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우리 심화반의 시연은 하나의 큰 주제 아래 멤버들 각각이 그 주제와 관련된 개인적 흥미와 관심사가 반영된 소주제를 선정해서 시연을 연결성있고 포괄적으로 풀어내기로 했다.
이런 시연 방식은 멤버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의논하며 결속력과 협동심을 발휘하게 되고 한 주제를 보다 깊고 넓게 연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우리가 정한 대주제는 '제주해녀'
친숙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 했던 그 이름!
이번 시연은 '제주해녀'를 둘러 싼 것들을 낱낱이 파헤쳐보는 시간이었다.
시연 장소는 주제에 걸맞게 '해녀박물관'.
그리고 의상은 오래 전 해녀의 복장과 비슷하게 상의 흰색. 하의 검정색으로!
*첫번째 주자 이현 선생님-'해녀의 유래와 역사'
-처음은 역시 Origin(기원)이다.
자료들을 붙이고 설명을 덧붙인 스케치북을 들고나와 시선을 끌었다.
'해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해녀를 지칭하는 ‘아마’의 한자 표기 음으로 부르기 시작해서 제주어 ‘좀녀’ 보다는 발음도 좋고 해서 익숙해진 말이 '해녀'다.
제주바다를 가장 제주바다이게 하는 존재, 해녀. 해녀들에게는 수백년 넘게 이어 온 질서가 있고 그 공동체 문화를 일컬어 제주해녀문화라고 한다.
제주 물질(해녀)이 발생한 것은 전복껍질이 다량으로 발견되고 도구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 탐라국 때부터 제주인들이 바다에 잠수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1601년 제주 어사로 왔던 김상헌의 남사록에는 포작들이 진상하는 전복의 수량이 많아 그 노역을 견디지 못해 섬을 떠나 도망친다고 했다. 당시 전복 진상은 포작, 또는 포작인이라고 해서 전복과 물고기 등을 잡아 말려서 임금께 바치는 일을 하는 남자에게 주어진 노역이었다. 고된 노역에 남자들은 죽거나 도망치고 진상에 차질이 생기니까 그 일이 고스란히 여자인 좀녀에게 가중됐다. 이것이 바로 맨몸으로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직업으로서 인류 최초 전문직 여성이라 할 수 있는 해녀의 기원이 된 셈이다.
긴 역사를 가진 해녀이기에 그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선시대에는 가련하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일제강점기에는 천박하고 비천하고 신기하고~
1970년대에는 제주도 경제를 주도한 경제일꾼~
1980년대에는 제주인의 상징. 진정한 자유인~
현재에는 유네스코 등재. 위상 상승. 전승 보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업그레이드 되기를 계속하는 '해녀'. 그 존재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고기석 선생님-'해녀와 제주전통음식'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선생님은 소주제를 해녀와 전통음식으로 정하셨다. 해녀들의 수확물은 최고의 식재료이기에 음식문화와 연관이 안 될 수가 없다.
고 선생님은 수업 과정 내내 음식과 관련된 부분이 나오면 말씀이 많아지신다.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자부심. 자긍심이 느껴진다.
농사를 짓기에 척박한 땅 제주에서 삶의 터전은 바다일 수 밖에 없었다. 여성들이 이곳에서의 일을 대부분 담당했고 그래서 제주음식은 해녀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해녀들이 밭일과 바다일을 함께 담당하는 바쁜 일상이다보니 공동체음식이 발달했다. 낭푼밥. 차롱밥 등 대식구가 간편하게 함께 먹을 수 있는 그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은 고사리국. 몸국 등 해녀들이 수확한 싱싱한 해초들이 국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
갈치국. 옥돔미역국. 멸치국 등이 있으며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배추. 미역. 호박 등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진 국이 발달했다. 해녀들이 밭과 바다에서 얻는 것들이 음식의 식재료로 사용되었던 것.
