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조(寂照)
명상의 상태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적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요하게 비춘다는 뜻입니다. 명상은 고요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고요하면서도 밝아야 합니다. 산속에 들어가 보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적이 없는 산속에 들어가 홀로 있게 되면 주변은 아주 고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적(寂)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산속의 고요함이란 것이 아무 움직임이나 아무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 고요함 속에는 신선한 느껴지는 공기가 있습니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시냇물도 있습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가지 소리도 있고 나뒹구는 낙엽소리도 있습니다. 또 새소리도 들릴 것입니다. 이렇게 때로는 몸으로 느껴지고 때로는 보이고 들리는 이런 생명의 움직임들은 산속의 고요함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고요 속에서 침잠한 나머지 졸음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이 깨어 있게 만들지요. 이것이 조(照)에 해당합니다. 산속에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적조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고요만 있고 밝음이 없는 상태로는 창문을 모두 걸어 닫은 집안에 홀로 앉아 명상할 때를 상상해보십시오. 그곳에는 바람도 없고 신선한 공기도 느껴지지 않지요. 이것은 적은 있으나 조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고요 속으로 침잠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 침잠하면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졸음을 못 이겨 의식을 놓치고 잠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창문이 닫힌 밀폐된 공간에서 명상하는 것이 좋지 않은 이유가 이런 것입니다. 고요만 있고 맑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명상의 장소는 사방이 좀 터인 곳이 좋습니다.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곳이 좋은 것입니다. 바로 밝음(깨어 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상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 안에서는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적조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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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할 때 우리에게 고요 속에 침잠하지 않고 깨어 있게 만드는 바람이나 물소리, 새소리, 낙엽 뒹구는 소리 같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연출할 지를 배워야 할 때입니다.
첫째, 단순성을 잘 유지하게 하는 일입니다. 단순성 자체가 깨어 있는 밝음입니다. 따라서 명상할 때는 그 무엇도 달고 들어가서는 안 되며 또 어떤 의도를 가지고 들어가 명상에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됩니다. 그 시간은 여러분의 삶에서 아주 특별한 시간이라고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그런 시간 말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밖에서 놀다가 엄마가 부르자 가지고 놀던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달려가듯이 명상이 우리를 부를 때는 그런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시간은 오직 주님을 위해 마련한 시간이니 주님 이외에 다른 무엇도 생각지 말고, 주님과 당신 사이에 그 무엇도 끼어들지 말게 하라는 말이지요.
둘째, 지속적으로 단순한 마음을 유지하게 하는 오래된 방법 중 하나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방법이 있습니다. 호흡을 이용해서, 내쉴 때 ‘주님!’ 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또는 조용하고 마음 속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가득 담아 ‘예수님!’ 혹은 ‘주님!’ 하며 일정간격으로 은밀하고 조용하게 마음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셋째, 생각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기억을 회상하는 방법입니다. 전에 주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해주셨는지 그 사건을 회상하며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회상하면서 감격과 감사의 정을 북돋우는 방법입니다.
넷째, 대화하는 방법입니다. 주님과 담화를 하는 것이지요. 서로 친구끼리, 아니면 연인끼리 밀담을 나누듯이 주님과 이야기하는 방법입니다.
다만 위의 방법들은 깨어 있게 하는 방편일 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이것에 집중하느라 고요함을 흩트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명상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용하고 부드럽고 은밀하게 할수록 깊이 깨어 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이나 생각을 통하지 않고 손을 사용해 깨어 있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손은 마음을 깨어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무엇을 기원할 때 양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지요. 그렇게 손 모양이 마음의 상태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이전에 무중력 명상법을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지요. 양 손을 가슴 높이로 모아 양 손바닥을 마주하게 하여 조금 떼어 놓은 채 양 손바닥을 약간 둥글게 만듭니다. 그리고 서로 가까이 붙였다 뗐다 하면서 두 손바닥 사이의 압력을 느끼는 것입니다.(서로 붙였을 때 서로 밀어내는 힘입니다)
이 힘을 느끼면 이제 그 느낌에 머물러 있습니다. 조용히 그리고 깊게 머무는 것입니다. 손을 좀 더 벌리면 느낌이 더 여리게 되고 느낌을 여리게 할수록 더욱 더 예민하게 깨어 있게 됩니다.
이것이 손을 사용하는 원리입니다. 이 방법은 매우 동양적인 방법입니다. 그 외 여러가지 손모양이 있지만 그 원리에서는 같고 다만 마음의 상태에 따라 모양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손을 이용해보면 저절로 그때그때에 따른 손의 다른 모양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터득해 깨달아야 합니다.
첫댓글 명상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에 부담을 주게되곤합니다. 다시 마음에 부담주지않고 단순성으로 시도하렵니다.
단순성을 잘 유지하기.... 아멘!
산처럼 앉아 있지만 모든 것에 자유롭습니다.
네 다섯가지 모두 번갈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들을 시도함만으로도 삼매에까지는 들지 못해도 마음이 가라앉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