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
슈뢰딩거 고양이 외 2편
심 영 일
골목 끝으로 길이 걸어간다
허공에 쪽창을 남기고 집은 떠났지만
액자 속 남자는 창을 연다
달을 품은 적 없는 창의 소름이 서로 부둥켜 틀을 적실 때마다 가슴 한쪽 흘러간다
이곳에선 누구나 젖게 된다
말라있다 해도 얼룩의 크기를 감추지 못해 웃게 된다
넌 내가 열고 나온 서랍 속 세상이
궁금했고
쪽창으로 들어온 새의 날갯짓을 난 사랑해야 했다
불을 켜면 담장을 밟고 내려오는 창
그림자에 앉아 발등을 핥는다
행인들은 발을 굴러 야성을 간 보지만 두 눈에 잠긴 연민을 읽진 못했다
벼랑을 타고 오른 길이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빌린 시간을 발라낸 자들은 먼지로 세운 몸뚱이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네모진 달에 의심이 자라면 커튼을 내린다
쪽창에 실려 떠나는 건 세상을 비우는 일
골목이 사라지면 몸을 접어 어둠이 된다
서랍 속에도 골목이 있다
두고 온 창문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
잃은 것을 모으는 재주가 있는지 집을 놓친 창문이 멀리 흘러온다
커튼 너머 흔들리는 사내
어디에서 마주치든 우린 낯설다
세탁기 앞에 무릎을 끌어안고
겉과 겉이 사랑을 한다
중력 잃은 공간에서 하나가 된다
상상할 수 없는 자세로 뒤엉키는 내 겉과 네 겉
탈수시킨 바깥의 그늘에서 우린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서로를 축으로 공전할 뿐 각자의 세상을 범하진 않았다
속일 것도 속을 것도 남아있지 않은 속과 속은 투명하다
엉킨 겉을 꺼내며 옆집 남자의 허벅지를 생각한다
두 눈에 잠긴 욕심을 낚아 올려
가장 은밀한 속을 내주고 싶은 날
눈이 내린다
흰 깃을 품고 있으면서 구름은 왜 먹구름일까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은 오후 다섯 시
관음을 앓고 있다
네가 돌아오지 않는 저녁이 계속되길 바란다
딸꾹!
겉들의 체크아웃
발자국 한 쌍이 가슴을 밟고 간다
한 시절, 도둑맞았다
지미처럼 살아가기
지미 카터가 아비라고 우겼어요
말도 아니라는 소리, 휘파람 소리
지미가 엄마지 아빠냐는 소리
그렁그렁 수채화로 번지던 풍경
가다 서던 바람, 멀리서 걸어오던 학교, 구름은 머리 위로 모여들었죠
그럴지도 모를 일, 그럴수도 있는 일
우물 밖은 알 수 없는 세상
지미의 혀가 심장을 핥을 때마다 흔들렸어요
소똥 질펀한 바닥을 피해 지미는
지미와 함께 유년 너머로 사라졌죠
어제는 달렸어요
꼬리를 감출 수 없어 무대가 좁았죠
술을 따르며 지미를 씹었어요
지미는 늙은 지미를 만나 지미와 잘살고 있다네요
어린 지미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만만해서 우기는 게 익숙했죠 받아들임도 너그러웠죠
누구도 지미의 소식을 몰랐지만
밤은 쵸콜렛 입은 치즈케잌
밤새 녹이느라 처음 본 여자와 편 먹었어요
다 삼키고 난 세상은 훤하네요
샤워를 했는데도 개운치 않은 당신
우물 밖으로 나가면 다시 우물
갇혀 있는 내가 갇혀 있는 당신에게 우기죠
오늘은 첫날, 난 매일 태어나요
내 아비는 전능하신 어둠이어서 한낱 인간인 지미와 비할 바 없어요
칫솔을 물고 있는 당신을 보며 지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가 삶을 속일지라도 난 다짐하죠
바람의 속살에 가슴을 내줄지라도
석양을 담으려 소주병을 깔지라도
당신을 속이고 말거야
생은 사기죠, 망설임조차 사기죠
*푸시킨 인용
어제는 현재진행형
오랫동안 시를 잊고 살았습니다. 친구들보다 먼저 세상에 나오면서, 살아가는 일이 우선이 되었고 삶을 위로해 주는 것이, 공허하지만 세상엔 시 말고도 많았습니다. 술에 취해 툇마루에 드러누운 아버지의 희망가를 들으며 그간 끄적였던 습작들을 마당 한 편 소각장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이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단편을 쓰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태워버린 시가 문장 사이를 서성거렸습니다. 태워도 버려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오랜 시간 주변을 서성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상으로 들어온 시는 무겁고 희미했습니다. 잉태와 난산을 반복하며 태어난 시들은 어째서 부끄러운 것일까요. 내가 낳은 시에는 습작을 소각하던 젊은 날의 내가 여전히 철들지 못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인 건 아닐까요.