제주는 육지와 다르게 물회를 된장 베이스로 만든다는게 포인트다.
해산물이 풍부한 제주는 자리. 전복. 소라 등으로 만든 젓갈이 독특하다.
해녀들이 그들의 터전에서 수확한 재료들로 이어온 제주전통음식 문화가 계속 잘 전승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시연을 마무리하셨다.
*박수경 선생님-'해녀의 삶과 죽음(산담이야기)'
-올레길 전문가인 박수경 선생님은 올레길을 걸으며 만나는 수많은 산담에 대한 이야기를 해녀들의 삶과 죽음으로 연관시키고 싶어 하셨다.
육지의 장례문화와 구별되는 제주의 장례문화 산담이야기.
육지에서는 봉분이라 하는 것을 제주에서는 산이라한다. 담은 산을 감싸고 사각모양으로 돌담을 쌓고 바깥 네귀퉁에는 어깃돌이라고 해서 사위한테 쌓으라고 한다.
담에는 귀퉁이에 구멍이 나 있고 그곳을 혼이 다니는 길이라 한다.
또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상석은 산신에 정성으로(잘 보살펴주시라는 뜻으로) 젤 먼저
음식과 술을 놓고 기원하는 곳이다.
담이 없는 산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못 쌓고 한 줄은 보통 사는 집안, 두 줄은 잘사는 집안,
세 줄로 넓게 쌓은 경우는 아주 잘사는 집안으로 여긴다. 4줄 이상으로 담을 쌓지는 않는다.
담은 삶과 죽음.이승과 저승의 경계이자 불이 났을 때 더 이상 번지지 않게 하고 동물들이 산을 훼손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해녀의 장례 문화도 일반 제주 장례문화와 똑같이 적용 된다.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 바다에서 생겨 시신을 발견하면 방법(굿)을 하고 집으로 모시거나 마을에서 장례를 치른다.
그러나 시신을 못 찾을 때에는
방법(굿)을 하고 장례를 치르나 가묘(헛묘)를
쓰고 훗날에라도 시신을 찾으면 가묘을 쓴 곳에다 모신다. 이럴때도 방법을(굿)하고 모든 절차를 진행한다.
가묘를 쓰는 부분에서 시신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애닯은 마음이 느껴졌다.
*이한희 선생님-'해녀와 불턱'
-제주 곳곳에서 불턱은 쉽게 볼 수 있다. 해녀들의 쉼터인 불턱을 택하신 이한희 선생님.
항상 1인 다역을 해내시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신 한희샘~~무의식적으로 '쉼'에 대한 욕구가 이 소주제를 택하게 한건 아닐지 ㅎㅎ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불을 지피는 쉼의 장소다.
여성들만의 장소였고 그들의 사랑방이었다. 힘들게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속풀이의 장이었던 것.
불턱은 위계질서가 있는 장소여서 위아래 앉는 순서가 있었다. 상군덕. 중군덕. 하군덕 이런 식으로. 불턱은 의사소통의 장이자 정보전달의 장이기도 했다. 원시시대 회의 장소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회의 안건에 대한 결정은 대개 만장일치제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파워가 느껴지는 해녀들의 삶.
그러나 그들도 여성이기에 찬바다를 빠져나오는 순간 온기가 필요하고 속마음을 함께 터 놓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을 터. 불턱은 이런 해녀들에게 일과 사회적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장소였던 것 같다.
*강진옥 선생님-'해녀의 의상과 장비'
-평생 옷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오신 강진옥 선생님은 역시 '해녀의 의상과 장비'를 소주제로 택하셨다. 시연 당일 입은 의상 역시 가장 해녀의 의상과 가깝게 입으셨고 그래서 만장일치로 '베스트 드레서'에 선정되셨다.
해녀박물관에는 해녀의 의상과 사용한 장비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고 전시관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강 선생님께서는 전시된 품목들 각각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 오셔서 하나하나 짚어가며 시연을 하셨다. 실제 해녀박물관 해설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노련하게 준비한 내용을 설명해 주셨다.
