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의 보전과 개발-궷물오름, 족은노꼬메오름

[이현]

크라운 샤이니스(crown shyness),
수줍음의 거리
 



그윽한 꽃향기, 산도록한 바람이 맞아주는 오월의 오름. 오소록한 숲을 지나 경사진 능선을 오르자 어느새 몸이 더워진다. 잠시 분화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무 위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의 여정은 작고 아담한 궷물오름에서 시작했다. ‘궤’는 제주어로 작은 동굴을 뜻하며, 이 작은 동굴에서 샘물이 솟아난다하여 궷물오름이라 불린다. 발음은 같지만 고양이를 뜻하는 '괴' 자가 들어간 오름도 있다. 왕이매 옆에 괴수치오름은 고양이 형태의 오름이란 뜻이고 김녕리 묘산봉도 괴살메로 불린다.

궷물오름은 한라산 방향으로 족은노꼬메와 큰노꼬메를 좌우로 병풍처럼 두르고, 해안으로는 가장 고도가 높은 애월곶자왈이 넓게 펼쳐져 있다. 세 개의 오름 모두 말굽형 분화구를 가졌다. 노꼬메오름에서 흐른 용암이 납읍리 금산공원까지 걸쳐 애월곶자왈 지대를 만들었다고 하니, 당시 용암의 흐름이 궷물오름 정상에서 한눈에 펼쳐진다.

애월은 조선시대 10개의 국영 목장 중에 5소장이었던 곳이다. 궷물을 내려와 족은노꼬메를 향해 걷다 보면 삼나무가 울창한 상잣(상잣성) 길에 다다른다. 세종실록에 제주도 출신 관료 고득종의 제안으로 하잣을 먼저 쌓고 나중에 상잣을 쌓았다고 한다. 지금은 개간과 개발로 많이 사라져 안타깝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긴 타원형의 제주도목축문화 잣담이 선형유적으로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귀한 문화유산이 되었을지 생각하며 잣담 길을 걸어 본다.
 

봄의 끝자락, 숲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숲은 또다시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정연한 비밀을 만들고, 때죽나무(snowbell) 하얀 종꽃이 우수수 내려앉아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니 어여뻐 발 디디기가 미안하다. 수백 마리 흰 나비가 금방 날아오를 것만 같은 산딸나무는 알고 보니 열매가 딸기를 닮아 도톨도톨하고 빨개서 산딸이란다. 국수나무, 찔레나무, 가막살나무 등 키 작은 관목들도 어깨를 나란히 마주하고 하얀 꽃을 가득 피웠다. 새비나무 잎은 비로드처럼 보송보송 부드러운 반면, 작살나무 잎 촉감은 사락사락하다. 둘은 사촌지간, 가을에 알알이 탐스러운 보라색 열매를 맺는 나무가 너희였구나.
 

족은노꼬메 정상에 다다를 즈음, 감탄의 환호성이 절로 나오는 한라산 전경을 마주하고 날아든 질문. 한라산 최고봉의 이름을 아시나요? 흔히 백록담 또는 화구벽이라 불리는 한라산 정상, 그곳의 진짜 이름은 혈망봉! 한라산의 큰 혈(구멍, 풍수지리에서 용맥(龍脈)의 정기가 모인 자리) 즉 백록담의 사방을 다 바라볼 수 있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1700년대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도 혈망봉이라 표시되어 있었다니, 지금은 오르지 못하는 서남벽을 말한다. 오름해설사 과정을 거친 사람들인 만큼 자꾸 말하고 알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저 멀리 노로오름과 한대오름만 보아도 나무들은 서로 키를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잘 자라는 능력이 있어도 옆에 있는 나무와 어깨를 견주면서 딱 그만큼만 자라는 나무의 현명함. 우리는 오늘 하루 되고 싶은 동물이 되어, 동그랗게 앞뒤로 서서 서로의 무릎에 앉아 보았다. 생각과 생김새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믿는 순간,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편안한 생태 의자를 완성하였다. 천생만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만 잘못되어도 다 무너지는 세상, 생태계를 온전히 보전해야만 하는 이유와 열린 마음을 체험하는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올려다본 하늘은 마치 다양한 초록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성스러운 돔처럼 아름다웠다. 햇살이 은은하게 투과되면서 한 잎 한 잎 오롯이 새겨져 신비롭다.
세상에 숲만큼 천재적인 예술가가 또 있을까.
하늘에서 바라보면 더 잘 관찰된다는 수관기피(crown shyness) 현상과 인간의 간섭 없이도 나무들 스스로 숲을 정리하는 천이 현상까지. 오름해설사 과정을 통해 새롭게 알고 깨닫는 순간의 연속이다. 나무도 사람도 적당한 수줍음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를 잘 유지한 우리는 지금, 생태적 조건과 맞아 장기간 안정된 상태 '극상(極相)'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신혜연]

후기의 정석인가요? 편안한 수필처럼 편안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도 다시 기억나고, 오름에 대한 가치도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네요. 잘 봤어요👍👍👍

[김현수]

읽다보니 우리가 교육받으며 지나간 순간순간 이 떠오르네요.
멋진정리와 사진의 정말 좋았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박명균]

연두색이 짙어져가는 싱그러운 숲속에서
오름과 숲의생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들을
만들어 주셨네요

[서민옥]

마지막을 아주 멋지게 장식하셨네요~잘읽었습니다^^

[S.H 윤]

후기 담당이시라 카메라 들고 바쁘게 움직이며 동영상에 편집기술까지 IT 짱입니다.
글대로 5월 푸르른 초록의 싱그러움을 담아 수리 술술 수업내용부터 인생론까지 연결을 잘해주시어 복습하며 잘 읽었습니다.

'극상(極相)' 상태를 위하여....

[김시환]

산도록한 바람,
오소록한 숲.
처음보는 멋진 표현
싱그런 후기 잘보았읍니다. 감사합니다
silver bell

[최사헌]

글도 사람을 닮겠지요? 상큼 발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자연미]

후기정석 맞네요~
부담없이 편하게 수필한편 읽은느낌입니다..

'극상의 상태' 공감하며~

[유익]

맛깔나는 후기 ~~
복습 잘 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지기 김천석]

꽃이나 사람이나
오래보고 자세히 보아야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마터면 이현님의 감춰진 보석같은 내면을 놓칠뻔 했어요 ㅎㅎ
늘 씩씩한 그대를 응원합니다~^^

[장경민]

사진도 잘 찍고 편집은 더 잘 하시고 글은 더더 잘 쓰시네요. 글에서 예쁨이 뭍어나요.
보면볼수록 매력덩어리.. 사랑해요~~♡♡♡

[이현]

왜 고백을 여기다 했수
직접해주오 ㅋㅋ

[이현]

신사하하😁 숙녀호호😄 여러분과 동행하여 매주, 매우 행복한 시간입니다.
고마워요 감사해요 사랑해요 밀키스~ 🤗

[박명균]

멋진후기 잘 보고 갑니다
싱그러움이 살아난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