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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말씀을 사모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성전을 찾으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감동의 은총이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함께 교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장애물을 제거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나누려 합니다.
지난번 저는 누가복음 5장을 열면서 한 명 문둥병자를 고쳐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들으신 말씀 중에 혹 기억에 남아 있는 어떤 내용 들이 있으신가요?
사람은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는일이 있을지라도 예수께서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사람이 정하게 된다는 것을 함께 나누었죠.
예수께서는 하늘 영광중에 계셨지만 죄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스스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시고 온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하시고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신 그사랑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임을 보게 됩니다.
누가 복음의 기록으로 그러한 일 후의 기록을 성경은 한 중풍 병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님에게 나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그를 침상 채 메고 와서 예수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집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으니 예수앞에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지붕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지붕이 무슨 지붕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기와 지붕이라고 합니다.
지붕으로 중풍 환자를 침상 채 메고 올라간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기와를 벗깁니다.
그리고 아래 예수께서 계신 것이 보이자 중풍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은 그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립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눅 5: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아니 번지수가 틀리지 않았습니까?
이 중풍환자를 메고 온 사람들을 마가 복음에는 네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침상이 어떤 침상인지는 몰라도 네 사람이 한쪽 모서리를 잡고 왔고 지붕에도 그렇게 올라 갔다고 이해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죄 사함을 받는 것이었을까요? 중풍 병에서 고침받는 것이었을까요?
그들의 마음의 깊은 마음의 뜻을 우리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죄 사함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들도 죄사함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이곳의 중풍병자처럼 죄의 용서함을 다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근데 죄는 어떤 사람이 용서를 받습니까?
성경은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행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무엇을 하고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합니까? 회개하고 죄 없이 함을 받으라 합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의 말씀은 우리가 유쾌하게 되는 날 다른 말로는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요? 회개하고요.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유쾌하게 되는 날 성령 충만함이 이르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함이 우리에게도 필요 합니까?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이김의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성령 충만함이 꼭 필요합니다.
그 성령 충만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어떤 순서가 필요하다고요? 회개가 필요하다
회개하고 무엇을 받으라고 합니까? 죄 없이 함을 받으라 합니다.
그리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 다른 말로는 성령충만의 은혜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귀하신 성도님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죄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 마음에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죄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매일 이김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가 없고요.
그렇게 사는 생활은 영적으로 죽은 생애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영적으로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살아 있는 것 같습니까? 죽은 것 같습니까?
영적 생명이 죽어 있다면 여러분들의 살아가는 삶의 모습도 생명이 없기 때문에 신앙의 활기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회에서 믿음의 생활을 더 열심히 하자고 하는 소리를 들으실 때마다 듣기 싫으신 분들이 있습니까?
신앙 생활 보다는 개인의 생활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교회 가는 것 보다 나의 취미생활이 더 중요하게 여겨 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지죠?
성경 볼 시간은 없어도 티비 몰 시간과 스마트 폰 볼 시간에는 구애를 받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신앙 생활입니까?
오늘 여러분들의 심령에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정말 회개하시는 은혜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요한 복음 5장 25절의 말씀 올려드립니다.
요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자들이 누구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그럼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살아나리라
이 말씀은 죽어 무덤속에 있는 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죽었지만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신앙이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오늘 여러분들의 귀에 들려지는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으로 들려지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으시는 분들 마다 살아나서 회개하는 은혜를 얻어 성령충만함을 받고 성령충만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앞에 네 사람에 의하여서 나온 이 사람은 누가 보아도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는 것이 가장 필요한 그의 필요라는 것을 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네 병에서 놓여 날지어다 라고 하시지 않고요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에게 죄 사함에 대한 말씀을 먼저 하셨을까요?
증언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런 답을 보게 됩니다.