해녀들은 익숙한 육지 환경을 벗어나 생업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바닷 속이라는 환경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 그에 맞는 의상과 장비들을 갖춰야 했다.
특히 의상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며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소재의 발달)
먼저 물소중이는 해산물 채취할 때의 작업복이다.
백색무명>백색광목>검정광목>합성 섬유 이런 식으로 소재적 변화가 있었고 그 명칭은 소중기->소중이->속곳 불렸고 속옷으로 많이 입던 옷이다.
소중기 특징은 입고 벗기 편하게 품조절 여유있게 옆트임으로 되어있고 매듭은(벌모작) 끈으로 여밈으로써 임신등 신체 증감에 따라 조절기능이 있었다.
물질할 때 쉽게 얼룩이 져 검은색 등으로 물을 들여 입었다.
머리에 쓰는 물수건은 보온과 정돈에 쓰였다. 머리 흐트러짐을 막고 머리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역할을 했던 것. 그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했는데 풀었을 때 너비 30cm 길이 107cm에 이르는 수건은 상어퇴치용으로 이용되었다. 바다 속에서 길게 풀어해치면 상어는 자기보다 크고 강한 존재로 인식하고 도망쳤던 것.
까부리는 물수건 대용으로 썼던 모자로 프릴을 달았으며 햇볕에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모자다. 해녀도 역시 여자이기에 '멋'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듯. 멋을 부릴려고 젊은 해녀들이 사용했다.
그 외에도 누비옷이 있었는데 이것은 물질하고 불턱으로 나와 불을 쬘 때 몸을 녹일 때 입었던 옷이다. 겨울 보온용으로 착용.
해녀들이 사용했던 도구들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빗창(둥글게 끈을 달아 잡았을 때 빠지지 않기)은 길이 30cm의 길쭉한 쇠붙이로 전복을 떼어내는데 사용했다. 전복을 채취할 때 지렛대 역할.
갈구리는 돌틈에 낀 문어, 성게, 소라를 끄집어 잡는 도구로 t자로 굽어 있는 쇠꼬챙이. 나무손잡이 끝에 고무줄 달아 사용했고 길이는 40cm 정도. 성게를 캐는 성게 골각지. 칼구리->골갱이-호갱이. 까꾸리라고도 한다.
족세눈은 물안경 눈. 족은눈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야확보용이다. 20세기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족세눈은 소형 알이 두 개 분리되는 쌍안경이다.
왕눈은 말 그대로 큰 안경이다. 1950년대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현재 해녀들은 대부분 이 안경을 쓴다.
해녀들의 또 하나의 중요한 도구 망사리와 테왁.
이 둘은 한 세트다.
망사리는 해산물을 채취하여 담아 넣는 그물 주머니이고 테왁은 그 부력을 이용해 헤엄치거나 물 위에서 쉴 때 사용한다. 초기에는 박으로 만들어서 콕테왁이라 부르기도 했다. 1960년 중반 나일론을 씌운 테왁이 보급되었고 현재는 스티로폼으로 된 테왁을 사용한다.
크기에 따라 좁은 테왁, 중테왁, 큰테왁으로 나뉘는데 이것은 망사리의 크기와 연관되어 있다.
그 외에도 소살이라는 도구가 있는데 고기를 쏘아 잡는 도구. 작살을 제주에서는 소살이라고 부른다.
*김용운 선생님-'제주해녀항일운동으로 본 사회적 활동'
-거대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주제... 그래서 누구도 선뜻 하겠다고 나서지 못한 주제 '해녀들의 항일운동' 파트는 역시 회장님이 총대를 멨다. 몇날 며칠을 도서관에서 시연을 준비한 모범생!
