벽 초등정. 통상 제 2등. 1970 독일 낭가파르밧 남릉 중앙벽 초등. 메스너 형제 서벽으로 하강. 1987 프랑스 프랑스의 버느와 샤무 24시간만에 정상 등정 1991 이탈리아 낭가파르밧 서벽 알파인 스타일 등정. | |
한국 낭가파르밧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88/7~8월 한국산악회합동대 8월 중순 디아미르벽 C₂(6400m)지점에서 잦은 눈사태로 등반포기. 김홍준외 4명 1989/5~7월 전주대산악회 서면 디아미르벽 6200m 지점서 김광호대원 추락사로 후퇴. 조병선외 6명 1990/여름 광주합동 정성백 대원이 7월 2일 서벽 7500m 4캠프를 출발, 정상공격에 나섰으나 7900m 지점에서 실종. 최창돈외 15명 1991/여름 울산현대공고OB 산악회 7월 20일 서벽6300m에서 단념. 이동원외 3명 1991/여름 한국.홍콩합동대 8월10일 디아미르벽으로 김형주와 2명의 홍콩인 등정 주장. 의혹 제기됨 김형주외 7명,홍콩인 3명. 1991/여름 울산현대공고OB 산악회 7월 20일 서벽6300m에서 단념. 이동원외 3명 1992/여름 서울시연맹 7월14일 디아미르벽 킨스호퍼 루트 7700m에서 후퇴 김병준외 12명 1992/여름 광주우암산악회 6월29일 서면 디아미르벽 킨스호퍼루트로 김주현 등정. 박찬기외 3명 1993/여름 충남대공대산악회 7월7일 디아미르벽 8070m에서 등반포기. 하산도중 안춘문 대원 실종 최형득외 6명 1997/여름 충남대산악회 서벽 디아미르 킨스호퍼 루트로 7월7일 박정헌, 김경수 등정 7월 9일 신상만, 황영준, 모상현 등정. 박찬기외 3명 1997/여름 전국합동 7월 9일 서면 킨스호퍼루트 김주형 등정 도성환외 10명 1998/6~7월 개인합동 디아미르벽 킨스호퍼 루트를 거쳐 박영석대장이 7월 21일 오후10시 정상 등극. 박영석외 2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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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035m 위치 : 카라코람 발토르.가셔브롬1의 북동쪽 가셔브롬의 어원은 발티어로 '빛나는 벽' 또는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으로 그것은 원래 가셔브롬Ⅳ봉에 붙인 이름이었다. 발토르 빙하의 콩코르이아(Concordia)에서 쳐다보면 Ⅳ봉의 빙벽이 마치 빛나는 벽 모양으로 반짝이며 보이기 때문이다. Ⅰ봉(히든 피크)과 Ⅳ봉과 달리 Ⅱ,Ⅲ봉에는 적당한 애칭이 없다. 가셔브롬 산군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Ⅱ봉은 콩코르디아에서 쳐다보면 Ⅳ봉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1956년까지 단 하나의 원정대도 이 봉우리를 찾지 않았다. 1934년 군터 디렌프르트가 남측을 답사했을 뿐이다. 그는 보고서에 "가셔브롬Ⅱ는 예리한 능선으로 된 피라밋형의 봉우리로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없는 산이다. 그러나 등정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비교적 확실하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보인다."라고 기록했다. 흐릿츠 모라벡크가 이끄는 오스트리아대가 온 것이 1956년이다. 대원 6명과 과학반 2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카라치(Karachi)로부터 기차로 라와르핀디까지 가서 비행기로 스카르두(Skardu)에 도착했다. 식량구입과 포터고용을 위해 도보로 아스코레(Askole)로 갔다가 발토르 빙하로 들어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카라코람 원정대의 카라반 루트는 이 빙하를 거친다. 발토르 빙하의 상류인 콩코르디아에 이르러 K2로 향하는 왼쪽의 고드윈 오스틴 빙하와 발토르 빙하의 원줄기인 아브룻지 빙하로 갈라진다. 오스트리아대는 오른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브룻지 빙하와 남가셔브롬 빙하가 만나는 지점(5,300m)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다. 이들은 남측으로 뻗어 있는 2개의 지릉 중 남서릉을 택하여 그 아래에 C1(6,000m)을 설치했다. 폭설과 눈사태를 이겨내고 C2(6,700m)와 C3(7,100m)를 개척했으며 C3를 출발한 3명은 7,500m에서 비박을 한후 정상의 피라미드 아래를 트래버스해 동릉으로 가서 정상능선을 따라 등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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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셔브롬2 등반루트 ▶ 남서릉 : 1956년 오스트리아대의 초등정 루트, 동릉을 가로질러 정상에 이르렀다. ▶ 남동릉 : 1957년 프랑스대의 등정 루트. | |
국외 가셔브롬2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56 오스트리아 대장 모라벡이 이끄는 오스트리아대 7월 7일 가셔브롬 2봉 초등정. 1975 프랑스 남릉루트 초등정. 1982 이탈리아 라인홀트 메스너는 가셔브롬 2봉 - 브로드 피크 연속 등정 . 1983 폴란드 가셔브롬2봉 남동릉-남서릉 종주, 1봉 남서벽 초등정. 1984 이탈리아 메스너, 카멜란더 가셔브롬 2봉 - 1봉 종주. | |
한국 가셔브롬2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89/6~8월 성대산악회 남서릉 7350m 지점 도달. 김홍기외 5명 1990/여름 대전충남연맹합동 7월16일 같은날 가셔브롬1은 초등정하였으나, 가셔브롬2에서는 7300m에서 악천후로 후퇴 . 윤건중외 10명 1991/여름 성균관대산악회 8월19일 노멀루트로 대원 4명 전원 등정. 한상국외 3명 1991/여름 대산련울산지부 8월20일 이용순, 한영준, 장상기, 조재철, 박을규대원 등정. 송정두 외 7명 1993/여름 포항고룡산악회 7월 6일 남서릉으로 김병석, 권오수, 문인주 등정. 7월 7일 장이석, 손은호 등정. 장이석 외 5명. 1996/5~6월 계명대산악회 7월 24일 남서릉 루트로 최병수, 박무택, 하찬수 등정. 손칠규외 8명 1997/여름 한국대학산악연맹 7월9일 북서면으로 가셔브롬1 등정후 7월 16일 남면루트로 서기석 등정. 7월 17일 박기성, 박영석, 오은선, 박경이, 임인철, 배현기 등정 이인정외 19명. 1998/7월 개인 7월 22일 세계최초 여성 지현옥씨 무산소 등정.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 손칠규외 8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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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516m 위치 : 네팔 히말라야 산맥 에베레스트산의 바로 남쪽에 솟아있다. 티벳으로 '남쪽 봉우리' 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말은 1921년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던 영국 원정대에 의해 붙여졌다. 8,000m가 넘는 뾰족한 3개의 봉우리로 되어있다. 로체 주봉의 주위에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와 로체 샤르(Lhotse Shar, 8,400m)이 연결되어 있다. 로체에서 흘러 내리는 빙하는 크게 세 개로 구분할 수 있다. 남쪽으로는 로체 빙하, 서쪽으로는 쿰부 빙하, 그리고 동쪽으로는 캉슝(Kangshung) 빙하가 흘러 내린다. 