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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량과 단락장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산부인과 병동 또는 집에서 아내와 보낸 상황, 그리고 일터에서의 상황, 이렇게 두 상황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서사를 이끌었다. 줄거리는 단순했다. 아내의 뱃속에서 아기가 커가는 동안 일터에서 남편이자 주인공이 책임감을 갖고 현실적으로 일하며 아내를 위해서 살아간다. 나무라는 상징물이 나오고 그것을 완성시켜나며 공허한 본질을 채우려는 주인공의 마음이 느껴진다.
2) 놀라운 점은 마치 최근에 임신한 아내와 산부인과에 수 차례 방문했던 일이 정말 있었던 일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대화와 상황의 묘사가 현실적이었다. 포장용기 물류창고를 관리하는 일터의 현장감 또한 직접 그곳에서 단기간이라도 일해본 경험이 있는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두 방향의 서사를 현실적으로 혹은 초현실적으로 이끌며 결국 아내를 위한 나무 의자를 만들어낸다.
3) 일터에서의 상황이 극단적으로 느껴져서 읽으면서 피곤했지만, 산부인과에서 몇 차례 아내의 손을 잡는 부분이 그 피로감이 풀리는 기분이 느껴져 좋았다. 아내와 손을 잡는 부분에서 손의 온기가 느껴졌다.
- 말을 하자면
1) 분량이 조금 아쉬웠다. 중편으로 조금더 길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부분을 생략하며 독자의 상상에 맡겼다. 요즘 단편의 추세인지 모르겠지만 단락장 별로 과거와 현재가 바뀌는 상황이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적응 후에는 괜찮았다. 줄거리는 어렵지는 않았다. 주인공과 친구,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공장에서 동료 노동자로 잠시 만났던 형우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과 친구는 어떤 노동자의 사고사와 여러 노동자들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한 길거리 피켓 시위를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사고사의 주인공은 형우였다는 것을 점차 간접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2) 읽어나가며 역시 작가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작가들은 현장에서 우선 경험을 하고 난 뒤에 그것을 토대로 소설을 쓰는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현장감이 좋았다. 다만 형우가 주인공과 친구에게 여자를 무시하는 발언을 해서 갈등을 만드는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아마도 현실적이라서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3) 작가가 너라고 말하는 부분마다 그 너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마치 의도적으로 계속 반복하며 독자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새롭고 좋았다. 그 동안 적지 않은 글을 읽어봤지만 이런 문체는 처음 읽어 봤다. 주인공의 오랜 친구가 되어서 편지를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 붉은 베리야
1) 분량과 단락장이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다. 때문에 중간중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줄거리는 주로 주인공의 아빠 이야기였다. 누구보다도 똑똑했던 아빠에게 치매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일들과 집에서 화분을 돌보는 일을 함께 서사로 끌고 나갔다. 중간에 찾아온 보험회사 직원의 이야기와 아버지가 소중하게 보관했던 유리 반지의 이야기, 여러 화분 중에 한겨울에 꽃이 핀 열대식물 붉은 베리야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늘어지는 분량에 비해서 이야기는 갑자기 끝나는 기분이다.
2) 내가 이 작품의 의도를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느낀점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마치 이미상 작가의 모래고모와의 대모험 같은 작품이다. 모래고모의 대모험도 나중에 리뷰를 찾아보고 몰랐던 상징들에 놀랐던 경험이 있다. 내겐 비유와 상징이 숨어있는 작품이 어려운 것 같다.
3) 화분을 식목일 지난 다음에 내놓고 선풍기는 추석 지난 다음에 집어 넣으라는 문장이 좋았다. 마치 일일 드라마 대사에서 듣게 되는 문장으로 읽혔다. 중간 중간 인물들간의 대화에서 나오는 문장들이 주변에서 들을 법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읽기 편했다.
- 밥의 그릇
1) 같은 직장인으로 직장인의 애환과 동질감이 느껴졌다. 동료들과의 대화나 묘사가 약 13년 전 직장생활에서 느꼈던 점이다. 주인공이 직장상사가 되고 나서도 그 감정을 그대로 가져간 부분에서 주인공의 꼰대력이 느껴진다. 마지막 문장이 특히 그렇다.
2) 글의 초반부에 상사를 모시며 눈치 보는 입장에서 글의 중반부와 후반부에 내가 상사가 된 상황이 된다. 자연스럽게 역할의 순환이 보여져서 좋았다.
3) 이젠 기성세대가 MZ의 눈치를 보며 회식이 사라져사는 문화가 보편적이다. 그면에서 조금 오래된 글냄새가 느껴진다.
- 원감
1) 텔레파시라는 단어를 오래간만에 읽었다. 우연하게도 정주행 중인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서 어젯밤에 본 에피소드에 텔레파시가 언급되었다. 게다가 부끄럽게도 그 해석이 원감인지도 몰랐다. 글을 읽으며 결과가 예상 되었지만 텔레파시에 대한 서사는 부드러웠다. 중간 중간 심리의 묘사라던지 상황의 묘사가 좋았다.
2) 글의 초반부에 인연과 세월에 대한 단락이 좋았다. 특히 모든 순간이 숨이 턱턱 막힌 공기로 해워진다는 표현이 좋다.
3)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다. 아무래도 한페이지에 서사를 담다보니 급하게 매듭 지은 느낌이다. 두페이지 정도만 되었어도 중후반부에 한두단락이 더 추가되며 완성도가 높아졌을 것 같다. 그래도 한페이지에 이런 서사를 만든 점이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