공부를 많이 한 만큼 6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해녀항일투쟁은 1931년부터 이듬해 1932년 1월까지 3개월 동안 연인원 17,130명의 해녀들이 238회에 걸쳐 궐기한 운동이다. 일제 강점기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 주도의 항일운동이라는데 의미가 크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대단한 항일투쟁이 가능했을까?
제주여성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주체성. 그리고 해녀들의 공동체성이 요인이다.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대표자들인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고차동, 김계석등은 도내 청년 사회운동 조직 '혁우동맹'의 야학을 통해 습득된 주체적 의식개혁이 있었다.
또한 해녀공동체의 공간인 불턱에서 이루어지는 굳건한 연대 의식과 조직력이 투쟁을 가능하게 했다.
제주 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난 것은 생존과 관련이 깊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시피하는 해녀들의 권익옹호가 목적이었다.
1920년 제주도 해녀 어업조합 설립으로 제주도 수탈이 본격화되고 조합장/ 제주도지사 겸임으로 관제 해녀어업조합의 횡포가 극심해졌다. 지정된 일본 상인에게 지정금액으로 판매를 하게 했으니 해녀들의 주체성을 크게 제한하는 처사였다.
또한 객주업자들은 저울 눈속임, 부정검칙등으로 중간 착취를 일삼았으니 해녀들의 고된 노동에도 불구 살림이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반기를 들고 제주 해녀의 항일투쟁이 시작되었는데 요구조건과 투쟁방침을 정하고 체계적으로 투쟁을 이어갔다.
투쟁 속에서 해녀들의 요구조건이 일부 받아들여지는 성과도 있었으나 결국 일제에 의해 진압되어 주동자들이 옥살이를 하게되거나 검속되었다.
해녀항일투쟁은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 운동과 더불어 제주도 3대 항일운동중 하나이며, 일제 강점기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 주도의 항일운동, 전국 최대의 어민 운동, 1930년대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특별히 김용운 선생님의 자료는 여기에 첨부했는데 선생님께서 조사하고 공부한 해녀항일운동의 방대한 내용을 후기로 잘 담아내기가 어려워 더 자세한 내용을 보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서이다.
*하경늠 선생님-'테우와 해녀의 노래'
-이호테우해변 근처에 살고 계신 선생님은 소주제로 테우를 바로 떠올리셨다.
테우는 여러 개의 통나무를 엮어서 만든 뗏목배라는 의미로 '떼배', '터위', '테'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부력이 뛰어난 구상나무로 만들어 암반 지대에서도 이용이 자유로워서 연안에서 고기잡이, 해조류 채취뿐만 아니라 해녀들의 이동수단으로 사용했던 제주인들의 삶의 산물이다.
해녀들도 물질하러 바다에 나갈때 동력선이 보급되기 전까지 테우를 이용했다.
노를 저어서 물질할 장소로 간 다음, 바다에 뛰어들어 물질을 하고 나서는 다시 테우에 올라와 노를 저으면서 서로 메기고 받으며 힘든 것을 노젓기로 이겨 냈다.
그때 노를 저으며 불렀던 노래가 해녀 노래다.
해녀노래, 해녀 노젓는 소리는 197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가사 내용은 해녀 노젓는 노동과 관련된 내용이 많으며, 실제로 물질하는 모습, 물질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생활환경, 험한 삶에 대한 인생의 허무함, 시집살이의 어려움 등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노동요가 대부분 그렇듯 해녀 노래를 듣다 보면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그 고된 노동과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담아 표현하고 있는 이 노래는 해녀들이 대개 여러명이 무리 지어 배를 타고 나가는데 이때 소리를 잘 할 뿐만 아니라 힘도 좋고 작업도 잘하는 상군(제주에서는 해녀 중에서 최고의 수준으로 물질을 잘하는 해녀들을 상군이라 부른다) 이 노젓는 일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노는 주로 두 사람이 마주서서 젓는데 노를 젓는 동작은 매우 규칙적이면서 강약의 대비가 분명하다. 상군 두 명이 노를 규칙적으로 밀고 당기면서 선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해녀들은 배 위에 모여 앉아 장단을 맞추면서 뒷소리를 부른다.