로체는 세계 4위의 고봉임에도 불구하고 카라코람의 고봉이나 쿰부 히말의 다른 고봉에 비하여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1953년 세계 최고봉에 인간의 발자국을 남긴 이후 다른 고봉들에 비해 매력을 덜 느끼게 하는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에베레스트를 오르면서 로체 사면을 거쳐 오르고 또 에베레스트 남동릉을 오르는 도중에 있는 사우스 콜(South Col)은 8,000m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로체를 80%는 올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보아도 티벳어로 'Lho'는 남쪽을, 'Tse'는 봉우리를 뜻하기 때문에 에베레스트의 남쪽 봉우리라는 것 밖에 안된다. 그렇지만 확실한 하나의 독립된 봉우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산은 다른 어떤 고봉들보다도 등반 루트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이 산에 대한 관심도를 말해준다. 로체 서면을 오를 때는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와 캐러반이 같다. 그리고 남벽을 오를 때는 남체를 출발하여 딩보체(Dingboche)에서 오른쪽으로 임자 콜라(Imja Khola)를 따라 눕체·로체 빙하를 지나 로체 빙하에 도착하여 등반을 시작한다. 이 산의 초등은 1956년 스위스대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1952년 에베레스트에 도전해 실패하고,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영광을 영국대에 넘기고 나서 1956년 로체와 에베레스트를 동시에 등정함으로써 그들의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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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체 등반루트 ▶ 서면 쿰부 빙하를 따라 아이스 폴(Ice Fall)을 통과한 후 웨스턴 쿰(Cum)을 오르면 제네바 스퍼(Geneva Spur)에 이른다. 제네바 스퍼를 지나 최종 캠프를 로체 서면 8,000m 부근에 설치한 후 약 500m의 꿀르와르(Couloir)를 오르면 된다. ▶ 남벽 유고슬라비아의 토모 체슨(Tomo Cesen)이 1990년 4월에 단독으로 오른 루트이다. 로체 빙하를 따라 올라 추쿵 마을을 지나 베이스 캠프를 설치한다. 등반의 최대 난관은 8,200m 지점의 70m 정도 되는 암벽지대를 오르는 것이다. | |
국외 로체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56 스위스 대장 에글러가 이끄는 스위스대가 5월 18일 로체 초등정후 5월 21일 에베레스트 연속등정. 1970 오스트리아 로체 샤르 초등정. 1974 폴란드 로체 최초의 동계등반에서 8,250m 도달. 1977 독일 독일대 로체 2번째 등정. 1인 무산소 등정. 1981 유고 로체 남벽 8,150m 도달. 1985 폴란드 로체남벽 8200m에서 단념. 1986 메스너 로체등정. 세계 최초 8000m급 14좌 완등. 1988 폴란드 로체 동계 초등정. 1990 유고 토모 체슨 로체 남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단독 초등. 소련대와 프랑스대가 이의 제기. 1990 구소련 로체 남벽에 직등루트 개척(산소 사용) 1996 프랑스 샹탈 모디(여) 로체 무산소 단독 등정(5번째 8000m 봉 등정) 1997 러시아 러시아의 보스코프 여성으로는 2번째 단독 등정. 1997 러시아 러시아의 바시키코프 로체-로체샤르 종주 실패, 하산중 사망. | |
한국 로체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85/봄 개인 로체 샤르(8,400m) 동남릉 8,050m 지점 도달. 허영호 1988/가을 대한산악연맹 로체 서면 루트로 정호진, 임형칠, 박쾌돈, 박희동 등정. 국내 최초 등정. 김인식외 20명 1989/가을 대구등산학교 로체 샤르, 10월 4일 남동릉으로 권춘식대원과 셀파 2명이 등정. 이훈태외 13명 1989/가을 개인합동 10월 14일 새벽 4시 허영호대원 단독으로 서벽루트로 등정 주장, 의혹제기.허영호외 2명 1995/가을 경남산악연맹 10월 14일 에베레스트 남서벽루트 등정후, 로체 서벽 7800m에서 단념.조형규외 15명 1995/가을 한.스페인합동 10월 2일 외면루트로 엄홍길과 스페인대원 2명 등정. 엄홍길외스페인대원 3명 1997/가을 개척산악회 서면 꿀루와르 루트로 10월 18일 박영석, 한왕룡 셀파 1명 등정. 소병겸외 10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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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848m 위치 : 네팔 히말라야 남극, 북극과 함께 제 3의 극으로 일컫는 이 산은 히말라야 산맥의 중앙부에 티벳과 네팔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에베레스트'라는 산이름이 생긴 유래는 당시에 '봉우리 15'로 이름지어진 봉우리가 최고봉임을 알고 현지 지명에 따라 이름을 붙이려고 했으나 그 지역에서 부르는 이 산의 이름을 찾지 못해 전임(前任) 인도 측량국 장관인 G. Everest의 이름을 따서 'Everest'라 이름 지었다. 당시에 티벳에서 에베레스트를 초모룽마(Chomolungma)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을 공표한 이후였다. 초모룽마의 뜻을 살피면 초모(Chomo)는 '여신, 수도녀, 여주인'을 뜻하며 룽마(Lungma)는 '산골짜기, 지역, 경지'를 뜻한다. 그래서 초모룽마는 '대지의 여신, 세계의 여신'을 뜻한다. 또 네팔인들에게는 사가르마타(Sagarmata)로 불리며 그 뜻은 초모룽마와 같다. 이 산은 1852년에 발견된 이후 100년이 지난 1953년, 헌트(J. Hunt)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서 초등정 되었다. 에베레스트의 대략적인 지형은 흔히 피라미드로 비유하는데, 능선은 서릉, 북릉, 북동릉, 남릉으로 구분되며, 남벽은 쿰부(Khumbu) 빙하로, 북벽은 롱부크(Rongbuk) 빙하로, 동벽은 캉충(Kangchung)빙하로 향해 있다. 에베레스트는 주위에 로체(8,515m), 로체 샬(8,400), 눕체(7,855), 창체(7,550) 등의 많은 위성봉을 거느리고 하나의 산군을 형성하고 있다.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한 루트는 1921년 영국의 제 1차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말로리(G.H. Leigh Mallory)에 의해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영국은 정상에 서기까지 여덟 번이나 북릉을 통해 정상 도전을 했고, 단지 세 번의 남릉 도전으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였다. 만일 1차 원정에서 남쪽 능선의 등반 가능성을 알았더라면 에베레스트 등정은 훨씬 빨리 이루어졌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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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등반루트 ▶ 남동릉 1953년 봄 영국대(대장 J. Hunt)가 초등한 루트로서 첫 난관인 아이스 폴(Ice Fall, 6,000m)을 통과한 후 5km나 되는 웨스트 쿰을 지나 1952년 스위스대가 개척한 제네바 스터(Geneva Spur)로 불리는 암릉을 지나면 남쪽 안부(South Col, 8,000m)에 이른다. 이곳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남봉을 거쳐 정상으로 오른다. ▶ 북동릉 1960년 봄 중국대에 의해서 초등된 루트로서 티벳에서 접근해서 북쪽 안부(North Col, 6,990m)를 통해서 올라 계속 주봉능선으로 오른다. 