SNS를 통해 알게 된 기성 시인들과 평론가, 시를 사랑하는 문인들께 우선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읽고 쓰고 배우며 모난 시어들을 조탁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시를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시와경계》에 감사드립니다. 훗날 돌아본 오늘이 부끄럽지 않게 좋은 시를 쓰는데 정진하겠습니다. 큰 격려와 응원임을 잊지 않고 시 앞에 더욱 겸손한 자세를 갖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당선작>
환상지 외 2편
은 이 정
카페 사장, 당근이 되어 꽂혀 있어요
주문마다 흙을 터느라 정신이 없네요
더 이상 쿠폰을 발행하지 않습니다 원자재가 인상돼 제 몸을 갈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메뉴는
당근 오픈 샌드위치
차에서 내린 것들은 병색이 완연합니다
통째 실려 온 호밀빵의 진단명을 확인합니다
버려진 쿠폰처럼 고양이 하품이 짧고도 길어요
차라리 당근마켓에 올려 주세요
당근 위아래로 몰랑한 벽이 가로막자
수염처럼 늘어진 오후가
붉은 등을 두드리며 그림자를 남겨요
찬바람이 몸에 해로워도 물은 조금 뿌려 주고요 터가 좋으면 당근도 달다네요
한쪽 팔로 분주한 당근 옆에서 잠이 빠져나가요
올라가지 않는 오른팔 대신
왼손의 시간이 올 줄 알았는데 지켜보는 삶에는
기회조차 오지 않습니다
당근 뿌리에 묻어 이주한 흙은
뽑힌 자리를 기억하지도 어긋나지도 않아요
오래 한곳에 머물러 고양이 울음이 되어야 해요
땅속을 걸어야 한다며 부츠를 주문할 때도
왼팔은 외면합니다 땅 위를 비틀대면서 땅속은 어찌 걸을까요 흙을 털기 전에
당근에 물어보면 제대로 답을 해줄까요
신선한 팔을 들어 올려 없는 잊힌 날씨를 가름합니다
카페 사장을 갈아 넣은 샌드위치는 먹을 만했어요
시신이 제일 고생이죠
노르웨이에서 오메가-3를 직구했어요
서둘러 상자를 열었더니 등 푸른 비린내 대신
잘 포장된 시신 세 구가 들어 있지 뭐예요
원산지 인증 도장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어요
방부처리도 깔끔해 택배기사가 기절도 없이 내려 주었지요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북해를 떠돌다 불시착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답니다
나야 반품하면 그만이지만
시신이 사라진 집은 또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생각해보세요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에게 작별 키스를 하려는데
관에 오메가-3가 들어 있어 봐요
청하지도 않은 환장이 벌떡 일어서겠지요
중간에 사이즈가 달라져도 문제가 안 된다니요
3명이 나란한 죽음도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시신이 국경을 넘는 사이
주변의 전쟁에 눈 감은 사이
누군가 슬쩍 바꿔치기한 것은 아닐까요
폭격의 사이렌이 울리면
바닷물도 울음을 멈추고 땅 밑으로 스며든다는데
이 세상에 중립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연안일까요
아무리 송장을 확인해도
오메가-3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네요
늘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또 다른 가족을 선물할 순 없었어요 곡기를 줄인 할머니의 침묵이 냉전체제처럼 길어집니다 하긴 졸지에 타국에 끌려온 시신이 제일 고생이죠
사라진 시신을 찾기는 할까요
발각되기 전에 돌려보내야 할까요
간밤에 비의 비린내가 창문을 두드려
서둘러 택배 상자에 고모를 넣고 밀봉했어요
제대로 송장 확인도 하지 않고 경계를 넘겠지요
할머니를 발견한 오메가-3는
고요히 장사를 지내주겠지요
멸치볶음
서로를 향해
떼로 몰려갈 때는 앞이 안 보여도
