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밑바탕에는 유불선(儒佛仙)의 세가지 사상입니다. 즉 유교, 불교, 도교의 삼대 정신이 싫던 좋던 간에 우리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야간에 도시 풍경을 조감해 보면 불야성을 이루는 십자가 불빛이 영미를 뛰어 넘는 기독교 국가인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되지만
신라와 고구려는 대단한 불교국가로서 종교의 틀을 넘어 정치와 문화의 그 자체가 불교였던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역사 공부에 발을 들여 놓으면 팔관회(八關會)니 연등놀이 등을 모르고는 시험을 치르지 못할 정도로 불교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불교에 뿌리를 둔 말들이나 풍속 그리고 이에 따른 병폐도 생겨나게 되었지요
오늘은 우리가 쓰고 있으면서도 그 진정한 참뜻이 아리송한 야단법석과 이판사판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쉬운 말로 풀이 하면 --- 평평한 들판에다 단을 쌓고 그위에서 불법을 강연하는 자리를 이르는 말입니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스님을 국사(나라의 스승)로 모시던 나라였으니 수시로 큰 스님이 불법을 설파하는 불교 행사를 하였는데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교외의 넓은 들 가운데 연설를 할 수 있게 높은 단을 만들어 놓고 국왕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기에 시끄럽고 장내가 복잡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정월 보름을 비롯하여 수시로 큰 불교행사인 야단법석을 벌리고는 하였는데 ---- 이로 인하여 정신을 차릴수 없이 복잡한 상황을 야단법석이라고 하였고 지금도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면 노인들의 말씀이 "웬 야단법석이냐?" 하시는 것입니다.
불교가 번성하면서 병폐도 많고 또 불교 종단에서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폭력배까지 동원하며 싸움판을 벌이여 사회에 눈총을 받는 일이 최근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과거에도 스님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한쪽이 거덜이 나기 전에는 싸움이 끝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스님들은 크게 나누면 불교의 이론을 연구하고 공부하며 포교를 주임무로 하는 스님을 이판승(理判僧)이라고 하고 불교의 재정과 사찰의 관리를 주 임무로 하는 사판승(事判僧)으로 구분하는데 종단의 실권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놓고 이판승과 사판승간에 싸움이 일어나면 항상 큰 불상사가 나고서야 싸움이 끝을 냈으니 그야말로 이판사판의 싸움이었지요
요즘도 조계종 총무원장을 주로하여 종단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반면 대종사님 등은 오로지 불법에만 전념하고 참선의 길을 찾는 스님들이 있지요, 그런데 항상 깨끗하고 부처남 같이 선해야 할 사찰에서 싸움판을 벌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오늘 야단법석과 이판사판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판사판과 같은 불교의 병폐가 나라를 망치고 새로운 유교국인 조선이 일어난 큰 이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