북쪽 안부부터는 영국 원정대가 8차에 걸쳐 등반했던 루트와 같다. ▶ 서릉 1963년 봄 미국 원정대에 의해서 등반된 루트로서 아이스 폴을 지나 웨스턴 쿰 빙하의 6,500m 지점에서 서릉으로 올라 붙어 7,200m 부근에서 북벽의 혼바인(Hornvine) 꿀르와르(Couloir)로 진입한다. ▶ 남서벽 1 1975년 가을 영국대에 의해서 초등된 난이도가 높은 루트로 웨스턴 쿰의 6,500m 지점에서 벽상의 빙설원으로 진입하여 8,300m 상단의 옐로우 록 밴드(Yellow Rock Band)를 통과하여 남봉상의 안부로 이어지는 루트이다. ▶ 서릉 직등 1979년 봄 유고대에 의해서 개척된 루트로 로 라(Lho La)에서 서릉을 통해서 직등하는 루트로서 부분적으로 1963년 미국대에 의해서 등반된 서릉 루트와 겹치게 된다. ▶ 북벽 1 1980년 봄 일본대에 의해서 등반된 루트로 북벽하부에서 직등하여 혼바인 꿀르와르를 통해서 오른다. ▶ 북벽 2 1984년 가을 호주대에 의해 등반된 루트로서 롱부크(Rongbuk) 빙하를 따라 올라 혼바인 꿀르와르를 통해서 오르는 루트이다. ▶ 북벽 3 1986sus 캐나다대가 오른 루트로서 롱부크 빙하에서 우측의 서릉으로 올라 혼바인 꿀르와르를 오르는 루트이다. ▶ 남릉 1980년 폴란드대에 의해서 등반된 루트로서 웨스턴 쿰을 따라 오르다 7,250m쯤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 남봉으로 이어진다. ▶ 남릉 및 남동릉 1981년 가을 미국대에 의해서 등반된 루트로서 남릉을 따라 올라 8,000m 부근에서 남쪽 안부로 트래버스(Traverse)하여 오르는 루트이다. ▶ 남서벽 2 1982년 봄 소련대가 등반한 루트로서 웨스턴 쿰의 6,500m 부근에서 벽으로 진입하여 8,000m 부근부터 서릉으로 이어지는 루트이다. ▶ 동벽, 남동릉 1983년 가을 미국대에 의해서 등정된 루트로서 중국쪽의 캉슝(Kangshung) 빙하를 따라 올라 남동릉으로 이어지는 루트이다. ▶ 동 벽 1988년 봄 영국, 미국, 이탈리아, 뉴질랜드 합동대에 의해서 개척된 루트로 캉슝 빙하를 따라 남쪽안부에 이어지는 루트이다. 대체로 등반루트는 초기 에베레스트 등반 시대에 비해 변형(Variation)루트가 많아지고 좀 더 어려운 길을 택하는 등로주의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 |
국외 에베레스트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21 영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찰원정(대장 하워드 버리) 1922 영국 최초로 등반활동 전개. 눈사태로 셀파 7명 사망.(대장 부르스) 1924 영국 영국 3차 에베레스트 원정대(대장 C.G. 부르스)8,578m 지점서 후퇴. 당시까지의 최고 도달지점. 정상공격조 말로리와 어빙 실종 1953 영국 힐라리와 텐징 셀파가 9월 15일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초등정(대장 존 헌트) 1956 스위스 5월21일 제2등(대장 에글러) 1963 미국 서릉-남등릉 종주. 통산 제3등(대장 디렌 퍼스) 1969 일본 남서벽으로 8,050m 도달. 1975 일본 여성대 에베레스트 등정. 여성 최초로 최고봉 등정. 1975 중국 북동릉 제2등. 여성 1인포함 9명 등정. 1982 구소련 남서벽 신루트 초등 1985 노르웨이.미국.영국합동대 17명 등정. 사상 최다 등정기록. 1986 스위스 스위스 로레탕, 북면루트 39시간만에 등정. 1988 일본.중국.네팔합동대 남북 교차 종주. 사상 최초로 최고봉 정상에서 TV 생중계 1988 프랑스 바타르. 에베레스트 22시간 30분만에 무산소 등정.브와벵,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파라판트 하강 1993 국제 에베레스트 등정 40주년의 해. 27개국 129명 등정. 한 해 최다 등정 | |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77/가을 대한산악연맹 9월 15일 남동릉 노멀루트로 고상돈대원과 셀파 1명 등정. 한국 8번째 등정국 김영도외 17명 1984/겨울 양정산악회 사우스콜 직전 7950m 도달 오인환외 12명 1985/겨울 고려대산악회 남동릉 8500m 도달후 악천후로 단념 김상겸외 10명 1985/겨울 전국합동 남서벽 7500m 지점서 후퇴 박영배외 8명 1985/겨울 전국합동 서릉 7200m 지점서 후퇴 김기혁외 15명 1986/겨울 한산합동 악천후로 사우스 콜에서 후퇴 오인환외 6명 1986/겨울 크로니산악회 남서벽 8400m까지 진출, 셀파 1명 추락사 박영배외 4명 1987/겨울 한산합동 12월 22일 동남릉으로 허영호대원과 셀파 1명 등정 함탁영외 8명 1988/가을 대한산악연맹 9월 26일 에베레스트 남동루트로 김창선, 엄홍길 등정. 9월 29일 장봉완, 정승권, 장병호 단독등정. 10월 2일 남선우 단독등정 김인식외 20명 1988/겨울 한국산악회합동 89년 1월중순 남서벽 루트 7500m 지점에서 등반포기 박영배외 11명 1989/가을 마산 산악동지회 10월13일 조광제대원이 셀파 1명과 함께 남릉경유 남동릉으로 정상 등정 단일팀으로 국내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 김인태외 15명 1989/가을 한국산악회합동 10월 23일 서릉루트로 정상용대원과 2명의 셀파가 등정, 정상사진 의문 제기됨. 미등정 결론 차재현외 10명 1989/겨울 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 10월27일 사우스콜(8000m)에 도착했으나 강풍으로 후퇴. 셀파1명 폐수종으로 사망. 국내 원정사상 최대인원 원정대 김하경외 26명 1990/가을 한일 합동 10월8일 남동릉 루트로 복진영, 김재수, 박창우 대원이 셀파 3명과 등정. 10월 9일 함상헌 대원이 단독으로 오르다 남봉 근처에서 실족사 노종백외 13명 1991/겨울 대구지봉산악회 12월 20일 8600m에서 후퇴 유재형외 10명 1993/봄 대한산악연맹 5월 10일 남동릉으로 지현옥, 최오순, 김순주 대원과 셀파 4명이 등정. 국내최초 여성등정. 지현옥외 13명 1995/가을 경남산악연맹 10월14일 남서벽루트로 김영태, 박정현과 셀파2명 등정. 조형규외 15명 1996/가을 조선대산악회 10월11일 남동릉 루트로 최종태, 신광철과 셀파 3명 등정. 전의천외 9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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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598m 위치 : 동부 히말라야 네팔과 시킴의 국경지대의 거의 남북으로 뻗어있는 캄첸중가 산군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일 먼저 사람들에게 알려진 산군이기도 하다. 세계 제 3위의 고봉이며 높이 8,598m의 주봉인 칸첸중가와 중앙봉(8,478m), 남봉(8,491m), 서봉(8,505m, 일명 얄룽캉), 그리고 캉바첸(7,903m) 등의 다섯 고봉이 연이어 솟아 칸첸중가라는 거대한 만년설의 성역을 이루고 있다. 칸첸중가는 티벳명으로 '위대한 눈의 다섯 보고(寶庫)'라는 뜻으로, 이름만으로도 칸첸중가가 독립봉이 아닌 거재한 산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히 '칸치'라고도 불리는 이 산군은 주봉을 정점으로 네 개의 능선이 사방으로 뻗어있고, 이들 능선사이로 광대한 빙하가 흐르고 있다. 처음으로 이 거봉의 등반을 시도한 원정대는 1905년 8월, 영국인 크라울리(A.E. Crowley)를 대장으로 스위스, 이탈리아인으로 구성된 국제대였다. 이들은 랴른빙하를 거쳐 남서면으로 접근하려 했으나, 몬순기의 계절적인 영향과 대원들 사이의 의견 충돌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까지 내면서 표고 6,300m부근에서 후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원정대로 인해 야룽빙하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가 알려졌고 지도도 보강되었으며, 등반에 필요한 지식과 사진들이 입수되었다. 