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동냥으로 알게 된 행사였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뭐를 더 바라겠습니까." 18일 장안구 장안로 174 만석공원 내에 있는 청솔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얘기다. 마침 3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이었고, 점심식사까지 대접 받으며 각종 공연을 하루 종일 구경할 수 있는 자리였으니 정말로 등 따시고 배부른 자리인 것만 같았다.
이날 행사는 올 한 해 동안 이곳 노인복지관에서 학습한 여러 가지 재능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다시 말하면 어르신네들의 재롱잔치인 셈이었다. 2층에서는 사진전시회와 뷰티공방, 네일아트 등이 열린 가운데 3층 강당에 들어서자 인산인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노인들의 잔치를 열었다는 곳도 아마 이랬을까싶었다.
청솔노인복지관 송년잔치 영하의 날씨 속 뜨거운 하루_1
오전 10시30분부터 이곳 강당에서는 식전 공연과 개회식이 있은 뒤 동영상 상영과 축하공연이 있었고, 오후1시 30분부터 시작된 제 2부 행사에 찾아간 자리였다. 잔치는 합창 반을 시작으로 풍물, 댄스스포츠, 민요, 장구, 오카리나, 에어로빅, 가곡, 실버댄스, 영어(팝송), 라인댄스, 컴퓨터(동영상), 하모니카, 난타, 가요, 기타, 시니어댄스, 맷돌체조, 마술, 한국무용 등의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이렇듯 많은 분야의 예능을 통해 어르신들은 그동안 저마다 맞는 취미를 살려 즐길 수 있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런 자리에 나와 한 해 동안 배운 솜씨를 마음껏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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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되었다는 박래봉 어르신이 마술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복장이나 건장하신 외모 어느 것 하나 전문가에 비해 손색이 없어 보인다. 남을 즐겁게 하고 박수를 받으면 자신도 즐겁게 되고, 삶에 대한 의욕과 보람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출연하신 팀의 수가 워낙 많았던 관계로 공연 시간은 저마다 많지 않았다. 그래서 관객들도 한 공연을 지루하지 않고 신선하게 즐길 수 있었고, 행운권 추첨 선물시간이 중간 중간 들어 있어 정말로 가슴 뛰는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진행을 맡은 사회자의 재치와 익살스런 모습 또한 예사롭지가 않아 알아보니 이곳 복지관의 이천수 과장이라고 했다. 모두가 기부의 행사였고, 나눔의 자긍심 높은 잔치라고 생각되었다. 그것이 복지이며 추구하는 복지관이었는지도 몰랐다.
마술 공연이 끝난 뒤 사회자는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마술을 지도해주신 선생님께서 갑자기 서거하시어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고, 애도의 마음을 담아 출연하신 어른 들게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 달라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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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하신 팀마다 갈고 닦은 실력들을 어찌나 잘하시는지 관객들도 함께 박수치며 흥에 겨운 모습들은 갈수록 열기가 달아올랐다. 나는 그중에도 하모니카반이 연주하는 우리의 옛 가요인 '불효자는 웁니다'와 '선창'이 특별하게 전해왔고, 눈앞이 흐려지는 가운데 콧등이 시여지기도 하며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었다. 애절하게 가슴을 적시는 하모니카의 감성은 곧 감동으로 물들였고, 강당의 자리를 가득 메운 500여 관중은 앵 콜을 외치며 뜨거운 박수로 환호했다.
그런가하면 시니어댄스 반 또한 탱고 음악 라콤파르시타와 브루스, 땐사의 순정은 정열과 박진감, 그리고 애절함 속에 희미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칠공 팔공 구구 팔팔 이라는 어르신들, 그 역동적이며 황홀한 동작에 부러움의 눈을 떼지 못하는 관중들은 나도 한때는 저랬었지! 하는 표정들을 지었다.
또 컴퓨터반의 단편영화 '시월의 효 기행'은 두 분의 할아버지께서 수원 화성과 용주사, 융 건릉을 둘러보며 정조대왕의 효심을 그린 작품이었다. 국내 유수의 상도 받고, 서울의 대한극장에서 상영하는 영광도 누렸다며 어르신들의 시대를 뛰어넘는 모습이 더없이 멋져보였다.
식을 줄 모르는 열기 속에 갓을 쓰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국무용반의 춤을 마지막으로 하여 공연은 끝이 났다. 그러나 강당 안은 기대에 차 있었고, 사회자는 짐짓 너스레를 부리며 이공택 복지관장을 소개했다. 이 관장은 그동안 어르신들께서 열심히 갈고 닦은 실력들을 오늘 유감없이 발휘해주신 것에 감사한다 말했고,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며 마지막 일등 경품 추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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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일등 경품으로는 노트북컴퓨터가 주어졌는데 행운 번호는 776번으로 00회사에서 협찬했다고 했다. 크고 작은 많은 경품이 주어진 복 터진 날이었다. 나는 어쩌다가 경품 추첨권도 받지 못하고 입장한 것을, 옆 사람에게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한 장 얻었다. 그것이 운 좋게 이불 한 채를 받을 줄이야! 어깨에 메고 복지관을 나오는데 쳐다보는 어르신들, 오늘 선물 받았냐며 저마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그러니 나는 일등보다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석 삼조가 이런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