하선생님의 시연이 끝난 후 선생님께서 틀어주신 안복자 명창의 '해녀 노젓는 소리'를 감상하며 다음 시연장소 이동했다. 색다른 퍼포먼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성호 선생님-'해녀물질과 조수와의 관계'
- 배성호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궁금했던 주제라며 '해녀물질과 조수와의 관계'를 선택하셨다.
해녀의 물질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일까요? 라는 화두를 던지며 시연을 시작하셨다.
해녀들의 작업은 보통 '물때'라고 하는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결정된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제주는 ‘아끈조금’부터 ‘여섯물(음력 7~14일, 22~29일)’까지로 설정하여 약 15일간인 이 기간 동안에 작업한다.
해녀가 이 때를 작업기간으로 선호하는 것은 이 기간은 조수의 방해를 받지 않거나 방해가 적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주로 조차가 작은 ‘조금=소조(小潮)’ 기간으로 해녀들이 이용하는 물때이다. 이때는 목표로 하는 장소에 정확히 들어갈 수 있고, 또 물 위로 올라왔을 때 테왁과 해산물을 담는 용구인 망사리가 조수 흐름에 흐르지 않고, 그 자리에 떠 있어서 잡은 해산물을 효율적으로 넣을 수 있다.
반면에, 만월(滿月)과 그믐 때에는 태양과 지구, 달이 일직선상에 놓여 일월의 힘이 동시에 작용해 기조력(起潮力)이 겹쳐 물이 많이 나고 들어 '사리=대조(大潮)'(15일, 30일)라고 하며, 보통 사리 2~3일 후(웨살)에 최고조에 이른다. 이 때는 물살이 세서 바다 밑이 흐리고 위험해서 물질을 하기 힘든 때라고 한다.
이처럼 조류를 이용하면서 바람의 방향을 살피고 그에 따라 작업 일자와 장소도 정하게 되는 것이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조류의 흐름과 세기다.
물이 들고 나는 것에 따라 물질을 할 것인지 조간대에서 ‘바릇찹이’(바닷가에서 고둥이나 게 따위를 잡는 것)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때'는 보름 단위로 한 달에 두 번 반복된다. 지역에 따라서 물때를 세는 기준이나 이름이 약간씩 차이를 보이나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물때는 보통 ‘ᄒᆞᆫ물’부터 ‘열너물’까지 세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초조금, 장조금, 아끈조금, 한조금, 물찌, 웨살 따위의 이름을 무날에 따로 붙이기도 한다.
자연에 순응하며 혹은 이용하며 삶을 운행하는 해녀들의 지혜가 느껴진다.
*김정은 선생님-'해녀학교'
-어릴 적 물안경을 쓰고 잠수해 바다에서 고둥과 해삼을 채취해 본 경험이 있는 김정은 선생님은 해녀체험에 관심이 있어 해녀학교를 소주제로 택하셨다고.
국내외.도내외 일반인들도 단순 해녀체험이나 혹은 직업적인 접근으로도 해녀체험에 관심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람들의 니즈를 체계적으로 채워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해녀학교가 아닐지.
제주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제주도에서 운영되고 있는 2곳의 해녀학교 역시 제주도의 중요한 문화유산인 제주 해녀의 전통적인 기술과 지식을 후대에 전수하여 해녀 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녀학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해녀의 삶을 경험하고, 해녀 문화를 이해하며, 해양 생태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등 해녀학교는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서, 해녀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가는 데 기여 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현재 두 곳의 해녀학교가 운영되고 있는데 하나는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해녀학교. 또 다른 하나는 서귀포시 법환동에 있는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다.
한수풀해녀학교는 2008년에,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는 2015년에 개교했고 지금까지 많은 해녀들을 배출했다.