1929년 단독 등반가였던 미국인 파머(E.F. Farmer)가 몰래 네팔 국경을 넘어 야룽빙하 위로 올랐으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같은해 7월, 독일대가 본격적인 등반대로서 몬순 기간에 시킴을 통하여 제무빙하에 들어가 15일만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동면루트를 정찰하였다. 이들은 북동릉을 통해 최고점 7,200m까지 전진했으나, 눈사태로 5일 동안이나 설동속에 갇혀 있다가 결국 철수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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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영국과 독일 등의 등산가들로 구성된 국제대가 북서면 등반을 시도했다. 그들은 칸첸중가 빙하 5,050m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으나, 눈사태로 인해 루트를 북서릉으로 돌렸다. 이 산릉은 얼음에 덮힌 좁은 암릉으로 양쪽은 천미터가 넘는 절벽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최고지점은 6,400m였다. 1931년, 독일의 바우어가 다시 북동릉 루트로 정상에 도전했으나, 기상의 악화와 대원들의 추락사로 위축되었고, 표고 7,750m부근에 솟아있는 난공불락의 설벽으로 인해 결국 철수하였다. 드디어 1955년 영국대(대장 : 챨스 에반스)가 남서벽에 도전하였다. 큰 눈보라로 며칠을 캠프에서 보낸 뒤, 전원 산소 마스크를 사용하고 표고 8,200m지점에 제6캠프를 설치했다. 공격대원으로 조지 배드와 조 브라운이 선정되었고, 이들은 최종캠프인 C6을 출발하여 웨스트콜을 지나 주봉으로 향하는 암벽의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비스듬히 올라 릿지상의 좁은 정상에 이르렀다. 1m가 넘는 눈에 덮인 둥근 혹 같은 정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87년과 88년에 걸쳐 부산대륙 산악회(대장 정상무)에 의해 남서벽 루트로 동계 등정된 바 있는데, 이들은 캐러반 도중 이성호 대원을 잃는 불운을 겪으며, 이정철 대원이 단독으로 정상을 등정하였다 | |
칸첸중카 등반루트 ▶ 남서벽 / 주봉 1955년 봄. 영국대에 의해 초등된 루트로서, 야룽 빙하를 통과하여 표고 5,500m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한다. 거의 대부분이 벽등반이고, 게다가 표고 7,200m 부근의 높이 600m에 이르는 거대한 2단 설벽인 드라브 설벽으로 인해 초등되기까지 많은 원정대들이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후퇴한 곳이기도 하다. ▶ 남서릉 / 서봉 / 주봉 남서벽 루트와 마찬가지로 야룽 빙하 위 5,500m 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지만, 서릉을 통해 얄룽캉(서봉, 8,505m)을 경유하여 주봉에 오르는 루트이다. 73년 네팔정부에 의해 서봉 등반이 해금되자 일본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 북동릉 / 북봉 / 주봉 1931년 독일대가 이 루트를 시도한 이후로 시킴을 통한 등반이 폐쇄되어 오랫동안 잊혀진 루트로, 해금이후 77년 N. 쿠마르 대령이 이끈 인도 군인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제무빙하를 통해 4,500m 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5,830m까지는 어려운 벽등반이 계속되며, 그 위로 위험한 급사면을 트레버스하면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도달하게 된다. ▶ 북쪽콜 / 북벽 / 주봉 칸첸중가 빙하를 통과하여 표고 6,900m의 북쪽콜에서 북벽 최상부 테라스를 가로질러, 얄룽캉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서 다시 왼쪽의 주봉으로 이어지는 루트이다. 79년 영국대의 더그 스코트 등에 의해 무산소 및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되었다. ▶ 북벽 / 주봉 1980년 일본대에 의해 초등된 이 루트는 칸첸중가 빙하에서 시작되는 다양한 북면루트들중의 하나로, 일본대는 전원 무산소로 북벽을 통해 주봉에 올랐다. | |
국외 칸첸중가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29 독일 대장 바우어가 이끈는 독일대가 칸첸중가 원정 7200m까지 도달. 1930 국제대 대장 디렌푸르트가 이끄는 국제대가 칸첸중가 서릉루트로 등반 하였으나 실패. 1931 독일 독일 2차 칸첸중가 원정. 북동릉 7,750m 도달. 1955 영국 대장 에반스가 이끄는 영국대가 세계 3위봉 칸첸중가 최초로 정상에 오름. 1976 조 케스커, 피터 보드맨 2인조 칸첸중가 서벽 알파인스타일 초등. 1977 인도 칸첸중가 북동릉 초등(시킴측에서의 최초의 등정). 1978 칸첸중가 남봉(8,476m), 중앙봉(8,476m) 초등정. 1979 영국 칸첸중가 북릉 초등정. 4인 전원 무산소 등정. 1984 일본 칸첸중가 남봉-중앙봉 종주, 주봉 등정. 1986 폴란드 동계 초등정 1989 구소련 칸첸중가 4개 연봉 교차 종주 1991 유고 칸첸중가 남봉 남서릉 초등, 중앙봉, 주봉 연속등정 1992 폴란드 여성 클라이머 반다 루트키에비츠 캉첸중가에서 9번째 8,000m 등반 중 실종. | |
한국 칸첸중가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87/겨울 부산대륙산악회 남면 루트로 국내 최초로 88년 1월 2일 이정철 대원 단독정상등정 캬라반 중 이성호대원 사망 정상무외 7명 1990/가을 충북연맹 칸첸중가 중앙봉을 10월 12일 남면루트로 박경식과 셀파 1명이 8350m 도달. 조상구외 12명 1994/가을 대전충남연맹 6300m 지점에서 대형 크레바스 통과 못하고 단념. 유재일외 11명 1997/가을 대한산악연맹 북서벽 8300m 지점에서 단념. 강태선외 6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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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463m 위치 : 네팔과 티벳 국경사이 일명 '검은 귀신의 산'이라고도 불린다. 에레베스트로부터 남동방향으로 뻗은 히말라야 산줄기에 위치. 1954년 프랑스 등정대가 초등정하였다. 우리나라는 1982년 11번째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세계 제 5위의 고봉 마칼루는 쿰부(Khumbu)히말라야의 바룬(Barun)빙하 속에 우뚝 솟아 있다. 북쪽에 초모 렌죠(Chomo Lenzo, 7,815m)를 거느리고 있으며, 북서쪽 국경 능선을 따라 차고(Chago. 6,885m), 페탕체(Pethangtse. 6,724m)를 지나 로체, 에레베스트에 연결되어 있다. 그 당당한 산의 모습은 종종 에베레스로 착각되어 지기까지 했다. 처음으로 마칼루 산군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사람들은 팝티 라(Papti La, 4,260m) 산길을 통해서 티벳과 네팔을 오가던 대상인들로 추측된다. 또한 차고(Chago) 북서쪽에 있는 6,275m 안부를 통해서 보티아(Bhotia)족이 야크떼를 몰고 티벳과 네팔을 오갔을 것 같이 보인다. 마칼루 산군은 등반가와 연구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정치적인 이유에서 거의 접근이 불가능했고, 이후에 장애가 극복되고 나서도 에베레스트의 그늘에 가려 관심은 반감되었다.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마칼루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1921년 영국 원정대(대장, C.K. Howard-Bury)에 의해서 였다. 