가정과 건강 242 “구주께서는 슬픔에 잠긴 그 얼굴을 바라보시고 당신을 주목하고 있는 애원하는 눈을 보셨다. 그분께서는 무거운 짐에 눌려 있는 그 영혼의 갈망을 잘 아셨다. 그 중풍병자가 아직 집에 있을 때 그의 양심을 각성시켜 주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 그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완전하게 고쳐주실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을 때, 구주의 자비는 그의 심령에 복을 주셨다. 최초의 희미한 믿음의 빛이 자라나서 예수님께서 죄인을 도와줄 유일의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을 그분께서는 주시하셨다. 그리고 그 믿음이 당신 앞에 나아오고자 하는 온갖 노력과 함께 더욱 강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을 보셨다. 고통 중에 있는 그 사람을 당신께로 이끄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 이제 구주께서는 그 병자의 귀에 음악과 같이 들리는 음성으로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무엇을 아셨다고 합니까?
“무거운 짐에 눌려 있는 그 영혼의 갈망을 잘 아셨다” 합니다.
그를 억눌렀던 그 영혼의 갈망이 무엇이었을까요? 죄로부터의 용서였습니다
그 중풍병자의 간절한 바램이 무엇이었다고요? 죄로 부터의 용서 였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질병에서 고침 받는 것을 먼저 원해야 합니까?
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죄 없이 함을 받는 것을 먼저 해야 합니까?
근데 예수께서는 어떨 때는 죄의 용서 없이 질병부터 고쳐 주신일도 있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나옵니다.
그 열명이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서 나왔는지 아니면 그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 옆을 지났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예수님을 알아본 그들은 13절에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눅 17: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궁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그러니 예수께서 무슨 말씀 하셨습니까? 그 다음 말씀입니다.
눅 17: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가다가 어떻게 함을 받았다 합니까? 깨끗함을 받았다.
어디로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까?
집으로 가다가 아닙니다.
돈벌러 가다가도 아닙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예수께서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네 몸을 누구에게 모이라고요? 제사장에게 보여라
왜 제사장에게 보이라 하셨습니까?
그 당시 문둥병은 제사장들에 의하여 부정하다 진단을 받고 또 회복 되었을 때는 제사장들에게 이제는 정하게 되었다는 진단과 판단을 받아야 하였습니다.
나인성의 잔치집에서 일어난 사건 아시죠?
포도즙이 떨어진 단지에 무엇으로 채우라 했습니까? 물을 채우라.
그리고는 그 물을 떠다 연회장으로 갖다 주라고 하였습니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렇게 하였을 때 물이 포도즙이 되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던 사람들이 가다가 나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음을 입은 아홉은 각기 제 길로 갔을 것이지만 그 중에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17:15-16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한 사람은 어떻게 하였다고 합니까? 돌아와서 감사하였다.
돌아와서 감사하는 그 사마리아 문둥병 환자를 보시고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 17:17-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또 무슨 말씀입니까?
구원의 첫째 조건이 무엇입니까? 죄에 대한 용서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럼 이 돌아온 문둥병 환자에게 말씀하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은 죄에서 놓여 났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예 그럴 수가 있습니다.
왜 이들에게는 병부터 고쳐주시고 나중에 죄의 용서를 선포하셨을까요?
이 열명 중에는 죄의 용서를 받기를 원하였던 사람은 한명 뿐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의 용서는 한 사람만 받았습니다.
나는 죄의 용서는 받지 않아도 좋다 몸만 건강했으면 좋겠다 생각하시는 분들 계십니까?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요양원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죄의 용서와 질병의 회복의 관계가 아주 깊다는 사실을 들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질병의 회복이 되었지만 생활의 변화가 없는 사람들은 십중 팔구는 재발한다는 사실이 통계로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하긴 그 중에는 그 가운데서도 온전한 회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혹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죄의 용서함을 받지 못하고 온전한 회복된 사람과 재발한 사람들중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재발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
왜 그렇습니까? 죄의 용서함을 받을 수가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런데 오늘 네명의 친구들에 의하여 들려 온 사람 지붕을 뜯고 예수 앞에 이른 그 사람의 마음의 갈절한 갈망이 무엇이었다는 것입니까? 죄의 용서함을 받는 것이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께서 죄의 용서를 먼저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해 주신 이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보면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느꼈지만 인정하지 않고 받아 들이지 않았던 청중들에게 당신이 누구라는 것을 보여 주기를 원하였던 것 같습니다.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그곳에 함께 하였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눅 5: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죄 사함의 권세는 누구에게만 있다고요? 하나님에게만 있다.
