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전남 곡성군 오곡면 옛 곡성역. 역사(驛舍) 뒤편엔 세계 각국의 장미가 가을 햇살 아래 꽃망울을 터뜨리며 울긋불긋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주변에 조성한 인공 연못 배수로엔 섬진강에서 흘러온 강물이 콸콸 흘렀다. 도로변에 일렬로 늘어선 상수리나무 잎은 가을 바람에 일렁였다.
2005년 3월 개장한 '섬진강 기차마을' 역사 뒤편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15만5372㎡(4만7000평) 광활한 대지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4년7개월이 지난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방불케 한다. 2만㎡(6040평) 부지엔 영국·독일·프랑스 등 세계 장미육종회사의 신품종 장미 1004종을 심는 '기차마을 장미원' 조성이 한창이다. 또 3만3058㎡(1만평)에는 해바라기·코스모스 등 사계절 꽃이 한가득 심겨져 있다. 곡성군 김영춘 관광개발과장은 "단순히 기차만 타는 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까지 제공하기 위해 꽃동산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
- ▲ 섬진강 기차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4인용 신형 레일 바이크(철로 자전거)를 타고 있다./곡성군 제공
군은 52억7000만원을 들여 우선 375종의 장미를 심었고, 나머지 629종은 12월까지 심을 예정이다. 장미가 만개하는 내년 4~5월 문을 연다. 또 장미원 주변 공원에는 200여종의 연꽃을 키우고 분수대, 인공폭포(높이 7m), 미니 기차, 동물농장, 대형 온실 등도 만든다. 이에 앞서 작년 10월에는 기차마을 내에 연면적 660㎡ 규모의 '섬진강 천적곤충관'이 문을 열었다. 천적을 테마로 전시된 다양한 곤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김 과장은 "에버랜드(1만3210㎡·860종)와 조선대 장미원(8299㎡·227종)을 제치고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대의 장미원이 인구 3만2000명에 불과한 곡성에 탄생하게 된다"며 "섬진강 자연과 어우러진 증기기차 타기는 물론, 장미와 곤충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접목했다"고 말했다.
◆섬진강 기차마을의 대변신
섬진강 기차마을이 국내 최대 '체험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 3월로 개장 5년을 맞는 기차마을은 전남에서 가장 낙후됐던 곡성을 되살리고 있다. 기차마을 파생 관광상품이 쏟아지면서 곡성은 전남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손꼽히는 체류형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곡성은 지리산권 관광객이 잠시 지나가는 길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관광이라곤 태안사와 도림사 등의 사찰을 둘러보는 게 전부였죠. 하지만 기차마을 탄생 이후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내친김에 '관광의 고장'을 목표로 대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김정섭 곡성군 홍보계장)
-
- ▲ 지난5월부터 옛 전라선 침곡역~가정역(5.1㎞) 구간에 100대의 신형 레일바이크가 운영 중이다. 왼쪽 아래 사진은 섬진강 기차마을의 옛 곡성역에서 관광객들이 섬진강변의 옛 전라선을 달리는 증기기관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지난 5월에는 침곡역~가정역(5.1㎞)을 지나는 신형 레일바이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30분 동안 페달을 밟으면서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철로에서 굽어볼 수 있다. 6억3000만원을 들여 100대(4인용 60대·2인용 40대)를 도입했는데, 운영 5개월 만에 1억9000만원을 벌어들였다. 8억5000만원을 투입, 승강장과 카페를 갖춘 2층 규모의 침곡역사도 만든다. 내년 3월 문을 연다. 주변에 주차장 120면도 갖췄다.
서울·경기 산악자전거(MTB) 회원들은 내달 13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MTB 전문 회원 300명이 그날 자전거 열차를 타고 곡성역에 도착, 섬진강을 달리기 때문이다. 섬진강을 따라 난 산불 진화용 임도(林道)를 활용, 강을 보며 주변 야산을 자전거로 처음으로 달릴 계획이다. 군은 앞으로 철로자전거(레일바이크), MTB와 함께 수상 자전거도 도입할 계획이다. 군은 "자전거의 모든 것을 곡성에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섬진강 주변에는 하이킹(11.6㎞) 코스도 마련돼 있다.
이 밖에 나룻배를 탈 수 있는 '호곡나루터'와 '섬진강 천문대', 두계외갓집 체험마을 등 각종 체험마을 4곳도 기차마을 주변에 들어서 있다.
군은 57억원을 들여 심청의 효를 테마로 한 '심청이야기 마을'이란 숙박시설(70명 수용)도 철로 주변인 오곡면 송정리에 만들었다. 초가집과 기와집 형태의 건물 12동이 있다. 또 24억원을 들여 가정역에 기차펜션·목조펜션(70명)을 작년 5월 조성했다.
-
◆폐선(廢線)이 곡성 살렸다
기차마을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력은 크다. 2005년 3월 개장 이후 지난달 말까지 관광객 224만명이 기차마을을 방문했다. 중국·일본인 관광객 500여명도 올해 기차마을을 찾았다. 이 중 164만명이 유료 관광객이다. 증기기관차 등 티켓 수익만 44억4000만원. 이를 관광객 1명이 관광지에서 쓰는 평균비용으로 환산하면 간접효과는 720억원에 이른다. 지금까지 기차마을 조성비 186억원의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직접적인 고용 효과도 있었다. 작년 12월부터 군은 ▲행정수요 급증 ▲관광 프로그램 개발 한계 등을 이유로 열차관광 전문여행업체인 '코레일투어서비스'에 기차마을 운영권을 넘겼다. 이 과정에서 곡성 출신 30명이 직원으로 채용됐다. 민박 51곳과 펜션단지 4곳(52실), 상가 10곳, 모텔 1곳도 기차마을 개장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들어섰다.
특히 기차마을 주변 논은 2005년 이전 3.3㎡(1평)당 가격이 5만원이던 것이 지금은 14만7000원까지 치솟았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땅이 '황금땅'으로 바뀐 것. 군은 "부지를 더 매입해야 하는데, 땅값이 급등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형래 곡성군수는 "죽은 기찻길이 역설적이게도 살아 꿈틀대며 곡성에 새 힘을 불어넣고 있다"며 "기차마을을 '곡성의 기적'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