이후 영국 원정대(대장, E.E.Shipton)가 1951년에 바룬 빙하에 발을 들여 놓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마칼루를 등반의 무대로 삼기 시작한 때는 1954년이었으며 이때부터 바룬 빙하를 통해서 계속적인 등반이 있었다. 1955년 프랑스대(대장 프랑코)에 의해서 세계 5위봉 마칼루는 정복되었다. 5월 15일부터 3회에 걸쳐 대원 7명이 전원 등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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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칼루 등반루트 ▶ 북벽 마칼루의 북벽은 사케탕(Sakyetang) 빙하의 가장 높은 부분으로 흘러 내린다. 북벽은 우측으로는 서북 칼날능선과 좌측으로는 동측 칼날능선과 동면 산마루로 흘러 내려가는 북측 돌출부를 경계로 이루어뎌 있다. 북벽의 중앙부는 아래로 높은 빙벽을 갖고 있는 사케탕 빙하로 흐르는 사면(斜面) 빙하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북벽의 높이는 1,000m 이상에 달한다. ▶동측 칼날능선 동측 칼날능선은 마칼루 주봉으로부터 사케탕 계곡과 사케탕 로(Sakyetang Lho) 계곡이 만나는 곳까지 이어져 있다. 특히 이 칼날능선의 가장 높은 부분은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내려갈수록 동북쪽으로 휘어져 있다. 이 능선의 상부(上部)는 주로 암벽이며 이름 그대로 매우 날카롭다. 이 능선은 동쪽 산마루(East Shoulder, 8,280m)와 마칼루의 동쪽봉인 마칼루 샬(Makalu Shar 7,837m)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이 칼날능선은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 남동벽 마칼루 샬의 남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마칼루 주봉의 남동벽은 이 산의 남동사면에서 흘러내리는 동면 빙하 위에 솟아 있다. 이 벽은 암벽과 빙설이 혼합된 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우 가파르고 높이는 800m 정도이다. 이 벽은 동면 빙하가 사케탕 로(Sakyetang Lho) 빙하로 갈라지는 곳에 있으며 지금까지 제대로 정찰되지 않고 있다. ▶ 남동 칼날능선 마칼루의 남동 칼날능선은 마칼루의 주봉으로부커 남쪽 안부(South Col)로 이어져 내려 간다. 이 능선은 남쪽 안부에서 정상까지 1,900m의 고도차가 있으며, 길이는 약 4km 정도이다. 이 능선은 많은 암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빙설로 덮혀 있다. 이 능선은 많은 암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빙설로 덮혀 있다. 이 능선의 중간 쯤에 마칼루 남동봉(Makalu S.E, 8,010m)이 솟아 있고, 이 남동봉은 주봉 사이의 안부에 의해 분리된다. 마칼루 남동봉에서 남쪽 안부로 떨어지는 칼날 능선의 약 7,600m 지점에는 특징적인 검은 첨봉(Black Gendarme)이 있다. ▶ 남서벽 마칼루 남서벽은 바룬 계곡 위쪽에 3,700m 높이로 솟아 있으며, 마칼루 주봉과 남동봉을 연결하는 칼날능선 쪽으로 뻗어 있다. 왼족으로는 서면 Pfeiler,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남동 칼날능선에 의해 경계를 이룬다. 이 벽의 등반을 위해서는 남면 빙하와 남서 빙하를 가르는 바위탑(5,860m)을 거치게 된다. 이 남서벽은 벽 자체의 높이가 3,500m 정도로서, 주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아랫 부분은 가파른 빙설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칼루 남동봉으로부터 바룬 계곡으로 이어지는 돌출된 남서필라는 이 벽을 두 부분으로 분리한다. 오른쪽 부분은 마칼루 남동봉의 남벽을 이루고 이 벽은 남면 빙하로 이어진다. 왼쪽 부분이 바로 남서벽이다. ▶ 서면 칼날능선 마칼루의 서면 칼날능선은 서면 Pfeiler의 윗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마칼루 주봉에서 바룬 빙하로 이어져 내린다. 이 능선은 고도차가 약 3,300m 정도이며 길이는 약 6km 정도로서 측면 빙하인 남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오른다. 이상과 같이 살펴 본 마칼루의 등반루트는 다른 어떤 고봉을 오르는 길보다도 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대표적인 능선이나 벽들이 미등된 채 남아 있는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동면 칼날 능선, 서벽의 중앙부, 남서 칼날 능선의 중앙부, 사케탕로(Sakyetang Lho) 빙하에서 시작되는 루트, 마찬가지로 사케탕(Sakyethang) 빙하 하부에서 시작되는 루트가 가치있게 주목되는 것들이다. | |
국외 마칼루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55 프랑스 프랑스대(대장 프랑코) 세계 5위봉 마칼루 초등정. 5월 15일부터 3회에 걸쳐 대원 7명 전원등정. 1976 체코 남서릉 루트로 초등정. 1980 미국 서릉루트로 2번째 등정. 1986 스위스 마르셀 루디 마칼루 등정(11번째의 8천미터급 등정)후 폐수종으로 사망. 1990 인도네시아 마칼루 7,800m에서 후퇴. 1995 일본 티베트 루트로 북동릉-동릉 초등정. 1997 러시아 러시아대(대장 세르게이 에피모프) 서벽 변형루트 등정. | |
한국 마칼루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82/봄 한국산악회 5월 20일 허영호 외 셀파 2명 남동릉으로 국내최초 등정. 함탁영외 15명 1989/가을 울산 청년악우회 동남릉 7200m지점에 4캠프 설치했으나 2캠프의 눈사태로 9월 28일 철수 김관준외 7명 1995/봄 한.스페인합동 5월 8일 북동릉에서 엄홍길 외 스페인대원 3명 등정. 엄홍길 외 스페인대원 4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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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167m 위치 : 네팔 중북부 네팔 히말라야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다울라기리 산군은 고대 티벳과의 교역통로였던 칼리같다키(Kali Gandaki)강을 사이에 두고 안나푸르나 산군과 마주보고 있다. 다울라기리는 산스크리트 어 'Devanagiri'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Dhavalagiri'의 단축형으로 'Dhavala'는 '희다'라는 뜻이고, 'Giri'는 '산'을 뜻한다. 즉 다울라기리는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이 산군은 동쪽에 있는 투크체 피크(6,920m)에서 서쪽 푸타히운출리(7,426m)까지 40km에 달하는 주산맥과 여기서 파생된 지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안에는 다울라기리Ⅰ봉을 비롯하여 서쪽으로 Ⅱ,Ⅲ,Ⅳ,Ⅴ,Ⅵ봉이 있고, 이밖에 추렌히말, 푸타히운출리, 구르자히말, 투크체 피크등이 모여 있다. 최고봉은 높이 8,167m로 동쪽 끝에 위치하는 다울라기리Ⅰ봉이며, 산군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8km지점에 위치한다. 1953년, 스위스 원정대는 아직 정찰되지 않은 서면을 목표로 삼고, 포카라(Pokhara)에서 캐러반을 시작하여 마양디 상류 계곡으로 올라가 서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4,500m나 되는 절벽으로 인해 서면을 포기하고 북면을 시도했다. 