달리는 이유 분명하다 굳을지언정
순간 문을 닫을지언정 전진
또 낮은 포복
적 아닌 적으로 의도된, 속셈은
없는 게 분명해도
판은 뒤집히고 아군은 언제나 미미하지만
그나마 붙어 있어야 살아남을
확률 높아지는
기름 총알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뛰어야만 사는 작디작은 것들
불러주지 않아도 숨소리
기억해야 하는
그물에서 바싹 말라버릴 운명을
뜨거운 물에 데치고 볶다가
가여울 것도 귀여울 것도 없는 이 많은
삶 너머의
나를 불러주는 소리조차 없음에 눈을 감고
사람들 기름지게 넘실 울렁대는 골목에서도
홀로 뻣뻣하게 굳어가는
뼈가 있어도 대가리와 꼬리밖에 안 보이는
피아도 구분되지 않는
앞도 보지 않고 보이지도 않고
서로 우르르 겹쳐 온몸이 굳어갈 때
잘 익은 시 하나를 기다리는
지글대는 여름날, 교차로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신호등은 파란불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장 난 신호 대신 눈치껏 길을 건너야 했습니다. 깜빡이는 빨간 신호에 한참동안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저건 고온의 온도계! 깊이 꽂아 땅속 열기를 재는. 신호등은 파란불로 넘어가지 않는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열을 가두어 음식을 하면서 뭔가가 익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때로는 오븐에 로스팅을 합니다. 전문가는 음식 깊은 곳에 온도계를 꽂으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익었는지 알아보기엔 그만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글을 마주하고 앉으면 무엇을 어떻게 익혀야 할지, 익고는 있는지 무수한 생각들이 밀가루처럼 잔뜩 묻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때론 설컹거리는 반죽이 될까 봐, 그래서 먹지도 버리지도 못한다면. 늘 두려웠습니다. 시의 심장에 긴 온도계를 찔러 둬야 할지, 타이머를 매달아야 할지 서성이고 있을 찰나 《시와경계》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 시를 읽어주신 《시와경계》 심사위원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잠깐 숨을 돌리며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동국대 문예 대학원 박형준 교수님, 박판식 교수님, 휘민 교수님, 박소란 교수님 감사합니다. 월요일의 선생님, 덕분에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학우들의 합평 고맙습니다. 주말마다 글쓰기 좋은 카페로 데리고 다닌 남편과 가족, 친구들, 모두 힘이 되었습니다.
당선작
하네스 외 2편
정 수 월
푸들이 모빌을 보며
눈동자를 돌리네. 눈이 아리도록
자세가 움츠리면 마음도 작아질까. 눈을 깜빡이며 꼬리를 흔드네. 영악한 녀석은 건조대에 담겨 있는 내 런닝을 꽉 물고 있네. 최소한의 간식은 확보한 셈. 천장에 매달린 모빌 따라 움직이면 이완은 습관, 냉각이 필요해.
이제 협상의 시간
내가 푸들에게 슬픔을 안긴 건 아닌데,
녀석이 짖어대네.
나는 간식을 녀석에게 주는 순간 런닝을 재빨리 빼앗지요.
덩치답지 않게 눈동자가 붉게 빛나는 푸들. 어깨는 펴고 가슴은 열고 깍지를 끼고 아래로 내리고 동글동글 뱅글뱅글 놀고 있네.
꼬릴 흔드네.
높은 곳이 익숙한 나도 눈동자를 돌리네. 오래 보고 있으면 내가 푸들인지, 머리가 빙빙 도네. 나는 먹지 않아도 짖어대고 부름 받지 않아도 울고 있어요.
모빌은 스트레칭을 안내해요. 나와 협상하는 버릇이 생긴 녀석. 간식과 바꿔 먹는 재미가 쏠쏠하지. 런닝을 물고 달리니 내 상체가 구겨지며 아려온다. 푸들의 튀어나온 주둥이가 물어뜯는 완력 얼어붙은 빨래처럼 딱딱해요. 나는 마음이 움츠릴 땐 몸부터 펴요.