모집시기나 운영기간. 선발 대상. 교육내용 등은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운영방식은 약간의 차이가 있기도 했다.
두 학교 모두 매년 3-4월에 모집을 하고 5-8월에 교육을 한다. 모집 대상도 도내외여성. 이주여성. 외국인여성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남성은 선발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두 학교 모두 각각 30~35명 정도의 소수 정예인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지원자들의 경쟁이 치열하고 한번에 합격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다. 직업반 지원자들의 경우 어촌계와 잠수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2년이상의 거주자로 지원제한을 두는데 이는 실제 해녀로 살기위해서는 거주지 어촌마을과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인것 같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무산을 전승하는 만큼 까다롭게 선발하고 학칙도 엄한 편이며 교육도 이론과 현장실습(실제 해녀동반)을 균형있고 체계적으로 시키고 있다. 교육비는 제주도의 지원으로 두 학교 모두 무료이나 법환좀녀해녀학교는 교육기간 동안 18만원의 시설이용료를 내야한다.
그리고 올해 4월에 발표된 보도에 의하면 소개된 2곳 외에 추가적으로 제주도 지원하에 올해 하반기 동쪽지역 어촌계를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해 해녀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3번째 해녀학교 개교 계획은 해녀의 고령화로 젊은 해녀 양성이 필요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해녀문화를 계속해서 전파하고 계승하기 위한 제주도의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독자적 행보' 이지영 선생님
'시어머니의 부엌과 며느리의 부엌'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문화탐방지도사 기본반과 심화반을 동시에 수강한 이지영 선생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주제를 정하기 전 시연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야했기에 독자적 행보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맛깔나게 후기도 잘 쓰시던 이지영 선생님은 시연 역시 좌중을 집중시켰고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부엌.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두 주인공이 부엌을 둘러싸고 어떤 줄다리기를 할지 기대하며 시연을 지켜봤다.
사람사는 것에 관심이 많으신 지영 선생님. 올레길 걷다가도 집을 보면 그 집을 가꾼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며 시연을 시작하셨다.
그래서인지 제주의 전통 가옥이 인상적이었고 제주 전통 초가를 구경할 겸 자연사민속박물관과 성읍민속마을에 다녀오셨다고.
그 중에서도 정지(부엌)를 둘러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삶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셨다.
제주의 가옥은 안거리 밖거리로 구성되어 있고 부엌이 따로 있다. 육지의 대가족을 생각하면 밥은 한군데서 지어 같이 먹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각각 밥을 지어 따로 먹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독립적인 생활을 하려면 며느리가 밥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눈치주고 받으며 생활하는 것보다 혼자 밥해 먹고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서 물질하러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제주의 가옥에서는 밥상도 마루까지 가져가기 어려우니까 부엌에 연결된 마루 같은 챗방을 만들어서 동선을 최소화하였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아일랜드 식탁이라고 해야 할까?
부엌은 온돌 구조가 아니라 굴뚝이 없다. 솥을 걸 수 있는 화덕만 있는 셈인데 연기가 집으로 스며야 해충도 죽고, 습도도 조절되었다.
안뒤는 안채의 정지 뒤에 있는 마당인데, 바깥에 돌을 쌓아서 마루나 부엌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항아리를 두기도 하고, 커다란 나무를 심기도 하고 그러는데, 여성을 위한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들이 장가를 가면 안거리와 밖거리를 바꾸어주기도 하는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경제권을 넘겨주는 것은 아니었다. 고팡 물림이라고 해서 며느리의 씀씀이와 절약 정도를 보고, 괜찮다고 싶으면 고팡(곡식 창고)을 넘겨주었다. 안거리와 밖거리의 거리인 마당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텅 비워 두었다. 이 거리는 사생활을 보호해주면서도, 며느리를 부르면 들을 수 있는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 공간을 보면서 ‘따로 그리고 함께’가 떠올랐단다. 서로의 독립적인 생활을 인정하면서도 방관하지 않고 함께 사는 모습. 동선을 최소화하여 효율성을 찾는 모습.