마양디빙하로 내려가 북면밑에 제1캠프를 마련하고 고도를 높여 나갔다. 하지만,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밑의 수직의 암벽(7,700m)에서 후퇴하고 말았다. 이 곳의 지형은 배처럼 생겨서 '페어루트'라고 불리우며, 많은 원정대가 거의 이곳에서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결국 실패했다. 그후 1960년, 프랑스대의 7회에 걸친 도전을 물리쳐온 다울라기리도 3번째로 찾아온 스위스의 막스 아이젤링이 이끈 합동원정대가 정상에 서게된다.. 북동릉 루트를 선택한 이 원정대는 캐러반 대신 경비행기로 물자를 수송했다. 수송작전이 시작되는 동안, 고소적응 훈련을 하였고, 북동콜에 내린 세 대원과 네명의 셀파는 6,600m에 제 1캠프를 설치했다. 후속부대가 전진대와 합류한 곳은 제3캠프(7,400m)였고, 7,800m지점에 최종캠프를 설치하고 5월13일, 무산소로 6명이 드디어 정상의 흰눈을 밟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경희대학교의 박 철암씨에 의해 처음 정찰된 이 산은, 1988년 두차례의 시도 끝에 부산합동대의 최 태식 대원에 의해 북동릉 루트로 등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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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라기리 등반루트 ▶ 북동콜/북동릉 1960년 스위스대에 의해 초등된 루트로서, 50년 프랑스대가 개척한 프렌치콜을 지나 표고 4,000m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북동콜을 지나 비교적 쉽게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초등한 스위스대는 북동콜까지 경비행기로 대원과 물자를 수송해 7,800m에 최종캠프를 설치하고 정상에 올랐다. ▶ 남릉 많은 원정대가 이 루트로 시등하려 했으나 잦은 눈사태로 인해 등반이 좌절되었다. 남벽을 중심으로 많은 변형루트가 있으며, 왼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남릉 루트는 78년 봄, 일본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 남동릉 다울리기리 동쪽 빙하를 통해 정상으로 이어지는 이 루트는 남릉 루트를 초등한 일본대에 의해 같은 해인 78년 가을에 초등되었다. 그들은 총 7개의 캠프 설치를 통해 4명의 대원을 잃는 불운을 겪으며 정상에 도달하였다. ▶ 동벽 북동릉과 남동릉을 경계로 위치한 동벽은 영국과 폴란드 합동대에 의해 80년 봄에 초등되었다. 그들은 마양디빙하를 거슬러 올라 북동콜에 전진캠프를 설치한 뒤 보이테크 쿠르티키 등이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하였다. ▶ 남서릉 88년 가을, 체코팀에 의해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된 루트로서, 남벽을 중심으로 3개의 루트가 초등되었는데, 가장 왼쪽에 위치한 루트가 남서릉이다. ▶ 북면/북서릉(일명 페어루트) 초기 이 산의 등반이 거의 북면에서 이루어진 것을 보면 이 루트가 비교적 쉬운 곳으로 생각되어지기 쉬우나, 표고 7,600m부근의 수직 암벽과 지형이 배모양을 하고 있어 '페어루트(Pear Route)'라고 불리는 이 곳은 대단히 난이도가 높은 곳이다. 54년 아르헨티나대에 의해 8,000m를 최고점으로 거의 등반이 되지 않았으나 82년 가을에 일본대에 의해 결국 초등되었다. ▶ 서벽/북서릉 84년 체코대에 의해 초등되었고, 표고 5,600m부근의 남서쪽 버트레스로 인해 가장 어려운 루트로 꼽히고 있다. 이 곳은 난이도가 높은 수직의 암벽과 오버행, 그리고 경사60°가 넘는 빙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7,600m 이상에서는 페어 루트와 만나고 있다. | |
국외 다울라기리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54 아르헨티나 북벽루트로 8,000m까지 도달하였으나 대원의 사망으로 후퇴. 1960 스위스 다울라기리1봉 북동릉루트를 거쳐 초등정. 1965 스위스 다울라기리 산군 투크체 피크(6,920m) 초등정. 1971 독일 다울라기리 2봉(7,751m) 초등정. 1973 독일 다울라기리 3봉(7,715m) 초등정. 1975 일본 다울라기리 4봉(7,661m) 초등정 후 다울라기리 5봉(7,618m) 연속 초등정. 1979 일본 다울라기리 2봉-3봉-5봉 종주. 1980 영국.폴란드 합동 다울라기리 1봉 동벽 알파인스타일로 초등정. 1981 유고 다울라기리 1봉 남벽-북동릉 알파인 스타일로 종주. 1982 일본 다울라기리 1봉 북동릉 초등후, 겨울철에 다시 등반하여 동계 초등정 기록수립. 1985 스위스 다울라기리 1봉 동계 알파인 스타일 등정. 1990 폴란드 다울라기리 1봉 동벽 신루트 등반, 북동릉 등정. 1995 앙리타 셀파 에베레스트 9회, 초오유와 다울라기리4회 등정. | |
한국 다울라기리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62/가을 경희대산악회 6700m 무명봉 등정, 다훌라기리2봉 정찰. 국내최초로 히말라야 원정대 진출 박철암외 3명 1986/봄 대구 팔공산산악회 다훌라기리2봉(7,751m) 5월 12일 남면으로 김성규 등정후 실종, 셀파 2명 등정. 이돈용외 3명 1986/겨울 경남공고OB산악회 8025m 지점에서 후퇴. 조정술외 4명 1988/가을 부산합동대 11월14일 북동릉루트로 최태식 대원이 셀파 2명과 등정. 이종태외 11명 1995/겨울 개인합동 12월 16일 노멀루트 4캠프에서 폭설로 후퇴. 박영석외 1명 1996/봄 한국 히말라얀 클럽 5월 1일 북동릉으로 엄홍길과 셀파 2명 등정. 고인경외 5명 1997/봄 동국산악회 4월 27일 북동릉으로 박영석, 한왕룡, 셀파1명 등정. 박영석외 3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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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163m 위치 : 네팔 히말라야산맥 중앙부 마나슬루(8,156m)는 네팔 히말라야 가운데 있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의 고봉으로, 주위에 북봉(7,154m), 29호 봉(7,835m), 추렌 히말(7,371m), 서봉(7,541m) 등을 거느리고 그 산군의 주봉으로 군림하고 있다. 일컬어 마나슬루 산군이라고 한다. 마나슬루 산군은 동쪽의 부리간다키(Burhi Gandaki)와 서쪽의 마르산디(Marsyandi)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은 두강의 원류가 라르캬라(Larkya La)고개에 연결되어 있으며 북쪽의 티벳국경을 이룬다. 마나슬루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의 'Manasa' 즉 '마음, 정신'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래서 대략 '지혜(Intrllect)의 산' 또는 '정신(Soul)이 깃든 산' 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그 전에는 정상 부근이 평평해 보인다 하여 평지의 뜻을 지닌 'Tang'을 붙여 Kutan Ⅰ이라고 했었다. 마나슬루 산군의 최초의 등반은 네팔의 개국 후인 1950년에 시작되었다. 같은 해 5월부터 10월에 걸쳐서 영국의 틸만(H.W. Tilman)대가 처음으로 이 산군에 접근했다. 그들은 마르산디(Marsyandi)를 경유해서 안나프르나Ⅳ봉을 북면에서 시등한 뒤, 그 북부의 소산군과 마나슬루의 북서면을 답사했고, 히말추리(Himalxhuli)의 서남쪽 산등성이에 도달하는 등반로를 찾아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주자가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산악회는 아이거 동산릉 초등자인 마끼유꼬를 위원장으로 히말라야 위원회를 구성하여 1952년 가을 1차 현지 정찰대를 파견했다. 