질주하는 푸들
구겨지는 내 상체
반려견 덕분에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이 생겨요. 자세만 바뀌어도 마음이 달라져요.
나는 휴대전화 내려놓고 모빌을 그려요. 햇살에 그림자가 사라졌어요.
일어나세요.
다리 한 번 뻗어보세요. 나는 모빌을 보며 수군대고 있지.
푸들이 내게 슬픔을 안긴 건 아닌데, 나는 짖어대네.
런닝은 또다시 세탁 박스에 담긴다. 나는 집을 나서며 표정을 준비해요. 내 몸이 욱신거리네. 이제 푸들이 외출해요. 하네스를 한 나를 끌고
소문
꽃대에 혈이 돋았다
소문과 험담에
심장이 멈출 것 같다
불길하고 급작스러운 소식에
누가 볼까
너의 가녀린 몸짓
숨이 가빠진다
나는 흘러간다
문득 발길에 닿는 꽃
가장 낮은 곳에
움츠리고 있는 꽃
개울물 소리 들리고
사방에서 소문이 모여드는
모퉁이
노을이 질 때까지
귓속말은 계속되고
너는 반항 없이
눈시울 붉히고 서 있다
말할 힘마저 없는 너
자꾸만
내 가슴 때리는 제비꽃
재개발
바깥 풍경이 보이는 창가에
그녀는 즐겨 앉았지
닭과 고양이가 보이는
반려견이 불안해하거나 짖거나
거미는 집을 크게 만들어
나에게 조짐을 알려주었지
날씨에 따라
그녀의 색조와 앉은 자리가 달랐네
찻잔을 저어봐요
빗소리가 풀어져요
누굴 부르는 소리 들리세요
빗소리에 날씨와 음료가 달라지는 찻집
반려견과 고양이와 닭은
풍경 밖으로 사라졌네
자릴 채우고 또 자릴 채우던
그 보고 싶던 얼굴들
빗물에 고인 슬픔
이제 다 떠나가고
인부 소리만 들리는 자리
너와 내가 흐르네
기억을 저어봐요
창과 모든 게 지워졌지만
아직도
갈전천은 내 맘속에 흐르고 있네
삶을 돌아보는 계기의 ‘시 쓰기’
먼지처럼 흩어지는 수많은 파지들. 시는 내게 언제나 그리움의 가파른 언덕이었습니다. 다가서면 더 멀리 달아나 버려 때론 난감한 적이 많았지만, 내 유일한 삶의 이유이었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남강에서 시작된 바람인 듯, 그 바람이 힘겹게 월아산을 넘을 때쯤 가을의 향기와 함께 기쁜 소식이 실려 왔습니다. 아니, 아찔한 기별이었습니다.
“누구나 만약에 시인이 되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첫발은 전면적으로 자기 자신을 샅샅이 알아내는 데 있다”라는 글을 본 적 있습니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내 시의 궤적을 살며시 뒤척여 봅니다. 다시 한번 아찔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운영해 오던 찻집을 접었습니다. 정들었던 반려묘, 반려견마저 잠시 거리를 두었습니다. 첫발을 제대로 짚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 문우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합평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의 씨앗이 발아하는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식구로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지에 누가 되지 않도록 갑절로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시와경계》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격려와 용기를 아낌없이 던져주신 지도 선생님과 문우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평>
이전과 다른 질과 폭을 지닌 목소리 확보
신인 등장의 가장 큰 덕목의 하나는 두말없이 새로움이다. 이전의 선배문학인들과 다른 감정의 질과 사상의 폭과 깊이를 지닌 자기만의 목소리 확보가 필수적이다. 흔히 착각하기 쉽지만, 그러기에 서정시(Poesie)는 한낱 여기餘技로 정서적 그리움의 환기나 주관적 감정의 고양을 위한 자기만족 내지 취미활동일 수 없다. 만일 거기에 그친다면, 우리들의 모든 시작詩作 행위는 기껏해야 날마다 자신들이 체험한 사건이나 느낌 등을 적어가는 일기 쓰기 범주와 다를 바 없다. 특히 그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들의 경우, 제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엔 수사적이고 언어적인 차원의 표피적인 새로움 또는 겉멋에 그치기 십상이다.