그러한 말이 사실입니까? 진리입니까? 그렇다면 땅에서 죄를 사하시는 그분은 누구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이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까? 아멘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대리자 들이라고 스스로 자처하면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성경으로 볼 때 잘하는 것입니까? 잘못하는 것입니까?
누구만 죄를 사할 수가 있다고요? 하나님 만
그럼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의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교황레오13세의 회칙304면
“우리는 이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땅에서 무슨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제의 존엄과 의무12권2면
“하나님 자신도 그분의 사제들의 심판 및 그들의 면죄를 거절하느냐 허락하느냐에 따라서 죄를 용서하시느냐 안 하시느냐 를 결정해야할 의무가 있으시다 사제들의 판단이 우선되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동의하신다”
하나님이 높다는 말입니까? 천주교 사제가 높다는 말입니까?
그들이 받을 심판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우리는 요한 계시록을 통해 이미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그와 같은 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죄를 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말씀에 불 순종 하는 것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자리에서 다 내려 오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과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내 멋대로 신앙하는 것도 하나님의 자리라는 것을 모르셨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그렇게 죄의 용서를 선포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용서받은 기쁨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을 감사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중풍병자를 향해 다시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눅 5:24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무슨 말씀입니까?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누구보다 침상가지고 가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 침상에 누워서 네 친구에게 들려서 왔던 사람을 향하여 뭐라고 하셨다고요?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은 다 약속이라고 말씀 드린 일이 있습니다.
걷지도 못한 사람에게 침상에 누워 제 사람에게 들려 왔던 사람에게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과 같다는 것입니까?
침상을 들고 갈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까?
아니죠 이미 침상을 들고 갈 수 있는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었다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 말을 들은 이 중풍 병자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반응과 어떤 반응이겠습니까?
하나는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일어서서 침상을 들고 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요
아니 예수님 제가 걷지 못한지가 오래 되었는데 좀 잡아서 일으켜 주시지도 않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람을 보고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니요 지금 저보고 놀리는 것입니까 라고 말입니다.
만약 그렇게 했드라면 이 중풍병자는 평생 고침 받지 못하고 누워서 죽는 날만 기다리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는 어떻게 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까?
눅 5: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아멘입니까?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도 말씀을 믿고 일어서면 기적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근데 왜 하지 못하십니까? 믿음의 부족입니까? 믿음의 증거들이 없어서 입니까?
성경은 그 다음 이야기를 통해 그렇게 일어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진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5: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올 때는 들 것에 실려 네 사람에 의하여 들려 온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일어서서 침상을 들고 나가니 모든 사람이 어떻게 하였다고 합니까?
모든 사람이 놀라 누구에게 영광을 돌렸다고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위해 일하실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그러한 기적을 수시로 경험하면서 살아왔고요.
저는 정 집사가 있을 때 살아 있는 믿음의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앞에 홍해가 갈라 졌어요. 요단강이 갈라 졌어요. 여리고가 무너졌어요 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산이 옮겨지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성경에 약속에 대한 보증들이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보증하고요.
무덤에서 살아 나온 나사라고 보증을 합니다. 성경 말씀은 믿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요.
말씀 드린 것처럼 홍해가 갈라진 것도 요단이 갈라진 것도 여리고가 무너진 것도 말씀에 대한 순종이 어떤 보상을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성경이 말하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 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사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수 많은 사람을 고쳐주셨고요.
마귀에게 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을 믿고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믿고 일어서려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넉넉한 힘을 주시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지붕을 뜯어내는 장애물이 있어도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성경이 보증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고쳐주시고 살게 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려고 죄의 짐을 지시고 그 무게로 인하여 주님 심장은 터지시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격으시면서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지 못하여 일어나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앉아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어 얼어서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일어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눅 5:18-26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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