정찰대는 고소 적응을 위한 훈련을 거치면서 북녘으로 사마마을에 베이스 캠프를 정하고 두 대원과 셀파 두 사람이 4일분의 식량을 가지고 정찰을 떠났다. 그런데 이틀 후 나이케(Naike)콜 앞에서 한명의 대원이 크레바스에 빠져 중상을 입었다. 이로써 노스 콜까지 가보려던 계획을 바꾸어 동남면을 돌아보았으나 그곳은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결국 마나슬루 등로는 나이케 콜을 경유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5월9일 이마니시와 사다 캘첸은 08시에 최종캠프를 뒤로 하며 바람과 구름 한점없는 광활한 설원을 걸어올라 갔다. 12시 30분 그들은 마침내 세모꼴의 암봉에 도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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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슬루 등반루트 ▶ 북동릉 1956년 일본원정대에 의해 초등된 루트로, 사마마을에서 출발하여 북동릿지와 노스콜(N,Col)을 연결하여 정상에 이르게되며 정상에 이르는 노말루트가 되었다. ▶ 북서릉 1971년 일본 동경시 산악연먕 원정대가 하드루트인 북서벽으로 올랐다. 이곳은 서쪽의 부르딘콜라(Burdin Khola)부근의 마나슬루 베이스 캠프에서 접근하게 된다. ▶ 남벽 1973년 라인홀트 메스너가 남벽으로 등정하였다. ▶ 동릉 1974년 일본 여성 등반대에 의해 시도된 루트로 사마마을에서 시작하여 동쪽 릿지로 붙어 6,000m지점에서 노말루트에 합류하게 된다. | |
국외 마나슬루 등반사 년도/시즌 국가 결과 1956/봄 일본 5월 9일 북동면으로 초등정 1972/봄 오스트리아 남벽으로 초등. 1974/ 일본 여성대 여성 최초 8천미터급 등정 1981/ 프랑스 남벽으로 초등 1984/겨울 폴란드 마나슬루 동계 초등정 1991 구소련 마나슬루 동릉-북동면 종주 | |
한국 마나슬루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71/봄 전국합동 7600m 도달, 김기섭 대원 추락사망으로 등반포기 김호섭외 6명 1972/봄 전국합동 7250m 도달, 눈사태로 김호섭, 송준행, 오세근, 박창희, 야스히사와 셀파 10명 사망으로 등반포기 김정섭외 10명 1976/봄 전국합동 7700m 도달, 악천후로 등반포기 강신호외 13명 1980/봄 동국산악회 4월 28일 서동환외 셀파 2명 등정 이인정외 6명 1983/가을 제천산악회 10월 22일 허영호대원 단독등정 송만배외 2명 1992/가을 조선대산악회 9월 25일 이용철 대원과 셀파 1명 등정 박태규외 10명 1996/가을 개인합동 9월 22일 엄홍길 대원과 셀파 1명 등정 엄홍길외 6명 1997/겨울 한국대학산악연맹 7100m 지점에서 후퇴 이인정외 6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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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201m 위치 : 네팔 히말라야 '초오유'라는 산이름은 산스크리트(Sanscrit)어의 복합어로서 '초'는 신성(神性)을 뜻하는 말이며 '오'는 여성을 뜻하는 어미(語尾)로, '초오'는 여신(女神)이라는 뜻이다. '오유'의 '유'는 터키옥(玉)을 의미한다. 즉 '초오유'는 '터키보석의 여신'또는 '청록여신이 거처하는 산'이라는 뜻이 된다. 보통 지도상에는 8,153m로 표기되어 있으나 재측량 결과 8,201로 밝혀졌다. 쿰부히말의 고봉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인간에게 정상을 허락한 산은 에베레스트였다. 그래서 초오유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1954년 오스트리아 원정대(대장 : Herbert Tichy)에 의하여 초등정 되었다. 이 산의 초등정 기록 중에서 특이한 사항은 등반대의 총인원이 3명에 불과했다는 것과 최소의 중량(약 10Ton)으로 무산소 등반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등반은 당시에 손꼽히던 셀파인 파산 다와 라나(P.D. Lana)의 공로가 컷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초등정한 기록을 보면, 카트만두에서 캐러반을 시작한 지 18일 후인 9월 23일 남체에 도착했다. 이후에 보테 코시(Bhote Kosi)를 거슬러 올라 낭파 빙하를 따라 넘어 낭파 라에 도착하여 티벳쪽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다. 빙하를 타고 초오유 서릉 아래 5,800m에 제 1캠프, 제 2 캠프(6,200m), 제 3캠프(6,600m)를 세웠고, 영국의 쉽튼(Shipton)대가 전해에 에베레스트 등정 목적으로 올라 와서 등반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던 아이스 폴(,Ice Fall) 지대 바로 위쪽 7,00m에 제 4캠프를 설치하고 10월 19일 오전 6시에 정상 공격에 나서 오후 3시, 그들은 정상의 설원을 밟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가을에 울산.서울 합동대에 의해서 초등정되었다. 이때 초오유 등정후 10월 2일 시샤팡마(8027m) 중앙봉에 등정하여 국내최초로 8000m봉 연속등정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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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오유 등반루트 ▶ 남동릉 동벽 고줌바(Ngozumba) 빙하를 따라 올라 룸삼파(Lungsampa) 빙하를 통해 접근하거나 티벳의 갸브라(Gyabra) 빙하를 통해서 접근한다. 남동릉은 1985년에 풀란드 원정대에 의해 동계 초등되었고, 동벽은 1978년 일본 원정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 서릉 낭파(,Nangpa) 빙하를 건너 쿰부 라(Khumbu La) 국경선을 넘어서 등반이 이루어 진다. 이 루트가 초오유의 일반적인 루트이다. ▶ 북동릉 티벳에서 파릉(Palung) 빙하를 거쳐 오르는 것과 룸삼파 빙하를 통해서 초오유와 고줌바 캉(Ngojumba Kang) Ⅰ봉을 연결하는 능선을 올라 등반하는 것이 있다. 가장 등반이 용이한 루트는 낭파라 국경을 넘어서거나, 티벳의 갸브라 빙하를 통한 서릉 루트이다. 그러나 몬순기가 지나고 나면 적설량이 많아져서 하나의 난관으로 볼 수 있다. 가장 난이도가 높고 아직까지 미등으로 남아 있는 루트는 루낙(Lunak)의 오른쪽 섬드(Sumnd) 빙하를 따라 올라 초위(Cho Aui, 7,352m)와 초오유를 잇는 능선 사면을 통한 루트이다. | |
국외 초오유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52 영국 북서면을 통해 6850m 지점도달. 1954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대(대장 디피) 무산소 초등정. 최초의 포스트 몬순기 등정. 1985 스페인 서릉으로 대원7명 전원등정. 1985 폴란드.미국 남동릉 단념. 서릉 대원 2명 등정. 1987 스페인 초오유 서북서릉 단독 초등정. 1987 일본 일본대(대장 다까하시) 초오유 정상에서 파라판트 하강. 1988 스페인 스페인의 가리도 초오유 동계 단독초등정. 1990 폴란드.스위스 합동대 초오유 남서벽-서릉 종주후 시샤팡마 남서벽 -중앙봉 왕복. 1991 구소련 초오유 동릉 초등정. 1993 폴란드국제대 초오유 서릉 직등 바리에이션 루트로 등정. 1996 스페인.오스트리아 합동대 초오유 북릉 알파인스타일 초등. | |