그런 만큼 한 편의 시는 언어의 배치에 의해 의미를 포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환경과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존재의 생기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 곁에 집약시켜 머무르게 하는 그 어떤 세계의 전개다. 설령 물리학적으로 설명된다고 할지라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문제를 처음부터 품고 있다. 왜 ‘저것’ 아니고 ‘이것’, ‘저기’가 ‘여기’에 있는가를 묻고 대답하는 존재의 지리학이자 존재론이 모든 새로운 시의 출발점이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꾸준히 시의 자리를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시와경계》의 이번 신인상 수상작들이 여기에 부합한다고는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세 명의 시인들을 한꺼번에 내보내는 데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공통적으로 이들의 작품에서 자신들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유의 성실성과 더불어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의 의미에 대한 치열한 질문이 개입되어 있다. 특히 ‘새로움’을 빙자한 당대의 시적 유행 또는 또 다른 상투성의 덫에 걸리지 않은 채, 묵묵히 시의 길을 걸어온 자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적 정직성이 확인된다.
먼저 정수월의 「하네스」외 2편이 여기에 해당한다. 얼핏 소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대지와 세계, 사물과 언어가 서로 다르면서도 결합되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풍경’이나 ‘조짐’(「재개발」)을 놓치지 않고 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겉도는 타인들의 무수한 ‘소문’과 ‘험담’에 ‘말할 힘’을 잃은 상황 속에도 제 ‘가슴’을 때리는 ‘제비꽃’(「소문」)과 같은 현실의 사물과의 만남을 위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반려견’과 ‘모빌’과 ‘나’의 관계처럼 ‘자세만 바꿔도 마음이 달라’(「하네스)」지는, 그러나 그 근본에서 일치하는 인간 존재의 구조적 계기에 주목하고 있다.
은이정의 「환상지」외 2편은 ‘속셈(내심)’과 다른 ‘딴청’의 화법과 행위를 통해 기존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과 거리를 두는, ‘당근’에 대한 기존의 의미나 정보의 해체를 통해 거기에 묻어 있는 ‘흙’의 ‘터’ 또는 ‘자리’(「환상지」)를 더듬어보는 아이러니적 기법이 돋보인다. 정작 ‘직구’한 ‘노르웨’산 ‘오메가-3’ 대신 일견 주제와 무관해 보이는 반어적 발화를 통해, 갈등으로 얼룩진 ‘세상’의 ‘중립’이나 ‘냉전체제’(「시신이 제일 고생이죠」)의 극복과 깊이와 높이를 추구하고 있다. 아무도 ‘멸치’를 ‘멸치’라고 ‘불러주는 소리조차 없’는 의미의 공화空化/空話를 통해, 그러나 ‘붙어 있’거나 ‘뛰어야만 사는 작디작은 것들’(「멸치볶음」)의 존재를 성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양자물리학의 가장 큰 역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심영일의 「슈뢰딩거 고양이」외 2편은 살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은 그것처럼 ‘(쪽)창’과 ‘집’, ‘젖음’과 ‘마름’, ‘오름’과 ‘떨어짐’「슈뢰딩거 고양이」)과 같은 상태들의 겹침. ‘서로의 축으로 공존할 뿐 각자의 세상을 범하지 않’은 채 공존하는 ‘겉’과 ‘속’과 같은 두 개의 중력장 또는 두 시-공간의 구부러짐(「세탁기 앞에 무릎을 끌어 안고」)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지미’를 ‘아비라고 우’길수도 ‘엄마’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언어적 미끄러짐이 보여주듯이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생’(「지미처럼 살아가기」)’의 신비와 실재를 감각적 현실과 성공적으로 관계 맺게 하고 있다.
끝으로 시인이 여타 인간 존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지구라는 행성 속에 그 어떤 의미를 새기는 존재는 아닐 것인가. 특히 그렇다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사태들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것들이 바로 그 자신들의 실존을 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결코 적지 않은 응모자들과 수상자들에게 격려와 축하의 말을 전하기 전에 당부하고 싶은 말 가운데 하나다. 바로 그 질문만이 그 어디서든 근본적으로 답이 없는 시세계 반복된 질문이 낡지 않는, 진정으로 새로운 한국시의 출발점이 되리라고.
심사위원 임동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