지영선생님의 시연을 들으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이렇게 팽팽한 밀당이 유지되는 관계였다는것에 미소가 지어졌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비슷한 구도를 보이는 관계.
제주의 가옥과 부엌의 구조를 떠올려보니 이 팽팽한 관계속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느낌이 든다. '지혜로운 함께살기'를 잘 실현했던 것 같다.
*수료증 수여와 뒤풀이
'시원섭섭'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 15주간 함께했던 교수님 그리고 선생님들과의 이별은 섭섭하지만 어떤 하나의 긴 과정을 끝낼 때는 솔직히 시원한 마음이 개인적으로는 더 드는 편이다.
이한희. 이지영 선생님이 수료식을 함께 하지 못해 모두 아쉬워했고 또 다시 어디선가 만나겠지 하며 서로 포옹과 악수를 나눴다.
좋은 마무리다. 4개월이라는 시간동안 함께 하며 순간순간 서로에게서 배우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시간을 보냈기에 모두가 서로의 건강과 안녕을 빌어주며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첫댓글 참 훌륭한 주제를 선정하셨어요.
각각의 소주제도 아주 의미있고 흥미로웠구요.
‘시연은 이벤트다’라는 누군가의 외침처럼
컨셉도 진행도 물흐르듯 잘
운영해나간 멋진 시연이었습니다.
그간의 노고에 큰 박수로
위로와 축하를 드립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15주 과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
길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
교수님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또한 끝까지 마칠 수 있어서 저에게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화이팅-
정은샘. 후기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
찬찬히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후기를 너무 잘 써주셔서 현장감이 팍팍 듭니다. 해녀 박물관에 현강을 듣고 싶은 마음^^
'해녀'가 제주 문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고, 선생님들의 관심과 전공에 따라 이렇게 깊이 있게 다루어질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후기글입니다. ^^
시연은 한 밤을 새웠고
후기는 두 밤을 새운듯~~
김정은 선생님
글 맛 좋은 후기
품격있는 글을 쓰시느라
무척 수고하셨어요~^^
ㅋㅋ 말하는건 싫어하고 글쓰는 건 좋아해서 시연 밤샘은 고역이었고 후기쓰는건 미소 지으며! 역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하는구나 또 다시 깨달았답니다. 교수님 어쨌든 감사하고♡1만개 받으세요!
총무님! 마지막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 하시어, 우리문탐 13기 심화반 모두에게 감동을 주시네요.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강의를 해주시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함께한 선생님들과 추억은 인생내내 소환될 기억들입니다.
감사합니다.
해녀의 파란만장 희로애락 대 서사를 각자 나름의 연구로 요약한 6분 워딩. 각 주제 그 방대한 내용을 밤새 다시 복습하며 압축 요약 했으니 제주해녀 브레인은 총무님이라오. 한 학기의 모든 영광을 그대에게~☆♡☆
'대단해요' 라는 말 밖에.
요약을 이리도 잘 풀어 놓으시다니 놀랍습니다.
다시 수업을 듣는듯^^
열나서 학교 안간 막내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다고 자랑했네요.
덕분에 기다림의 수요일이었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놀"래 노자다!
헐~
시연보다 더 잘썼어요~
이렇게 멋지게 글로 표현한다고요!! 대~에박
감탄사만 연신하면서
읽고 또 읽으메
박수를 보냅니다~♧
총무님~
최고입니다!
👍 👍 👍
짝짝짝 짝짝짝짝
앞에서 글쓴게 다 날아 갔나봐요..
왜 없어졌을깡~
😂 😆 😂 😆
오늘도 읽고 또 읽어봐도 정리를
넘 잘하셨어요~♧
복습에 최고입니다~♧
감사한 오늘입니다.
감동 잘 하고 정 많은 우리 수경샘! 댓글을 3개 씩이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