한국 초오유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89/봄 에델바이스산악회 남면 제 2캠프 6800m 지점에서 후퇴 지윤수외 5명 1989/가을 대구.경북산악연맹 9월2일 서면루트로 이동연, 홍경표대원이 셀파 1명과 함께 등정 주장. 홍경표 양심선언으로 미등정 결론 박상열외 10명 1989/겨울 삼천포산악회 남동벽으로 7900m 지점까지 진출했으나 12월25일 셀파 추락사로 후퇴. 벨기에 팀과 분쟁. 정영환외 6명 1991/가을 한국 히말라얀클럽 10월 23일 초오유 8100m에서 후퇴한 후 시샤팡마로 옮겨 등반했으나 악천후로 단념. 박철암외 10명 1992/가을 울산.서울합동대 9월20일 남선우, 김영태 대원과 셀파 2명 국내 초등정 김관준외7명 1993/봄 거봉산악회 9월11일 엄홍길, 민경태, 최병수 등정 강태선외 9명 1994/가을 전국합동 9월27일 박영석, 셀파 1명과 함께 등정. 9월28일 한왕룡 대원과 한상국, 차진철 등정. 박영석외 12명 1996/가을 양산마스터즈알파인클럽 9월23일 서면루트로 이상배, 박정헌, 김영기, 변미정 등정. 변미정 대원은 국내최초로 8000m급 무산소 등정의 기록수립. 이상배외 6명 1997/봄 개인합동 5월18일 서면루트로 허영호, 박쾌돈, 임명렬 등정. 허영호외 3명 1997/가을 전남대산악회 9월 21일 박헌주, 김성석과 셀파 1명 등정 이정옥외 7명 1997/가을 성대산악회 9월22일 유석재 등정. 28일 박명흠, 좌우진, 유석재, 김경태, 곽명근 등 전원등정 박명흠외 4명 1997/가을 부천산악회 오준영, 박영석 등정. 박영석외 2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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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8,091m 위치 : 네팔 히말라야칼리 간다키와마르산디 중간지점 네팔의 중앙봉에 위치한 안나푸르나 산군은 서쪽으로 칼리 간다키(Kaligandaki)강과 동쪽으로 마르산디(Marsiandi) 계곡까지 7,000∼8,000m급의 연봉들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는 곳이며, 주위에는 닐기리봉(Nilgiri, 6,940m), 틸리쵸 피크(Tilitso Peak, 7,134m), 강가푸르나(Gangapurna, 7,455m), 마차푸차레(Machhapuchhare, 6,933m) 등 7,000m급 이상 8개의 위성봉을 거느리고 하나의 거대한 산군을 형성하고 있다. 안나푸르나란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 또는 '제공자'라고 일컬어지며 인류에 의해 최초로 등정된 8,000m 이상의 고봉이라 하여 'Premier 8,000m'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1949년은 네팔이 오랜 쇄국정책을 써오다가 2차대전 후 외부세계의 추세에 밀려 비로소 문호를 개방하게 된 해이다. 이에 세계 각국의 원정대가 히말라야로 몰리게 되고 그 선두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모리스 엘조그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의 안나푸르나 등정이다. 초등이후 40년이 지난 현재까지 안나푸르나에는 합계 10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히말라야 전성기를 맞고 있으나 안나푸르나 특유의 기상변동과 잦은 눈사태로 사고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84년 부터 노말 루트를 통한 등정을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채 비운의 산으로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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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등반루트 ▶ 북면 1950년 봄 프랑스대는 북빙하의 기부 4,570m 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치고, 북빙하의 아이스폴(Ice Fall)밑으로 이동하여 낫모양의 절벽밑에서 동북쪽으로 붙어 정상에 이르는 루트를 취하게 된다. 정상 가까이에서 설원이 록밴드로 변하고 꿀르와르가 나타나 체력소모가 요구된다. 이들은 산소없이 능선을 오르면서 또한 하산 하면서 몰아치는 강풍에 시달려 거의 빈사상태였지만 모든 것을 이겨냄으로써 산악인의 초인적 의지를 보여 주었다. ▶ 남벽 1970년 봄 영국대의 크리스보닝턴이 안나푸르나의 최난루트인 남벽을 올랐다. 4,500m의 로프가 사용되고 우측능선을 따라 새로운 등반스타일을 탄생시켰다. ▶ 북동 버트레스와 더치립 1974년 봄 앙글라다가 이끈 스페인대가 북동 버트레스를 지나 동봉(8,026m)을 초등했고 1977년 네덜란드 원정대가 낫모양의 빙하지대의 왼쪽으로 북면에 새로운 루트를 내어 '더치립'(Dutch Rib)라고 부른다. 1978년 미국의 여성원정대가 더치립으로 대원 및 셀파 2명이 정상에 섰으나 영국인 1명과 미국인 1명이 사망했다. ▶ 남벽 요하네바오로와 중앙버트레스 1981년 봄에는 폴란드대의 자파스키(R. Szafirskis)하의 남벽 우측기둥 등정이 있었고 가을에 일본의 예티동인 원정대가 영국대의 남벽루트 등정에 성공하게 되었다. 1984년 가을 스위스원정대의 에라드 로레탕이 동릉트래바스에 성공하고 동봉에 올라 차례로 중앙봉과 주봉을 알파인 스타일로 트래바스 등반하고 더치립으로 하산했다. ▶ 북서벽 1985년 라인홀트 메스너(R. Messner)가 카머랜더(H. Kammerlander)와 함께 미등정 루트이던 북서벽으로 올랐으며, 1988년 가을 폴란드대의 예지 쿠르츠카가 남동버트레스를 통해 정상에 섰다. 이전 1987년 2월 3일에 그는 북면 현수빙하로 동계 초등정을 이룬바 있다. | |
국외 안나푸르나 등반사 년도 국가 결과 1950 프랑스 대장 모리스 엘조그가 이끄는 프랑스대가 안나푸르나 초등정. 인류 최초의 8천m급 산 등정. 히말라야 8천m급 초등정시대(일명 황금시대)개막 1970 영국 대장 보닝턴이 이끄는 영국대가 안나푸르나 남벽 초등. 8천미터급 산에서의 벽등반 시대 개막. 1974 스페인 스페인대 안나푸르나 동봉(8,020m) 초등정. 1977 네덜란드 안나푸르나 북면 신루트 개척, 더치 립으로 명명. 1981 폴란드 안나푸르나 남벽 우측 신루트 초등정. 1981 일본 안나푸르나 남벽 중앙 신루트 초등정. 1984 스페인 안나푸르나 남벽 신루트 알파인 스타일 등정. 1987 폴란드 예지 쿠쿠츠카 안나푸르나 동계등정(13번째 8천미터급 등정). 1990 이탈리아 가졸라 안나푸르나 1봉 단독 등정. 1992 프랑스 피에르 베긴, 안나푸르나 남벽 신루트 개척중 추락사. | |
한국 안나푸르나 원정사 년도/시즌 주최 결과 원정대원 1975/봄 한국산악회 남벽 5300m까지 정찰 등반 손경석외 6명 1978/봄 한국산악회 안나푸르나 4봉(7525m) 4월 23일 북서릉으로 유동욱 대원외 셀파 2명 등정. 이돈용외 3명 1983/가을 은벽산악회 7050m 도달 정양근외 셀파 2명 눈사태로 사망. 안창열 외 8명 1984/겨울 은벽산악회 12월7일 북면루트로 김영자외 셀파 4명, 동계초등정 주장(의혹제기). 하산중 셀파 2명 추락사 안창열외 4명 1989/겨울 대한산악연맹 장봉완 대원과 지영태 대원이 4캠프 지점인 7300m에서 후퇴. 장봉완외 13명 1990/가을 어센트 산악회 남벽에 3캠프(6100m) 설치했으나 캠프2의 눈사태로 6,500m에서 단념. 박봉래외 11명 1991/가을 인천시산악연맹 북면 더치립으로 등반, 9월 19일 이상구, 이석주대원과 셀파 4인 7,500m지점에서 눈사태 사망. 고용철외 11명 1994/가을 경남연맹 10월 10일 남벽루트로 박정헌과 셀파 4명 등정. 박주환외 11명 1994/겨울 대구지봉산악회 12월 2일 눈사태로 등반 포기, 하행 카라반 중 변준석 대원 실족사. 김특희외 7명 1996/봄 한국 히말라얀 클럽 5월 3일 북동 버트레스토 박영석, 김헌상과 셀파 2명 등정. 고인경외 5명 1996/겨울 개인합동 12월 18일 북면 노멀루트 6900m에서 단념. 오인환외 4명 1997/봄 대한산악연맹 셀파 1명 사망후 단념. 강태선외 6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